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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성공 신화-47화 (47/328)

[47화] 꼼수를 저지하라

은센기는 조병석 부사장의 권유를 못 이기는 척하며 500달러를 받아서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부사장님, 고맙습니다.”

“고맙기는요. 우리가 은센기 씨한테 얼마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요.”

“이후에도 비슷한 일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말씀만이라도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한겨울 씨와 좋은 인연을 이어 갔으면 좋겠네요.”

“물론입니다. 한겨울 씨가 우리나라를 떠나기 전까지 은인 모시듯 하겠습니다.”

“하하, 알았어요.”

“바쁘실 텐데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아무래도 이곳에 있는 것이 불편했는지 은센기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사장님, 제가 밑에까지 배웅하고 돌아오겠습니다.”

“시간이 많이 늦었으니까, 겨울 씨도 마중하고 바로 집으로 돌아가세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부사장님.”

겨울과 은센기가 스위트룸에서 퇴장하자, 그때만을 기다렸다는 듯 조병석 부사장은 임원들에게 엄중한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다.

“화웨이 놈들은 자신이 꺼낼 카드가 무산된 사실을 알게 되면, 예상치 못하는 또 다른 카드를 꺼내 들지 모릅니다. 미리미리 대비해서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합시다.”

“네, 알겠습니다.”

“다들 수고했어요. 정 지점장만 자리에 남고 돌아가도록 하세요.”

“네, 부사장님.”

임원들은 조병석 부사장에게 인사를 하고는 하나둘 방을 떠났다.

끝내 둘만 남게 되자, 조병석 부사장은 지점장에게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정 지점장, 한겨울 씨의 생활 형편은 어떤가요?”

“본인의 얘기는 잘 하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만, 본가가 강원도 영월에 있고 부모님이 농사를 지으신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흠, 정 지점장은 아프리카 법인 소속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직속 상사가 누구죠?”

정명훈 지점장은 이처럼 꼬치꼬치 묻는 의도가 궁금했지만, 대놓고 물어볼 수는 없었기에 그저 성실하게 답변만 했다.

“7월 중순까지는 안정혁 법인장이었으나, 지금은 추성민 마케팅 지원팀장이 겸임하고 있습니다.”

“안정혁 법인장은 다른 곳으로 발령받아 간 겁니까?”

“아닙니다. 6개월짜리 최고 경영자 교육 과정에 입소했습니다.”

“호오, 제법 유능했나 보네요?”

정명훈 지점장은 유능했다는 조병석 부사장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일 하나만은 잘하는 사람이었다.

다만 썩은 동아줄을 잡는 바람에 나락으로 떨어졌지만.

“저 같은 일개 지점장이 임원을 평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 지점장은 언제 임원으로 진급할 예정입니까?”

“임원 진급 대상자가 된 것은 3년 전이었으나, 제가 맡고 있는 지점의 실적이 형편없어서 계속 물먹고 있는 중입니다.”

“올해는 실적이 좋으니 임원 승진은 따 놓은 당상이겠네요?”

“아직은 안심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흠, 이번 입찰 건 때문에요?”

“그건…….”

“알고 있으니 괜찮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정 지점장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도 반드시 입찰에 성공할 겁니다.”

“부사장님을 철석같이 믿고 있겠습니다.”

“하하, 믿어도 좋습니다.”

정명훈 지점장을 배웅한 뒤, 조병석 부사장은 소파에 털썩 주저 앉았다.

홀로 남아 방 안은 조용했다.

가만히 무언가를 생각하던 그는 서동호 실장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또 무슨 긴급 상황이 또 발생한 것은 아니겠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오늘은 아닙니다.”

[오늘은? 처남은 화웨이가 또 다른 꼼수를 동원할 것이라고 생각하나?]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흠, 처남은 화웨이가 이처럼 무리수를 두고 있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사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조병석 부사장도 궁금했다.

해서 지금까지 꾸준히 생각을 파고든 끝에 어느 정도 결론을 내려놓고 있었다.

“저도 정확하게는 모르겠습니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아프리카 무선통신 시장을 완벽하게 장악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의 제재를 받는다면,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럼… 이번 입찰에서 화웨이가 실패하면, 데미지가 의외로 크겠군그래?]

“제 생각도 같습니다.”

[화웨이의 꼼수를 언제까지 막아 주면 되나?]

“현장 설명회가 내일 오후 3시에 예정되어 있습니다.”

[늦어도 정오까지는 막아야 한다는 말이네?]

“네.”

[알겠어. 그건 그렇고… 한겨울이 그 택시 기사와 어떻게 인연을 맺었다고 하던가?]

“음? 제가 아까 설명해 드리지 않았나요?”

[언제?]

“아, 제가 경황이 없어서 미처 말씀을 드리지 못한 것 같네요. 한겨울이 그 택시 기사를 처음…….”

조병석 부사장은 은센기에게 들은 얘기를 사실 그대로 전했다.

[흐음, 그래서 한겨울이 정보 제공의 대가로 그 기사한테 100달러를 줬다는 말이야?]

“네, 매형.”

[허허허, 그 친구가 사람 부릴 줄 아는구먼.]

서동호 실장의 웃음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아, 그나저나 해외 법인을 담당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이진호 사장이야. 왜?]

“이 사장님께 여쭤볼 게 있어서요.”

[아프리카 법인과 관련된 일이라면 나한테 물어봐도 될 거야.]

서동호 실장도 사람이기 때문에 대한 그룹의 대소사를 모두 챙길 수는 없었다.

그런데 별로 중요하지 않은 아프리카 법인의 일을 알고 있는 게 이상하다고 느낀 조병석 부사장이었다.

당연히 호기심이 생긴 그는 그 이유에 대해 물었다.

[한겨울 때문이네.]

“한겨울이 왜요?”

[흠, 한겨울이 회장님의 외동딸인 송지유와 인연이 있어서 말이지.]

“어떤 인연이냐고 여쭤보면 대답해 주지 않으실 거죠?”

[알면서 왜 그래?]

“매형, 한겨울을 내가 데려다 쓰려면, 이 사장님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까?”

[왜? 한겨울이 마음에 들던가?]

“요즘 젊은이 같지 않은 점이 마음에 들어서 그래요.”

[미안하지만, 처남이 한겨울을 곁에 두려면 힘을 더 길러야 할 거야.]

“왜요?”

[최성진 부회장이 한겨울을 별로 좋지 않게 보고 있거든.]

조병석 부사장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한 그룹 부회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입사한 지 불과 6개월 갓 넘은 신입 사원과 악연이 생길 이유가 뭐란 말인가.

설령 악연이 있다고 하더라도 부회장의 파워라면, 한겨울을 회사에서 퇴사시키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조병석 부사장은 자신의 생각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밝혔다.

[하아, 내 말하지 않으려고 했건만… 처남, 이제부터 내가 하는 얘기 잘 들어. 원래 송지유는 우리 회사에 입사하지 않고, 미국 유학을 떠나려고 했어. 그런데 우연찮게 한겨울과 엮였고…….]

서동호 실장의 입에서는 예상치 않은 얘기가 흘러나왔다.

아들의 잘못을 겨울에게 전가해서 회사에서 내쫓으려고 했다니.

조병석 부사장은 최성진 부회장이 그렇게까지 야비한 인간인지 미처 깨닫지 못했다.

그에게 찍혀서 아무 영문도 모른 채 아프리카로 발령 난 한겨울이 불쌍할 따름이었다.

겨울이 대한 그룹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충분한 실력을 갖출 때까지 최성진 부회장의 주목을 받지 않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이었다.

그가 짧은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서동호 실장의 얘기는 계속 이어졌다.

[…7월 초에 안정혁 법인장이 한겨울을 회사에서 쫓아내려고 시도했다가 법인장 자리에서 쫓겨났어.]

“음? 최고 경영자 육성 과정에 입소했으면, 오히려 잘된 것 아닌가요?”

[최 부회장의 눈을 속이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네.]

“아, 아프리카 법인장을 대행 체제로 유지하는 것이 그 이유였군요?”

[그렇다고 할 수 있지.]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정명훈 지점장을 겪어 보니까, 어때?]

“저는 정 지점장이 임원에 승진하지 못한 이유를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그 정도로 능력이 뛰어나단 말인가?]

“적어도 제가 볼 때는 그랬습니다.”

[어떤 점이 뛰어난지 나한테 얘기해 줄 수 있나?]

“정 지점장은 아프리카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박학다식했고…….”

조병석 부사장은 정명훈 지점장을 겪어 보고 느낀 점을 가감 없이 풀어놓았다.

거기에 자기의 바람도 슬며시 얹었다.

“…올해는 꼭 임원으로 승진할 수 있도록 매형이 힘 좀 써 주세요.”

[참고하고 있을게.]

* * *

회사에 출근한 서동호 실장은 이진호 사장에게 모닝커피를 같이 마시자고 전화를 걸었다.

[서 실장님 방으로 가면 됩니까?]

“아닙니다. 30분 뒤에 회장님 집무실로 오시면 될 겁니다.”

[제가 준비해 갈 자료가 있습니까?]

“편안하게 오세요. 모닝커피나 한잔하자는 의도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네.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이진호 사장과 전화를 끝낸 서동호 실장은 결재 서류들을 챙겨서 송훈석 회장 집무실로 향했다.

송훈석 회장은 서동호 실장과 30년 넘게 호흡을 맞춰 왔기 때문에 그의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모두 꿰고 있었다.

오늘 아침, 서동호 실장은 평소와 달리 얼굴에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와 있었다.

“서 실장,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나?”

“제 처남이 못살게 구는 바람에 잠을 제대로 못자서 그럽니다.”

“조 부사장이 왜?”

“화웨이 놈들이 꼼수를 부리는 것을 발견했는데, 저보고 막아 달라고 생떼를 써 대서 말입니다.”

“어떤 꼼수인지 애기해 봐.”

“화웨이 놈들이 입찰에 질 것 같아서인지…….”

서동호 실장은 조병석 부사장한테 들은 얘기를 사실 그대로 보고했다.

“나보고 그놈들의 꼼수를 막아 달라는 말이군?”

“네, 회장님. 미국의 입장에서도 결코 손해 보는 일은 아닐 겁니다.”

“흠, 조 부사장은 화웨이 놈들의 꼼수를 어떤 방법으로 알아냈다고 하던가?”

“그게, 사연이 조금 긴 편입니다.”

“먼저 미국하고 통화하라는 말이지?”

“네, 회장님.”

송훈석 회장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서 제법 길게 대화를 나누고 통화를 종료했다.

“회장님, 어떻게 됐습니까?”

“보다콤 회장한테 알아듣게 얘기해 놓겠다고 했으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거야.”

“다행이네요.”

“그럼, 서 실장. 이제 내가 한 질문에 대해서 얘기해 봐.”

“조금 있으면 이진호 사장이 모닝커피를 마시러 올 겁니다. 그때 같이 듣는 것으로 하시고, 결재 서류부터 검토해 주십시오.”

“알았어. 이리 줘 봐.”

똑똑.

송훈석 회장이 결재 서류 검토를 거의 끝낼 무렵에 비서가 이진호 사장이 왔음을 알렸다.

“들어오시라고 하고, 커피 세 잔만 내오세요.”

“네, 회장님.”

송훈석 회장은 커피를 천천히 한 모금 마시고, 이진호 사장에게 말을 걸었다.

“이 사장, 지금 어떤 상황인지 모르시죠?”

“네. 모닝커피를 같아 마시자는 말 말고 들은 이야기가 없습니다.”

“콩고민주공화국에 핸드폰 기지국 업그레이드 입찰에 참여하러 우리 회사 직원들이 간 사실은 알고 있죠?”

“네. 물론입니다.”

“어젯밤에 입찰 팀에서 긴급 상황이 하나 발생했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같이 들어 보자고 서 실장이 부른 것 같습니다.”

회장의 말에 서동호 실장이 커피 잔을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이 얘기는 한겨울이 콩고 지점에 도착하는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서동호 실장은 조병석 부사장한테 들은 얘기를 사실 그대로 보고했다.

“…한겨울이 그 택시 기사를 친구로 사귀어 놓지 않았더라면, 저희는 화웨이 놈들의 꼼수를 결코 알아채지 못했을 겁니다. 아니, BK 그룹처럼 입찰에 참여하지도 못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전자는 알겠는데, 후자는 왜 그런데요?”

“한겨울이 입찰 관련 정보를 기사한테 최초로 입수했다고 합니다.”

“과연… 서 실장, 그러면 그 기사에게 보답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한겨울이 먼저 100달러를 주고, 나중에 조 부사장이 500달러를 줬답니다.”

이 얘기를 듣고 송훈석 회장이 넉넉한 웃음을 지으며 이진호 사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 사장, 한겨울에게 보상할 수 있는 방안을 수립해 보세요.”

“입찰의 성패와 상관없이 콩고 지점 직원들에게 성과급을 챙겨 주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잠시 대화가 중단된 틈을 타서 서동호 실장이 또다시 입을 열었다.

“이 사장님, 정명훈 지점장은 올해 이사로 승진할 수 있겠죠?”

“현재 실적을 계속 유지한다면, 무난하게 이사로 승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때, 송훈석 회장이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내뱉었다.

“이 사장, 나는 정 지점장을 이사로 승진시킬 생각이 없습니다.”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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