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플레이어-215화 (215/244)

00215  마탑 10 탑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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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탑주 아타니아.

10탑주 중 유일한 여성으로 가장 호전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신체와 마법의 조화에 관한 최고의 권위를 가진 기관이 바로 무탑이고, 그렇다보니 무탑주의 몸매는 여성 신체의 굴곡진 아름다움을 적나라하게 표현해주고 있었다.

붕대 한 겹이 힘겹게, 그녀의 몸 전체를 옭아매고 있었지만 붕대는 그녀의 육감적인 몸을 충분히 가려주지 못했다. 특히 가슴 부위가 그러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터져버릴 듯 위태위태한 모습을 보였다. 안에는 속옷조차 입지 않았는지, 유두가 돌출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모습이 뇌쇄적이지는 않았다. 분명 겉보기로는 충분히 아름다운데, 여자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눈 앞에는 단순한 무투가 한 명이 서있는 느낌이다.

윤석 역시 내공을 끌어올렸다.

'사람을 죽이는 일'에 관하여는 마법보다는 무공이 한 수 위다. 적어도 효율적인 면에 있어선 그렇다. 아타니아 자세를 고쳐잡고 윤석을 응시했다.

'틈이 보이지 않아.'

그건 당연하다. 실질적인 '체술'로만 놓고 보자면 아타니아는 천마보다도 훨씬 약하다. 애초에 체술을 주 무기로 삼는 무캐와는 그 성질이 다르다. 그러나 아타니아는 전사가 아니라 무탑의 마법사다. 그것도 무탑주다.

"라프리엘 프로타 카이시어 로만타!"

예전, 사황성주가 윤석을 상대할 때 그러했듯, 황금색 기류가 치솟기 시작했다. 황금색의 바람은 그녀의 발 밑에서 세차게 소용돌이 치다가 이내 잦아들었는데, 그녀는 어떠한 특수한 공간에 들어서기라도 한 것처럼 보였다. 발 밑에 직경 1미터 가량의 황금원에서, 수백 가닥의 빛줄기가 하늘을 향해 솟구쳤다.

윤석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일종의 강화 마법장인가...'

저 원은 그녀가 움직임에 따라 같이 움직일 거다. 애초에 그런 마법이다. 그리고 아마도 육체적인 능력을 한껏 끌어올리는 역할을 할 터이다.

그와 동시에 아타니아는 윤석의 빈틈을 발견했다. 무탑주답게, 그녀는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하앗!

아타니아의 기합성이 터져나왔다. 순간 그녀의 신형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윤석의 바로 앞에서 윤석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넣었다. 그와 동시에 윤석의 등 뒤로 옮겨가 오른손목을 왼손으로 감싸안고 윤석의 등을 내리쳤다.

쿠과광!

항공폭탄이라도 터진 듯 거대한 소리와 함께 윤석의 몸이 땅으로 고꾸라졌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아타니아는 오른발을 들어 뒷꿈치로 윤석의 뒷통수를 내리찍었고, 또다시 폭발음이 터져나왔다. 윤석의 머리가 대리석 바닥 밑으로 파묻혔다. 황금빛과 만나 번쩍이던 에메랄드색 대리석에 찌직- 찌직-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커다란 두 줄기 균열과 수백개의 자잘한 균열이 생겨버렸다.

“낄낄! 주먹질 하난 기똥차단 말이야!”

철탑주 페브릭은 자신에게 날아든 파편을 막기 위해 무려 3미터 높이의 철벽을 쳤다가 -사실 이건 낭비다- 없애면서 킥킥대고 웃었다.

“끔찍하군요.”

10탑주 중 가장 온화하다 알려진, 성탑주 버피러스는 인상을 찡그리고 고개를 조금 돌렸다. 아무리 적이지만, 머리통이 대리석 바닥에 완전히 쳐박혔다. 마치 망치로 못을 내리치는 것 같았다.

일반인의 시각으로 보면 단순히 다리를 한 번 들어올렸다가 내리친 것에 불과하지만 거기엔 109번의 마나 요동이 있었다. 다리 끝. 그러니까 발꿈치는 일종의 총구였고, 그 총구를 통해 109번의 마나가 방출되면서 윤석의 뒷통수를 강타했다.

철탑주 페브릭이 성탑주 버피러스의 어깨를 툭 쳤다.

“이봐. 치료할 생각이라면 그만 두라고. 낄낄낄!”

“딱히 그럴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지금 분명 마나 움직였잖아. 낄낄! 그 놈의 치료본능!”

“그런 것 아닙니다.”

성탑주 버피러스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나이가 많지만 - 뇌탑주와 무탑주를 제외하면 모두가 노인이다- 거의 마법공부에만 미쳐있던 이들이다. 사회적 나이는 오히려 어린편이고, 가끔은 어린아이같이 순수한 구석도 있었다.

“거짓말!”

“그런 거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럼 뭐였는데?”

“그, 그건...”

“뭐냐니까?”

버피러스의 말문이 막혔다. 눈동자가 좌우로 심하게 요동쳤다.

“마, 마법수련입니다.”

그 때, 풍탑주 와인드라카가 양 손에 창을 만들어 들었다. 창 형태의 바람이다. 푸르스름한 빛이 감도는 그 것은 과연 풍탑주의 마탑답게 강맹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죽어랏!”

풍탑주 와인드라카. 잔인한 성정 때문에 수차례 옥살이를 했던 경험이 있는 그는 합법적인 살인을 즐기기라도 하겠다는 듯 양 손의 창을 계속해서 던져댔다. 던지는 손은 분명 두 개인데, 마치 현대의 MLRS. 다연장 로켓포처럼, 창의 수는 수 백발을 상회했다.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풍창의 위력도 엄청났지만, 희열에 가득찬 와인드라카의 얼굴 때문에 다른 마탑주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풍창의 파괴력 때문인지 바닥에선 파편인지 먼지인지 제대로 분간이 되지 않는 연기가 자욱이 일었다.

상황을 물끄러미 주시하던 암탑주 달리트는 몸을 돌렸다. 그의 몸을 완전히 덮은 검은색 로브가 펄럭거렸다. 아무래도 상황이 쉽게 정리된 것 같다. 겨우 이런 일로 10명의 마탑주를 모두 부른 건, 왕이 저 남자를 지나치게 걱정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달리트의 몸이 그림자 속에 녹아들었다.

그리고 마나파동을 일으켰다. 암탑주 달리트의 파동에 놀란 나머지 9탑주가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차지직-!

순간, 뇌탑주 사일런트의 정수리에서 뇌전이 치솟아 천장을 뚫어버렸다.

“이런 어이없는...”

뇌탑주가 가장 격렬한 반응을 보였으나, 다른 마탑주들 역시 충격을 받은 건 마찬가지다. 방금 전까지 분명 대리석에 처박혀 있지 않았던가. 딱히 마법을 쓴 것도 아니다. 마법을 써서 보호했다면 자신들이 알아차릴 수 있었을 거다.

“부하들은 엄청 어려운데 황제는 굉장히 쉽네.”

마탑주들의 눈은 쉽게 속일 수 있었다. 애초에 이들은 마법력 자체는 굉장히 높지만 상황의 응용력이나 전투에 있어서의 판단은 무캐들에 비해선 한참 뒤졌다. 오히려 이들보다는 중간수준 이상의, 전투경험이 풍부한 마도사들이 더 어려웠을 수도 있다. (싸움이 아니라, 이들의 눈을 속여서 황제를 치려는 그 시도는 더 어려웠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마탑주’쯤 되었다는 것은 탑주가 연구하는 학문, 마법에 있어서는 당대 최고의 지식과 전문성을 가졌다는 말과 거의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한 분야 최고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선 그 분야에 대한 끝없는 탐구와 공부가 필요하다.

사람 몸을 잘 고치는 의사라고 해서, 그 의사가 법률까지 해박한 것은 아니다. 또 법률에 해박한 변호사라고해서, 재무설계나 건축설계와 같은 전혀 다른 분야의 일까지 잘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마법’은 일반적인 의술, 법학과 같은 단순한 공부보다 훨씬 더 어려운 학문에 속한다. 속된 말로 천부적인 재능이 없으면 시도도 못한다는 말이 나온다. 다른 공부는 머리가 없어도 노력으로 어느 정도 평균치 이상을 맞추는 것이 가능한데 마법은 아니라는 소리다. 천재들이 미칠 듯이 노력해서 힘겹게 공부해가는 것이 마법이고, 그 마법에 통달한 수재들이 바로 마탑주들이다. 그렇다보니 전문성은 매우 뛰어난 대신, 다른 많은 것들 포기해야만 했다. 괴짜들이 많고 사회성이 떨어지며 마법 외에 다른 것에는 문외한인 경우가 많은 것은 어쩌면 마법사들의 불행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마탑주들은 윤석에 대한 정보가 매우 부족했고, 무공에 대한 이해도도 낮았다. 단순히 마법대 마법. 힘의 싸움이었다면 마탑주들이 이겼을지도 모를 일이다만, 윤석은 굳이 마탑주를 치지 않았다. 방심을 유도한 뒤, 직접적으로 황제를 공격했다. 흐름을 읽힐 수 있는 마나는 일체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무공만을 사용했다. 다행히 작전은 잘 먹혔다.

윤석의 몸에 안겨있다시피하던 황제의 몸이 스르르 무너져내렸다. 윤석의 오른손엔 암탑주의 로브가 잡혀 있었는데, 다행히 암탑주는 잘 도망갔는지 로브 안엔 아무것도 없었다.

몇 초가 흐른 뒤, 암탑주의 몸이 뇌탑주 옆에 스르르 나타났는데 덕분에 무탑주 아타니아의 얼굴이 매우 붉어졌다. 암탑주는 나신이 되어버린 상태였고 다리 사이에 괴이한 생물체가 -숫처녀인 아타니아의 눈으로 보면 엄청나게 괴상한 생물체가-덜렁거리고 있었다.

“달리트. 네게 암탑의 비전을 전해준 사람이 나라는 걸 잊지 말았어야지.”

암탑주 달리트는 눈치가 빨랐다. 사실상 눈치가 빨랐다기보다는, 윤석의 움직임을 우연히 읽어냈을 뿐이지만 어쨌든 암탑주는 윤석을 제지하려 했고 암탑주의 기술과 마법에 대해 해박한 윤석은 달리트를 효과적으로 제압할 수 있었다.

윤석은 키득키득 웃으면서 로브를 던져주었다. 로브에는 무언가 마법이라도 걸린 것처럼 달리트에게 일직선으로 날아가 저절로 몸에 맞게 입혀졌다.

마탑주들 중 가장 연장자인 수탑주 워툴러스가 중얼거렸다.

“3700년만에.... 왕조가 바뀌는 건가...”

* * *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말한다. 그만큼 십년은 상당히 긴 시간이다. 100년은 더욱 긴 시간이다. 실제로 사람들은 100년 전의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까마득한 옛날 일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100년 전의 사람과 현재의 사람. 분명 ‘사람’이라는 ‘인종’은 같으나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이 서로 같을 수가 없다. 그게 100년이 아니고 200년, 300년, 또 1000년이 되면 정말로 까마득한 옛날이 되어버리고 만다. 1000년 쯤 전이면 전설 속 이야기다.

현 왕의 이름은 나폴리아 아우루트 A. 사이니칸. 바로 ‘사이니칸’ 왕조다. 이 사이니칸의 이름으로 된 역사가 3700년간 이어져 왔다. 인간이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한 이래로 왕조는 24번 가량 바뀌었는데 그 중 사이니칸 왕조는 가장 긴 수명을 자랑하는 왕조이기도 했다.

“그랬던 거군.”

윤석은 왕궁의 비밀서고에서 왕만이 접할 수 있는 기밀문서들을 살펴보면서 여태까지의 궁금증들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중원의 황제를 지키기 위해, 왕명을 받들어 나타난 10탑주나 황궁에 새겨진 수많은 마법진들이나, 얼스를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린 황제의 명령이나, 그 명령에 대한 대가로 얼스에서 공물을 보내왔던 것이나.

사실 따지고보면 이상한 것들이다. 일반 유저들은 전혀 알지도, 아니 NPC라 할지라도 -심지어 윤석은 얼스에서 중장의 자리까지 올랐다- 알지 못하는 정보들이 속속들이 스파크에 의해 스캔되고 취합되었다.

“3700년이라... 아무리 천외천과 금군, 거기에 마탑주들의 지원이 있다고는 해도... 충분히 부패하고 무능해지기엔 충분한 시간이지.”

만약 이 왕조가 3700년 된 왕조가 아니었다면 얘기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3700년이나 유지되어온 이 왕조는 ‘인재의 무능’을 낳았다.

어쩌면 그것은 황제를 보위하는 아랫사람들이 지나치게 강해져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무공에 새겨진 마법수식 덕택에 천외천의 대장들이 점점 강해지고, 마탑주들의 비전이 후대에 이어지는 까닭에 마탑주들 역시 점점 강해졌다. 보좌하는 이들이 워낙에 강했다보니, 역대 황제들은 스스로를 발전시켜야할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했고 왕조 초기에 강맹함과 총명함은 점점 사라지고 현대에 이르게 된 것이다.

“어쨌든... 뒷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야. 아무도 모르는... 상위 세력이었던가...”

흠... 윤석은 인상을 찡그렸다. 이걸 발표를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오른쪽 하단. 계속해서 카운팅되고 있는 숫자는 어느새 14일 11시간 39분 33초를 가리키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산으로 간다는 코멘트가 있었는데...솔직히 진행이 빠르다는 건 인정합니다만 산으로 간다는 건 동의하지 못하겠습니다.

애초에 시놉짜면서 결말도 다 정해놓고 시작한 글이고, 진행속도의 차이가 있을 뿐 내용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제가 갑작스레 결말과 내용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면 산으로 갈 일은 아마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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