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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성공 신화-61화 (61/328)

[61화] 뱁새가 봉황의 뜻을 어찌 알리오

“한겨울 씨, 어차피 내일은 주말이니까, 여기서 하룻밤 자고 킨샤사로 떠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반투야의 제안을 받은 겨울은 마음이 썩 내키지 않았다.

반군들을 토벌하기 위해서 군부대가 비상사태로 돌입했는데, 자기들만 이곳에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반투야 씨, 저희는 트시카파 시내에 위치하고 있는 호텔에서 하룻밤 묵고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이곳에 주둔하고 있는 군인들 때문에 그러는 것 같은데, 그들은 조금 있다가 반군을 토벌하러 떠나야 합니다. 그러니까 마음 편하게 장교 숙소에서 묵도록 하세요.”

반투야의 제안을 받은 겨울은 일단 은센기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도 거부할 수 없는 무언가를 느낀 것인지, 겨울의 의견에 따르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어쩔 수 없네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제 저녁이나 먹으러 가시죠.”

식당에서 오랜만에 저녁을 푸짐하게 먹은 겨울과 은센기는 반군 토벌 작전을 준비하는 군인들에게 최대한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장교 숙소로 조용히 이동했다.

겨울은 군 시절에 장교 숙소(BOQ, Bachelor Officer Quarters)를 수십 번도 더 들락날락 거렸기 때문에 그곳에 어떤 시설들이 구비되어 있는지 기억이 생생했다.

침대 하나와 책상 하나, 옷장 하나, 텔레비전, 전화 등등.

하지만 콩고민주공화국 군대의 BOQ는 시설이 열악해도 너무 열악했다.

다 낡아 빠진 침대 두 개와 책상 두 개.

군부대 측에서 특별히 고려해서 내준 숙소가 이 정도로 엉망이니, 일반 사병들이 사용하는 막사는 안 봐도 비디오였다.

실망감 어린 겨울의 표정을 봤는지, 은센기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걸어왔다.

“겨울 씨, 불편을 감수하고 하룻밤만 견뎌 봅시다.”

“무슨 말씀이세요. 이 정도 잠자리면 어제에 비하면 호텔 수준이죠.”

“하하하, 그 말이 맞긴 하죠.”

겨울은 작은 가방에서 반투야가 건네준 돈을 꺼내 은센기에게 건네주었다.

“반투야 씨한테 받은 돈입니다.”

겨울에게 건네받은 돈을 꼼꼼히 세어 보던 은센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겨울 씨, 차에서 반투야 씨가 1,000달러 정도 된다고 하지 않았나요?”

“음? 저도 그렇게 들었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문제라고 해야 할까… 달러까지 포함해서 1,500달러가 넘는 것 같아서요.”

“반투야 씨가 착각한 것이 아닐까요?”

“에이, 설마요.”

은센기의 부정적인 반응에 겨울은 바로 말을 이어 나갔다.

“설마하니 500달러를 반투야 씨한테 되돌려 줄 생각은 아니죠?”

은센기는 자신의 손에 들려 있던 100달러짜리 지폐 다섯 장이 누구의 주머니에서 나왔는지 단박에 알아챘다.

“겨울 씨, 고마워요.”

“뭘요. 제가 약속했는데 지키는 것이 당연하죠. 빨리 씻고 잡시다.”

급히 세면도구를 챙긴 겨울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침대에 누운 겨울은 핸드폰을 키고 ‘반투야’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을 검색해 보았다.

그가 중요한 인물로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그 이름으로는 비슷하게 생긴 사람조차 찾을 수 없었다.

혹시나 싶어서 콩고민주공화국 정부 조직 사이트에 접속해서 반투야를 찾아봤지만, 역시나였다.

그런 겨울의 모습을 옆 침대에서 지켜보고 있던 은센기가 말을 건네 왔다.

“반투야 씨의 정체를 알아보는 중인가요?”

“네. 아무래도 궁금해서요. 그런데 비슷한 사람조차 찾을 수 없네요.”

“저는 반투야 씨가 비밀정보국(ANR, Agence Nationale de Renseignements)의 고위 간부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요?”

“음… 군대의 사령관과 경찰서장을 하인 부리듯이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몇 명이나 될까요? 결정적으로 사진조차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도 없잖아요.”

“그런데 비밀정보국의 고위 간부가 국경 없는 의사회의 개소식에 참석할 이유가 있을까요?”

“국경 없는 의사회의 의료진들의 성향을 파악하는 게 임무가 아니었을까요? 너무 비약인가요?”

“음… 아뇨. 생각해 보니까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거 같아요.”

“아무튼 비밀정보국 사람들과 친해지면 여러모로 이점이 많으니까, 밉보일 만한 행동은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겠어요.”

겨울과 은센기는 그들만의 상상의 나래를 펴다가 시나브로 잠에 빠져 들어갔다.

링링링―

잠든 지 얼마나 되었다고, 알람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겨울은 비몽사몽 침대 맡에 놓아 둔 핸드폰을 찾아 알람을 끄려 했다.

하지만 그 소리는 알람이 아니라 전화벨 소리였다.

발신자는 반투야.

겨울은 뭔가 급한 일이 생겼다고 판단하고 얼른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반투야 씨.”

[자고 있는데 깨워서 미안해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방금 전에 반군을 토벌하러 현장에 출동했던 지휘관한테 전화가 왔는데, 작전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답니다.]

“군인들 피해는 없었나요?”

[한겨울 씨가 알려 준 정보가 정확해서 그런지, 경상자 몇 명밖에 발생하지 않았다더군요.]

“천만다행이네요.”

[반군들한테 탈취당했던 무기들과 의약품, 그리고 차량들도 무사히 회수했다고 합니다.]

“국경 없는 의사회 분들이 좋아하겠네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혹시나 궁금해할 것 같아서 연락했어요. 이제 저도 마음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네요.]

현재 시각은 새벽 2시 30분.

겨울은 이제 반투야가 비밀정보국의 고위 관리라고 확신했다.

그렇지 않고서 그가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깬 채로 반군 토벌 작전을 실시간으로 보고받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비밀정보국의 고위 관리라는 인맥을 잡은 겨울은 기뻐서 크게 소리치고 싶었지만, 옆 침대에는 은센기가 세상모르고 잠에 빠져 있었기에 참았다.

“저도 덕분에 안심하고 푹 잘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반투야와 통화를 마치고 다시 잠자리에 든 겨울이지만, 반투야에게 전한 것과는 달리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그런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겨울은 그렇게 뜬눈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겨울 씨, 침대가 불편했나요?”

눈가에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앉은 겨울을 보며 은센기가 말을 걸어왔다.

“그건 아닌데… 새벽에 반투야 씨의 전화를 받고 나니까 잠이 잘 오지가 않더라고요.”

“새벽에 전화가 말입니까? 아, 반군 토벌 작전은 어떻게 됐답니까?”

“무사히 잘 끝났답니다.”

“이야! 잘됐네요.”

“정말 꼴 좋다는 생각밖에는 안 드네요. 아무튼 킨샤사까지 갈 길이 머니까, 우리도 서두릅시다.”

“좋습니다.”

군부대에서 아침을 든든하게 얻어먹은 겨울과 은센기는 반투야, 야쿠보 사령관 등의 환송을 받으며 킨샤사로 출발했다.

* * *

월요일 아침.

아파트 현관문을 나서며 입이 찢어지게 하품을 하고 있는 겨울을 향해 운전기사인 쿠엘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 왔다.

“부지점장님, 카낭가 출장은 잘 다녀오셨습니까?”

“그럭저럭요.”

인사를 받은 겨울은 차에 올라탔고, 이내 차는 사무실을 향해 출발했다.

차창 밖의 킨샤사 풍경을 멍하니 보고 있던 겨울은 갑자기 궁금한 게 생겼다.

“쿠엘 씨, 지난주 목요일에 여기도 비가 많이 왔나요?”

“네. 제법 많이 왔습니다.”

“3일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물에 잠겨 있네요?”

“아, 그게 아마도 도로가에 배수 시설이 설치되어 있지 않아서 그런 걸 겁니다.”

“그럼 저 많은 물들이 땅속으로 스며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건가요?”

“네.”

“아이고, 또 모기들이 극성을 부리겠네요.”

“에휴, 그렇게 될 거 같습니다.”

쿠엘도 자신의 나라의 현실이 답답했는지, 대답하는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윙윙―

그때, 겨울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발신자를 확인하니 호영이 걸어온 전화였다.

“어, 호영아.”

[오늘쯤 너희 회사 사무실로 홍삼 열두 박스가 배달될 거야.]

겨울은 지난주에 호영에게 가격대가 괜찮은 홍삼을 열 박스만 항공 운송으로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호영은 열두 박스를 보내 준다고 하는 것이었다.

[두 박스는 내 돈으로 사서 너한테 선물하는 거야. 너도 몸보신 좀 하라고.]

겨울은 호영의 세심한 마음 씀씀이에 울컥했지만, 입에서는 엉뚱한 소리가 나갔다.

“왜 쓸데없는 짓을 왜 하고 그러냐?”

[하, 새끼. 좋으면 좋다고 해라.]

“…그래, 고맙다. 잘 먹을게.”

[또 그렇다고 너 혼자 다 먹지 말고, 한 박스는 지점장님 드려라.]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어.”

[영수증은 스캔 떠서 이메일로 보냈으니까, 참고하고.]

“그래, 고맙다.”

[고마우면 빨리 대한 그룹 때려치우고 우리 회사로 와라.]

“어우, 진짜 지치지도 않냐, 이 징그러운 놈아.”

* * *

같은 시각.

정명훈 지점장도 추성민 팀장과 통화 중에 있었다.

“추 팀장, 이제 그만 괴롭힐 때 되지 않았냐?”

[선배님, 저도 사장님께 특별 지시를 받아서 이러는 겁니다.]

콩고민주공화국 정부가 업무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발주한 SUV 자동차는 모두 5,500대.

콩고 지점에서는 킹스타를 대당 2만 8,000달러씩 가격을 산정해서 모두 1억 5,400만 달러에 제안서를 제출해 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워낙 막강한 경쟁자인 도요타 자동차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 사정을 알고 있으면서도 추성민 팀장은 틈만 나면 전화를 걸어와서 못살게 굴고 있었다.

그러면서 사장님의 특별 지시라는 말만 자꾸 말끝마다 언급했다.

“후우, 추 팀장. 정말로 사장님의 특별 지시를 받은 거 맞나?”

[제가 선배님한테 거짓말을 하겠어요?]

“흐음, 사장님께서 이렇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저희 같은 뱁새가 봉황의 뜻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냥 시키니까 하는 거지.]

“쓰읍, 하여간 SUV 자동차 5,500대 건은 잊어버려. 그건 안 된다니까.”

[선배님, 사랑하는 후배를 위해서라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아, 진짜… 알았어.”

[아, 그리고 코발트 광산 개발 건과 관련해서 사장님한테 전화가 갈지 모르니까, 미리 알고 계세요.]

“어, 그렇게 할게. 그리고 이제 다른 얘기를 해 보자고.”

[어떤 얘기요?]

빠른 회사들은 11월 중순부터 임원 인사를 발표하기 시작해서 12월 초에 마무리하곤 했다.

그래야 조직 책임자들과 사원 인사를 12월 중에 마무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정명훈 지점장도 이사 승진 대상자이기 때문에 이리저리 확인해 보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렇다 할 소문은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우리 아프리카 법인에서 임원은 몇 명이 승진할 것 같은가?”

[선배님이 제일 가능성이 높다는 소문밖에 듣지 못했어요.]

“추 팀장은?”

[이번에 콩고 지점에서 SUV 자동차 건을 먹으면, 가능할지도 모르죠.]

“…그나저나 법인장은 누가 오는지 알고 있나?”

[중국 법인의 이경수 상무가 온다는 소문이 있어요.]

“크크크, 이 상무님이 오시면 추 팀장은 피곤하겠는데?”

[…선배님, 저하고 자리를 바꾸는 게 어때요?]

“추 팀장, 내 자리에 프리미엄이 얼마나 많이 붙어 있는지 알고 있나?”

[에휴, 상전벽해라는 말을 이럴 때 사용하는 것 같네요.]

그때, 액정에 이진호 사장의 핸드폰 번호가 찍혔다.

“사장님한테서 전화 왔다. 나중에 통화하자고.”

[네, 선배님.]

추성민 팀장과의 전화를 서둘러 끝낸 정명훈 팀장은 재빨리 이진호 사장의 전화를 받았다.

“네, 사장님.”

[어, 정 지점장. 나, 지금 회장님과 같이 있어서 스피커폰으로 전환할 예정이니까, 참고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코발트 광산 건에 대해서 회장님께서 알고 싶다고 하시니까, 어떻게 된 상황인지 보고해 보세요.]

정명훈 지점장은 정신을 집중하고 입을 열었다.

“지난주 화요일에 한겨울 씨한테 은센기 씨가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내용은 콩고민주공화국의 중부 지역인 카낭가에 살고 있는 지인이 있는데…….”

정명훈 지점장은 겨울에게 보고받은 내용과 무케나 사장과 통화한 내용을 종합해서 간결하게 보고했다.

“…원래는 이번 주에 미팅을 갖기로 했는데, 무케나 사장 측에서 불가피한 사정이 있다면서 미팅을 무기한 연기해 달라고 요청해 온 상태입니다.”

[그 사이에 무케나 사장이 중국 투자자와 계약을 체결하는 것은 아니겠죠?]

“그럴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회장님은 우리 대한 그룹이 무케나 사장과 코발트 광산을 공동 개발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SUV 자동차 건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저희도 이 나라 내무부에 제안서를 제출해 놓은 상태입니다만, 일본의 도요타 자동차의 위세가 워낙 막강해서 수주할 가능성이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만약에 우리 대한 그룹이 SUV 자동차 건을 가지고 오면, 정 지점장에게 큰 선물을 하나 주도록 하겠습니다.]

이진호 사장의 말을 거꾸로 해석하면, SUV 자동차 건을 가지고 오지 못하면 임원 승진은 바라지 말라는 뜻이었다.

정명훈 지점장은 허탈함이 물밀듯 몰려왔지만, 차마 내색할 수는 없었다.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그럼 나는 정 지점장만 믿고 있겠습니다.]

이진호 사장과 통화를 끝낸 정명훈 지점장은 멍한 눈으로 창밖을 응시했다.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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