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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플레이어-207화 (207/244)

00207  중장 사망하다  =========================================================================

* * *

가로 80미터. 세로 40미터.

황금으로 제작된 것처럼 노란색으로 번쩍이는 그 문은 마치, 또 하나의 커다란 태양처럼 빛났다. 백은으로 이루어진듯한 흰색의 테두리가 그 황금문을 감싸고 있었고, 자세히 살펴보면 테두리를 따라 거대한 흰색 용 한 마리가 음각으로 조각되어 꿈틀대고 있었다. 두 개로 이루어진 그 황금문의 왼쪽 문에는 거대한 칼 한 자루가 새겨져 있었고, 오른편에는 활 하나가 새겨져 있었다.

사람들은 그 문을 가리켜 ‘신선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 곳에 가까이 다가가지는 못했다. 눈으로 볼 수는 있으나 만질 수 없는 곳. 신선문은 참으로 신묘막측했다. 태양처럼, 중원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다. 어디서 어떻게 보아도 똑같은 모습으로 보인다. 경공에 자신이 있다는 수많은 고수들이 그 곳까지 닿기 위해 날아올랐지만 전혀 소용 없었다. 마치 실체없는 무지개처럼, 닿을 듯 말 듯 닿지 않았다.

“대답해라. 건방진 놈.”

윤석은 인상을 조금 찡그렸다. 눈 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동양적인 얼굴에, 검은색 머리카락을 여자처럼 길게 늘어뜨린 언뜻 보면 여자처럼 보일만큼 여린 선을 지니고 있었다. 작은 얼굴과 부드러운 선을 가진 그는, 신선도에서나 나올법한 하얀색 나폴거리는 옷을 입고 있었다.

“뭐냐 넌...컥!”

윤석은 말을 잇지 못하고 허리를 수그렸다. 아프다기보다는 깜짝 놀랐다. 언제인지 알 수 없었다. 남자가 윤석의 배에 주먹을 꽂아넣었고 윤석은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하등한 놈. 말을 똑바로 하는 법부터 배워라.”

“제기랄!”

윤석은 내공을 끌어올렸다. 천마의 2만년 내공과 마탑주들 비전을 융합시켰다. 남자는 그러한 윤석을 가소롭다는 듯 바라보다가.

“사라져라.”

라고 말했다. 윤석은 순간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 앉았다.

‘힘이... 안들어가?’

내공을 끌어 올려봐도 그 뿐이다. 바로 사라져버려 힘이 풀렸다. 마법을 관장하는 마나 역시 마찬가지다. 여지껏 잘 작동하던 슈퍼컴퓨터 스파크의 알림음도 들려오지 않았다. 다만, 알 수 없는 오류가 발생했다는 알림음만 들려올 뿐이었다.

“그런 장난스런 힘으로 도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군.”

남자는 피식 웃더니,

“그럼 결정해라.”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또다시 반말을 지껄인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널 죽여버리겠어.”

윤석도 죽고싶진 않다.

“무엇을 결정하란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상황파악이 힘들었다. 일단은 숙이고 들어가기로 했다. 게임 내에서 존댓말 사용하는 게 그리 자존심 상하는 일도 아니다. 자존심이 상하기보다는, 지금 많이 놀랐다. 유토피아 속에서는 적수를 찾아보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적수는커녕 상대도 안 된다.

“너는 말이야. 저기로 갈 수 있는 자격이 생긴 거야.”

“예?”

남자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하늘에는 황금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문이 자리잡고 있었다.

“잘 결정해라. 정리할 시간을 30일 주겠다.”

“그게 무슨...”

윤석은 말을 잇지 못했다. 방금까지 앞에 있었을 것이 분명한 남자가 사라져 있었다.

“없다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웃기는 말이지만, 게임 속에서 꿈을 꾼 것 같다. 내공을 일으켜 보았다. 멀쩡했다.

“스파크. 여기가 어디지?”

[중원. 좌표 East, 3058376, 482361245입니다.]

스파크의 상태 역시 양호했다. 마법력 역시 건재했다.

‘이건 도대체...’

* * *

주랑은 윤석의 입 속으로 들어가는 것 만큼은 자기가 직접 하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

“어때요? 맛있어요?”

“당연하지. 엄청 맛있어.”

주랑은 턱을 괴고 앉아, 윤석이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는 듯 행복한 눈으로 윤석을 쳐다봤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맛이 없다가도 있을 판이다. 다만 그걸 옆에서 보는 사람은 입맛이 매우 떨어질 수도 있다.

“아... 진짜...”

수희는 인상을 팍 찡그렸다. 이 닭살 부부의 애정행각은 도무지 눈 뜨고 바라봐 줄 수가 없다. 서로를 바라보는 그 눈길 속에,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듬뿍듬뿍 담겨져 있는 것이 대충 살펴봐도 아주 잘 느껴질 정도다.

“자. 이쁜 우리 동생. 이거 먹어요.”

윤석이 젓가락으로 반찬 하나를 집어서 수희의 밥 위에 올려줬다.

“싫어! 싫다고! 싫어!”

생선 대가리 하나가 밥 위에 올려져 있었다. 수희는 생선의 눈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 생선대가리를 매우 싫어했다. 윤석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킥킥 웃었고, 주랑은 그 모습마저도 사랑스러운지 홍조를 띄우고서 윤석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밥 안 먹어!”

수희는 벌떡 일어섰다가 약 5초의 시간이 지난 후에,

“안 잡아 오빠? 나 밥 안 먹을 거라니까?”

“배고프면 알아서 먹겠지.”

“흥. 옛날엔 밥 만큼은 꼬박꼬박 챙겨먹으라고 잔소리 하던 주제에.”

“그땐 네가 어릴 때고.”

“그때도 성인이었거든!”

수희는 괜스레 심통이 났다. 원래 챙겨주다 안챙겨주면 서운한 법이다.

“그나저나 그 신선문은 도대체 뭐야?”

“나도 잘 모르겠어. 거기서 이상한 남자가 하나 튀어나오긴 했었...아오! 더러워! 저리 안가냐!”

윤석의 말이 이어짐과 동시에 수희가 “진짜?”라고 크게 외치며 식탁을 탕! 쳤고 그 와중에 수희의 입속에 있던 밥알 몇 개가 윤석의 얼굴에 튀어버렸다. 주랑이 얼른 깨끗한 헹주로 윤석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고마워 주랑아. 난 괜찮아. 그냥 앉아 있어요.”

윤석은 그 말을 하면서도 주랑의 손을 한 번 어루만지고 손등에 가볍게 키스를 했다. 수희는 그 꼴불견에 다시 한 번 인상을 찡그렸지만 윤석에게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갔다.

“어서 얘기해봐.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야?”

얘기를 듣고 난 이후, 수희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이상한 사람. 그 사람은 엄청난 능력을 갖고 있었다. 세 대륙의 힘을 모두 이어받은 ‘안졸리냐졸려’를 단숨에 무력화 시켰다. 하늘에는 문이 자리잡고 있다. 사람들은 그걸 신선문이라 부른다.

‘정말 신선이 내려온 걸까...?’

유토피아 측에서도 아무런 말이 없다. 예정된 업데이트나 이벤트는 아닌 것 같다.

‘30일 이라니...’

수희는 침대에 누워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발을 동동 굴려보았다.

“30일이 지나면 뭐 어떻게 된다는 거야?”

어차피 고민해봤자 뭔가가 나오지도 않는다. 그리고 수희는 침대에 누우면 5분 이내에 잠 든다.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금세 잠들었다.

* * *

윤석의 연희동 저택에는 아예 유토피아를 위한 방이 마련되어 있다. 캡슐이 6개가 설치되어 있다.

“먼저 들어갈게.”

수희가 먼저 들어갔다. 뒤따라 윤석도 들어갔다. 조천독과 싸우면서 느꼈다. 애초에 힘조절 같은 건 별로 필요 없었다. 모로가도 사황성주만 잘 죽이면 되는 거다. 시나리오는 이렇다. 정의맹 맹주가 사황성주를 없애면서 커다란 부상을 입고, 수희가 그 정의맹 맹주를 내쫓게 되는 거다. 그래서 수희를 사황성주에 앉히려고 한다.

“근데 오빠 이 스나는 어떻게 만든 거야?”

“다 방법이 있지.”

마법으로 꼭두각시 인형을 만들고, 거기에 스파크의 연산과 기억능력을 통해 인공지능을 이식했다. 덕분에 스나는 귀속 NPC가 아닌 새로운 개체로써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마법력으로 구동되는 꼭두각시지만, 그 위력은 예전의 스나보다 강하면 강했지 약하지는 않았다. 스나를 계속해서 구동시키려면 윤석도 일정량의 마나가 계속해서 빠져나가지만 군단도 아니고 단일 개체를 구동하는데에는, 그리 큰 마나가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주인님을... 모십니다.”

다만, 예전에는 중장이라 불렸지만 지금은 주인님이라 부른다. 슈퍼컴퓨터 스파크가 중장 대신 대체할 단어로 주인님을 선택한 모양이다.

“현재까지의 임무 스캔 완료했습니다. 저는 작은 주인님을 보필합니다.”

스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희를 서포트하는 역할을 계속해서 수행하기로 했다. 그녀는 은미상단의 (명목상)주인이었으며, 수희의 또다른 힘이기도 했다.

“능력을 확인 합니다.”

스나는 손가락을 들었다. 바로 앞 바위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순간, 바위가 폭발했다. 요란한 굉음과 함께 바위가 터져나갔고, 바위의 파편이 비산했다.

“방어합니다.”

푸르스름한 막이 수희의 몸을 덮었다. 그리고 윤석의 몸도 반쯤 덮었다. 그러더니 얼굴이 붉어졌다.

머리가 뜨겁습니다. 연산 오류. 주인님을 보호할 필요 없었는데 마나를 더 소모했습니다. 제 불찰입니다. 용서를...

스나의 마음이 느껴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차피 슈퍼컴퓨터 스파크의 인공지능에 의해 조작되는 스나이다보니 그 것이 해석되는 것일 뿐이지만 어쨌든 스나의 속마음을 알 수는 있었다. 계산상 윤석을 보호할 필요가 전혀 없었는데 괜히 보호막을 더 뻗었고, 덕분에 부끄러워 하고 있다는 뜻이다.

“잘했어 스나.”

윤석의 칭찬 한마디에, 붉게 달아오른 스나는, 어쩔줄 몰라했다. 다만 그 어쩔 줄 몰라하는 스케일이 남달라서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사방의 나무와 바위는 모두 박살나버렸다. 수줍고 부끄러워하는 모양새로 안절부절 못하면서 손가락을 이리저리 들었는데 덕분에 주위가 초토화되어 버렸다. 수희는 입을 쩍 벌렸다. 예전의 스나보다도 훨씬 강했다.

‘부끄러워하고 있어...?’

예전에는 단도를 핥았다면 이젠 손가락을 이리저리 들어올리는 것 같다. 이건 완전 괴물이다.그리고 그걸 만들어낸 장본인인 오빠도.

‘괴물...’

괴물이 되어버린 것 같다. 사람들은 오빠를 당나귀성자이자 정의맹 맹주, 신이 내려주신 사자쯤으로 알고 있지만 말이다. 으히히히 위대한 오빠를 존경해라, 라고 크게 웃고 있는 오빠를 보면 존경스런 마음에 생기다가도 안 생긴다.

‘저딴 게 하늘이 내려주신 사람이라니...’

수희는 혀를 찼다. 지금 당나귀성자의 위명은 중원 대륙을 뒤흔들고 있다. 나랏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가난과 배고픔에서 민중들을 구원했으며 정의맹을 설립하여 민초들로부터 막대한 지지를 얻고 있다. (사람들은 모르지만 정의맹은 산하에 은미상단을 거느리고 있으며 은미상단의 수입은 상상을 초월한다. 막대한 자금력을 갖고 있다보니, 민중들을 도울 수 있는 일도 많았다.) 더군다나 이번에 사황성주를 노린답시고 민초들을 괴롭히던 조천독을 처단했으며 ‘신의 심판’이라고까지 불리는 ‘불지옥’을 소환하여 -실제로는 눈요기에 불과한 거지만- 악인들을 모두 죽여버렸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상태다. (역시 실제로는 조천독 하나와 등을 돌리지 않은 일당들만 죽였을 뿐이지만 소문은 원래 과장되는 법이다.)

그러한 정의맹 맹주가 이번에는 사황성으로 진격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비보가 날아들었다.

- 정의맹 맹주는 이 서신을 마주함과 동시에 황궁으로 향하라.

황명이었다. 그 황명에는 한 가지 보이지 않는 명령이 포함되어 있었다.

‘즉시 따르지 않을 시, 즉살이라...’

조운은 황명이 담긴 서신을 품 속에, 보물처럼 모셨다. 조운은 피식 웃었다.

‘황제께서 그토록 신경써야 할 인물이란 말인가.’

그래봐야 한낱 무인이 아닌가. 조운은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얼굴은 마치, 윤석을 무력화 시켰던 정체모를 남자와 많이 닮아 있었다.

============================ 작품 후기 ============================

다른 건 포기해도 스나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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