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40 최종장 - 유토피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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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음은 알림은인데 뭔가 느낌이 미묘하게 달랐다. 30초란 시간은 굉장히 짧았다.
30초. 29초. 28초. 27초. 26초. 째깍. 째깍. 시계 초침소리가 들려오는 기분이 들었다. 시계초침은 발에 매달고 있던 무거운 납덩이를 던져버리고 질주하는 듯 했다.
‘힘을 간직한 채 신계냐… 힘을 봉인당한 채 하계냐…’
다시 한 번 알림음이 들려왔다.
[유토피아 최종선택까지 20초 남았습니다.]
설명이 조금 추가됐다. 아까는 최종선택까지 30초였고 지금은 유토피아 최종선택이란다. 어차피 이 세계의 이름은 유토피아고 그런 의미에서 유토피아란 글자가 붙은 건 별 의미가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유토피아 최종선택이라고…?
19초. 18초. 17초. 16초.
‘최종 선택이라고?’
15초. 14초. 13초. 12초.
최종은 最終. 즉 마지막을 의미하는 거다. 아까는 별 생각없이 흘려 들었는데 뭔가 조금 이상하다.
‘최종…이라고?’
11초. 10초.
[유토피아 최종 선택까지 10초 남았습니다.]
유토피아는 기본적으로 가상현실 게임이고, 과거 컴퓨터 게임의 RPG형식이다. 서비스가 종료될 때까지 계속해서 캐릭터를 키울 수 있고 따라서 최종선택이란 단어는 RPG에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유토피아가 서비스를 중지할 리는 없고.’
9초. 8초. 7초.
‘이거 뭔가 이상하다.’
정보가 너무 없다. 유토피아에는 알려지지 않은 히든클래스가 엄청나게 많다. 윤석의 건오퍼도 그랬다. 어떠한 조건이 충족되어야 건오퍼가 생기는지는 모른다. 다만 술에 취했었고 인트를 왕창 올렸던 것 까지만 기억이 난다. 그러나 과연 현대 클래스를 플레이하는 사람들 중 그런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을까? 그렇게 생각해보면 확실히 없었다고 대답하기는 힘들다. 일단 그것이 계기가 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해서 ‘술에 취해 인트를 높이는 것’이 건오퍼로 전직하기 위한 완벽한 조건이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그래도 건오퍼가 ‘히든 클래스’라는 것은 알 수 있었는데 이번엔 뭔지 도무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적어도 ‘히든클래스’라는 것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안다. 그런데 이 신계라는 것은 아무도 모른다. 비밀문서를 접하고 각종 기록을 접할 수 있는 윤석도 처음 듣는 단어다.
6초. 5초.
‘선택 잘 해야 하는데… 현상 유지냐, 아니면 도전이냐…’
현상 유지만 해도 사실 나쁠 건 없다. 왕의 지위, 황제의 자리, 얼스의 정복자의 명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실질적인 무력은 약해져도 그에겐 금력이 있고 휘하 부하들이 있다. 그런데 ‘최종’이란 단어 하나가 유난히 거슬렸다.
슈퍼컴퓨터 스파크와도 연결이 되지 않았다.
4초. 3초.
윤석에게 있어서 이건 단순히 신계로 넘어가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생활이 걸린 문제다. 그런데 또 다시 생각해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윤석이 군에 납품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그러니까 중장 클래스를 박탈당했을 때엔 군납품을 할 수 없었고 얼스에 대해 그 어떤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었지만 다수정예회는 건재했고 코드의 공수에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즉, 윤석이 직접적인 힘을 갖지는 않더라도 유토매니아의 운영은 가능하다는 뜻이다.
2초. 1초.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아까 남자가 ‘유희’라 하여 중원에 왔었다. 그 말은 즉, 자신도 분신과 비슷한 형태를 빌려 내려올 수 있다는 뜻 아닐까.
불과 30초동안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신계에 입성했을 때의 장점과 단점, 하계에 머무를 때의 장점과 단점. 사소한 하나까지 떠올리려고 애쓰며 평소에 별로 쓰지도 않던 두뇌를 맹렬히 회전시켰다.
[신계로 입성하시겠습니까? Y/N]
알림음과 동시에 남자가 신경질을 버럭 냈다.
“건방진 애송이! 언제까지 나를 기다리게 할 참이냐!”
결정했다. 자신이 없어도 유토매니아는 원활히 굴러간다. 이미 3대륙을 서로 연결할 수 있는 상단의 협력시스템을 구축해놨다. 법위에 군림하는 자가 뒤에 있는 초거대 유니온 다수정예회와 황제의 은미상단, 그리고 왕의 설자매 유니온이 있으며 무력으로 천외천 대장들과 마탑주들, 그리고 최상급 NPC들이 포진해 있다. 그리고 신계에서 하계로 내려올 수 있는 방법은 나중에 찾으면 된다.
그리고 이미 유토피아의 3대륙은 완전히 발 아래 뒀다. 상대가 없다는 뜻이다. 아무리 재미있는 게임이어도 최종보스까지 클리어하고나면 흥미가 반으로 뚝 떨어지기 마련이다.
“신계에 가겠습니다.”
윤석이 말함과 동시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축하한다.”
그리고 화면이 바뀌었다.
* * *
윤석은 일어섰다. 너무 오랫동안 캡슐에 처박혀 있었더니 허리도 아프고 온몸이 뻐근한 것 같다. 수희가 말했다.
“오빠.”
“뭐야? 여기 있었네?”
“네. 기다리고 있었어요.”
윤석이 피식 웃었다.
“미안해. 너무 오래 있었나?”
수희가 미소 지었다.
“저는 괜찮아요. 그런데 주랑언니가 화가 많이 나신 것 같아요.”
윤석이 말을 더듬었다. 주위를 황급히 둘러봤다.
“그, 그랬어? 화 많이 났어?”
윤석은 피식 웃고선 수희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혹시라도 오빠가 제 결혼식에 안 오시면 어쩌나… 걱정도 많이 했구요.”
윤석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미안 미안. 내가 내 동생 너무 걱정시켰나 보네.”
방문이 열렸다. 방문을 통해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눈부신 햇살 사이로 한 사람이 보였다.
“여보? 나오셨네요?”
윤석이 찔끔 놀랐다.
“여, 여보?”
그 사람이 가까이 다가왔다. 눈에 익은 여자였고, 햇살을 등에 업은 그녀는 햇살보다도 더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녀의 말도 아름답지는 못했다.
“아예 거기 박혀 있으시지 그랬어요?”
“주, 주랑아. 여, 여보!”
윤석은 뒷걸음질 쳤다. 주랑이 웃으면서 다가오고는 있는데 그 웃음이 굉장히 살벌했다. 수희는 다소곳하게 서서 윤석을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윤석은 수희를, 구원을 요청하는 듯한 눈길로 쳐다봤다. 수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번에는 도와드릴 수가 없어요. 제 생각에도 오빠가 잘못하신 것 같아요.”
윤석의 등이 벽에 닿았다. 주랑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그녀는 분명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윤석이 식은땀을 흘렸다.
“여, 여보. 내가 잘못했어.”
“뭘요?”
“그, 그러니까…”
“뭘 잘못했는데요?”
주랑이 가까이 다가와 윤석의 양 어깨에 손을 얹었다. 윤석과 눈을 마주쳤다.
“내, 내가 다 잘못했어.”
수희는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갔다. 방문 밖에 서서 저도 모르게 조금 웃고 말았다.
“음? 민혁오빠? 언제 왔어요?”
“소식 듣고 왔지.”
“음… 지금은 아마 힘들 것 같아요. 주랑언니 화 엄청 나셨거든.요”
“그래?”
민혁은 머리를 긁적거리고선 쇼파로 가서 앉았다. 수희가 사과를 깎아왔다.
“사과 좀 드세요. 오빠 드리려고 예쁘게 깎았어요.”
민혁은 수희를 보며 웃었다. 애정이 담긴 그의 눈빛에 수희는 얼굴을 붉히고서 눈을 살짝 아래로 내리 깔았다.
“수희야. 너 언제까지 오빠한테 존댓말 할거야? 우리 이제 곧 결혼 할 건데…”
“전 결혼해도 오빠한테 존대 하고 싶어요. 제가 말하는 방식은 곧 상대를 어떻게 대하느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전 오빠를 영원히 존중하고 싶고 존경하고 싶어요.”
수희는 사과를 한 입 깨어 물고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목덜미와 귀가 완전히 붉어졌다.
“그, 그래도 오빠가 정 원하시면 노력 해볼게요.”
민혁은 빙그레 웃었다. 수희를 바라보는 그의 눈엔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아니야. 친오빠한테도 존대하는 걸 뻔히 아는데 뭐. 그나저나 저 놈은 언제 나오려나 모르겠네.”
수희도 민혁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에도 민혁을 향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주랑언니가 화가 많이 나셔서… 저도 시간은 잘 모르겠어요.”
============================ 작품 후기 ============================
수희
"응? 이게 나라고? 헐? 엥? 잉? 옹? 앙? 말도 안 돼!!!"
작가
"이게 바로 작가버프다 음하핫!"
수희
"그, 그래도 이건 말이 안되잖아. 작가 너 개연성이란 단어 몰라? 헐 뭐 이런 미친 경우가..."
작가
"믿어봐 쫌. 너에겐 작가버프가 있다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