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 성공 신화-51화 (51/328)

[51화] 유난히 운이 따르는 사람

일요일 오전, 은질리 국제공항 출국장.

입찰을 성공리에 끝마친 조병석 부사장과 임찰 팀원들은 계약서 작성을 위한 필수 인원들을 이곳에 남겨 놓고 귀국길에 올랐다.

“정 지점장, 한 부지점장, 정말 수고 많이 했어요.”

“아닙니다. 저희는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정명훈 지점장이 겸연쩍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내 두 사람한테 받은 도움은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저도 부사장님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서 겨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한 그룹의 부사장 정도 직위라면 지금까지 수많은 입찰에 참여했을 것이다.

그런데 조병석 부사장은 이번에 진행된 입찰에 유독 의미를 강하게 두고 있는 듯했다.

느낌상 자신이 모르는 사연이 숨겨져 있는 것이 분명하다며 겨울은 머리를 이리저리 굴렸다.

이처럼 그가 엉뚱한 상상에 빠져 있는 사이, 두 사람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정 지점장, 보다콤과 계약서에 사인을 완료할 때까지 백업 부탁드립니다.”

“네. 염려 마십시오.”

정명훈 지점장과 대화를 끝낸 조병석 부사장은 생각에 잠겨 있는 겨울에게 말을 건넸다.

“뭔가 궁금한 것이 있나요?”

순간, 겨울은 고민에 빠졌다.

자신의 이런 궁금증이 입에서 흘러나오는 순간, 자칫하면 버릇없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가는 것이 최선이었으나, 또 다른 생각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내가 앞으로 부사장님을 만날 일이 있을까?’

겨울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결론짓고 궁금증을 속 시원히 털어놓았다.

“저는 부사장님께서 이번 입찰에 유독 의미를 강하게 두시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혹시 이유가 따로 있으십니까?”

“하하하! 조만간에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겁니다.”

걱정과는 달리 조병석 부사장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겨울은 조병석 부사장이 내뱉는 말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말꼬리를 잡고 늘어질 수는 없었다.

“네, 알겠습니다.”

“나중에 또 만날 날이 있을 겁니다.”

조병석 부사장은 겨울에게 알 듯, 모를 듯한 묘한 말을 남기고 콩고민주공화국을 떠나갔다.

* * *

윙윙―

조병석 부사장 일행을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법인장 대행을 맡고 있는 추성민 팀장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그가 어떤 이유로 전화를 걸어왔는지 알고 있기에 정명훈 지점장은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이내 천천히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일요일에 무슨 일인가?”

[선배님, 입찰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 언제 알려 주실 겁니까?]

정말 피하고 싶은 질문이었다.

입찰 결과가 발표된 직후에 조병석 부사장에게 다소 엉뚱한 지시를 받은 정명훈 지점장이었다.

그는 자신이 한국에 돌아가서 회장님께 입찰 결과를 보고할 때까지 어느 누구한테도 발설하지 말라는 함구령을 내렸다.

사실 이번 일은 워낙 특이한 케이스라서 아프리카 지사의 추성민 팀장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말해 주듯 그는 결과 발표가 있던 금요일 밤에 전화로 입찰 결과를 물어왔다.

정명훈 지점장은 조병석 부사장의 지시사항을 언급하면서 끝까지 입을 다물었다.

그가 이 시간에 전화를 다시 걸어왔다는 얘기는 조병석 부사장이 이 나라를 떠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뜻이리라.

“내가 말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 왜 그래?”

[어느 누구한테도 발설하지 않을 테니까, 저한테만 살짝 얘기해 주세요.]

“졌어.”

[어쩐지…….]

추성민 팀장은 무언가 알고 있다는 뉘앙스로 힘없이 말끝을 흐렸다.

“반응이 왜 그래?”

[제가 방금 전에 이진호 사장님과 통화했는데, 그분의 목소리도 힘이 하나도 없었거든요.]

“추 팀장, 피곤해 죽겠으니까, 나중에 통화하자고.”

[…네, 선배님.]

정명훈 지점장이 전화를 끊자, 옆에 앉아 있던 겨울이 조심스런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지점장님, 부사장님이 함구령을 내린 이유가 뭘까요?”

“우리 같은 참새가 대붕의 뜻을 어떻게 알까? 우리는 맡은 바 업무에만 충실하면 돼.”

“네, 알겠습니다.”

* * *

화요일.

한국으로 돌아온 조병석 부사장은 입찰 결과를 보고하기 위해서 송훈석 회장의 집무실을 찾았다.

“회장님,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조 부사장, 성패를 떠나서 한 달 동안 고생 많이 했어요. 앉아서 얘기합시다.”

“네, 회장님.”

송훈석 회장은 비서가 내온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조 부사장, 이제 얘기해 보세요.”

“저희가 정말 근소한 차이로 화웨이 놈들을 박살내 버렸습니다.”

“으하하하!”

송훈석 회장은 집무실이 떠나갈 듯 큰 웃음을 터트렸다.

중국의 텃밭인 아프리카에서 모진 방해와 꼼수를 이겨내고 이뤄 낸 쾌거이기 때문이리라.

가슴 졸이며 입찰 결과 발표만을 기다리고 있던 서동호 실장과 이진호 사장도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집무실에 웃음소리가 잦아들자, 송훈석 회장이 한껏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조 부사장, 이렇게 기쁜 소식을 지금까지 꽁꽁 숨겨 온 이유가 뭡니까?”

“입찰 과정에서 있던 사건에 대해 보고받으시면, 이유를 충분히 아실 겁니다.”

“화웨이 놈들이 또 꼼수를 부렸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입찰 전날에 그놈들의 꼼수를 알아챌 수 있어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어디, 자세하게 얘기해 보세요.”

조병석 부사장은 커피 한 모금으로 입을 축이고, 송훈석 회장에게 자세하게 보고했다.

“저희는 입찰을 마감하기 전날 오전에 최종적으로 투찰 금액을 확정했습니다. 그날 저녁때 호텔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데, 정명훈 지점장이 긴급 상황이 발생했다며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송훈석 회장이 흥미를 느꼈는지 상체를 조병석 부사장을 향해 밀착하며 물었다.

“제가 베이스캠프인 호텔로 오라고 했더니만, 안 된다고 하면서 콩고 지점 사무실에서 만나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강대화 부장과 함께 콩고 지점 사무실로 출발했고…….”

조병석 부사장은 당시의 사건을 시간에 맞춰서 자세하게 풀어놓았다.

화웨이에 매수된 사람들의 이름이 언급될 때에는 송훈석 회장이 심하게 화를 내는 바람에 보고가 중단되기도 했다.

서동호 실장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인해서 어렵게 다시 보고를 이어 나갈 수 있었다.

“…해서 저는 걱정이 태산 같았는데, 한겨울 부지점장만이 의외로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설마… 한겨울이 또 엉뚱한 생각을 해냈나요?”

“네, 그렇습니다. 그는 우리의 투찰 가격이 유출된 것이 오히려 잘됐다고 했습니다.”

“잘됐다니요?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송훈석 회장이 이해를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우리가 산출한 투찰 가격을 근거로…….”

조병석 부사장이 겨울과 나눈 대화 내용을 상세하게 보고했다.

“하하하, 한겨울이 역시 엉뚱하기는 하네요. 그 이후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퇴근한 콩고 지점의 직원들을 출근시켜서 작업을 시작했고, 다시 산출된 투찰 가격으로 화웨이 놈들을 박살낼 수 있었습니다. 입찰 결과를 발표할 때, 바캄부 치프 매니저의 똥 씹은 표정이 아직도 선명하게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그 사람이 왜 그랬을까요?”

“그놈은 당연히 화웨이가 이길 줄 알았을 텐데, 저희가 1만 달러 차이로 이겼기 때문일 겁니다.”

“17억 달러짜리 입찰을 고작 1만 달러 차이로 이겼다고요?”

“저는 사실 화웨이 놈들과 10만 달러 정도 차이 나게 투찰 가격을 결정할 생각이었는데, 정명훈 지점장이 강력하게 주장하는 바람에 한번 질러 봤습니다.”

조병석 부사장은 공격적인 일처리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말은 이렇게 하고 있지만, 화웨이와 투찰 가격이 1만 달러 차이가 나도록 결정한 사람은 다름 아닌 조병석 부사장 본인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거짓말을 내뱉은 이유는 정명훈 지점장을 띄워 주기 위한 의도이리라.

정명훈 지점장을 이사로 승진시켜 줄 수 없다는 얘기가 조병석 부사장의 귀에까지 들어간 것이 분명했다.

송훈석 회장은 이쯤에서 자신의 생각을 밝혀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다.

“조 부사장, 내가 정 지점장을 이사로 승진시켜 줄 수 없는 이유가 궁금합니까?”

“아,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티를 냈군요.”

“괜찮습니다. 나는 사실 정 지점장을…….”

송훈석 회장의 말을 듣던 조병석 부사장과 이진호 사장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이진호 사장은 송훈석 회장의 그런 숨은 뜻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그간 오해하고 있었으니 이 자리에서 사과하는 것이 도리였다.

“회장님, 제가 지금까지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까지는 없어요. 이제 알았으니 정 지점장을 끊임없이 채찍질하도록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이진호 사장과 짧은 대화를 끝마친 송훈석 회장은 조병석 부사장에게 말을 걸었다.

“조 부사장, 이제 궁금증이 해소됐습니까?”

“네, 회장님!”

“하던 얘기 계속합시다. 그래서, 입찰 결과를 꽁꽁 숨겨 온 이유를 얘기해 보세요.”

“화웨이에 매수된 놈들을 안심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놈들을 화웨이가 가만히 내버려 뒀습니까?”

“저도 어떻게 되나 궁금해서 놈들의 뒤를 밟아 봤습니다. 그런데 제 예상과는 다르게 받은 커미션을 되돌려 주는 것으로 무마됐습니다.”

“흠, 화웨이가 그런 결정을 내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나중을 생각한 것 같습니다.”

충분히 일리 있는 얘기였다.

앞으로도 화웨이와는 입찰에서 계속 붙을 예정에 있으니까.

“하아, 내 이놈들을… 그놈들을 조 부사장은 어떻게 처리할 생각인가요?”

“경찰에 신고해서 사법 처리를 받도록 만들 생각입니다.”

“괜찮군요. 썩 마음에 차지는 않지만, 일단 그렇게 하세요.”

송훈석 회장의 대답은 단호했다.

“회장님, 제가 임찰 팀원들에게 입찰에 성공하면 특별 성과급을 지급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제가 실없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신경 써 주십시오.”

“음, 300%면 될까요?”

“감사합니다, 회장님!”

그때, 이진호 사장이 할 말이 있다는 듯 발언권을 요청했다.

“회장님, 정명훈 지점장을 포함한 콩고 지점 직원들도 배려해 주십시오.”

“정 지점장과 한겨울에게는 500% 성과급을 지급하고, 직원들한테는 100% 성과급을 지급하도록 하세요.”

“네? 500%씩이나요?”

“두 사람이 아니었으면, 우리가 입찰에서 성공했을 것 같습니까? 그만한 공을 세웠는데, 그에 합당한 보상을 해 주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이제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는 것 같으니, 두 분은 일터로 돌아가세요.”

보고를 마친 두 사람이 고개를 숙이고는 밝은 표정으로 집무실에서 나갔다.

잠시 뒤, 송훈석 회장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서 실장, 조 부사장은 연말에 승진시켜서 전략기획실 실장으로 발령 내.”

“네, 알겠습니다.”

“정 지점장은 내가 지시한 대로 하고. 한겨울은… 최 부회장에게 해코지를 당하지 않도록 계속 지켜봐.”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말이야, 서 실장은 한겨울한테 유난히 운이 따른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에이, 설마요.”

“그렇지 않으면 한겨울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어떻게 설명할 거야? 연수원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몇 번인가?”

“하긴… 회장님 말씀이 맞는 것 같기도 하네요.”

서동호 실장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 * *

[오빠, 이 돈은 뭐야?]

겨울은 입찰에 큰 공을 세웠다는 이유로 500%의 특별 성과급을 받았다.

하여 큰맘 먹고 500만 원을 가을에게 보내 줬더니만, 놀라서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뭐가?”

[오빠가 무슨 돈이 있다고, 500만 원씩이나 보내?]

“크하하하!”

[그렇게 경박스럽게 웃지만 말고, 빨리 어떻게 된 영문인지 얘기나 좀 해봐.]

“뭐긴 뭐야! 대박 나서 보냈지!”

[도박이라도 한 건 아니지?]

“도박은 무슨… 이번에 큰 공을 세워서 특별 성과급을 받았어.”

[7월 말에 성과급을 받았는데, 또 받았어?]

“어떻게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되더라.”

[와… 대한 그룹이 진짜 대기업이긴 하구나. 그건 그렇고, 이 500만 원 어떻게 할까?]

가을이 전화를 걸어온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겨울은 이번 기회에 오빠 노릇을 톡톡히 하고 싶었다.

돌이켜 보면 겨울은 동생에게 받기만 했지, 무엇 하나 번듯하게 해 준 기억이 없었다.

“100만 원은 네 용돈으로 써.”

[진짜?! 진짜진짜지?]

“어.”

[호호호, 사랑해, 오빠!]

“어휴, 이런 때만 애교를 부리지?”

[나머지는 어떻게 할까?]

“어련히 알아서 해. 엄마, 아빠한테도 보내 드리고 저축도 하고. 생활비로도 쓰고.”

[알았어. 내역 같은 건 정리해 두고 있으니까, 담에 한번 보내 줄게. 아, 그리고 시간 날 때 엄마 아빠한테 전화 한번 해 드려. 목소리 듣고 싶어 하시더라.]

“그래? 조만간 연락 드려야겠네.”

[연락만 하지 말고, 이참에 쉬러 와. 오빠는 여름휴가 없어?]

“음…….”

여름휴가와 월차를 합하면 한국에 충분히 다녀올 수도 있었다.

부모님도 뵙고 가을과 호영이도 만날 생각을 하니 한국에 다녀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겨울은 마음을 바꿔 먹었다.

오가는 시간이 아까웠을 뿐만 아니라, 컨디션을 회복하는 데도 많은 시간이 잡아먹히기 때문이었다.

“있긴 한데, 한국 말고 다른 데로 가 보려고. 엄마 아빠한테 미안하다고 말 좀 전해 줘.”

[미안할게 뭐 있어. 아예 안 올 것도 아닌데. 어디로 가려고?]

“이집트에 가 보려고. 피라미드 보고 싶었거든.”

[와… 피라미드도 보고. 성공했네, 한겨울.]

“뭐래. 부러우면 지는 거 알지?”

[그러게. 부러워서 어떡하냐. 아차차, 전화비 많이 나오겠다. 오빠, 용돈 고마워.]

뚝.

평소 같으면 하나도 안 부럽다며 짜증을 냈을 가을이 마지막까지 애교를 부리며 고마움을 전하자, 머쓱한 겨울이었다.

확실히 돈이 좋긴 한가 보다.

“하하하…….”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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