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41 최종장 - 유토피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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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D등에서 나온 불빛이 하부장의 머리에 부딪혀 이리저리 흩어졌다. 일부러 광택을 낸 구두처럼, 그의 정수리는 반짝반짝 빛났다. 하부장은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면서 말했다.
"어떠셨습니까?"
"괜찮았던 것 같아요. 제가 선택했던 루트가... 제 1 루트였었죠?"
"예. 맞습니다. 시간은 약 74시간 정도... 사모님께서 단단히 화가 나셨습니다."
"정 걱정되면 강제종료 시키면 될 걸..."
윤석은 피식 웃었다. 주랑이 굉장히 화를 냈다. 그렇게 걱정 됐으면 강제종료를 시켰으면 됐는데 그러지도 않았다. 하부장이 연신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그러면 왠지 지는 기분이라 싫다고 하시더군요... 그나저나 난이도는 어떠셨습니까? 설정상으로는 중상 정도였는데..."
"게임 자체는 잘 만들어진 것 같아요. 접속 ON 상태로 74시간을 소모했으니까... 난이도는 굉장히 높은 축에 속하겠네요. 저처럼 주구장창 캡슐속에 박혀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을 테니까요. 영양 공급도 힘들테고... 그 왜... 제가 제공받은 캡슐이 얼마짜리 였죠?"
"아직 정확한 가격을 매기지는 않았으나 대략 5천만원 선 될겁니다. 어지간한 재력가 아니면 힘들죠. 뭐... 일반 시중에 풀리는 캡슐은 영양제공도 안되고 그렇게 편안하지도 않을 겁니다. 필수라고 할 수 있는 강제종료기능을 제외하면 다른 편의기능도 들어가있지 않을 거고요. "
강제종료기능은 어떤 캡슐이든 필수다. 특히나 이번에 발매되는 유토피아의 경우는 유저 스스로가 게임을 하고 있다는 자각 자체가 없기 때문에 강제종료는 필수적인 요소다. 누가 억지로 밖에서 꺼주지 않으면 밖으로 나올 수 없으니까.
신문에 입성하게 되면 게임이 클리어 되고 그러면 자동으로 연결이 해지된다. 다만 클리어를 하지 못한 채 72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연결이 끊어지도록 되어 있었다.
윤석이 유토피아에 대한 총평을 시작했다.
"기획과 의도 자체는 굉장히 신선해요. 게임자가 게임인 줄 모르고 플레이해서 클리어한다라... 정말로 다른 인생을 살아본 것 같은 기분이 들던데요. 다만 플레이해본 결과 맨 처음에 음... 방향정도는 알려주는 게 좋을 것 같기도 하고요."
"방향이요?"
"그러니까 무의식 속에 어떻게 해야한다는 것 정도는 넣어두면 루트를 좀 더 수월하게 탈 수 있을 것 같네요. 제가 건오퍼 루트 타는데 게임시간으로 장장 28년이 걸렸어요."
"조정해놓긴 했었습니다. 건오퍼 루트를 탈 수 있도록, 곳곳에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었고 루트를 잘 탈 수 있도록 도움요소들을 넣었었는데... 김사장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아무래도 보완이 조금 필요할 것 같군요."
"하기야 제가 그 피같은 돈을 풀어 성자의 칭호를 얻는다거나 일부러 칭호와 대중들을 위해 동분서주했다거나... 제 성격상 쉽지 않은 일인데 말이죠. 그런 행동들이 일부러 유도된 행동들 입니까?"
"어느정도 영향을 끼치게 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장님께서 선하시다는 증거도 되겠지요."
윤석은 피식 웃었다. 선하다라. 32년 평생동안 선하다란 말을 도대체 몇 번이나 들어봤던가. 단언컨대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거다.
"재미는 있었습니다. 여태까지 나온 게임들과는 달리 진짜 다른 세상을 살게 해주니까요. 뭐... 주변 인물들의 성격이 현실과는 조금씩 바뀌기는 했는데 루트마다 다 다르겠죠?"
하부장은 땀을 닦아내면서 껄껄 웃었다.
"저도 사모님 눈치가 보여서... 하렘루트는 설정을 못해드렸습니다. 다른 여자는 죽어도 안 된다고 하셔서 히로인 캐릭터도 사모님을 형상화 했구요."
"잘하셨어요. 괜히 하렘루트 탔다가는 저 쥐도새도 모르게 죽었을 지도 몰라요."
"아. 그리고 강민혁 사장님과 절친이라고 하시던데..."
"예. 맞습니다."
"그 분은 난이도를 하향조장하여 3루트를 타셨는데... 완전히 하렘루트입니다. 클리어 시간도 15시간도 안 됐고요. 판캐로 시작하는 루트인데 거느렸던 여자가 자그마치 7000명이 넘었습니다."
윤석은 이를 악물었다. 주먹을 꽉 쥐었다. 너 이 개새...하고 욕이 나올 뻔 한 것을 겨우 참았다. 민혁은 수희와 결혼할 사이다. 아무리 절친이고 어릴적부터 볼 것 못 볼 것 다 봐온 사이이자, 현재는 둘도 없는 사업파트너지만 그래도 이건 용서가 안 된다.
일단 윤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수희에게 말해봤자 수희는 우리 민혁 오빠를 이해한다며, 민혁 편을 들어줄 거다. 수희한테는 알리지 않기로 했다.
'죽빵 7000대 각오해라 이 개새끼. 내새끼랑 결혼할 새끼가 뭐? 7000명? 이 미친새끼!'
하부장이 일어섰다.
"사장님. 일전에 계약한대로 사장님의 플레이 데이터와 결과 데이터는 수집하겠습니다. 캡슐은 무료 제공입니다."
그리고 윤석에게 가까이 와서 귓속말했다. 아주 작게 속삭였다.
"난이도 최하. 3루트 입니다. 이 바닥에서 게임치라고 소문난 강사장님이 15시간 걸렸으니 김사장님은 그 절반도 안 걸릴 겁니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7000명입니다 7000명."
윤석이 씨익 웃었다. 일단 민혁을 반 쯤 죽이긴 해야겠는데 그건 그거고 이건 다른 문제다. 윤석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그리고 민혁이 녀석이 플레이했던 데이터 제 캡슐에 저장 가능하죠?"
하부장의 목소리가 더욱 은밀해졌다.
"그러면 아마 플레이 시간이 엄청나게 줄어들 겁니다."
* * *
하부장은 플레이 데이터를 살펴봤다.
유토피아.
완전히 다른 세상을 살게해주는 가상현실 싱글 게임이다. 아직 정식으로 서비스를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개발은 완료됐고 최종 테스트 단계로 몇몇 테스터를 선발하여 플레이 시켜 보았다. 대부분 만족해 했고, 마케팅팀의 분석도 굉장히 희망적이었다.
10대에 프로게이머에 출발하여 지금은 각종 게임산업에 두루 발을 걸치고 있는, 대한민국 100대 재벌안에 드는 유명인. 젊은 사장 김윤석 사장마저도 만족했으니 이 게임은 대박이라 할 수 있었다. 이 바닥에선 김윤석이 만족하면 그 게임은 흥한다라는 속설마저 있을 정도였으니까.
'역시 김윤석 사장이야.'
전체적인 플레이 평점이 100점 만점에 93점. 테스터들 중 최고 점수였다.
'칭호 시스템을 이용해서 3대륙을 통합하고... 대부분 주민들을 감동시켰다라... 마스터급 칭호가... 뭐야 뭐가 이렇게 많아? 천신? 정의의 군주? 이야... 엄청나네. 도대체 뭘 어떻게 플레이하면 이렇게 많은 칭호가 생겨?'
전체적인 플레이 수준이 매우 높았다.
다만,
'루트가 루트이다보니... 히로인들이 좀 버려졌네.'
평가항목들 중, 히로인에 관한 점수가 조금 낮았다. 메인 히로인인 주랑의 경우는 점수가 100점 만점에 99점으로 굉장히 높았으나 설하의 경우는 겨우 20점. 이는 무려 7000명을 섭렵한 민혁의 평균 평점보다도 훨씬 낮은 점수였다.
'스나는 70점 정도... 이건 뭐 그냥 평타는 쳤네.'
히로인 부문에서 점수를 많이 깎아 먹었다.
'김나영은 20점... 박수정은 아예 남여관계로 발전 자체를 안했고...그래도 설아는 50점. 이정도면 주랑 외에 다른 히로인에는 정말 눈길도 안 줬군.'
루트 자체가 그렇게 설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 루트라는 건 사용자의 선택에 따라 얼마든지 갈릴 수 있었다.
' 히로인을 적절히 끌어들이고 이용했으면 플레이가 훨씬 쉬워졌을 텐데. 그래서 천재게이머 였던 김윤석 사장이 이렇게 오래 걸렸던거군.'
히로인 관리 부문을 제외하고는 모든 곳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특히 칭호시스템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토록 적절히 이용한 유저는 김윤석 사장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현실 쪽으론 한국에만 너무 치중했어. 점수가 조금 깎이긴 했네.'
그래도 양호한 수준이다. 다만 한 가지 항목, 한국을 일부다처제 -여성 유저의 경우는 일처다부제-로 변화시키게 되면 보너스 점수가 주어지게 되는데 그것까지는 간파하지 못한 모양이다.
'뭐... 게임속에서도 사모님한테 잡혀 사는 건 어쩔 수 없었나 보군.'
민혁의 경우는 현실의 한국까지도 하렘왕국으로 만들어버렸다. 일부다처제. 즉, 합법적인 하렘왕국을 건설했다. 덕분에 전체평점은 윤석보다 낮지만 여자와 관련한 부분에 있어서는 거의 만점에 가까운 스코어를 기록했다.
'천상 여자 김수희씨가 게임 속에선 철부지 어리광쟁이로 전락했고... 저 사모님이 천상 여자로 변했네. 저게 김사장이 원하는 아내와 여동생의 모습인가?'
메인 히로인의 성격은 유저의 무의식이 어느정도 영향을 끼친다. 이번에 발매되는 싱글게임 유토피아는 그렇게 설정되어 있다.
'이야... 무력면에서는 최고야. 3대륙을 통합했다니. 게다가 신선문이 열렸고... 자기 스스로 신계로 들어가는 걸 선택했네.'
보통의 경우라면 현자에 이르렀든, 자연경에 이르렀든, 신문을 여는 과학기술을 창조했든간에 어쨌든 세상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경우라면 신문에 의해 강제로 소환당한다. 억지로 끌려간다는 뜻이다.
그런데 윤석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아예 선택권을 줬다.
'가만... 그런데... 이런건 프로그램 상 없었던 거 같은데...?
하부장이 벌떡 일어섰다. 개발팀에 급하게 연락을 넣었다. 답변은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왔다.
"그런 내용은 프로그래밍하지 않았는데요. 신문은 현실로 돌아오는 강제 설정입니다. 최상위 명령어에요. 거기에 남을 수 있도록 할 수는 없죠. 클리어는 해야하잖아요."
"그런데 분명 김사장 데이터를 살펴보면, 3대륙에 남을 건지 말건지를 선택하라는 최종 선택지가 주어졌잖아!"
"그럴리가요? 그런 건 애초에 만들지도 않았는데요. 저흰 그런 위험한 프로그래밍은 하지 않았는데요."
윤석은 분명 최종 선택을 했다. 그 말은 즉, 어쨌거나 최종적으로 클리어를 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신계에 입성하게 되는 클리어가 아니었다. 신계에 입성을 해야만 클리어로 인식이 되고 연결이 끊어진다.
"당장 수정해!"
개발팀에서도 난리가 났다. 개발팀에서도 이런 걸 프로그래밍한 적은 없었다. 이건 정말 위험한 거다. 김윤석이야 영양도 공급받을 수 있고 배변활동까지 처리가능한 최상급 캡슐을 사용했고, 그를 돌봐줄 사람이 널리고 널렸지만 만약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면?
하부장은 식은땀을 흘렸다.
'강제종료를 시켜줄 수 있는 사람이 주위에 없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이 이런식으로 클리어를 했다면 큰일 날 뻔 했다. 신계에 입성하지 않고 그냥 3대륙에 머물러 살다가 현실의 몸은 아사당하고 마는 거다.
기사에, '충격! 유토피아를 플레이하다가 시체로 발견!' 이라는 제목을 실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개발팀의 팀장 이광필이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그 뿐만 아니라 개발팀 전원이 잔뜩 긴장했다. 싱글게임 유토피아를 개발하는데 지대한 공헌을한, 차세대 슈퍼컴퓨터 스파크가 위잉- 기계음을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이광필은 이마를 짚었다. 그는 개발팀장이다. 그리고 그는 사람을 잡아먹는 게임을 만들지는 않았다.
'제기랄... 우린 이런 걸 프로그래밍한 적이 없어.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거지?'
어쨌든 이걸 해결은 해야만 했다. 회의를 해본 결과 사용자가 처음에 플레이 시간을 설정해놓고 캡슐에 들어간 뒤, 그 시간이 지나면 연결이 끊어지도록 하는 타이머 기능을 추가하기로 했다.
하드웨어만 손보면 되는 부분이다. 프로그램을 손보려면 시간도 많이 걸릴 뿐더러 또 어떤 오류가 발생할 지 모른다. 이건 아예 예상조차 못했었다. 누군가 마치 일부러 게임 속에 가두려고 한 것 같았다. 그럴 바에야 아예 하드웨어를 손봐서 일정 시간이 지나면 열리도록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책이었다.
하부장은 개발팀의 회의 결과를 듣고 나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윤석과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단 한명이라도 사고가 나면 게임회사 망하는 건 순식간이다. 마음속으로나마, 김윤석에게 감사를 표했다.
"팀장님. 스파크가 조금 이상합니다. 과부하가 걸린 듯 한데요."
"프로그램 돌리는 것도 없는데 왜?"
"모르겠습니다. 원인 파악 중입니다."
하드웨어를 손보기로 결정하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위잉- 요란한 기계음이 들렸다. 슈퍼컴퓨터 스파크가 오작동 중이다. 광필은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게임은 개발이 완료됐다. 지금 당장은 스파크가 필요한 시점이 아니다.
"스파크. 폭주합니다. 제어가 안 됩니다. 과열되고 있습니다."
이팀장이 인상을 찡그렸다. 귀찮다는 듯 말했다.
"아 그럼 일단 전원 차단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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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2부는
7000명 하렘 + 대한민국 하렘왕국 건설기로.... 는 농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