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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성공 신화-55화 (55/328)

[55화] VIP를 구해라 (1)

“악몽을 꿨나요?”

옆 병상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은센기가 말을 붙여왔다.

겨울은 식은땀을 흘리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 꾼 꿈이 선명하게 뇌리에 박혀 있었다.

나쁜 꿈은 반대라는 속설을 믿고 싶을 만큼 그 내용은 아주 끔찍했다.

“하아, 너무 피곤해서 가위에 눌린 것 같아요.”

겨울이 병상에 일어나 앉으며 겨우 아무것도 아닌 척 대답했다.

입에 담는 순간 실제로 벌어질 것 같은 이상한 예감이 엄습해 왔다.

“저도 가위에 눌린 적이 제법 많았어요.”

은센기와 대화를 나누던 겨울의 눈에 이질적인 장면이 들어왔다.

헌혈할 당시에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던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은센기 씨, 여기 있던 의사들과 간호사들은 다 어디로 간 거예요?”

“글쎄요? 조금 전에 긴급회의가 있다면서 어디론가 몰려갔어요.”

“왜 긴급회의를 하는지 모르고요?”

“VIP들이랑 마을 주민들의 생명이 위험하다는 말 말고 그 이외에 들은 건 없어요.”

느낌상 또 무슨 일이 벌어진 게 아닌가 싶었지만, 거기에 신경을 더 쓸 여력이 없었다.

“후우, 이제 불룬구로 떠나야 할 거 같아요. 여기서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었네요.”

“그래야죠. 아, 겨울 씨. 램버트 교수님이 떠나기 전에 꼭 들려 달라고 했어요. 마지막으로 인사드리고 떠나죠.”

겨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램버트 교수를 찾기 위해서 컴컴한 밖을 이리저리 옮겨다녔다.

그가 어디에 있는지 들은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에 둘은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아냈다.

둘이 있던 곳과 비슷한 크기의 천막들이 여러 동이 설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다만, 그 천막들은 모두 조용한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램버트 교수님이 도대체 어디에 계실까요?”

“우리가 전에 비를 피하던 2층 건물에 계시지는 않을까요?”

“음, 일단 한번 가 보죠.”

2층 건물의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니 복도가 눈에 들어왔다.

희미한 조명 밑으로 출입문 세 개가 보였다.

겨울과 은센기는 출입문에 귀를 대고 안에 사람들이 있는지 확인했다.

다행히도 복도 맨 끝에 있는 출입문의 안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겨울은 고민에 빠졌다.

노크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 타당하지만, 괜히 회의 분위기를 망칠까 걱정이 된 것이다.

은센기에게 의견을 물으니 그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대답을 주저했다.

그렇다고 의료진이 회의를 끝낼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는 없어서, 두 사람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조용히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는 예상대로 국경 없는 의사회에 소속되어 있는 모든 의료진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토의에 잔뜩 몰입해 있기 때문인지, 겨울과 은센기에게 시선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두 사람은 열띤 회의 분위기를 깨지 않으려고, 벽에 기댄 채 조용히 회의를 지켜봤다.

“…해서 내일 아침까지 긴급 수술을 진행하지 않으면, VIP들은 모두 사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램버트 교수, 나도 그건 알지만, 우리들이 보유하고 있던 의약품을 모두 반군들에게 강탈당했잖아요. 최소한의 약도 없이 수술에 들어갈 수는 없어요.”

“브라이언 박사님, VIP들을 헬기로 킨샤사로 후송하면 안 될까요?”

“나도 그 방법을 생각해 봤지만, 폭우가 너무 심한데다가 깜깜해서 헬기가 뜰 수 없답니다.”

그때, 30대로 보이는 의사가 발언권을 요청하고 입을 열었다.

“트시카파 현장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어떨까요?”

“그렇지 않아도 SOS를 쳐놓은 상태입니다.”

“후우, 그나마 다행이네요.”

30대 의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반면에 그쪽 사정을 아는 겨울은 큰일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은 조심스런 목소리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받은 것은 당연지사.

특히, 상석에 앉아 있는 브라이언 박사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거기 서 계시는 분은 누구십니까?”

“아… 브라이언 박사님, 제가 대신 말씀드리겠습니다.”

겨울보다 램버트 교수의 입이 먼저 열렸다.

“왼쪽에 서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오신 한겨울 씨로…….”

램버트 교수는 회의실에 모여 있는 의료진들에게 두 사람이 마을에서 주민들을 구하기 위해 헌신적인 노력과 헌혈을 한 일들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돌아가기 전에 저한테 들려 달라고 부탁했더니만, 저를 찾아온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국경 없는 의사회를 이끌고 있는 코비 브라이언 (Kobe Bryan)이라고 합니다. 그곳에 서 계시지 마시고, 이쪽 빈자리에 앉으세요.”

두 사람이 자리에 앉자, 브라이언 박사가 푸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얘기가 뭔가요?”

“이곳과 트시카파를 연결하는 도로에 산사태가 발생한 것 같습니다. 저희들도 트시카파로 가다가 되돌아왔거든요.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아보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 이런…….”

여기저기서 탄식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짝짝.

브라이언 박사는 박수를 쳐서 시선을 자기에게 모은 뒤, 말을 이어 나갔다.

“자, 어쩔 수 없죠. 이제 다른 방법을 찾아봅시다.”

“브라이언 박사님, VIP들을 카낭가 공항까지 차로 후송하고, 그곳에서 비행기로 킨샤사로 이동하는 것은 어떨까요?”

“곤잘레스 교수, 도로 사정이 괜찮다면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한 사항이지만, 도로 상태가 지금 엉망이랍니다. 거의 높은 확률로 쇼크사할 수 있어요.”

“하아…….”

의견을 제시한 곤잘레스 교수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뱉었다.

곧이어 다른 의료진들도 아이디어를 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실현 불가능하다는 사실만 알았을 뿐이었다.

겨울은 VIP들과 마을 주민들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곰곰이 생각해 봤다.

잠시 뒤, 어찌저찌 방법 하나를 찾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자리에 자신이 나서도 될까?’라는 생각 때문에 쉽게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후우… 한겨울, 네가 언제 이것저것 따지고 덤벼들었냐? 일단 저질러 보고, 아니다 싶으면 정중히 사과하면 돼.’

결심을 굳인 겨울은 조용히 발언권을 요청했다.

“저어, 죄송하지만, VIP들이 그렇게 위독합니까?”

“흠, 네. 만약에 그분들이 치료를 받지 못해 죽기라도 한다면… 어쩌면 앞으로 의료 봉사 활동을 전개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처할지도 모르겠군요.”

국경 없는 의사회의 의료진들은 때론 목숨까지 각오하고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사람들을 위한 봉사 활동을 전개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죽는 것을 가지고 봉사 활동의 중단을 운운하는 것은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다.

‘만약에 VIP들이 의료진들이 아니라면…….’

여태까지 VIP가 의료진이라 생각하던 겨울은 자신의 추측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참 만에 생각을 정리한 겨울은 그간의 고민을 훌훌 털어 냈다.

자신의 생각을 밀어붙이기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

“박사님, 강탈당한 의약품들을 되찾아 오면 수술을 할 수 있습니까??”

브라이언 박사도 그 방법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논외 대상으로 제쳐놓고 있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 방법은 실현 불가능하다고 이미 결론이 난 상태입니다. 그러니 더 거론하지 마세요.”

“그러면 VIP들과 마을 주민들을 살릴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현재로서는 전무한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하고 한번 시도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밑져야 본전이라…….”

브라이언 박사가 끝말을 흐린 후,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에 잠겼다.

겨울도 그 시간 동안 자신의 아이디어에 어떤 허점이 없는지 차근차근 다시 점검했다.

회의실에 앉아 있는 의료진들은 브라이언 박사의 침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윽고 생각을 끝냈는지, 브라이언 박사가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제가 묻는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해 줄 수 있으면 고려해 볼게요.”

“네.”

“먼저 우리는 반군의 실체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겨울은 마을 주민들을 구하기 위해서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일 당시에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나이를 알 수 없는 젊은 남자가 폭우 속에서 통곡하고 있던 것이다.

그 사람에게 다가가서 이유를 물었더니, 그는 울음 사이로 엄청난 얘기를 꺼내 놓았다.

‘만약에 이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면…….’

아마도 그 사람은 살아도 산목숨이 아닐 것이었다.

그를 위해서 입을 다물기로 했지만, 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부상당한 VIP들과 마을 주민들을 절대로 살릴 수 없었다.

“그전에… 박사님, 부상당하지 않은 마을 주민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혹시 몰라서 이 건물 지하에 대피시켜 놓았어요.”

“그럼 10분 정도만 기다려 주실 수 있습니까?”

급하게 회의실 밖으로 나온 겨울은 지하실로 뛰어 내려갔다.

지하실에는 숫자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주민들이 잔뜩 겁에 질린 채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겨울은 한쪽 구석에 넋을 놓고 앉아 있는 남자에게 달려가서 속삭이듯 저간의 사정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도움을 요청했다.

“저… 제가 반드시 그래야 하나요?”

“네. 그렇지 않으면 부상당한 마을 사람들이 생명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하아… 알겠습니다.”

2층으로 겨울과 젊은 남자가 올라오자, 브라이언 박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사람은……?”

“아, 이분은…….”

겨울이 대답을 하려던 찰나, 젊은 남자가 그를 가로막고 입을 열었다.

“제가 말하겠습니다. 제 이름은 은둔부입니다. 오늘 습격을 가한 반군 조직에 비록 강제였지만, 올해 초까지 활동한 적이 있습니다.”

그 말에 방 안에 있는 모두가 눈을 크게 떴다.

아무리 강제라고는 하지만, 반군으로 활동했다니.

그것도 오늘 그들을 습격한 반군 조직의 일원으로서 말이다.

“반군 조직의 이름은 ‘자이르여 영원하라’입니다.”

하지만 은둔부가 반군으로 활동한 사실과는 별개로 그의 정보는 굉장히 유익했다.

반군 기지의 지리와 의약품을 보관하는 창고까지 자세하게 알고 있던 것이다.

겨울은 사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점은 많았지만, 반군들에게 강탈당한 의약품들을 되찾아 올 수 있는 희망을 엿보았다.

만에 하나 발생할 수 있는 돌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 은둔부에게 이것저것을 자세하게 물어 상황을 파악했다.

급박하게 흘러가는 상황 때문인지, 은둔부는 겨울의 물음에 토를 달지 않고 성심성의껏 대답했다

“그곳까지 안내해 줄 수 있습니까?”

“…기지 근처까지는 안내해 줄 수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말없이 지켜보고 있던 브라이언 박사는 겨울의 행동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막말로 얘기해서 겨울은 제삼자였다.

즉, 반군들에게 강탈당한 의약품을 되찾아오는 일에 개입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겨울은 VIP들과 마을 주민들의 생명이 위독하다는 얘기를 들은 후부터 마치 자기 일처럼 행동으로 나서고 있었다.

브라이언 박사는 겨울에게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수술을 받지 않으면 VIP들과 마을 주민들의 생명이 위험하다면서요?”

“…그 이유가 다입니까?”

“네. 여기 계신 분들 중에서 저보다 신체 능력이 뛰어난 분이 계십니까? 있다면 나서지 않겠습니다.”

겨울은 강한 어조로 물었다.

의료진들은 그의 말에 부정하지 못하고 침묵만을 유지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브라이언 박사가 입을 열었다.

“그쪽 말대로 우리들 중에서 행동으로 옮길 만한 사람은 없는 것 같네요. 정말 우리를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네. 그러려고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만약에 반군 기지에 침투하다가 반군을 맞닥뜨리면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최대한 상황에 맞춰 대처해야겠죠.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남자들은 병역의 의무를 치룹니다. 때문에 저도 기본적인 방어는 할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무사히 침투해서 의약품이 보관되어 있는 창고까지 도착했다고 칩시다. 창고 안에 들어가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의약품은 어떻게 찾아 가지고 나올 생각입니까?”

“음, 거기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수술에 필요한 의약품 종류를 적어 주시면…….”

겨울의 설명을 듣고 있던 램버트 교수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브라이언 박사님, 시간 단축을 위해서 제가 함께 침투하겠습니다.”

“램버트 교수, 괜찮겠습니까?”

“전혀 상관이 없는 한겨울 씨도 이렇게 발 벗고 나서는데, 제가 마냥 손놓고 있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후우, 알았어요. 목숨이 위중한 VIP들과 마을 주민들을 위해서라도 무사히 돌아오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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