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 성공 신화-52화 (52/328)

[52화]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는 돈

어느덧 시간은 흘러서 11월 초가 되었다.

콩고 지점은 잠비아의 싱칼라 회장에게 1억 달러의 의약품을 수출하는 등 비약적인 신장을 기록하고 있었다.

겨울 또한 업무뿐만 아니라 약점이라 꼽히던 영어와 프랑스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정도로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었다.

반면에 정명훈 지점장은 끊임없이 쏟아지는 일 폭탄 때문에 체력적으로 한계에 도달하고 있었다.

[선배님, 자동차 건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우리가 가지고 와야 한답니다.]

지난 10월 초에 콩고민주공화국 정부는 업무용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SUV 자동차를 5,500대를 구매하겠다는 공고를 냈다.

당연히 콩고 지점도 제안서를 제출했지만, 큰 기대를 가지고 한 것은 아니었다.

예전부터 아프리카에 공을 들이고 있던 일본의 도요타 자동차가 가장 성공에 근접해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한자동차는 아프리카에 진출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일본이나 유럽의 자동차 회사들에 비해서 인지도가 많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이를 알고 있을 것이 빤한데도 추성민 팀장은 SUV 자동차 5,500대를 반드시 수주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게 아닌가.

“하아, 추 팀장. 나도 그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이번만큼은 어려울 것 같다.”

[음, 저도 선배님을 괴롭히고 싶지 않은데, 사장님의 특별 지시입니다.]

“아무리 사장님의 지시라고 해도, 이 정도면 우리 콩고 지점은 할 만큼 한 거 아니야?”

[네… 그렇죠. 저도 알고 있습니다만, 사랑하는 후배를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 주세요.]

올해 아프리카 법인에서 임원으로 승진할 대상은 모두 세 명.

통상적으로 한두 명을 승진시켜 주곤 했다.

제일 가능성이 높은 사람은 정명훈 지점장이었고, 추성민 팀장, 민경진 팀장이 그 다음 순이었다.

법인장 대행을 맡고 있는 추성민 팀장으로서는 승진을 하는 데 이번 아프리카 법인 전체의 실적이 아주 중요했다.

하지만 올해 1∼10월 실적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데에 문제가 있었다.

“추 팀장, 실적이 어느 정도로 안 좋은데?”

[콩고 지점이 선방해 준 덕분에 법인 전체로는 겨우 마이너스 신장을 면하고 있는 중이죠.]

“연말까지 바싹 노력하면 되지 않을까?”

[그게… 법인 평가는 이미 끝났고, 11월과 12월은 예상 실적으로 평가한답니다.]

“그럼 이미 끝난 거나 다름없잖아?”

[이 예상 실적이 중요해요. 예상 실적과 실제 실적이 어긋나면, 허위 보고로 옷 벗을 수도 있으니까요.]

“하아, 꼭 그렇게 부담을 줘야겠냐.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 보겠지만, 실패해도 원망하지는 마라.”

[…선배님만 믿고 있겠습니다.]

추성민 팀장과 통화를 마친 정명훈 지점장은 업무에 열중하고 있는 겨울을 회의실로 불러들였다.

“내무부에서 발주한 SUV 자동차 5,500대를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가 수주해야 하는 상황이야. 묘안이 있으면 얘기해 봐.”

이제 정명훈 지점장은 골치 아픈 일이 있을 때마다 겨울을 불러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앞선 일들을 통해 그가 제법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겨울이 보기에도 도요타 자동차로 기울어져 있는 이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보였다.

아니, 굳이 찾자면 있기는 했다.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는 ‘돈’.

하지만 정명훈 지점장이 뒷돈으로 거래를 성사시키는 방법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데에 문제가 있었다.

정명훈 지점장의 기대를 배신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겨울은 미친척하고 얘기나 꺼내 보기로 마음먹었다.

“지점장님, 담당 국장한테 선물을 해 주는 건… 어떨까요?”

“하아… 부지점장, 우리가 담당 국장한테 뇌물을 주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 것 같나?”

“…잘 모르겠습니다.”

“담당 국장은 도요타 자동차 관계자에게 우리가 뇌물을 줬다는 사실을 흘리면서 그에 상응하는 뇌물을 또 요구할 거야. 그렇게 되면 뇌물로 인한 효과는 사라져 버리겠지. 선물을 주더라도 돈이 아니라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을 줘야 할 거야.”

정명훈 지점장의 논리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었다.

가격이 비싸지 않으면서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선물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렇다고 그에게 시시콜콜 따질 생각은 없었다.

“네, 알겠습니다.”

“열흘 정도 시간적인 여유가 있으니까, 천천히 방법을 연구해 보자고.”

드르륵―

그때, 테이블에 올려놓았던 겨울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핸드폰을 들어서 슬쩍 발신자를 확인하니, 은센기였다.

회의 중이라고 문자를 보내려는 순간에 정명훈 지점장이 말을 걸어왔다.

“누구야?”

“은센기 씨입니다.”

“중요한 용건일 수도 있으니까 받아 봐.”

“네.”

짧게 대답한 겨울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은센기 씨.”

[겨울 씨, 제가 좋은 정보를 하나 알아냈는데, 잠시 시간 되세요?]

“좋은 정보요?”

[네. 지금 전화가 어려우시면 나중에 얘기할까요?]

겨울은 고개를 돌려 정명훈 지점장을 바라보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전화를 계속해 보라는 뜻을 전달했다.

“괜찮으니까 지금 말해 주세요.”

[네. 제 친구 중에 부한지 무벰베라는 사람이 있어요.]

겨울도 부한지 무벰베라는 이름을 들어봤다.

콩고민주공화국 출신으로 영국의 EPL 리그에서 축구 선수로 활약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추측이 맞는지 겨울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 겨울 씨가 무벰베를 어떻게 알아요?]

“8년 전에 우리나라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만났잖아요.”

[맞아! 제가 그 생각을 못했네요.]

“그래서 그 무멤베 선수가 왜요?”

[무벰베의 아버지인 무케나 사장이 카낭가(Kananga)라는 곳에 살고 계시는데, 이번에 운송 사업을 시작하신다고 하더라고요. 겨울 씨가 그분께 자동차 판매를 제안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간 겨울이 자동차 판매에 골치를 썩이던 것을 은센기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은센기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겨울은 벽에 걸려 있는 지도를 보았다.

그러고는 카낭가가 어느 곳에 위치하고 있는지, 공항이 있는가에 대한 여부를 확인했다.

카낭가는 차로 다녀올 거리가 아닐 정도로 멀리 있었다.

다행히도 공항은 있었다.

비행기로 움직이면 아침에 출발해서 밤에는 돌아올 수 있을 만한 거리였다.

“좋습니다. 언제 갈까요?”

[내일 아침 일찍은 어떠세요?]

“괜찮네요. 그럼 제가 은센기 씨 비행기 티켓까지 예매해 놓을게요.”

[아, 그게… 겨울 씨, 미안하지만 제 차로 가는 건 어때요?]

“네? 불편할 텐데, 뭔가 이유라도 있나요?”

[제가 무케나 사장한테 대한 그룹의 자동차 실물을 보여 준다고 했거든요.]

그렇다면 죽으나 사나 차로 이동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은센기의 차로는 갈 수 없었다.

은센기의 택시는 승용차라서 비포장도로를 장시간 달리는 데에는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음… 은센기 씨의 차로는 어려울 것 같아요. 우리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SUV로 이동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대한자동차 SUV인가요?]

“네.”

[그럼 상관없을 것 같아요. 회사 차로 이동하기로 하죠.]

“그나저나 카낭가까지 다녀오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한… 2박 3일이면 충분할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아침 6시에 저희 집 앞에서 만나죠.”

[아차! 그분께 드릴 작은 선물이 하나 준비했으면 좋겠는데요.]

“선물… 무엇을 준비하면 좋을까요?”

[8년 전에 무벰베가 한국에서 홍삼을 사다가 드렸다는데, 상당히 만족해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겨울은 지난 8월 초에 입찰 성공 축하로 한국 음식점에서 회식할 당시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뜻밖에도 이곳의 식당 한구석에 홍삼 제품이 진열되어 있었다.

사장님께 이유를 물어보니 콩고민주공화국의 부유층들을 대상으로 한국에서 수입해서 판매한다고 했다.

겨울은 선물로 홍삼을 확정지은 후 물었다.

“홍삼은 몇 개나 준비하면 될까요?”

[넉넉잡고 다섯 박스 정도면 되지 않을까요?]

“알겠어요. 그럼 내일 아침에 봅시다.”

겨울이 전화를 끝내자, 정명훈 지점장이 호기심을 가지고 물어왔다.

“부지점장, 은센기 씨가 뭐라고 하는데?”

“친구 중에 무벰베라는 사람이 있는데…….”

겨울의 얘기를 듣고 있던 정명훈 지점장은 무엇보다 선물이 마음에 확 끌렸다.

내무부 국장에게 대한민국의 특산품인 홍삼을 선물해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부지점장, 홍삼을 열 박스 정도 구입할 수 있도록 해봐.”

“나머지는 어디에 사용하시게요?”

“내무부 국장에게 선물하려고.”

사람의 생각은 거의 비슷비슷하다고 겨울은 생각했다.

그 역시도 내무부 국장에게 홍삼을 선물하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 * *

한국 음식점에 홍삼을 구입하러 간 겨울은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

여러 종류를 구비하고 있었으나, 내무부 국장에게 선물로 줄 수 있을 만큼 품질이 뛰어난 홍삼은 없었기 때문이다.

겨울은 즉시 그 사실을 정명훈 지점장에게 전화로 보고했다.

“…이런 상황입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흠… 그럼 홍삼 선물은 없던 것으로 하지.]

“네, 지점장님.”

홍삼 다섯 박스를 구입해서 회사로 복귀하던, 겨울은 품질 좋은 홍삼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다가 문득 호영이가 떠올랐다.

“녀석에게 부탁해 볼까?”

그는 즉시 행동으로 옮겼다.

[하암… 이 밤중에 웬일이야?]

“내가 홍삼이 필요해서 그러는데, 가격대가 괜찮은 것으로 열 박스만 보내 주라.”

[음, 한 박스에 20만 원 정도면 되냐?]

“그 정도면 충분해. 항공 운송비까지 한 300만 원이면 돼?”

[몰라. 하암… 나중에 영수증을 보내 줄게. 그때 쏴 줘.]

“알겠어. 우리 회사 주소 문자로 찍어 줄 테니까, 거기로 보내 줘.”

[어. 그렇게 할게.]

“음, 그나저나 회사 생활은 할 만하냐?”

[어휴, 신입 사원이 다 그렇지, 뭐.]

호영의 목소리에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버티고 버티다가 결국 7월 초에 작은아버지가 CEO로 있는 SH무역에 입사했다.

이제 4개월 차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적응하느라고 심신이 매우 괴로울 시기였다.

겨울은 회사 생활 선배로서 조언해 주었다.

“아프리카에서 죽어라고 고생하는 나에 비하면 할 만하지 않겠냐. 좋게 생각해.”

[그렇긴 한데… 아니, 그러게 대한 그룹 때려치고 우리 회사에 오라니까.]

“또 그 얘기야. 내가 말을 말아야지.”

* * *

다음 날, 이른 아침.

집 앞에서 은센기를 만난 겨울은 콩고민주공화국 내륙에 위치한 카낭가를 향해서 출발했다.

“카낭가까지 얼마나 걸릴까요?”

“도로 사정이 신통치 않아서 쉬지 않고 달려도 20시간 정도는 걸릴 겁니다.”

“길이 머니까 운전은 저하고 나눠서 해요.”

“그래 주면 고맙고요.”

이제 제일 중요한 수당에 대해서 대화를 나눌 때가 되었다.

“음, 수고비는 얼마를 책정해 드리면 될까요?”

사실 은센기는 겨울에게 갚을 마음이 빚이 남아 있었다.

지난 8월, 핸드폰 기지국 업그레이드 입찰 당시에 조병석 부사장한테 두 번에 걸쳐서 무려 3,500달러라는 거액의 수당을 받았다.

처음에 받은 500달러는 자기가 노력해서 받은 대가라고 생각했기에 그다지 부담은 없었다.

하지만 나중에 받은 3,000달러는 순전히 겨울의 도움으로 받은 수당이었다.

입찰이 끝나고, 겨울에게 자기가 받은 돈의 절반을 나눠 주려고 했으나 그가 펄쩍 뛰며 사양하는 바람에 흐지부지 넘어가 버렸다.

그때부터 겨울에게 마음의 빚을 갚기 위해서 노력해 오다가, 마침 무벰베의 아버지가 운수 사업을 시작한다는 정보를 취득하고 이번에 전달해 준 것이다.

이번 일로 지난 8월에 받은 3,000달러를 퉁 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겨울이 수고비를 언급해 오는 게 아닌가.

“이번에는 받고 싶지 않아요.”

“매번 안 된다는 거 알면서 왜 그래요?”

“하아…….”

“숙식비와 기름값은 전액 제가 부담하고, 500달러를 수당으로 드릴게요. 그리고 자동차 판매가 성사되면, 판매 금액의 1%를 추가로 드릴게요.”

“네?!”

은센기가 진심으로 놀랐는지 경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질렀다.

“지점장님의 지시사항이니까, 나한테 뭐라고 하지 말고요.”

은센기가 다른 말을 하지 못하도록 겨울이 아예 쐐기를 박아 버렸다.

“…고마워요.”

번쩍!

우르릉 쾅!

킨샤사 시내를 벗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기라는 사실을 알려 주듯 천둥 번개와 함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또 퍼붓기 시작하는군.”

“빗길에 미끄러질 수 있으니까, 천천히 가요.”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뜨거운 햇살이 내려쬐기 시작했다.

“하, 이 나라의 날씨는 참 신기하고 요상하네요.”

“그런가요? 저희는 늘 이런 날씨를 보고 살아 와서 아무런 느낌이 없어요.”

“아차, 카낭가까지 가는 도중에 주유소는 있겠죠?”

“있기는 하지만 기름이 떨어진 주유소도 많으니까, 여분의 기름통을 준비해야 할 겁니다.”

“네? 주유소에 기름이 없을 수 있다고요?”

“그게 우리나라의 현실입니다.”

은센기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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