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39 최종장 - 유토피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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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야 애송이."
윤석이 움찔했다. 이런 상황을 어느정도 예측했고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몸이 머리보다 먼저 반응했다. 마나가 요동치고 내공이 꿈틀거렸다.
'역시... 기세가 전혀 느껴지지 않아.'
남자는 예전 황궁에서 칙령을 가지고 왔다던, 사황성주에게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던 조운과 많이 닮아 있었다.
"어른을 봤으면 인사 먼저 해야지."
남자가 어느새 가까이 다가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윤석의 복부에 주먹을 찔러넣었다. 힘을 많이 준 것은 아니어서 데미지를 입은 것은 아니었으나 그 자체만으로도 윤석은 느낄 수 있었다.
이 남자는 자신보다 훨씬 윗줄의 고수다.
'어차피 강함이란 건 상대적인 거다.'
'강함'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거다. 윤석은 분명 강하다. 자연경에 접어들었고 세 마탑주의 힘을 이었으며 거기에 슈퍼컴퓨터 스파크까지 가지고 있다. 천외천의 대장들과 마도사들이 한꺼번에 덤벼도 이기지 못할 정도다. 그러나 그 것은 3 대륙의 유저들과 npc들과 비교했을 때에 그렇게 강하다는 거다. 반대로 이 npc에 비하면 약했다. 그것도 한참이나.
남자는 흐음... 하고 윤석을 위 아래로 살펴봤다.
"내 분신을 알아차려서 죽인 건 아닌 것 같고 말이야...그저 단순한 우연이었나?"
"분신...?"
남자는 어깨를 으쓱했다.
"일종의 유희 같은 거지."
"유희라..."
"황궁에서 보냈던 그 놈 있잖아. 나랑 묘하게 닮았을 텐데."
"그건 그렇...큭!"
윤석이 배를 부여잡고 고꾸라졌다. 땅바닥에 한쪽 무릎을 대고 주저앉았다. 이번엔 제대로 들어왔다. 복부를 얻어맞았고 h/p가 20프로 가량이나 깎여나갔다.
"애송이. 자꾸 말이 짧다? 예의라는 걸 좀 더 알려줘?"
세 대륙을 통합한 위대한 왕이고 자시고 일단은 살고 보기로 했다.
"죄, 죄송합니다."
법 위에 군림하는 위대한 정복자 안졸리냐졸려는 뱀 앞의 개구리처럼 온순해졌다.
"흐음..."
남자는 윤석을 위 아래로 계속해서 훑어봤다.
"흐음..."
그제서야 윤석은 깨달았다. 지금 이 곳엔 바람도 불지 않고 있다. 윤석은 자연경에 이르렀다. 자연의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는 경지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마법으로 구별된 또다른 차원이란 느낌도 아니다. 말 그대로, 자신과 이 남자 둘을 제외한 모든 것이 멈춰버린 듯 했다. 시간마저도 말이다.
"호, 혹시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습니까?"
"그래그래. 이제야 말투가 좀 공손해졌어. 말귀를 빨리 알아먹네."
남자는 만족했다는 듯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30일이란 짧은 시간동안 엄청난 일들을 해치웠더라?"
"예...뭐..."
"역사상 이런식으로 신계에 입성한 애송이는 단 한번도 없었는데 말이야..."
"신계...말입니까?"
신계. 처음 들어보는 단어다. 유토피아 운영진조차도 모르고 있을 거다. 3대륙을 통합했고 각종 비밀문서와 기록들을 보며 여러가지 비밀들을 알아냈지만 신계라는 말은 처음 듣는다.
'신화에서나 나올법한 그 신계를 말하는 건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남자는 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았다. 완전히 무방비상태로 뒷통수를 내보였다. 그러나 윤석은 그를 공격할 수 없었다. 분명 무방비상태다. 온통 틈 투성이다. 그러나 그 틈 조차도 틈처럼 보이지가 않는다.
"그래. 너는 자연경에 접어들었고 이로써 신계에 접어들 최소의 자격을 갖추었지. 언제나 그래왔듯 신문이 열렸어."
사람들이 황금문 혹은 신선문이라 부르는 그 것의 진짜 이름은 신문인 듯 했다.
'자연경이 최소의 자격요건이라니. 신계는 도대체 뭐냐.'
"자연경이 뭐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지만서도, 어쨌거나 하계의 3대륙에는 엄청나게 위협적인 힘이거든. 질서를 깨뜨리는 어마어마한 힘이지."
"그건 그렇습니다만..."
확실히 그렇다. 자연경에만 접어들어도 중원에서는 적수를 찾아볼 수 없고 마도사들도 제압할 수 있다. 얼스의 크리시스3단계와 같은 어마어마한 공격에서조차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경지다.
"그러니까 자연경에 접어든 애송이들을 신계로 끌어올리는 거지. 질서와 균형을 파괴하니까."
"그러면...전... 으악!"
윤석은 머리를 감싸쥐었다. 남자가 언제 일어난 건지 조차도 알 수 없었다. 주먹으로 머리를 가볍게 내리쳤는데 h/p가 또 20퍼센트나 감소했다.
"내 말 자르지 말고 잘 들어 인마. 어디 어른이 말씀하시는데 자꾸 끼어들려 들어? 원래 같았으면 넌 나랑 이렇게 대화조차 할 수 없어. 애송이 주제에 어딜 자꾸."
도대체 언제 일어나서 또 언제 때린거지. 윤석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래도 주먹 앞에 장사 없다. 이 쪽을 죽이거나할 생각은 없는 것 같다만 저쪽이 마음만 먹으면 사망하는 건 순식간이다.
"그런데 말이야. 네놈이 30일동안 너무 엄청난 일들을 벌여버렸어. 다른 놈들과는 너무나도 달랐지. 원래 자연경에 입성한 놈들은 대충 다 안단 말이야. 자연경 너머에 뭐가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되는지. 신문이 의미하는 게 뭔지."
남자는 일어서서 윤석의 얼굴을 요모조모 열심히 뜯어봤다. 윤석은 살아있는 송장이 되어 차렷자세를 유지했다.
"원래 같았으면 마지막 30일동안 삶을 정리하고 자기의 흔적을 지우고 마음을 비운단 말이지. 그런데 넌 오히려 기회를 만났다는 듯 세상을 활개치고 다녔어. 너. 도대체 어떻게 자연경에 접어든 거냐?"
남자라해도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윤석은 눈치를 살피며 예, 그건...하고 입을 열려했으나 남자가 또다시 윤석의 머리를 후려쳤다.
"이 놈아! 어른이 말씀하시는데 어딜 또 끼어들려 들어!"
네 놈이 물어봤잖아! 윤석은 소리치고 싶었지만 참았다. 윤석은 법과 절차를 무시하고 740여 그룹의 빌딩을 박살냈다. 그건 윤석이 힘이 있었기 때문에고 얼스의 정부도 감히 윤석에게 항의하지 못했다. 지금은 반대의 상황이 되어버렸다.
"죄송합니다."
"네 놈이 뭘 어떻게 해서 자연경에 접어들었는지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니야. 네 놈이 이 땅에서 이루어 놓은 것들이 말야... 흠..."
남자는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윤석을 흘겨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게 날 너무 귀찮게 하게 된 거지."
더이상 얻어맞기 싫은 윤석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남자의 주먹은 어김없이 윤석의 정수리를 내려쳤다. 아 왜 때립니까! 항의하지도 못했다.
"네 놈이 뭘 안다고 고개를 끄덕여?"
"죄송합니다."
남자는 다시 바닥에 풀썩 주저앉아 설명을 이어갔다.
"원래 현자급에 이른 놈들은 이런 거창한 일을 벌이지 않는데 말야. 명성이나 명예, 물질욕따위에선 벗어난지 오래니까. 그런데 네 놈은 달랐어. 덕분에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너를 원하고 너를 존경하며 너에게 수많은 이름을 부여했지."
전쟁영웅. 당나귀 성자. 위대한 정복자. 정의의 군주. 정의맹 맹주. 천신. 교육의 아버지. 사랑과 헌신의 왕. 위대한 왕.
윤석에게 부여된 수많은 호칭들이다. 그것은 유토피아 일반 npc들이 윤석에게 감동하여 내린 칭호나 다름 없었다.
"그러니까 이해가 안된다는 거야. 자연경에 접어들었다 함은 무인이고, 그정도 수준에 이렀다함은 순수하게 무공만을 사랑해 왔다는 건데. 어떻게 그보다 윗단계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세상 것들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이런 일들을 버린건지..."
남자는 혀를 쯔쯧 찼다.
"어쨌든 네 놈을 데려가야할지, 말아야할지 신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이 말이지. 네 놈이 여기에 있는 것이 균형을 맞추는 건지, 데려가는 게 균형을 맞추는 건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이 말이야."
"그렇...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너에게 선택권을 주기로 했어."
윤석은 잠자코 그의 말을 들었다. 선택권을 준단다.
"네가 선택해라. 이 곳에 남을 건지, 그도 아니면 새로운 세계에 발을 넣을 건지. 단, 이 곳에 남겠다면 네가 가진 모든 힘과 능력을 봉인하겠다. 네놈의 힘은 하계에는 너무 위험한 힘이야. 너의 직책과 지위는 그대로 둔 채, 네 스스로의 힘만을 가져가겠다는 뜻이다."
천외천 대장들도 부릴 수 있고 집행관리부의 수많은 유저들과 유니온들을 휘하에 둘 수는 있으나 여지껏 가져온 모든 힘을 잃는다는 뜻이다. 자연경에 접어든 무인으로서의 힘도, 머리를 대신해주는 슈퍼컴퓨터 스파크의 힘도, 세 마탑주의 비전도.
"신계에 올라서면 물론 네 힘은 유지 되겠지. 그러나 역시 어린아이수준. 여기서 힘을 잃는 거나, 네 놈이 힘을 가진 채 신계에 올라오는 거나 어차피 체감하는 네 놈 능력은 비슷비슷할 거다. 이건 굉장히 이례적인 경우란 걸 알아야해. 난 원래 이렇게 친절한 신이 아니라 이말이지."
남자는 '원래 같았으면 그냥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끌고 올라가서 일단 30일 정도는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팼었다'면서 자꾸만 투덜댔다. 더 무서운건, 그 말이 사실처럼 느껴진다는 거다.
남자가 말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얼른 결정해라. 나는 기다리는 걸 매우 싫어해."
윤석은 갈등했다. 신계에 올라서면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모른다. 혹시 모른다. 또 어떤 대박이 터질지. 그런데 여기에 남으면, 적어도 물질적인 부는 얼마든지 축적이 가능하다. 그것은 곧 유토매니아의 사활에도 관련이 있다. 만약 신계에 올라서서 코드를 필요한 만큼 얻지 못한다면 유토매니아는 문 닫을 수 밖에 없다.
'어차피 내가 밝히지 않으면 내가 힘을 잃었다는 것을 알아차릴 놈도 없을 테고...'
천외천 대장을 비롯한 다른 npc들은 워낙에 충성심으로 똘똘 뭉쳐있으니 괜찮고 마탑주들도 이해관계만 잘 해결해주면 상관없다. 얼스 역시 마탑주들과 천외천 대장들, 중원의 npc들이 있으니까 다룰 수 있을 거다. 황제라고해서 반드시 무공이나 마법이 강해야만 하는 건 아닐 거다.
'어떻게 한다...'
시스템 알림음이 들려왔다. 정확히 설명하기는 힘들어도, 그 알림음은 여태까지 들어왔던 알림음과는 약간 다른 느낌이었다.
[최종 선택까지 30초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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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가 떠오르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