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엉뚱한 아이디어 (2)
“…싱칼라 회장에게 이 점을 강력하게 어필하면 될 것 같습니다.”
정명훈 지점장은 요즘 젊은 사람들은 뭔가 달라도 다르다고 생각했다.
겨울의 아이디어가 비록 기상천외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았지만, 자기는 그동안의 관례에 사로잡혀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사실 겨울의 아이디어는 실현 불가능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떠나가는 버스를 멍청하게 쳐다보는 것보다 달려가서 붙잡는 것이 백번 낫다고 판단했다.
결국 그는 모 아니면 도라는 심정으로 싱칼라 회장과 다시 접촉해 보기로 결정했다.
“부지점장, 비행기 티켓이 있는지 확인해 봤나?”
“네. 내일 아침 8시 비행기가 있습니다.”
“잘했어. 나하고, 부지점장하고, 가쿠타 과장까지 잠비아로 넘어가는 것으로 하자.”
“네, 알겠습니다.”
“세부 전략은 생각해 놓은 것이 있나?”
* * *
다음 날 오전.
루사카 국제공항에 마중 나와 있던 어거스틴 말라마 과장과 합류한 겨울 일행은 곧바로 회사로 이동해서 긴급 회의를 시작했다.
“말라마 과장, 내가 알아보라는 거 어떻게 됐나?”
“부산항에서 모잠비크 베이라(Beira)항까지 40피트 컨테이너 해운 운송비는 1,500달러 수준이고, 통관을 위한 부대비용까지 감안하면 2,000달러까지 올라갑니다.”
“뭐? 부대비용이 500달러나 된다고?”
“네, 그렇습니다. 게다가 그 가격은 정상적인 절차에 의해서 통관하는 경우입니다. 급행으로 통관하려면 1,000달러 정도는 더 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거 뭐, 순 도둑놈들 아니야?”
“그러게나 말입니다. 바다를 갖고 있지 않은 나라의 슬픔 아니겠습니까…….”
대화가 잠시 끊어진 틈을 타서 겨울이 급히 발언권을 요청했다.
“말라마 과장님, 컨테이너를 정상적인 절차를 거칠 때랑 급행으로 통관받을 때의 시간 차이는 얼마나 납니까?”
“정상적인 절차는 일반적으로 한 달 정도 걸리고, 급행일 경우에는 아무리 늦어도 일주일 정도 걸립니다. 베이라에서 루사카까지 컨테이너 육상 운송비용은 최소 4,000달러, 운송 기간은 그때마다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한 달 정도 걸린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겨울은 부산항에서 출발한 40피트 컨테이너가 루사카까지 도착하는 데 걸리는 기간과 금액을 먼저 계산했다.
정상적인 절차에 의해서 통관받는 경우에는 최소 90일에 6,000달러가, 급행으로 통관받는 경우에는 최소 67일에 7,000달러가 소요된다.
40피트 컨테이너를 수입하는 데 부대비용으로만 이만큼 들어가니 잠비아의 수입품 물가가 이렇게 높은 것이다.
겨울이 짧은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정명훈 지점장이 말라마 과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싱칼라 회장이 수입하려는 가전제품의 무게는 계산해 봤나?”
“네. 그게… 모두 80톤입니다.”
“음, 생각보다 많이 무거운 편이군.”
“냉장고가 포함되어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항공 운송비용은?”
“찾아봤습니다만, 한국에서 루사카까지 운항하는 화물기가 없습니다.”
“알았어.”
짧게 대답한 정명훈 지점장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겨울은 그가 한국어로 통화했기 때문에 어떤 내용으로 통화하는지 대충 알아들었다.
더구나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것으로 봐서 좋은 쪽으로 가닥이 잡혀 가는 것만큼은 틀림없었다.
마침내 정명훈 지점장이 길고 길던 통화를 끝내고 입을 열었다.
“말라마 과장, 싱칼라 회장한테 내가 만나자고 한다고 전해 줘.”
“네, 지점장님.”
말라마 과장이 핸드폰을 들고 회의실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의 뒷모습을 힐끗 쳐다보면서 겨울은 정명훈 지점장에게 말을 걸었다.
“지점장님, 방금 전에 생각난 아이디어인데, 한 번 들어 보시겠습니까?”
“얘기해 봐.”
“저희가 가전제품을 항공 운송으로…….”
정명훈 지점장은 겨울이 하는 얘기를 진지하게 경청했다.
겨울의 말이 끝나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한전자의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서 오랫동안 통화를 하고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그의 얼굴에는 알게 모르게 미소가 어려 있었다.
“부지점장, 우리가 원한다면 공급해 주겠다고 하는데?”
“지점장님, 그렇다면 우리 법인의 마진을…….”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어.”
* * *
ZAHA 유통 싱칼라 회장 집무실.
후덕한 인상의 소유자인 싱칼라 회장은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정 지점장님, 오늘 또 이렇게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이럴 거라면 차라리 이곳에 머무르는 편이 나을 뻔했습니다.”
“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본사에서 결재가 떨어졌습니까?”
“죄송한 말씀이지만, 부결 받았습니다.”
“그 얘기를 하시러 이곳까지 다시 오셨다는 말씀입니까?”
“겸사겸사 왔습니다.”
‘겸사겸사’라는 말은 다른 용건도 있다는 뜻과 같은 의미이다.
싱칼라 회장은 뜸들이지 않고 다른 용건이 무엇인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음, 제가 먼저 말을 하기 전에 아이디어를 제공한 한 부지점장의 얘기를 직접 들어 보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정명훈 지점장은 발언할 기회를 마련해 주고는 겨울과 눈을 마주쳤다.
앞서 정명훈 지점장과 이야기가 된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브리핑에 나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무척이나 떨리는 겨울이었다.
겨울은 가벼운 헛기침으로 긴장감을 풀고 침착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제가 아이디어를 말씀드리기 전에 회장님께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회장님께서 셀러와 제품을 수입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출발지부터 루사카까지 제품이 손실 없이 도착하는 경우가 얼마나 됩니까?”
“음…….”
잠시 생각하던 싱칼라 회장은 그동안 쌓인 응어리가 많은지 이내 한숨을 크게 내뱉었다.
“부지점장도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바다가 없습니다. 때문에 모잠비크의 베이라 항을 통해서 제품을 전량 수입하죠. 그런데 이 모잠비크 세관 놈들은 우리나라가 수입하는 컨테이너를 검사할 때마다 값나가는 제품에 꼭 손을 댑니다.”
“이런… 손버릇이 더러운 건 여느 나라나 똑같군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수입하는 제품에 대한 손실률은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높은 편입니다. 이유를 아십니까?”
싱칼라 회장이 물었지만, 겨울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제 생각에는 저희가 현장에서 컨테이너를 개봉해서 확인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모잠비크 세관 놈들이 이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품 손실률이 얼마나 됩니까?”
“제품마다 다르지만, 고가 제품의 경우에는 평균 5% 정도 됩니다.”
대한전자에서 ZAHA 유통에 수출하려는 가전제품의 가격은 모두 240만 달러였다.
가전제품의 경우 모두 고가 제품이기 때문에 5%라면 약 12만 달러를 모잠비크 세관에 삥 뜯기는 것이다.
겨울은 12만 달러를 머릿속에 기억한 뒤, 싱칼라 회장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싱칼라 회장님, 모잠비크의 베이라에서 이곳 루사카까지 운송하는 동안에 발생되는 손실은 없습니까?”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만… 운이 없으면 무장 반군들한테 모두 뺏길 때도 있습니다.”
“싱칼라 회장님도 겪으신 적이 있었습니까?”
“물론입니다. 지금까지 무려 일곱 번이나 당해 봤습니다.”
“손해 본 금액도 상당히 많았겠네요?”
“후우… 한 번 강탈당할 때마다 1년 동안 벌은 돈을 모두 손해 봤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짜증난다는 싱칼라 회장의 반응에 동조하며 겨울이 입을 열었다.
“제가 사장님께 이런 질문한 이유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말씀해 보세요.”
“저희는 가전제품을 해운 운송이 아닌 항공 운송으로 사장님께 공급했으면 합니다.”
“네?!”
싱칼라 회장은 진심으로 놀랐는지 경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질렀다.
겨울은 그가 이런 반응을 보일 것을 예상하고 있었기에 표정 변화 없이 말을 이어 나갔다.
“이제부터 회장님께서 대한전자에서 가전제품을 수입하는 데 들어가는 부대비용을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제가 설명하는 내용 중에서 잘못된 점이 있으면 바로잡아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얘기해 보세요.”
“회장님께서 수입하려는 가전제품은 부피가 많은 관계로 40피트 컨테이너로 25개 분량이고, 무게는 모두 80톤입니다. 대한민국 부산항에서 출발한 40피트 컨테이너 한 개가 루사카까지 도착하기 위해서는…….”
겨울은 자세한 예를 들며 침착하게, 그리고 자세하게 설명해 나갔다.
“…해서 무장 반군들에게 강탈당하지 않는다고 가정할 경우, 25개 컨테이너를 수입하는 데 발생하는 부대비용은 정상적으로 통관받을 경우에는 27만 달러, 급행으로 통관받게 되면 29만 5,000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겨울이 설명하는 내용을 일일이 메모하며 끝까지 들은 싱칼라 회장은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서 입을 열었다.
“음… 부지점장님의 말씀 중에서 컨테이너를 통관할 때 부대비용은 500달러가 아니라 700달러입니다. 그리고 급행으로 컨테이너를 통관받을…….”
싱칼라 회장은 예를 들어 설명하면서, 정상적으로 통관받을 경우에는 29만 달러, 급행으로 통관 받게 되면 32만 달러가 든다고 정정해 주었다.
“회장님께서 수입 예정인 가전제품을 항공으로 운송받을 때 발생하는 부대비용은 지점장님께서 설명해 드릴 예정입니다.”
정명훈 지점장은 겨울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고, 그의 앞으로 다가가 입을 열었다.
“항공 운송의 경우에는 정해진 가격이 없습니다만, 1㎏당 4.5달러 정도 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그럼 1㎏당 4.5달러로 계산하고 80톤의 화물을 항공으로 운송한다고 가정했을 때, 약 36만 달러의 부대비용이 발생합니다.”
“해운 운송보다 4만 달러의 비용이 추가로 발생하는 거네요?”
예상대로 싱칼라 회장이 탐탁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물류비용이 추가로 더 발생한다는 데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정명훈 지점장은 그의 반응에 개의치 않고 하고 싶은 말을 이어 나갔다.
“4만 달러라는 비용이 추가로 발생하지만, 항공 운송의 경우 두 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항공 운송은 운송 기간이 길어야 2일이기 때문에 기회비용 측면에서 엄청나게 도움이 될 겁니다. 그리고 무장 반군에게 강탈당할 염려가 없습니다. 가전제품이 루사카까지 도착할 때까지 마음 졸일 필요가 없는 거죠.”
“항공 운송의 경우에는 제조된 후 열흘 이내의 최신 제품을 공급받는 것이기 때문에 마케팅 활동에 상당한 도움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정명훈 지점장의 뒤를 이어서 겨울이 한마디 보탰다.
두 사람의 설명을 들은 싱칼라 회장은 확 구미가 당겼다.
특히 겨울이 한 얘기가.
최신형 제품을 판매한다고 광고하게 되면 분명히 고객들로부터 반응이 뜨거울 것만은 틀림없었다.
이때 추가비용 4만 달러를 제품 판매 가격에 슬그머니 포함시켜도 고객들은 별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방법은 무장 반군들에게 강탈당할 염려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었다.
“좋습니다. 항공 운송으로 수입하는 것으로 방법을 달리해 봅시다.”
정명훈 지점장은 기쁜 마음에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지만 결코 내색하지 않았다.
축구 경기로 치자면 이제 전반전이 끝났을 뿐이니까.
그는 싱칼라 회장이 눈치채지 못하게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차분한 목소리로 대화를 재개했다.
“회장님이 가전제품을 항공 운송으로 수입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세 가지가 더 있습니다.”
“또 뭡니까?”
문제가 더 있다는 말에 싱칼라 회장의 목소리에 짜증이 묻었다.
정명훈 지점장은 어차피 한 번은 털고 가야 하는 문제라 생각하며 얼굴에 철판을 깔고 말을 꺼내 놓았다.
“회장님, 저희가 공급하는 제품 가격을 2%만 올려 주십시오.”
2%면 4만 8,000달러.
싱칼라 회장도 그 정도는 인상시켜 줄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태클을 걸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이제 두 번째 문제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잠비아 루사카까지 직항으로 운항하는 화물기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화물기를 전세 내야 하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화물기를 전세 내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모두 얼마입니까?”
“정확하지는 않지만, 최소 40만 달러는 부담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싱칼라 회장은 가전제품을 항공 운송으로 수입할 경우에 추가로 발생하는 금액을 계산해 보았다.
12만 8,000달러.
만약에 이 금액을 추가로 부담하게 되면, 자신의 영업이익은 15%로 줄어들게 된다.
여기에 세금과 기타 경비를 공제하면, 순이익은 2%.
고작 5만 달러를 벌기 위해서 무리하게 항공 운송을 시도할 필요는 없다.
“정 지점장님, 항공 운송은 포기하도록 하겠습니다.”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