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운명의 날 (3)
최준하의 귀에는 송훈석 회장의 말이 마치 천둥처럼 들렸다.
깜짝 놀란 최준하는 재빨리 입을 닫았다.
그와 동시에 면접장은 깊은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송훈석 회장이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방금 질문은 없던 것으로 하겠습니다. 따라서 1번 지원자의 답변은 무효 처리하겠습니다.”
“…….”
“그리고 서동호 실장은 대외비 문서가 1번 지원자에게 어떤 경로로 유출됐는지 진상을 파악해서 보고하세요.”
서동호 실장은 눈을 질끈 감으면서 속으로 최준하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이제 다른 면접 위원들께서 질문하세요.”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 눈치만 살피던 중 손석인 교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세 명에게 공통으로 하는 질문입니다. 여러분이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최고 경영자라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회사에 위기 상황이 발생해서 직원들에 대한 정리해고를 단행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누구부터 정리해고할 것인가와 그 이유를 간단하게 답변해 주십시오. 1번 지원자부터 답변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최준하는 머릿속으로 이미 답변이 정리된 상태였지만, 송훈석 회장의 눈치를 살피느라 집중할 수 없었다.
손석인 교수가 헛기침을 하며 눈치를 주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저는 임원과 부장급 인원들을 먼저 꼽겠습니다. 대대적인 정리해고를 진행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된 상태라면, 고인 물들을 정리하는 게 맞습니다. 명분 측면에서 봐도 그렇게 하는 편이 언론이나 다른 직원들에게도 좋겠지요.”
지극히 모범적인 답변이지만, 면접 위원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고인 물이라며 정리해야 한다는 발언이 마치 자신들에게 하는 이야기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손익을 계산해 보자면 굉장히 모범적인 답변이라 할 수 있었다.
“2번 지원자는 어떤 결정을 하시겠습니까?”
송지유는 크게 고민하지 않고 여유롭게 대답했다.
이미 그런 생각은 아버지에게 가르침을 받으며 수도 없이 해 왔기 때문이다.
“1번 지원자와 비슷합니다. 임원과 부장급 인원들을 정리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책임 명분은 명확하게 해서 원인 제공자 위주로 추려 내야 합니다. 오랜 시간 동안 우리 회사를 먹여 살린 유능한 인재들을 섣부른 판단으로 잃을 수는 없으니까요.”
다소 감정적이긴 하지만, 송지유의 답변 역시 모범적이라 할 수 있기에 손석인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3번 지원자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겨울도 최준하, 송지유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
손석인 교수의 표정을 봤을 때도 그 대답이 맞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앞서 까먹은 점수가 있기에 여기서 기발한 대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겨울이었다.
잘 돌아가지 않는 두뇌를 짧은 시간에 혹사시켜 다소 엉뚱한 답변거리를 찾아냈다.
논리는 상당히 부족하지만, 모 아니면 도라는 생각으로 겨울은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저는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직원들부터 정리해고를 하겠습니다.”
겨울의 대답을 들은 손석인 교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실 손석인 교수의 질문은 대학 강의 때 학생들에게 한 질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겨울의 대답은 자신이 아끼는 제자 한 명의 대답과 똑같은 대답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손석인 교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가 아끼는 제자는 바로 겨울의 동생, 한가을이었다.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지만, 손석인 교수는 면접에 사적인 감정이 들어가면 안 된다고 판단하고 얼굴을 굳혔다.
“다른 지원자들과 상당히 다른데,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책임 소재를 묻기 위해서 직급이 높은 사람부터 정리하는 것은 일견 이해는 됩니다만, 저는 섣부른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정리해고를 해야 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된 것은 맞지만, 전제 조건에 회사가 파산한다는 내용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정리해고가 진행된 이후에도 회사를 이끌어 나가야 할 텐데, 수십 년간 회사를 이끌어 온 베테랑들을 다 자른다면 누가 업무를 보겠습니까. 해당 업무를 보는 사람에 따라 계약이 되고 안 되고도 결정이 된다고 들었습니다. 그만큼 인재가 중요한 게 이쪽 업계라 생각하기에 그렇게 답변을 드렸습니다.”
겨울은 슬쩍 손석인 교수의 표정을 살폈다.
사적인 감정을 섞지 않으려 얼굴을 굳힌 손석인 교수였지만, 그 사실을 알 리가 없는 겨울은 아직 자신의 답변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직원은 기회가 많습니다.”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한마디로 젊다는 겁니다. 책임질 가족도 없고요. 그에 비해 임원과 부장급 인원들은 어깨가 무겁습니다. 대체로 그분들 나이는 대략 사오십 대일 겁니다. 한 가정의 가장일 게 분명하고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을 겁니다. 그렇기에 더욱 회사에 남겨야 합니다. 그들 역시 불안하기에 회사를 정상화시키려 노력할 게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면접장의 분위가 숙연해졌다.
앞선 질문에 겨울이 진심으로 솔직하게 답변해서인지, 이번 질문 역시 진심이 담겨 있다고 여긴 면접 위원들이었다.
면접 위원들 역시 언급된 사오십 대의 부장급과 임원급 인원들과 동년배였다.
약간의 침묵의 시간이 지나고, 손석인 교수가 아닌 송훈석 회장이 입을 열었다.
“그거 좋군요. 3번 지원자의 충고를 명심해서 대한 그룹을 경영하도록 할게요.”
순간, 겨울은 가슴이 심하게 뛰기 시작했다.
허접하기 짝이 없는 자신의 답변을 송훈석 회장이 인정해 준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반면, 박철헌 사장은 이처럼 겨울이 인정받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최준하를 주인공으로 만들겠다고 최성진 부회장에게 떵떵거려 놓았는데, 저딴 쓰레기가 주목받는 게 아니꼬웠다.
“저도 세 명의 지원자에게 질문하겠습니다. 여러분이 대한 그룹에 입사해서 일하던 도중에 전혀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낙인찍혔을 경우,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와 이유까지 답변해 보십시오. 이번에도 1번 지원자부터 발언해 주세요.”
“저라면 따로 회사를 차리겠습니다. 저는 제 능력에 확신이 있고, 또 자신도 있습니다. 애초에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낙인찍히지도 않겠지만, 저를 그렇게 판단하는 회사에 남을 생각이 없습니다. 이미 구상하고 있는 아이템도 몇 가지 있고, 계획도 어느 정도 있습니다.”
최준하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그 당당한 태도에 박철헌 사장은 속으로 엄지를 척 올려 주고는 흐뭇한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들었습니다. 2번 지원자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를 쓸모없다고 여길 만큼 회사가 진보적인 곳이라면 남아야겠죠. 물론 그 후에는 악착같이 배워서 저에 대한 인식을 바꾸겠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1번 지원자와 같은 생각입니다. 사람의 진가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곳에서 함께 일하고 싶지 않습니다.”
송지유 역시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대답했다.
그 모습을 보고 송훈석 회장이 흐뭇하게 미소 지었지만, 그녀는 애써 외면했다.
“그럼 3번 지원자?”
“저는… 계속 남을 겁니다. 남아서 조직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박철헌 사장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계속 감정적으로 대답하기에 이런 질문에도 비슷하게 답변할 것을 예측했고, 그 예상이 정확히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노력했는데도 여전히 쓸모없는 사람이면 어떻게 할 겁니까?”
“팀장님을 찾아가서 적성에 맞는 다른 보직으로 옮겨 달라고 요청하겠습니다.”
“만약 다른 팀에서조차 3번 지원자를 받아 주지 않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그러면 또 다른 팀으로 보내 달라고 요청하겠습니다. 제가 먼저 사표를 내는 일은 결코 없을 겁니다.”
박철헌 사장은 웃음을 참기가 어려웠다.
“3번 지원자, 자존심도 없어요?”
“자존심을 세워 가며 직장 생활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적성에 맞는 다른 회사들도 있을 텐데, 굳이 같은 곳에서 직장 생활을 계속하려는 이유가 뭡니까?”
“저는 모든 질문에 제가 대한 그룹에 입사한 것을 전제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번 질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대한 그룹에 겨우 입사했을 것이 분명한데, 어떻게 사표를 내던질 생각을 하겠습니까? 모두가 자랑스러워하고 부러워하는 곳에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겨울의 말투와 표정에서 그가 진심이라는 것을 박철헌 사장은 알았지만, 면접에서 이런 감정적인 답변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답변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얼추 면접장의 분위기가 마무리되는 방향으로 흐르자, 송훈석 회장은 비장의 질문을 꺼내 들었다.
“지원자 세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질문하겠습니다. 잘 생각하고 신중하게 답변하도록 하세요.”
송지유를 제외한 두 사람은 침을 꼴깍 삼켰다.
다른 질문은 몰라도 이번 질문만큼은 제대로 대답해야 한다 여기며 집중했다.
송지유만이 왠지 송훈석 회장이 쓸데없는 말을 꺼낼 것 같다고 여겼다.
“남자와 여자, 이렇게 두 사람이 사막에 낙오됐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정말 운 없게도 하루치의 비상식량만 보유한 상황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본인이라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와 이유를 답변해 보세요. 마찬가지로 대답은 1번 지원자부터 듣겠습니다.”
최준하는 송훈석 회장이 어떤 의도로 질문했는지 단숨에 알아챘다.
이 질문은 연애 혹은 결혼에 대한 이야기였다.
송훈석 회장이 꺼냈으니 송지유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라 여겼다.
늘 자신을 무시해서 짜증나는 송지유이지만, 배경도 나쁘지 않고 얼굴도 반반하기에 자신의 여자로 삼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송훈석 회장이 좋아할 만한 답변을 늘어놓았다.
“저는 기사도의 정신을 발위해서 비상식량을 여자에게 양보하도록 하겠습니다.”
“답변 감사합니다. 2번 지원자, 답변해 보세요.”
송지유 역시 송훈석 회장의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송훈석 회장이 이전부터 왜 이렇게 자신의 연애에 관심이 많은지 이해하지 못하는 송지유였다.
다소 싸늘한 말투로 송지유가 답변했다.
“저는 저하고 남자가 공평하게 절반씩 나눠 먹도록 하겠습니다.”
송훈석 회장은 자존심이 센 지유에게서 이와 같은 답변이 나올 것이라 예상했기에 바로 시선을 돌려 겨울에게 물었다.
“3번 지원자는 어떻게 행동할 예정입니까?”
“저는 비상식량을 제가 다 먹도록 하겠습니다.”
순간, 면접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겨울에게 집중되었다.
겨울이 그와 같은 답변을 할 것이라고 그 누구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정말 예상치 못한 답변인 것 같네요. 이유를 답변해 줄 수 있나요?”
“두 사람 모두가 살기 위해서는 제가 비상식량을 먹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두 사람이 살 수 있다는 거죠?”
“간단합니다. 체력에는 자신이 있으니 제가 여자를 등에 업고 죽어라고 뛰면 됩니다.”
말도 안 되는 대답에 잠깐 멍때리던 송훈석 회장은 이내 크게 웃었다.
“하하하! 정말 기발한 아이디어네요. 답변 감사합니다. 자, 면접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송훈석 회장이 말을 마침과 동시에 서동호 실장이 공지 사항을 전달했다.
“지원자분들은 대기실로 이동해서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면접 진행 요원의 안내를 받으며 세 사람이 면접장을 빠져나갔다.
그 모습을 확인한 송훈석 회장이 입을 열었다.
“지원자들의 스펙을 무시하고 면접으로만 평가할 때, 누가 제일 뛰어나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송지유 씨가 제일 탁월하다고 생각합니다.”
“음, 저는 아무래도 최준하 씨에게 눈길이 가더군요.”
최강훈 교수와 손석인 교수가 대답했다.
겨울에게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던 최강훈 교수는 다소 실망한 상태였다.
사실 첫 만남에 너무 좋은 인상을 받아서인지 제법 기대를 하고 있던 최강훈 교수였다.
한데 겨울은 논리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너무도 감정적이고 의욕만 가득했다.
반대로 손석인 교수는 겨울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겨울과 같은 젊은이를 찾기는 어려웠다.
다소 감정적이고 의욕이 가득하면 어떤가.
그 솔직함이 불쾌하지 않고, 사람을 울리는 진정성이 있었다.
‘같이 일한다면 적어도 믿고 일을 맡길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최준하를 꼽은 것은 형평성 때문이었다.
신입 사원으로 뽑는다면 스펙을 제외하더라도 기본적인 상식이나 사고 방향이 최준하가 더 낫다고 생각했다.
“박철헌 사장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
“최준하 씨가 가장 낫다고 생각합니다. 태도와 답변 내용, 스펙까지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태도라…….”
송훈석 회장은 자신이 전제 조건을 스펙을 제외하고 보자 했음에도 굳이 스펙을 언급하는 박철헌 사장의 대답에 인상을 찌푸렸다.
게다가 그가 면접 때 보여 준 비웃음까지 떠올라 차마 송훈석 회장은 최준하에게 큰 점수를 주기 어려웠다.
“서 실장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
“저는 송지유 씨가 가장 빛나는 것 같았습니다. 직설적이고 솔직한 느낌이, 마치 젊은 시절의 회장님을 보는 것만 같더군요.”
“허허, 거, 너무 아부하는 거 아닙니까?”
말은 그렇게 말했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은 송훈석 회장이었다.
푸짐한 미소를 얼굴에 띤 채 송훈석 회장은 정기용 부사장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정기용 부사장은 어떻습니까?”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어차피 최준하 씨나 송지유 씨는 합격이 확실한 거 같습니다. 다만, 다들 한겨울 씨의 합격에 대해서 부정적인 것 같은데… 저는 조금 생각이 다릅니다.”
너무도 직설적인 말에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기용 부사장을 쳐다보았다.
“한겨울 씨가 6년 전에 한 선행을 언론에 노출시켜 회사 이미지 상향에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라면 채용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정기용 부사장의 지극히 객관적이고 업무적인 발언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어쩌면 이 안에서 겨울에 대해 가장 안 좋은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은 그가 아닐까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생각했다.
“…좋은 아이디어 고마워요.”
송훈석 회장만이 나지막이 입을 열어 대답했다.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