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콩고 민주공화국 (1)
대한민국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직항하는 비행기는 없었다.
대부분의 경우 홍콩, 싱가포르, 카타르의 도하 등을 경유하는데, 환승하는 공항에서 대기하는 시간을 포함하면 약 열여덟 시간에서 스무 시간 정도 걸렸다.
겨울은 이것저것 고려해서 홍콩을 경유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수도인 요하네스버그로 가는 경로를 선택했다.
홍콩 첵랍콕 국제공항에서 약 다섯 시간 정도를 대기하고 있었지만, 남아프리카공화국이라는 나라가 주는 설렘과 기대감 때문에 시간이 그다지 지루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
오랜 기다림 끝에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로 출발하는 비행기 탑승을 시작한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드디어 출발이군.”
겨울이 탑승한 비행기는 자정 무렵에 활주로를 박차고 어두운 밤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관문인 요하네스버그 오알탐보 국제공항까지는 무려 열세 시간 가까이 날아가야 했다.
긴 시간을 버틸 수 있는 방법은 잠자는 것이 최고였다.
겨울은 승무원에게 위스키를 달라고 요청해서 기내식과 함께 연거푸 세 잔을 마시고 잠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열세 시간은 길어도 너무 길었다.
중간에 잠에서 깬 겨울은 몸을 이리저리 비튼 끝에 오전 7시 조금 넘어서 도착할 수 있었다.
“아이고, 죽겠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입국 수속을 무사히 마치고 수하물을 찾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는 동안, 겨울은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법인에서 나를 마중 나온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하지? 설마… 그러기야 하겠어.”
자기 덩치만 한 캐리어를 끌고 입국장 문을 열고 나간 겨울은 마중 나온 사람이 있는지 재빠르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쪽 편에 ‘한겨울’이라는 한국어로 된 팻말을 들고 있는 외국인이 눈에 들어왔다.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겨울은 그에게 다가가 다소 서툰 영어로 말을 건넸다.
“반갑습니다. 저는 대한 그룹 아프리카 법인에 발령받은 한겨울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대한 그룹 아프리카 법인에서 근무하고 있는 보술로 아놀드 라고 합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제 상사를 모시고…….”
그때, 30대로 보이는 한국 남자가 두 사람 사이로 다가오며 물었다.
“한겨울 씨 되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반가워요. 나는 대한 그룹 아프리카 법인에서 근무하고 있는 오정수 과장입니다. 우리 악수나 한 번 합시다.”
겨울은 오정수 과장이 내민 손을 맞잡았다.
“남아공까지 오시느라 힘들었죠?”
“비행시간이 길어서 그렇지, 생각보다 그다지 힘들지 않았습니다.”
“이 친구와 인사는 나눴습니까?”
“네, 과장님.”
“자세한 얘기는 시내로 이동하면서 하는 것으로 합시다. 캐리어는 아놀드 대리한테 맡기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 * *
시내로 이동하는 승합차 안에서 오정수 과장은 며칠 전에 있던 일을 떠올렸다.
본사 인사팀에서 보내온 겨울의 인사 파일을 확인하는 순간, 그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이곳이 아프리카라고는 하지만, 겨울이 보유한 스펙 가지고는 절대로 발령받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겨울의 후원자가 힘 있는 사람이라면 가능하겠지만.
때문에 그는 후원자가 누구인지 파악하기 위해서 연수원에 근무하고 있는 선배를 찾았다.
고등학교 선배이기도 한 차병훈 과장에게 전화를 걸어 겨울에 대해 이것저것을 물었다.
다행히 선배는 겨울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고, 어쩐 일인지 깊은 애정까지 언뜻언뜻 내비쳤다.
겨울이 이곳까지 발령받은 이유에 대한 자신의 질문에는 의미심장한 답변을 내놓았다.
결국 후원자가 누구인지, 왜 이곳에 발령을 받았는지, 어떤 의문 하나도 해결하지 못했지만, 선배의 말에 더 의문을 품지 않기로 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한겨울은 이곳에 발령받을 수 있는 자격이 아예 못되는 것은 아니기에.
전화를 끊기 전에 차병훈 과장은 겨울이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라며, 잘 지내보라는 끝말을 남겼다.
아직 그가 본 모습만으로는 겨울이 괜찮은 사람인지 아닌지 파악할 수 없었다.
“과장님, 숙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기혼자들은 사택이 제공되지만, 미혼자들은 사택이 제공되지 않아요. 그래서 대부분의 미혼자들은 치안이 비교적 안전한 호텔에 장기 투숙하는 경우가 많죠.”
“호텔 숙박비는 비싸지 않나요?”
“일류 호텔은 그렇죠. 하지만 그 외의 일반 호텔은 그렇게 비싸지 않아요. 참고로 나도 호텔에 장기 투숙하고 있어요.”
“그럼 저도 과장님이 투숙하고 있는 호텔에서 머무르면 안 될까요?”
“그렇게 하세요. 오늘과 내일은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여독 좀 풀고, 월요일 오전 7시 30분에 로비에서 만납시다.”
7시 30분이라는 말에 겨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과장님, 호텔과 회사 사이의 거리가 많이 멉니까?”
“아니요. 걸어서 10분 거리예요.”
“그럼 더 늦게 출발해도 괜찮지 않나요?”
“어떤 의도로 질문했는지 알겠네요. 남아공은 우리니라와 달리 업무 시간이 8시에 시작해요.”
“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요하네스버그는 번화가를 제외한 빈민가나 뒷골목이 대낮에도 상당히 위험한 편이에요. 그러니까 밤에는 가급적 호텔에서 외출을 자제하도록 하세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어느덧 호텔에 도착한 겨울은 객실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시설이 제법 나쁘지 않은 것을 확인한 그는 이곳에 장기 투숙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아함… 피곤해 죽겠네. 일단 한숨 자자.”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이동한 터라 피로가 누적된 겨울은 곧바로 골아떨어졌다.
그렇게 낮잠을 늘어지게 자고 오후 늦게 일어난 겨울은 호텔방에서 마냥 빈둥거릴 수가 없었다.
앞으로 근무해야 할 회사의 위치도 확인해 볼 겸 호텔을 나섰다.
핸드폰의 지도 찾기를 이용하니 대한 그룹 아프리카 법인이 입주해 있는 빌딩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이 빌딩 25층과 26층을 사용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올라가 볼까?”
빌딩 내부로 들어간 겨울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25층까지 올라가 보았다.
하지만…….
너무 늦은 것인지 사무실 출입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밑으로 내려온 겨울은 로비에서 생각지도 않은 사람을 만났다.
“한겨울 씨, 이곳은 어쩐 일이세요?”
“아, 안녕하세요. 제가 앞으로 근무해야 할 회사를 구경하러 왔습니다.”
“아하, 제가 회사 내부를 구경시켜 줄까요?”
“그래 주시면 고맙죠.”
아놀드 대리의 안내를 받으며 회사 내부를 구경하면서 겨울은 장대산과 가을에게 새삼 고마움을 느꼈다.
자신이 아놀드와 큰 어려움 없이 영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던 배경에는 두 사람의 도움이 절대적이었으니까.
나중에 두 사람에게 고맙다고 전화로 말해 줘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아놀드 대리에게 이것저것을 물었다.
“아놀드 대리님, 여기에 근무하는 직원은 모두 몇 명입니까?”
“정규직은 80명 정도 되고, 비정규직은 120명 정도 됩니다.”
“그중 한국 사람들은 모두 몇 명입니까?”
“이곳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모두 20명 정도고, 지점에 나가 있는 일곱 명까지 포함하면 27명입니다.”
겨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한 그룹 아프리카 법인이 지점을 보유하고 있다는 얘기는 처음 들었기 때문이었다.
겨울은 그 점에 대해 아놀드 대리에게 물었다.
“이곳 한 곳에서 아프리카 대륙을 모두 관리할 수 없어서, 남아공, 알제리, 에티오피아, 나이지리아, 콩고민주공화국에 지점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지점에는 몇 명이 근무합니까?”
“지점의 규모마다 다르지만, 지점장을 포함해서 20명에서 40명 정도가 근무하고 있습니다.”
겨울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느낌상 자신이 근무해야 할 곳은 이곳이 아니라 네 나라 중에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아놀드 대리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아놀드 대리님, 혹시 다섯 개 지점 중에서 한국 사람 TO(Table of Organization)가 빈 곳이 있습니까?”
“음,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제가 알기로는 콩고민주공화국 지점이 비어 있는 걸로 압니다.”
겨울은 홍성훈 부장이 콜레라를 포함해서 여러 가지 예방주사를 맞으라고 한 이유를 이제야 깨달았다.
자신의 근무지는 이곳이 아니라 콩고민주공화국이리라.
속으로 한숨을 내쉰 겨울은 계속해서 아놀드 대리에게 질문했다.
“아놀드 대리님, 콩고민주공화국이 어떤 나라인지 알려 주실 수 있을까요?”
“이렇게 서서 얘기하지 말고, 저기 보이는 테이블에 앉도록 하죠.”
“네, 좋습니다.”
아놀드 대리는 꽤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콩고민주공화국은 적도가 지나가는 아프리카 대륙 중앙에 위치하고 있고…….”
콩고민주공화국의 공용어는 프랑스어라고 했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겨울은 짜증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그동안 영어를 익히느라 죽어라고 고생했는데, 다시 프랑스어를 시작해야 하다니.
속았다고 홍성훈 부장에게 따질 수도, 회사를 때려치울 수도 없었다.
어차피 자신은 대한 그룹에서 끝을 보기로 마음먹고 입사하지 않았는가.
콩고민주공화국으로 발령받지 않을 수도 있을 거라며 스스로 위안하는 사이, 아놀드 대리의 설명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콩고민주공화국의 수도인 킨샤사와 콩고공화국의 수도인 브라자빌은 특이하게도 콩고강을 마주하고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놀드 대리님, 이곳과 지점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의 로테이션은 어떻게 됩니까?”
“현지에서 채용된 직원들은 같은 지역에서 근무하는 것이 원칙이고, 한국 사람들은 이삼 년에 한 번 로테이션이 이뤄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즉, 콩고에 발령을 받으면 죽어도 2년 동안은 근무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겨울은 그 힘든 군 생활도 무사히 버텼는데, 그깟 콩고민주공화국에서의 2년은 별것 아니라고 위안하면서 화제를 전환했다.
“아놀드 대리님, 자꾸 질문만 하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 한 가지만 더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오히려 이렇게 도움이 될 수 있어 기쁘군요.”
“대한 그룹 아프리카 법인이 수행하는 역할을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음,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크게 세 가지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대한 그룹에서 생산하는 제품을 수입해서 아프리카 전역에 판매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고… 또 하나는 대한 그룹이 필요로 하는 제품과 원재료들을 매입해서 수출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독립채산제라는 말씀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세 번째는 대한 그룹을 보조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역할이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나라에 고속도로를 공사하는 프로젝트가 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고속도로 공사는 저희들이 수행할 수 없기 때문에 대한 건설에 연결시켜 줍니다. 그렇게 되면 대한 건설에서는 관계자들을 우리나라에서 파견…….”
아놀드 대리가 장황하게 설명해 주었지만, 한마디로 짧게 말하면 법인은 대한 그룹의 심부름꾼이자 안내인 역할이라는 뜻이다.
“아놀드 대리님, 정말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을 주신 것에 감사하는 의미로 저녁을 대접했으면 좋겠는데, 시간이 괜찮으십니까?”
“오, 괜찮습니다. 따로 생각해 두신 음식점이 없으실 듯하니 제가 안내하죠.”
아놀드 대리가 겨울을 데리고 간 곳은 평범해 보이는 작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다.
피자와 콜라를 마시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도중에 겨울은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아냈다.
아놀드 대리가 대한 그룹 아프리카 법인 정규직 직원이기는 하지만, 연봉은 자신의 30%도 안 된다는 사실을.
“아놀드 대리님, 그렇게 적은 연봉을 받는데, 불만은 없나요?”
“불만이 있을 수가 있나요? 다른 비정규직 직원들은 저의 절반도 받지 못하고 있는데요.”
이렇게 말하고는 있지만 겨울은 적은 연봉에 불만이 있다는 사실을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다.
그의 목소리가 살짝 격앙되어 있었기 때문에.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