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이런 젠장!
강대화 부장은 가슴이 답답했다.
자신들이 심혈을 기울여 산출한 투찰 가격을 고양이 두 마리가 화웨이 측에 홀라당 넘겨 버렸기 때문이다.
“부사장님, 이제 어떻게 하죠?”
“하아…….”
땅이 꺼져라 내뱉는 조병석 부사장의 한숨 소리에 모든 대답이 들어 있었다.
겨울은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했지만, 지금은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분위기가 워낙 심각해서 생각을 꺼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겨울이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에도 두 사람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부사장님, 아무래도 투찰 가격을 다시 산출해야 하겠죠?”
“그 방법밖에 더 있나.”
“시간이 그다지 많지 않으니까, 호텔로 돌아가서 작업을 시작하는 게 어떨까요?”
“그렇게 해야지. 하아… 일어나지.”
그때, 정명훈 지점장이 발언권을 요청하고 입을 열었다.
“부사장님, 은센기 씨가 이곳으로 오고 있습니다. 새로운 정보가 있는지 들어 보고 떠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오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아무리 늦어도 30분 안에는 올 겁니다.”
그때, 조병훈 부사장의 시야에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겨울의 모습이 들어왔다.
겨울의 엉뚱한 아이디어가 좋은 성과로 이어졌다는 얘기를 얼마 전에 전해 듣지 않았는가.
그는 자기도 모르게 기대하는 마음으로 질문을 던졌다.
“겨울 씨,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나요?”
“네, 네?”
깊은 생각에 빠져 있던 겨울이 조병석 부사장의 질문을 듣지 못하고 당황해 물음표로 대답했다.
“지금 무슨 생각하고 있냐고 물었어요.”
“아… 화웨이 놈들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때려 줄 방법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뒤통수라…….”
조병석 부사장이 끝말을 흐리며 생각에 잠겼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조병석 부사장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우리가 입찰에서 이길 수 있다는 뜻이라 해석해도 되나요?”
“네.”
겨울이 확신한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모습에 침통에 빠져 있던 회의실의 분위기가 거짓말처럼 다시 되살아났다.
“어떻게 이길 수 있다는 것인지 자세하게 얘기해 보세요.”
“화웨이가 부린 꼼수가 저희에게 발각됐다는 의미를 거꾸로 해석하면, 저희도 그들의 투찰 가격을 알고 있다는 뜻과 일맥상통합니다.”
“흠, 오호… 이해를 위해 조금 더 설명해 보겠어요?”
조병석 부사장이 이미 눈치챘다는 듯 빙긋 웃었지만, 그런 사실도 모르고 겨울은 눈빛을 반짝이며 자신의 생각을 밝히기 시작했다.
“화웨이 놈들은 저희들에게 입수한 투찰 가격을 근거로 입찰 서류를 꾸밀 것이 틀림없을 겁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요?”
“이미 시험 문제의 정답을 알고 있는 그들이 오답을 적어 낼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하, 비유가 아주 적절하네요. 그래서 그놈들이 투찰 가격으로 얼마를 산출할 것 같나요?”
“저희들이 투찰할 가격보다 근소하게 적은 금액일 겁니다.”
“그놈들이 미친 척하고 낮은 가격으로 투찰할 가능성은 없을까요?”
“저는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저희에게 투찰 가격을 입수하기 위해서 그들이 주영석 이사와 홍상현 부장한테 적지 않은 커미션을 지불했기 때문입니다.”
“하하하, 알았어요.”
겨울과 질의응답을 끝마친 조병석 부사장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강대화 부장에게 말을 걸었다.
“강 부장, 한겨울 씨의 말을 충분히 이해했지?”
“네, 물론입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의견을 제시해 봐.”
“입찰 서류를 다시 한 부를 만들면 됩니다만,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부사장님도 아시다시피 입찰 서류가 두꺼운 책 한 권 분량입니다. 입찰 서류를 다시 만들기 위해서는 입찰 팀원들을 소집해야 하는데, 그 안에 화웨이에 매수된 놈들이 섞여 있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음, 충분히 그럴 수 있겠군. 여기서 우리끼리 작업하면 어렵나?”
“네? 저희 넷은 무리입니다.”
강대화 부장이 곧바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정명훈 지점장이 즉시 말문을 열었다.
“부사장님, 그럼 저희 지점의 직원들을 불러서 작업을 시키는 것은 어떻습니까?”
“오, 괜찮군요. 몇 명이나 부를 수 있습니까?”
“사무직 직원이 다섯 명입니다.”
“강 부장, 나를 포함해서 아홉 명이면 가능한가?”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윙윙―
그때, 겨울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사무실 입구에 도착한 은센기가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겨울은 재빨리 밖으로 나가서 그를 데리고 들어왔다.
안면이 생겨서 이제는 익숙했는지, 조병석 부사장은 그가 나타나자마자 진심을 담아 고마움을 표했다.
“은센기 씨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저희들이 큰 낭패를 볼 뻔했습니다.”
“저는 한겨울 씨가 시키는 대로 행동했을 뿐입니다.”
“하하, 알았어요. 앉아서 얘기합시다.”
은센기가 자리에 앉자, 조병석 부사장의 질문이 바로 시작됐다.
“은센기 씨, 그곳에서 보고 들은 것을 저희에게 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제가 겨울 씨의 지시를 받고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은센기는 그곳에서의 일들을 지나칠 정도로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지난번에 만난 사람이 레스토랑에 들어오는 바람에 몰래 도망쳐 왔습니다.”
“하여튼 수고 많이 했습니다.”
“저야 겨울 씨 덕분에 비싸기로 소문난 레스토랑에서 모처럼 맛있는 식사도 하고 좋았습니다.”
“네? 겨울 씨 덕분이라뇨?”
“아, 겨울 씨가 식사 비용을 부담해 준다고 하면서, 마음껏 주문해서 먹으라고 했습니다.”
조병석 부사장은 그제야 은센기가 겨울을 띄워 주려고 일부러 이런 말을 꺼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좋은 친구를 두었군요.’
속으로 빙그레 웃으며, 그는 은센기와 대화를 이어 나갔다.
“식사비는 제가 대신 부담해 줄게요.”
조병석 부사장은 지갑을 꺼내서 100달러짜리 지폐 두 장을 꺼내서 은센기에게 건네주었다.
“이 정도면 되겠죠?”
“네. 충분합니다. 감사합니다.”
200달러를 주머니에 챙겨 넣은 은센기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입을 열었다.
“그럼 이제 저는 가 보겠습니다.”
“수고비는 받지 않고 가실 생각인가요?”
“방금 전에 주셨잖아요.”
“그것은 밥값이고요.”
“지난번에 받은 수고비도 있으니, 이번에는 그냥 가겠습니다.”
“그럴 수는 없지요.”
조병훈 부사장은 지갑에 있는 달러를 모두 꺼내서 은센기의 손에 쥐어 주었다.
“제가 아까도 얘기했듯이 은센기 씨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큰 실패를 겪을 뻔했습니다. 그러니까 사양하지 말고 받아 주세요.”
“이것 참… 이렇게까지 하시니 사양 않고 받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조병석 부사장에게 넙죽 인사한 은센기는 돈을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은센기가 떠나가자, 회의실은 전시 상황실처럼 돌변했다.
겨울은 직원들에게 회사로 복귀하라고 전화를 돌렸고, 강대화 부장은 호텔에 입찰 서류와 USB를 가지러 출발했다.
조병석 부사장은 정명훈 지점장과 투찰 가격 결정을 위한 긴급 회의를 시작했다.
겨울의 의견을 토대로 했기 때문에 가격은 금방 도출되었다.
잠시 후, 겨울이 호출한 직원들과 호텔에 서류를 가지러 떠난 강대화 부장이 차례로 사무실에 들어왔다.
그때부터 강대화 부장의 지휘 아래, 직원들은 입찰 서류를 다시 만들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마치 전쟁에 임하는 사람들처럼 직원들은 비장하고 일사분란하게 일처리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조병석 부사장은 오랜만에 비즈니스맨으로서의 순수한 열정이 깨어남을 느꼈다.
조병석 부사장은 강대화 부장을 보며 넌지시 물었다.
“강 부장, 작업은 언제쯤 끝날 것 같은가?”
“이 정도 속도면… 새벽 세네 시에 끝날 것 같습니다.”
“입찰 서류 만드는 작업이 끝나면, 직원들한테 야근비를 넉넉하게 쥐어 주라고.”
“이미 정 지점장한테 돈을 건네주었습니다.”
“강 부장이 직접 주면 안 되나?”
“직원들의 직급이 다르기 때문에 야근비도 차등해서 지급해야 한답니다.”
“흠, 그럴 수 있겠군. 정 지점장과 한겨울 씨는 어떻게 포상해야 할까?”
“입찰이 끝나고 성과급을 지급할 때 같이 두 사람도 포함해서 지급해 주겠다고 얘기해 놓았습니다.”
“잘했네. 당연히 그래야지.”
“그나저나 스파이 놈들을 어떻게 처리할까요?”
“화웨이 놈들이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놈들을 가만히 내버려 둘까?”
“하긴, 부사장님 말씀이 맞네요.”
강대화 부장의 예상대로 입찰 서류를 다시 만드는 작업은 새벽 3시 30분에 종료되었다.
조병훈 부사장은 직원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강대화 부장과 함께 호텔로 돌아갔다.
이제 사무실에는 콩고 지점의 직원들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정명훈 지점장은 직원들을 회의실로 불러들였다.
“여러분 덕분에 작업을 무사히 끝마쳐서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부사장님께서 여러분에게 야근비로 무려 1,000달러를 주고 가셨습니다.”
“와!”
직원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정명훈 지점장은 환호성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또다시 말문을 열었다.
“가쿠타 과장이 책임지고 분배하세요.”
“네, 지점장님.”
“오늘 하루는 집에서 쉬도록 하고, 다음 주 월요일에 봅시다.”
“네! 알겠습니다.”
정명훈 지점장은 가쿠타 과장에게 1,000달러가 들어 있는 봉투를 건네주고 겨울과 함께 사무실을 나왔다.
“부지점장, 부사장님이 우리는 입찰이 끝나고 별도로 포상한다고 했으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네, 알겠습니다.”
“이제 눈 좀 붙이자고. 참으로 긴 하루였어.”
* * *
다음 날 오전, 킨샤사 인터내셔널호텔 회의실.
조병석 부사장의 주재로 입찰을 위한 최종 점검 회의가 시작되었다.
“지난 한 달 동안 입찰을 준비하느라 정말 수고들 많이 했습니다. 입찰 성패 여부와 상관없이 여러분 모두에게 성과급을 지급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와!”
입찰 팀원들 모두가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환호성이 가라앉자, 조병석 부사장이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만약에 우리가 입찰에서 성공하면, 제가 회장님께 특별히 부탁해서 추가로 성과급을 지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와!”
다시 한번 환호성이 일었다.
그 와중에도 보조석에 앉아 있던 겨울은 건너편 자리에 앉아 있는 주영석 이사와 홍상현 부장의 표정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기쁨의 함성을 지르는 데 반해서 둘은 무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리가 입찰에 성공하면 당신들 덕분이라고 알고 있겠습니다.’
두 사람에게 알 듯, 모를 듯 썩소를 날려 준 그는 다시 시선을 조병석 부사장에게로 옮겼다.
조병석 부사장이 공지사항 전달을 끝마치자, 강대화 부장이 말을 이어받았다.
“부사장님께서 직접 투찰하시겠다고 결정하셨습니다. 따라서 특별한 일정이 없는 입찰 팀원들은 부사장님과 함께 입찰장에서 입찰 결과를 지켜보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킨샤사 시내의 교통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까, 30분 뒤에 출발하겠습니다.”
* * *
보다콤 콩고 지사.
입찰장에 도착한 조병석 부사장은 입찰 서류를 제출하고, 현장 설명회 당시에 인사를 나눈 화웨이의 궈징페이 부사장한테 다가가서 인사를 건넸다.
“궈 부사장님, 좋은 꿈 꾸셨습니까?”
“어젯밤에 황룡을 타고 하늘로 승천하는 꿈을 꿨습니다. 조 부사장님은 많이 피곤해 보이는데, 푹 주무시지 못한 것 같습니다?”
“어젯밤에 고양이 두 마리를 잡느라고, 밤을 꼬박 새서 그럽니다.”
“아이고, 저런.”
“오늘 밤에 푹 자면 되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행운이 있기를 바랍니다.”
“저도 조 부사장님에게 행운이 있기를 빕니다.”
정확히 5시가 되자, 바캄부 치프 매니저가 입찰장 문을 열고 들어와서 비어 있는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잠시 뒤.
그는 테이블 위에 쌓여 있는 투찰 서류 하나를 집어서 칼로 개봉하고 금액이 적혀 있는 서류를 꺼내서 확인했다.
그리고 고시한 바대로 써낸 입찰 금액을 즉석에서 불러 주며 관계자들에게 일일이 확인시켰다.
“KDDI 컨소시엄은 18억 9,000만 달러입니다.”
바캄부 치프 매니저는 똑같은 행동을 몇 번 더 반복했다.
이제 남은 회사는 화웨이와 대한 그룹.
“…화웨이는 16억 9,999만 달러를 투찰하셨습니다.”
좌중은 고요한 침묵 속에 빠져들었다.
이제 화웨이의 경쟁자로 떠오른 대한 그룹의 투찰 가격 발표만 남겨 놓았다.
마지막 투찰 서류를 칼로 개봉하고 서류를 꺼내서 금액을 확인한 바캄부 치프 매니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탄식을 내뱉었다.
“이런 젠장!”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