[64화] 계획이 다 있으셨군요?
잠시 후, 두 사람이 병상에 누운 채 의료진들에 의해서 VIP 병실로 들어왔다.
위이이잉―
간호사가 병상을 세우자, 부투야 실장이 서로를 소개시켜 주었다.
미지에 쌓여 있었던 VIP들은 부총리 겸 내무부장관인 부쿠타 카손가와 보건장관인 루하카 카반구였다.
카손가 부총리가 힘겨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한겨울 씨, 브라이언 박사님과 램버트 교수님께 활약상을 상세하게 들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겨울 씨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저희는 이미 죽어서 땅속에 묻혔을 겁니다.”
“하하, 별말씀을요.”
카손가 부총리와 카반구 장관의 진심 어린 인사에 겨울은 겸연쩍은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으음, 저희는 몸이 불편해서 병실로 돌아가겠습니다. 모든 결정권은 부투야 실장님께 위임해 놓았습니다.”
“…저희가 드리는 선물이 마음에 차지 않더라도 기쁜 마음으로 받아 주셨으면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정명훈 지점장은 놓칠세라 두 사람에게 홍삼 선물 세트를 건네주면서 효능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정 지점장님, 정말 고맙습니다.”
“빨리 쾌차하셔서 콩고민주공화국을 위해 힘써 주십시오.”
“그렇게 할게요.”
홍삼선물 세트를 챙긴 두 사람은 의료진들과 함께 VIP 병실에서 퇴장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부투야 실장이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럼 한겨울 씨, 킹스타 견적서를 보여 주실 수 있습니까?”
“네. 여기 있습니다.”
겨울은 메고 있던 가방에서 견적서가 들어 있는 클리어 파일과 킹스타 카탈로그를 꺼내 부투야 실장에게 건네주었다.
견적서와 카탈로그를 꼼꼼히 살펴본 부투야 실장은 핸드폰 계산기 앱으로 무언가를 한참 계산했다.
그러고는 정명훈 지점장에게 말을 걸었다.
“정 지점장님, 이제부터 제가 하는 얘기를 잘 듣고, 최대한 빨리 답변해 주십시오. 만약에 제가 주문할 킹스타를 마타티 항구까지 도착시켜 주는 조건일 경우에 가격을 얼마까지 인하해 주실 수 있습니까?”
“CIF 조건(Cost, Insurance and Freight, 수출자가 물품을 바이어가 지정하는 항구까지 운송하는 데 필요한 운임 및 보험 비용을 지불하는 조건)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한겨울 씨하고 보호자 대기실에서 잠깐 대화를 나누고 오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렇게 하십시오.”
보호자 대기실로 이동한 두 사람은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눴다.
“부지점장은 부투야 실장의 의도가 뭐라고 생각하나?”
겨울은 지지난주 금요일에 트시카파 시로 이동하면서 부투야 실장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그때 부투야 실장은 킹스타의 특장점뿐만 아니라, 다른 자동차 제조 회사의 SUV 자동차 가격도 지나치게 꼼꼼할 정도로 물어봤다.
당시에는 그가 묻는 말에 아무런 의심 없이 넙죽넙죽 대답했지만, 알고 보니 계획이 다 있는 듯했다.
짧게 생각을 끝낸 겨울은 정명훈 지점장의 물음에 대답했다.
“내무부가 발주하는 SUV 자동차를 저희한테 주려는 것 같습니다.”
“역시… 나하고 생각이 같구먼.”
“지점장님, 카반구 보건장관은 저희한테 어떤 선물을 주려는 걸까요?”
“내가 어떻게 알겠나. 일단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 보자고.”
“네, 지점장님.”
두 사람은 10여분 가까이 머리를 맞대고 상의한 끝에 킹스타의 최종 견적 가격을 산출했다.
“자, 이제 부투야 실장과 딜을 마무리 짓자고.”
다시 병실로 돌아온 정명훈 지점장은 부투야 실장에게 최종 견적 가격을 알려 주었다.
“부투야 실장님, CIF 기준으로 3만 5,000달러까지 가격을 인하해 드릴 수 있습니다.”
“제가 킹스타를 5,500대를 구입해도 똑같은 금액입니까?”
“부투야 실장님이 킹스타 5,500대를 발주할 것을 예상하고, 견적을 산출한 겁니다.”
“음…….”
끝말을 흐린 부투야 실장이 장고에 들어갔다.
두 사람은 그의 생각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숨죽인 채 의자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제법 많은 시간이 흐른 후.
부투야 실장이 결심이 섰는지, 침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정 지점장님, 사실 우리나라는 SUV 자동차 5,500대를 한꺼번에 수입할 수 있는 돈이 없습니다. 따라서 1년 동안에 여러 번에 나눠서 수입할 생각이었습니다.”
“저희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만약에 제가 제안하는 조건을 수용해 주신다면, 킹스타 5,500대를 한꺼번에 수입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경청하겠습니다.”
“우리 콩고민주공화국은…….”
부투야 실장의 제안을 끝까지 들은 정명훈 지점장은 침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부투야 실장님이 제안한 내용은 제가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 본사 사장님께 컨펌을 받은 뒤 답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주십시오.”
“몇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가급적이면, 사실 그대로 답변해 주시면 감사합니다. 먼저 제가 언제까지 컨펌을 받아야 합니까?”
“원래는 이미 업체 선정이 끝났어야 하나, 제가 보류시켜 놓은 상태입니다.”
즉, 최대한 서둘러 달라는 내용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두 번째 질문입니다. 저희가 알고 있기로는…….”
* * *
해외 법인을 책임지고 있는 이진호 사장은 각 나라마다 시차가 다르기 때문에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었다.
집에 일거리를 싸 가지고 와서 처리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방금 전 역시도 그랬다.
미국 법인에 발생한 문제 때문에 법인장과 30분 가까이 통화하다 보니, 벌써 시간이 밤 11시 30분을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어이쿠, 이제 자야 할 시간이네.”
윙윙―
그가 서재 의자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핸드폰이 진동했다.
발신자를 확인하니, 아프리카 콩고 지점의 정명훈 지점장이 걸어온 전화였다.
그가 이렇게 늦은 시간에 전화를 걸어왔다는 얘기는 긴급 상황이 발생했다는 뜻이었다.
“또 어떤 일로 나를 놀래키려는 거지…….”
혼잣말은 흘리던 그는 이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정 지점장, 무슨 일인가요?”
[사장님, 늦은 시간에 정말 죄송합니다. 긴급하게 컨펌받을 것이 있어서 전화드렸습니다.]
오랜만에 듣는, 잔뜩 흥분한 목소리.
필경 좋은 일이리라.
“빨리 얘기해 보세요.”
[지금 SUV 자동차 관련 건 때문에 바통고 대통령의 최측근인 부투야 비서실장과 담판을 짓고 있는 중입니다.]
“음? 정 지점장, 부투야 비서실장과는 평소 안면이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저는 오늘 처음 만나서 인사를 나눴고, 한겨울 씨와 알고 지내던 사이로 확인됐습니다.]
또 한겨울이었다.
중요한 사건마다 그가 엮이는 이유가 진심으로 궁금해지는 이진호 사장이었다.
“…부투야 실장과 한겨울 씨가 어떤 사이인지 얘기해 줄 수 있습니까?”
[그 부분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보통 사이가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이 어떤 사이인지 언제 보고해 줄 수 있습니까?”
[한국 시간으로 내일 아침까지는 보고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어요. 이제 일 얘기를 해 봅시다. 내가 무엇을 컨펌해 주면 됩니까?”
[부투야 실장은 최고급 옵션이 장착된 킹스타를 CIF 조건으로 대당 3만 5,000달러에 수입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진호 사장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계 최빈국 중에 하나인 콩고민주공화국이 굳이 최고급 옵션이 장착된 킹스타를 구입할 필요가 있는가에 대해서.
이 점에 대해서 물었더니, 정명훈 지점장은 전혀 뜻밖의 대답을 꺼내 놓았다.
[저도 그 점이 궁금해서 물어봤는데, 한겨울 씨한테 최고급 옵션이 장착된 킹스타를 구입해 주기로 약속했답니다.]
“…일단 알았고요. 이익률은 어떻게 됩니까?”
[10%를 책정해 놓은 상태입니다.]
“결제 조건은 어떻게 됩니까?”
[그게… 좀 그렇습니다. 이 나라의 대표 수출품인 코발트를 국제 시세보다 25% 할인해서 공급해 주겠답니다.]
즉, 돈이 아닌 대물로 결제해 주겠다는 의미였다.
경제 사정이 어려운 나라에서는 대물 결제 조건으로 수출을 많이 하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것은 전혀 없었다.
게다가 코발트는 대한자동차와 대한화학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는 중이기도 했고.
그래도 체크해야 할 것이 있었다.
“코발트의 국제 시세와 우리가 얼마에 수입하고 있습니까?”
[코발트의 가격은 등락폭이 상당히 심한 편이라서 국제 시세가 큰 의미는 없습니다만, 현재는 톤당 3만 5,000달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현재 국제 시세 대비 10%정도 할인해서 수입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럼 코발트에서도 이익이 15%가 남는다는 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하하하! 그거 정말 좋은 소식이네요.”
[저도 사장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부투야 실장이 코발트는 적기에 공급해 줄 수 있답니까?”
[콩고민주공화국 정부가 비축하고 있는 물량을 공급해 준다고 하니까,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SUV 자동차를 일본의 도요타 자동차에 발주하지 않은 이유를 파악해 봤습니까?”
[네, 사장님. 먼저 가격이 비쌌고, 도요타 자동차 측에서 대물 결제 조건을 거부했답니다.]
“네? 국제 시세 대비 25%를 할인한 조건을요?”
이진호 사장은 의외의 얘기에 깜짝 놀랐다.
[도요타 자동차에는 국제 시세 대비 10% 할인한 조건을 제시했답니다.]
“그럼 우리만 특혜를 받았다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사장님.]
“알았어요. 내가 언제까지 컨펌해 줘야 합니까?”
[콩고민주공화국도 늦어도 내일 오전까지는 업체 선정 발표를 끝내야 한다고 합니다.]
“30분에서 한 시간 안에 결정해 줄게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정명훈 지점장과 전화를 끝낸 이진호 사장은 일고의 고민도 없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사장님께서 이렇게 늦은 시간에 어쩐 일이십니까?]
“서 실장님, 방금 전에 아프리카의 콩고 지점의 정명훈 지점장이 급한 연락을 취해 왔습니다.”
[어떤 내용인지 말씀해 보세요.]
“콩고민주공화국의 내무부에서 업무용으로…….”
이진호 사장은 정명훈 지점장한테 들은 얘기를 가감 없이 사실대로 보고했다.
“…실장님께서 회장님의 컨펌을 최대한 빨리 받아 주십시오.”
[흠, 한겨울이 부투야 실장과 어떤 인연인지는 파악해 보셨습니까?]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저희에게 많은 특혜를 주는 것으로 봐서는 보통 사이가 아닌 것은 확실합니다. 정 지점장이 우리나라 시간으로 내일 아침까지 파악해서 보고해 준다고 합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았습니다. 회장님이 직접 전화하실 수 있도록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윙윙―
10분이 지나지 않아서 이진호 사장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네. 회장님.”
[이 사장, 콩고 지점이 또 일을 냈다면서요?]
“네. 도요타 자동차의 입 속에 반쯤 들어갔던 SUV 5,500대를 끄집어냈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설명해 주실 수 있겠죠?]
“저도 정 지점장한테 들은 얘기라서 아직 검증해 보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하고 들어 주십시오.”
[정 지점장이 거짓말을 하거나 허풍을 치는 성격은 아니죠?]
“물론입니다.”
[얼른 얘기해 보세요.]
“약 30분 전에 정명훈 지점장이…….”
이진호 사장은 서동호 실장에게 보고했던 내용과 거의 똑같이 보고했다.
[어때요? 내가 정 지점장을 정확하게 본 게 맞지요?]
“저도 회장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정 지점장한테 수고했다고 전해 주세요.]
“네, 회장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임원 인사가 발표 날 때까지는 비밀인 거 알고 있죠?]
즉, 정명훈 지점장한테 언급하지 말라는 얘기였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그나저나… 가장 큰 공을 세운 한겨울한테는 어떤 보상을 해 줄 생각입니까?]
“성과급을 지급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으음, 너무 식상하지 않을까요?]
‘후후. 회장님. 계획이 다 있으셨군요?’
이진호 사장은 속으로 혼잣말을 내뱉었다.
“회장님의 뜻에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이것도 비밀인 거 알고 있죠?]
“네, 물론입니다.”
[내일 아침에 커피 마시러 제 방으로 오세요.]
“네, 회장님.”
송훈석 회장과 통화를 마친 이진호 사장은 입가 미소를 머금은 채 혼잣말을 흘렸다.
“정 지점장, 한겨울 씨, 축하합니다.”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