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 성공 신화-16화 (16/328)

[16화] 재수 없는 놈

“C동 303호로 가면 돼?”

[네, 언니. 혹시 둘이서 들고 오는 게 힘들면 제가 갈까요?]

“아니야. 목록에 없는 소품이 있어서 나중에 저녁 먹고 다시 오기로 했어. 가는 길에 매점 들려서 음료수나 사 갈게.”

[네. 조심해서 오세요.]

뚝.

송지유는 조강희와의 전화를 끊고 매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겨울 역시 그 뒤를 따랐다.

매점에 도착한 둘은 어떤 음료를 사 가야 할지 고민했다.

“음, 어떤 음료가 나을까요?”

“무난하게 콜라나… 연습하면서 분명 땀을 흘릴 테니 청량음료도 괜찮은 거 같습니다.”

겨울의 대답에 송지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청량음료 여덟 병을 꺼냈다.

겨울은 그녀가 음료를 계산대로 들고 오는 동안 카드를 꺼내 결재했다.

경제적인 여력이나 팀 내에서 지위를 생각하면 송지유가 사는 게 맞지만, 겨울은 이런 식으로라도 팀에 기여하고 싶었다.

겨울의 빠른 행동에 잠시 당황한 송지유지만, 이내 미소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고마워요. 잘 마실게요.”

“뭘요. 이렇게라도 팀에 도움이 되어야죠.”

“겨울 씨는 이미 충분히 팀에 도움이 되고 있어요. 자책하지 마세요.”

둘은 매점에서 나와 말없이 C동 303호로 향했다.

겨울은 뭐라고 말을 붙이고 싶었지만, 딱히 할 말이 없을뿐더러 더 나쁜 인상을 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목구멍에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자연스러울까 고민하던 그때, 둘에게 말을 붙여 오는 이가 있었다.

“오, 이게 누구야. 지유 아니야?”

“…안녕하세요.”

그는 바로 최준하였다.

“에이, 편하게 오빠라고 부르라고 했잖아. 매점 다녀오는 길이야?”

“그쪽이 알 바는 아닐 텐데요.”

“말투가 싸늘하네. 기분 안 좋아? 뭐, 오늘 그날인가?”

시답지 않은 농담을 하며 낄낄거리는 최준하의 모습에 그간 부드럽던 송지유의 눈빛이 순식간에 날카롭게 변했다.

“정말로 몰라서 이렇게 행동하시는 거면 다른 의미로 대단하시네요.”

“뭐 때문에 그래. 아, 너나 내가 회장, 부회장 자식인거 말하고 다닌 거 때문에? 뭘 그런 걸 가지고 화내냐, 지유야.”

정말 몰라서 묻는 걸까.

당사자가 아닌 겨울이 생각해도 화가 날 법한 일이었다.

굳이 논란 속으로 홀로 걸어 들어가는 거라면 아무 말 않겠지만, 애꿎은 타인까지 같이 끌고 들어가는 것은 이야기가 달랐다.

“이게 그렇게 화낼 일인가. 그쪽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어라 이게 누구야? 우리와 같이 면접 봤던 한겨울 아니야?”

드디어 최준하가 겨울을 알아봤다.

겨울은 최준하에게 받은 그대로 반말로 쏘아 붙이고 싶었지만, 괜한 분란을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존댓말로 응수했다.

“최준하 씨, 오랜만입니다.”

“당신 같은 사람도 우리 회사에 입사할 수 있다니. 신입 사원 채용 시스템에 뭔가 문제가 있는 거 아니야?”

순간, 겨울이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솟아 올랐다.

자신을 실력 없는 무능력자로 몰아가고 있는데, 세상에 좋아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이것 봐요, 최준하 씨. 말이 너무 심한 것 아닙니까?”

겨울의 짜증 섞인 얘기를 들은 최준하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뭐, 아님 말고. 지유야, 그렇지 않아도 그 과장이 불러서 이것저것 묻더라.”

“좀 더 언행에 주의해 주시죠. 적어도 피해는 주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제 서로 갈 길 가죠?”

말을 마친 송지유가 최준하를 무시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겨울도 최준하에게 무섭게 인상을 써 주고, 송지유의 뒤를 쫓아갔다.

그런 둘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최준하는 조용히 입맛을 다시고, 작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송지유, 네가 아무리 버텨봐야 결국에는…….”

* * *

“서 실장, 내가 믿을 것 같나?”

송훈석 회장이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서동호 실장에게 말을 건넸다.

“저도 회장님처럼 믿지 못했습니다만, 이종수 이사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 나서는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이사한테 전화 걸어.”

서동호 실장은 이종수 이사에게 전화를 걸어서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은 후, 핸드폰을 송훈석 회장에게 건네주었다.

“이종수 이사, 그동안 잘 있었나?”

[네, 회장님.]

“방금 전에 서 실장한테 보고 받았네. 지금 연수원에 좋지 못한 소문이 돌고 있다던데.”

[죄송합니다. 저희도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라 미리 예방하지 못했습니다.]

“그래. 그래도 그 문제로 인해서 과열되지는 않은 모양인데, 어떻게 된 건가?”

[최성진 부회장의 아들인 최준하가 같은 팀원들과 대화를 나누던 도중에 송지유 씨의 정체를 밝히면서 소문이 시작됐습니다. 워낙 자극적인 내용 덕분에 금방 소문이 퍼졌지만, 송지유 씨가 이에 잘 대응해 불길이 잦아들었습니다.]

“지유가 말인가?”

[네, 회장님. 다른 신입 사원들 앞에서 스스로의 신분은 인정하지만 다른 이들과 대등한 조건에서 공평하게 평가받을 거라고 단언했다고 하더군요. 흥분하지 않고 잘 대처했습니다.]

“허허, 녀석.”

송훈석 회장은 화가 난 것도 잠시, 흐뭇한 미소를 얼굴에 띠었다.

“그래. 그래서 그놈이 지유의 정체를 밝힌 이유는 알아냈나?”

[본인은 무심결에 입에서 튀어나왔다고 변명했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뭔가 의도가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송훈석 회장이 한 손으로 턱을 쓸었다.

최준하가 의도를 가지고 있다면, 최성진 부회장에게 무언가 지시를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최성진 부회장은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으니까.

“흠, 그러고 보니 논란이 될 만한 녀석이 한 명 더 있지 않나?”

[아, 제일 논란이 될 거라 예상한 한겨울은 의외로 소문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왜지?”

[저도 최준하가 한겨울에 대해 떠벌릴 것이라 예상했는데, 그게… 한겨울을 하찮게 여겼는지 아직까지는 별다른 얘기가 흘러나오지 않았습니다.]

“언젠가는 떠벌릴 수도 있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내말이 맞는가?”

[네. 워낙 종잡을 수 없는 인간이라서요.]

송훈석 회장은 깜냥도 안 되는 녀석 때문에 골치가 아파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알겠네. 이건 사담인데… 지유, 그 아이는 잘하고 있는가?”

아무리 한 그룹의 회장이라고 한들, 아비된 입장에서 딸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송훈석 회장의 질문에 방금까지 딱딱하고 날카롭던 이종수 이사의 목소리가 조금 누그러지는 게 느껴졌다.

[물론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소문에 잘 대처한 것은 물론, 경연 대회 준비도 잘 진행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아직 어떤 것을 준비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팀원과의 불화도 없고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고 하더군요. 기대하셔도 좋을 거 같습니다.]

이종수 이사는 칭찬이 인색하기로 유명한 사람이다.

정말로 송지유가 잘하고 있는 것인지, 혹은 마음에 들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지 송훈석 회장이 알 방도는 없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알겠네. 계속 수고해 주게나.”

[네, 회장님.]

“최준하는 계속 예의 주시하고, 문제가 발생할 거 같으면 바로 제재하도록.”

[알겠습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닐세. 최 부회장 걱정할 필요도 없어. 만약 그가 연수 과정에 간섭하면 공정성 위반으로 최준하를 탈락시켜도 좋네.”

[네? 그래도 되겠습니까?]

“이 친구야, 대한 그룹의 회장이 누구인가?”

[죄송합니다.]

“수고하게나.”

뚝.

전화를 끊은 송훈석 회장은 핸드폰을 서동호 실장에게 건네주며 말을 걸었다.

“서 실장, 내일 스케줄이 어떻게 되지?”

“…경연 대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일정을 조율해 보겠습니다.”

그의 의도를 읽은 서동호 실장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 * *

대망의 경연 대회 날이 밝았다.

아침 일찍 일어난 겨울은 연수원 안에 있는 헬스클럽에서 가볍게 몸을 풀어 주고 생활관으로 복귀했다.

예상한 대로 장대산은 아직도 잠에 취해 있었다.

자신들은 어젯밤에 새벽 1시 정도에 연습을 끝마쳤지만, 장대산은 새벽 3시가 다 돼서야 생활관으로 복귀했다.

연습 시간이 긴 탓도 있지만, 육중한 체구로 격하게 움직이려니 보편적인 사람보다 더 힘들었을 것이다.

겨울은 재빨리 샤워를 끝내고, 장대산의 몸을 흔들어 깨웠다.

“대산 씨, 지금 7시 20분이 넘었어요. 샤워하고 식사하려면 시간이 빠듯할 수도 있습니다.”

“…네.”

눈을 끔뻑이며 일어난 장대산이 지친 몸을 이끌고 욕실로 들어갔다.

그 사이, 겨울은 장대산의 침구를 가지런히 정리해 주었다.

잠시 후, 샤워를 끝낸 장대산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제 침구까지 정리할 필요는 없었는데… 고마워요.”

“뭘요. 입사 동기잖아요. 빨리 옷 갈아입고 갑시다. 배고파 죽겠어요.”

“아, 먼저 가셔도 괜찮아요.”

“혼자 밥 먹으면 소화가 잘 안 되거든요.”

장대산은 겨울의 세심한 마음 씀씀이가 진심으로 고마웠지만, 쑥스러운 마음에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빨리 준비할게요.”

아침 식사를 끝낸 겨울은 강의실에 도착했다.

강의실은 몇몇을 제외하곤 아직 비어 있는 자리가 많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의실로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내 겨울의 팀원들도 전부 모였다.

이재성은 힘들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겨울에게 말을 걸어왔다.

“겨울 씨는 피곤하지 않으세요?”

“피곤하죠. 저도 사람인데 피곤하지 않겠습니까?”

“하아… 대학생 축제 때도 이렇게까지 준비하지는 않았는데… 피곤해 죽겠네요.”

언제 왔는지 조강희가 자리에 앉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재성 오빠, 그래도 오빠는 남자잖아요.”

“네? 남자인 게 무슨 관계예요?”

“남자는 그래도 화장 안 하잖아요… 전 어제 들어가서 늦게 자고, 오늘 거의 새벽에 일어나서 준비했다구요.”

“그놈의 화장이 문제군요.”

“네…….”

“강희 씨는 화장하지 않아도 예쁠 거 같은데… 쌩얼로 다니면 안 되나요?”

“재성 오빠도 머리 다 밀면 잘생겼을 거 같은데…….”

“…죄송합니다.”

그렇게 피곤하지만, 밝은 모습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부릉부릉 팀이었다.

정확히 8시에 차병훈 과장이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교탁 앞으로 이동한 그는 신입 사원들을 주욱 둘러보고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신입 사원 여러분, 어젯밤에 편히 쉬셨습니까?”

“네에…….”

그 질문에 모두가 기운 없이 대답했다.

차병훈 과장은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다는 듯 엷게 미소 지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오늘 밤부터는 여유 시간이 제법 있을 겁니다. 지필 테스트를 포기하신 분들에게는.”

즉, 오늘 밤도 매우 피곤할 거라는 얘기였다.

누군가 힘없이 손을 들어 질문했다.

“과장님, 내일 아침도 지필 테스트를 봅니까?”

“네, 물론입니다.”

“배운 게 없는데요.”

“걱정 마세요. 오늘 오후에 배울 예정입니다.”

“아이고.”

“이제 하루 지났을 뿐입니다. 다들 기운 내십시오. 자, 그럼 이제부터 신입 사원 연수 2일차 과정을 시작하겠습니다. 팀장들은 팀명을 발표해 주십시오. 발표는 시계 방향으로 하겠습니다.”

차병훈 과장이 먼저 앞에 있는 팀을 가리키자 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열었다.

“저희 팀명은 TOP입니다.”

그러고 이어서 각 팀의 팀장들이 팀명을 하나씩 말하기 시작했다.

“저희 팀은…….”

여섯 명의 팀장이 불러 주는 팀명을 메모지에 받아 적은 차병훈 과장은 신입 사원들에게 공지 사항을 전달했다.

“3반의 팀워크 평가는 정각 9시에 101호 강의실에서 진행할 예정입니다. 각 팀들은 8시 55분까지 소품을 챙겨서 강의실에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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