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 성공 신화-22화 (22/328)

[22화] 해고

“최성진 부회장은 어디 있나?”

한참동안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겨 있던 송훈석 회장이 중저음의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늘 아침에 영국으로 출장 갔습니다.”

“서 실장은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겠는가?”

싹수가 노란 놈들은 조기에 솎아 내는 것이 여러모로 이득이기는 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 연루된 신입 사원들을 모두 징계처분해서 퇴사시켜 버린다면, 그 또한 골치 아픈 일이 생길지도 몰랐다.

대한 그룹의 3대 주주인 최성진 부회장의 아들 최준하도 포함되어 있지 않은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결론은 하나밖에 없었다.

“저는 한겨울이 원하는 대로 관련자들을 선처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서 실장, 그놈들이 아무 처벌 없이 우리 회사에 들어오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우리 회사를 야금야금 좀먹을 것 같지 않은가?”

“회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게다가 최준하는 벌써부터 파벌을 조직했네. 그놈이 우리 회사에 입사하게 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눈에 훤하지 않은가? 지유가 대한 그룹의 경영권을 장악하는 데 걸림돌이 될 것 같지 않은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디까지나 조용히 일을 수습했으면 하는 마음에 실언한 것 같습니다. 회장님께서 생각하시는 대로 그들을 처벌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나중을 생각해서라도 자세한 경위 파악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후우… 나도 알고 있네. 우선 정 원장한테 전화해서 우리가 내려간다고 하고…….”

송훈석 회장의 지시를 들은 서동호 실장은 조용히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나름 곤란했을 텐데… 잘 빠져나갔단 말이지… 한겨울을 다시 평가해야 하나?”

혼잣말을 흘린 송훈석 회장이 턱을 괴고 또다시 생각에 잠겼다.

* * *

인사관리는 다른 과목들에 비해 공부하기 수월한 편이다.

그러나 워낙 내용이 방대하기 때문에 외워야 하는 양이 엄청났다.

강사는 강의 중간중간에 지필 테스트와 관련한 힌트를 연속해서 알려 주며 연수생들의 집중을 유도하고 있었다.

그런 강사의 방법은 의외로 제대로 먹혀들어서 겨울도 잡생각 없이 강의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차병훈 과장이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모든 신입 사원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린 것은 당연지사.

그는 강사에게 다가가서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잠시 뒤, 강사가 강의실 밖으로 나갔다.

굳은 표정으로 교탁에 선 차병훈 과장은 신입 사원들에게 공지 사항을 알려 주었다.

“정재엽 원장님께서 신입 사원 여러분에게 긴급하게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합니다. 지금 즉시 대강당으로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 * *

대강당.

언제나 그렇듯 겨울의 옆자리에 앉은 이재성은 궁금한 표정으로 말을 걸어왔다.

“겨울 씨, 원장님이 우리를 왜 부르신 걸까요?”

“어젯밤의 사건에 대해서 입조심을 시키려는 게 아닐까요?”

겨울은 방금 전에 일어난 일에 대해 이미 다 이재성에게 이야기했다.

이재성은 자신이 겨울을 돕지 못해 미안하다며 분해했다.

“어제 사건은 이미 신입 사원들 사이에 이미 소문이 다 나서 아닐 거 같습니다. 이제 와서 굳이 입조심 시킬 필요는 없지요. 제 생각에는 원장님께서 무언가 노리는 것이 있어서 신입 사원들을 전부 불러 모았다고 생각해요.”

“네? 노리는 거라뇨?”

하지만 두 사람의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정재엽 원장과 이종수 이사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대강당 앞문을 열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다소 어수선하던 대강당의 분위기가 깊은 침묵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정재엽 원장은 무대 중앙으로 이동해서 신입 사원들에게 가볍게 목례하고 마이크를 입에 가져갔다.

“갑자기 신입 사원 여러분을 불러 모아 대단히 죄송합니다. 이미 소문을 통해서 모두 알고 계시겠지만, 어젯밤에 매점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에 우리 연수원에서는 어젯밤 사건과 관련해서 정확한 진상을 파악해 보기 위해서 여러분을 보자고 한 겁니다.”

그때, 객석 중간에 앉아 있던 신입 사원이 손을 번쩍 들고 발언권을 요청했다.

“네, 얘기해 보세요.”

“저는 8반의 심상훈이라고 합니다. 말씀하시는 사건은 제가 보기엔 가벼운 언쟁 수준이었습니다. 이렇게 가벼운 사건도 진상 파악을 합니까?”

“심상훈 씨의 말이 맞습니다. 하지만 새벽에 누군가 매점에 침입해서 CCTV 기록 장치를 훔쳐 가는 절도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에 대해 조치하고자…….”

정재엽 원장은 CCTV 기록 장치 절도 사건을 공개하고 있지만, 누가 용의자로 지목되고 의심스러운지 상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겨울은 아마도 최준하에게 매수된 신입 사원들을 색출해서 처벌하기 위한 명분 쌓기일 거라고 결론 내렸다.

겨울이 짧은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에도 정재엽 원장의 설명은 계속됐다.

“…해서 목격자 여러분의 협조가 적극적으로 필요한 상태입니다. 어젯밤에 사건 발생 당시에 매점에 계시던 분들은 자리에 남아 주시고, 다른 인원들은 강의실로 돌아가 주십시오.”

우르르.

대부분의 신입 사원들이 강의실로 돌아가자, 대강당에는 50명 정도만 남아 있었다.

이번에는 이종수 이사가 마이크 전원을 키고 입을 열었다.

“어젯밤 매점에서 발생한 사건을 저희가 자체적으로 조사해 본 결과, 증언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상황입니다. 한쪽에서는 최준하 씨가 한겨울 씨한테 시비를 먼저 걸었다고 하고, 또 한쪽은 그 반대입니다. 여러분의 증언에 따라서 여러 사람의 운명이 갈리게 될 예정입니다. 최준하 씨가 한겨울 씨한테 시비를 먼저 걸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저를 기준으로 왼쪽에, 그 반대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오른쪽으로 이동해 주십시오.”

겨울을 포함한 대부분의 신입 사원들이 왼쪽으로 이동했고, 최준하를 포함한 열두 명은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경찰에 회부될 수도 있는 중요한 안건입니다. 이후 인사 평가에도 기록될 수 있으니 신중하게 결정해 주십시오. 다시 한번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이종수 이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네 명이 왼쪽으로 이동했다.

이제 최준하를 지지하는 신입 사원들은 모두 일곱 명으로 줄었다.

사실 이종수 이사가 이렇게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한 이유는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매점에 침입한 범인을 색출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판단한 이종수 이사는 신입 사원들에게 공지 사항을 전달했다.

“이제 저희들이 나눠주는 서류를 자세히 읽어 보고 자필 서명해서 되돌려 주십시오. 서류는 매점에서 보고 들은 장면에 대해서 사실대로 인정한다는 내용입니다.”

잠시 후, 목격자들에게 모든 서류를 수취한 이종수 이사는 다시 한번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퇴장했다.

이종수 이사와 정재엽 원장은 원장실로 이동해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 이사, 이걸로 매점에 침입한 범인이 누구인지 찾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시간이 조금 걸릴 뿐, 충분히 가능합니다. 생각보다 용의자로 추정되는 인물들이 적어서 금방 추려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보자와 위증한 신입 사원들은 그 일곱 명에 포함되어 있나?”

“네. 확인해 본 결과,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후우… 회장님께서 5시쯤에 도착한다고 하시니, 관련자들을 모두 임원 회의실로 부르게.”

“한겨울 측은 누구를 부를까요?”

“매점에서 같이 있던 네 명을 부르는 것이 좋겠지.”

* * *

임원 회의실.

자리에 앉아 있는 겨울에게로 최준하가 다가오고 있었다.

겨울은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은밀하게 핸드폰을 조작해서 녹음 버튼을 눌렀다.

장대산에게 배운 대처법이었다.

그 사이, 최준하는 겨울에게 다가와서 비릿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한겨울, 네놈이 뿌린 씨앗이니까 나를 원망하지 마라.”

“최준하 씨, 나를 싫어하는 이유가 도대체 뭡니까?”

“내가 잔뜩 눈독 들이고 있는 장난감을 네놈이 넘보고 있는 게 싫어.”

겨울은 눈살을 찌푸렸다.

최준하가 언급한 장난감은 보나마나 송지유일 것이다.

처음에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으나 마주칠 때마다 그가 노골적으로 송지유를 탐욕스럽게 쳐다보고 있었기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사람을 장난감 취급하는 그가 불쾌했고, 자신이 송지유를 넘본다는 말이 어이없기도 했다.

겨울은 시치미를 뚝 떼고 다시 물었다.

“장난감이라니, 누구를 말하는 겁니까?”

“알면서 왜 그래?”

“잘 모르겠는데요?”

“에이, 눈치 없는 새끼. 송지유밖에 더 있냐?”

그때, 임원 회의실 문이 열리고 송훈석 회장을 필두로 한 여러 사람들이 들어왔다.

송훈석 회장을 보고 화들짝 놀란 신입 사원들이 자세를 바로했고, 최준하는 재빨리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상석에 앉은 송훈석 회장은 신입 사원들의 면면을 주욱 살펴본 뒤, 엄숙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다들 자리에 앉으세요.”

“네! 회장님.”

신입 사원들이 재빨리 자리에 착석하자, 송훈석 회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이 자리에 참석한 이유는 오늘 새벽에 발생한 절도 사건이 매우 심각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누군가는 징계 처분을 받아 최악의 경우에는 회사를 떠나야 할 겁니다. 따라서 우리들이 묻는 질문에 신중하게 대답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신입 사원들이 입을 모아 대답했다.

송훈석 회장은 고개를 돌려 이종수 이사를 쳐다보았다.

“이종수 이사, 이제 시작하세요.”

“네, 회장님.”

짧게 대답한 이종수 이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오늘 아침에 연수원에 한통의 제보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새벽에 누군가가 매점에 들어가서 무언가를 훔쳐 나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종수 이사는 아침부터 오후까지 있던 일련의 사건들을 시간에 맞게 자세하게 보고했다.

“…이미 자체 조사는 끝난 상황이고, 회장님의 최종 결정만 남아 있는 상황입니다.”

“연수원에서 조사한 결과를 이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공개하도록 하세요.”

“네, 회장님.”

이종수 이사가 누군가에게 신호를 보내자 스크린에 동영상이 비춰졌다.

[어라? 한겨울이잖아?]

[하아… 최준하 씨, 언제부터 저희가 서로 편하게 부를 수 있는 사이였는지…….]

동영상을 지켜보고 있던 최준하는 놀라서 눈알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오늘 새벽, 매점에서 절도한 CCTV 기록 장치는 이미 폐기하지 않았는가.

저런 동영상이 남아 있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버젓이 들리는 음성은 또 뭐란 말인가.

최준하를 비롯한 범죄에 가담한 신입 사원들이 패닉 상태에 빠져 있는 사이, 동영상이 끝났다.

“동영상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한겨울 씨에게 최준하 씨가 시비를 먼저 걸었습니다. 하지만 목격자 다섯 명은 이와 반대로 증언했습니다.”

“목격자들은 본인들이 위증했다는 사실을 모두 인정합니까?”

“…….”

“왜, 대답이 없어!”

송훈석 회장이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하지만 겁을 단단히 먹은 신입 사원들은 시선을 내리깐 채 고개를 들지 못했다.

“위증으로 인해서 한 사람의 운명이 바뀔 거라고는 생각해 보지 않았나!”

“…….”

“신인석 씨.”

“…….”

“신인석 씨!”

“네, 넵!”

“위증한 이유가 뭔가?”

“…최준하 씨가 저희들이 원하는 회사에 배치시켜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신인석이 한참 동안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최준하가 어떤 힘이 있다고!”

“저희가 보는 앞에서 최성진 부회장께 직접 통화해서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최준하, 사실이야?”

“…….”

최준하는 고개를 숙인 채 대답하지 못했다.

“에이, 못난 놈.”

이 말과 함께 송훈석 회장이 이종수 이사에게 수신호를 보냈고, 스크린에 또 다른 동영상이 재생되었다.

두 명의 신입 사원이 매점에 침투해 CCTV 기록 장치를 훔쳐 매점 밖으로 도망치는 모습이었다.

동영상 재생이 끝나자, 이종수 이사가 말을 이어 나갔다.

“CCTV 기록 장치 절도 사건의 제보자인 위영수 씨의 증언도 허구로 드러났고, 절도범 두 명은 신인석 씨와 천명현 씨로 확인됐습니다.”

“제보자, 절도범들. 반론해 봐.”

“…….”

세 사람은 아예 입을 닫았다.

“이 이사, 우리 회사 징계 규정이 어떻게 되나?”

“해고입니다.”

“여덟 명 전원을 오늘 날짜로 해고시켜.”

“네, 알겠습니다.”

송훈석 회장의 말에 겨울은 살짝 초조해졌다.

괜히 강한 징계로 이번 일이 더 확대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가벼운 죄를 지은 인원들은 선처해 줬으면 했지만, 송훈석 회장의 기세가 너무도 사나워 생각만 했을 뿐, 입도 벙긋하지 못했다.

“서동호 실장과 정재엽 원장은 절도 놀음에 가담한 매점 주인을 퇴출시키고, 조영진 부사장은 해임, 김성철 부장은 해고시키도록 하세요.”

“네, 회장님.”

그렇게 CCTV 기록 장치 절도 사건은 많은 파문을 남기고 마무리되었다.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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