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34 최종장 - 유토피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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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가는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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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동은 서울이되 서울이 아닌 곳이 되어 버렸다. 그 곳은 윤석이 세운 새로운 왕국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온갖 편의 시설들이 들어서고 도시계획 전문가의 계획에 따라 조금씩 변화해가고 있을 뿐더러, 치안 역시 굉장히 좋다.
사설 경비업체 직원 700여명을 고용하여 연희동의 순찰을 강화하고 외진 곳에는 가로등과 cctv를 추가로 설치했다. 혹자는 직원 700명을 고용하는 것이 단순한 돈낭비라고 하기도 했지만 식견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현 시대는 실제 화폐와 코드가 거의 동일시 되는 세상이다. 이를테면 금과 비슷하다. 금은 그 가치가 거의 떨어지지 않는 귀금속이고 화폐의 가치 유동성 때문에 오히려 금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쨌든 요지는 금은 화폐와 마찬가지의 -혹은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거고, 현 시대에서는 유토피아의 코드도 마찬가지라는 거다.
예전에 언급했듯 이미 많은 곳에서 화폐 대신 코드를 지급하기도 한다. (특히 유니온과 관련된 회사일수록 그렇다.) 그건 이미 계약서에 내포된 내용이며, 사람들은 그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유토매니아는 코드가 넘쳐흐르는 곳이다. 유토매니아의 주인이 누구이던가. 그는 현재 얼스의 영웅이며 중원의 황제이자 판타리아의 왕이다. 다수정예회, 은미상단을 이끌 때만 하더라도 코드는 이미 차고 넘쳤는데 지금은 아예 세기를 포기했다. 쓰는 속도보다 쌓이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
그렇다보니 코드로 임금을 지급하는 건 전혀 부담이 안 되고, 사설 경비업체 700여명의 월급을 지급하고 장비를 지급하는 것 정도는 윤석의 입장에선 아무것도 아니다.
카페뜨리아모에서 알바를 하는 22살 소녀 이예지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째 순찰차들이 오늘따라 더 많이 보이는 것 같네."
옆에서 카페모카를 만들던 동갑내기 친구 최예슬은 별 것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원래 많았잖아."
"그렇긴 하지만..."
"그거 들었어? 저번에 어느 편의점에서 최저시급 안맞춰 줬다가 난리 났잖아."
"헐? 연희동에 아직도 그런 데가 있었어? 와 그 알바생 땡 잡았네."
"그러니까. 김윤석 사장님한테 보상 두둑히 받고 금감원에 넘겨졌다나봐. 금감원에서도 난리 났대."
"그럴 수밖에 없지. 김윤석 사장님이 직접 민원 넣은 건데. 와. 근데 그 편의점도 어이 없다. 딴 곳은 몰라도 연희동에서 최저시급 안맞춰줄 생각을 했대?"
"알바생이 어리버리하고 어리다고 얕잡아 봤었나봐. 큰 코 다친거지."
"어. 또 순찰차 지나간다. 오늘 이상하게 많이 지나다니는 거 같네."
윤석은 연희동을 굉장히 살기 좋은 곳으로 탈바꿈 시켜가고 있다. 적어도 자신이 살아가는 곳 주변은 행복해야하지 않겠냐는 게 그의 지론이었고 -주랑의 입김이 많이 작용했다- 그건 착실히 진행되어가고 있는 참이다.
그러나 그는 아가페를 실천하는 성인군자는 아니다. 연희동을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꾸는 것에도, 그리고 치안을 높이는 것도 모두가 사실은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을 위함이다. 그게 제일 먼저고, 그 다음이 나중이다.
순찰차 안.
"여기 확실하지?"
"예. 여기 맞습니다. 사모님이 저 안에 계시다고 연락 왔습니다."
"다들 정신 바짝 차려. 사모님 손 끝 하나라도 다치는 날엔 우리도 줄초상날지도 몰라."
주랑이 외출이라도 하는 날이면, 모든 경비업체 직원들의 시선이 그 쪽으로 쏠리게 된다. 물론 주랑은 모른다. 주랑이 외출 할 때에, 저택 경비원이 경비업체에 연락을 돌리게 되고 그 때부터 주랑에게 경호가 붙는다. 이미 주랑은 청와대 출신인여성 경호원을 2명이나 대동하여 다니고 있는데, 그 외에 700명의 사설 경비병력이 더 붙는다고 보면 된다. 연희동 전체를 범죄 없는 지역, 안전한 지역으로 만드는 것의 최우선 목표 역시 주랑의 안전인 셈이다.
한편, 주랑은 카페에 앉아 눈 앞의 시누이를 바라보며 방긋 웃었다.
"수희랑 데이트 하는 거 오랜만이네."
"응? 응. 그, 그렇네."
수희는 방금 나온 아이스 카페모카에 빨대를 꽂아 한 입 크게 들이켰다.
"아! 맛있다!"
수희는 달달한 카페모카를 마시면서 행복하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가 주랑의 눈치를 살폈다.
"언니. 있잖아."
"응?"
"나 혼날 거 있는 거 맞지? 뭔지는 모르겠는데 얼른 혼내. 나 지금 엄청 불편하단 말이야."
주랑은 언제나 그렇듯 자애로운 미소를 띈 상태로 수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뭔가 잘못한게 있긴 있나 보구나?"
이예지와 최예슬은 수희와 주랑 쪽을 보면서 수군거렸다.
"근데 저 여자 진짜 이쁘지 않아?"
"그러게. 무슨 연예인 아니야?"
"저렇게 이쁜 연예인이었으면 소문 났겠지."
"길거리에서 캐스팅도 엄청 많이 받을 것 같은데 저정도면..."
맞는 말이다. 주랑은 길거리 캐스팅 많이 받아 봤다. 그러나 그녀는 딱히 연예인이 되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녀는 그냥 지금처럼 평범하게(?) 사는 게 좋다.
주랑은 수희에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 시간 쯤 지나자 수희는 고개를 떨구었다.
"나, 나는 그냥 언니 그게 있잖아..."
"나도 알아. 수희한테 악감정이나 나쁜 뜻이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어요."
주랑은 수희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수희는 주랑의 그 손길을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좋아하는 축이다. 수희는 어깨를 조금 움츠렸다.
"남매애가 좋은 건 정말 행복한 거야. 그렇지만 오빠의 사회적인 지위와 명성을 조금 더 생각해줄 필요가 있어. "
"응..."
"정말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이어도 사람들은 그걸 크게 확대해서 해석해버리고 말아. 오빠 정도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그래서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해야만 하는 거야. 아무 뜻 없이 그냥 웃었어도 가난한 사람 비웃는다며 욕먹을 수도 있거든. 단순히 욕을 하는 것만으로는 괜찮을지도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그 욕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분노를 일으켜. 그리고 그 분노에 조종당한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하게 될 지 몰라. 사람이란 게 그래."
"그니까 언니 말은... 선동 당한다는 거야?"
주랑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핀트가 아주 조금 어긋나서 다시 요약해줬다.
"사소한 행동 하나가 큰 오해를 부를 수도 있어요. 그래서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해야만 하는 거야. 오빠가 아무리 처신을 잘해도 주변사람이 처신을 잘 못하면 비난의 화살은 오빠에게로 향하거든."
"알았어. 조심할게. 내가 잘못했어 언니."
수희의 세상은 조금 좁다. 오빠와 나. 둘이 있을 때엔 둘 밖에 안 보인다. 그 외의 다른 상황과 사람들은 별로 고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있을 때에도 오빠에게 평소처럼 대했고, 다른 사람들을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나 주랑의 말을 듣고 보니 틀린 것 같다. 적어도 둘만의 세상에서는 틀린 것이 아니지만 제 3자들이 끼어있을 때에는 틀릴 수도 있게 되는 거다. 제 3자들의 생각은 자신의 생각과는 얼마든지 다를 수 있는 거니까.
그러고보니 중원의 NPC인 제갈열에게 들었던 말도 떠올랐다. 위엄을 잃은 황제는 모든 것을 잃은 황제 입니다. 라고 말했었다. 어차피 게임 내의 일이고 수희는 그 말에 별로 신경쓰지 않았었는데 주랑이 말하는 것을 듣고 보니 오빠에게 미안해졌다.
'오빠는 별로 신경 안쓴다 해도...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
어리광 부리고 땡깡 부리는 것. 물론 나쁜 건 아니다. 윤석도 그걸 싫어하지 않는다. 단 둘이 있을 때엔 얼마든지 그래도 된다.
'나 때문에 오빠 피해본 거 있으면 어떡하지...'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창피해서 죽어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주랑은 수희가 생각할 수 있도록 조용히 기다려 주었다.
알바생들은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주랑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힐끔힐끔 쳐다봤다. 예뻐도 그냥 예쁜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천사가 강림한 듯 했다. 절로 눈길이 갔다. 그냥 어중간하게 예쁘면 여기를 고쳤네, 미간 사이가 조금 좁네, 코가 조금 낮네 어떻게든 흉이라도 보겠는데 이건 그런 차원이 아니다. 애초에 질투 유발대상조차도 안 된다. 완전히 격이 다르니까. 적어도 외모적으로 봤을 때에는, 질투의 대상이 아니라 동경의 대상이다.
"저기 어떤 남자가 다가가는데?"
"저 사람 나 본 적 있어. 캐스팅한다고 명함 나눠주고 그러던 사람인데. 내 친구가 예전에 받았었거든."
"와. 저런 사람은 그냥 까페에 앉아 있기만 해도 캐스팅을 받는 구나. 성형도 안한 거 같은데."
주랑은 차분하게 웃으며 거절했다. 명함을 받지도 않았다. 이런 일은 이미 익숙하다.
"아니예요. 전 평범한게 좋아요."
"하지만... 그쪽 분이시라면 정말 성공하실 수 있습니다. 제가 원래 이렇게까지 매달리는 사람은 아닌데 정말 너무 아까우셔서요."
"말씀은 정말 감사하지만 사양할게요."
"일단 카메라 앞에 딱 한번만 서보시면 안 될까요? 그러면 생각이 바뀌실 수도 있는데..."
수희가 인상을 찡그렸다.
"이봐요. 언니가 싫다고 하잖아요. 연예인 같은 거 안한다잖아요."
"아. 이게 물론 결례인 줄은 알지만..."
"결례인 줄 알면 그만 가세요. 아저씨 여기서 자꾸 언니 괴롭히면 오빠한테 혼날텐데..."
대형 기획사인 MS 엔터테인먼트의 캐스팅담당 김수성은 애가 탔다. 이렇게 애가 탄적은 처음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여자는 처음 봤다. 단순히 예쁜 것이 아니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기품과 특유의 아름다움이 빛을 발하고 있다. 카메라 앞에 서면 어떤 아우라를 뿜어내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여자는 정말로 특출 났다. 대한민국에 여왕이라는 것이 있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었다.
"저기요., 뭐하세요?"
어떤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수성은 뒤를 돌아봤다. 그냥 평범한 남자가 하나 서있었다. 스쳐지나가고나면 얼굴도 기억나지 않을, 그런 평범한 사람.
주랑이 천천히 일어나서 고개를 살짝 숙여보이고 미소를 지었다. 정말로 행복한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미소가 있다면 그런 미소이리라.
"여보?"
"안뇽?"
"어떻게 왔어요?"
"그냥. 지나가는데 딱 보이더라고. 근데 지금 이거 무슨 상황이야?"
물론 거짓말이다. 애초에 여기 있는 거 이미 다 알고 왔다.
"별 거 아니에요."
수희가 팔짱을 끼고서 인상을 찡그렸다.
"길거리 캐스팅이래...."
라고 했다가 주랑의 눈치를 살피고서,
"...요."
하고 존댓말을 썼다. 사실상 존댓말을 써야하는 건 아니지만 수희는 지금 주랑에게 혼난 상태다. 뭐가 옳은 거고 뭐가 옳지 않은건지 잘 모르는 상태면 그냥 최대한 안전하게 가는 게 좋다. 수희가 딱 그런 상태다. 최대한 존중하는 의미로 윤석에게 존댓말을 썼다.
"얘 왜 이래?"
"글쎄요."
주랑이 눈웃음을 지었다. 김수성은 이번 기회를 절대 놓칠 수 없었다. 살면서 이렇게 연예인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은 처음 본다. 유부녀라는 사실은 놀랍지만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유부녀라는 건 숨기면 그만이다. 그 정도 페널티(?)는 얼마든지 감수해도 될 만큼, 이 여자는 반드시 연예인으로 만들어야 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MS 엔터테인먼트의 김수성입니다."
윤석이 바로 말을 잘랐다.
"연예인 생각 없어요. 가세요."
윤석은 조금 건방진 태도로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서 대충 말했다. 그리고 의자를 가지고 와서 주랑의 옆에 앉았다.
"무슨 얘기 하고 있었어?"
이미 김수성은 뒷전이다. 김수성은 이런 취급 처음 받아본다. 화가 난다기보다는 당황스러웠다. MS엔터테인먼트는 대한민국에서도 알아주는 대형 기획사다. 아무리 이쁘고 잘난 사람들이어도 MS 엔터테인먼트란 글자가 새겨진 명함을 건네면 한 수 접어주는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전혀 그럴 기색이 없다.
김수성은 자신의 상식 내에서 확신했다.
'이, 이 사람들 MS엔터테인먼트에 대해서 모르나 보다.'
알면 이렇게 나올 수가 없다.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기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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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사모님을 연예인으로 캐스팅하라!
난이도: 불가능
주의사항: 시도하지 않는 것이 신상에 이로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