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05 중장 사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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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유성의 마을.
현재 윤석과 수희가 진입한 마을의 이름이다. 편의상 마을로 불리지만 대도시나 다름 없는 곳이다. 이 곳은 물자가 풍부하고 사람들의 왕래가 많다. 따라서 아이템 거래도 활발하여 NPC뿐만 아니라 유저의 수도 많은 곳이다. 또한 사황성주의 자리를 노리는 광군 조천독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그러한 곳에 난리가 났다. 당나귀성자로 이름을 떨쳐 중원에서도 이름 드높은 정의맹 맹주가 이 곳에 수행무사를 단 한 명만 데리고 찾아와 조천독을 찾고 있단다. 선전포고인지는 잘 모르겠다만, 조천독이 아끼는 무사인 일만장창 박유현을 단 한수에 죽여버렸다. 뿐만 아니라 조천독의 처남 강가필을 때려눕히기까지 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이 곳 장유성의 마을에서 이러한 난동(?)을 부리는 것은 조천독에 대한 정면도전이나 다름 없었다. 장유성의 마을에는 난리가 났다.
"이봐. 소문 들었어?"
“그 당나귀성자님 얘기 말인가?”
“말 조심해! 성자님이라니. 큰일 날 소리 하는 구만.”
“드, 들었고 말고.”
당나귀 성자. 즉, 정의맹 맹주가 거의 단신으로 쳐들어와서 행패를 부리고 있단다. 민중들은 조천독의 눈치를 살피느라 윤석을 당나귀 성자가 아닌 당나귀 폭군으로 부르고는 있지만 마음은 한결 같았다.
‘역시 정의맹 맹주님이시다.’
‘당나귀 성자는 하늘이 내려주신 분이다.’
전쟁이란 물자 없이는 성립될 수가 없다. 군사도 잘 먹고 잘 입어야 잘 싸우는 법이다. 사황성주가 예고없이 부상을 입었으니, 그에 반하는 세력도 역시 준비 없이 군사를 일으켜야만 했다. 급하게 군사를 일으킨다는 것은 즉, 물자의 부족을 의미하는 것이고 부족한 물자는 ‘정의의 이름’으로 강탈했다. 지금의 사황성주를 없애고 새로운 성주가 되어 살기 좋은 지상낙원을 만드는데 일조하기 위한 일종의 투자인 셈이다. 적어도 광군은 그렇게 주장했다.
‘하지만 단신으로 어떻게...’
‘그래도 하늘이 내려주신 분 아닌가.’
NPC들은 말 없이 당나귀 성자를 응원했다. 그러나 그들은 힘이 없다. 조천독이 대규모 군사를 불러모으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혹시라도 불똥이 튈까 싶어 집으로 숨어들어갔다. 덕분에 거리가 굉장히 한산해졌다.
“굼벵이마냥 느려 터졌네.”
윤석은 가만히 앉아서도 모든 상황이 보인다. 천마의 능력만 있어도 밖의 상황을 얼마든지 느낄 수 있다.
“플레이.”
천마의 기감을 통해 밖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슈퍼컴퓨터 스파크가 윤석의 뇌파를 해석하여 디지털 신호로 받아들이면, 마법이 그것을 다시 시각적 영상으로 출력했다. 가장 앞장서서 병력들을 지휘하는 남자가 보였다.
“저 놈이 조천독일거야.”
수희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빠...?”
“왜?”
“도대체 어떻게 한거야?”
윤석이 턱을 높이 들고 눈을 아래로 하여 우쭐거리며 수희를 내려다보았다.
“뛰어난 오빠를 둔 것이 이제 좀 실감이 나냐?”
거듭 말하지만 유토피아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다. 현실이나 다름없다. 현실에서 람보르기니나 페라리를 소유한 사람들을, 사람들은 부러워한다. 심하면 동경하기까지 한다. 유토피아에서의 ‘뛰어난 능력’은 현실의 람보르기니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가 않다. 윤석의 능력은, 마법과 무공을 동시에 접해본 수희에게는 완전히 신세계였고 동경의 대상이었다.
“나 오빠를 이제 좀 사랑하게 될 수 있을 것 같아.”
“그래도 안 가르쳐줘.”
“치사하게.”
가르쳐주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중원에서 최강 -혹은 최강에 준하는-의 힘은 천마의 능력이다. 판타리아에서 최강의 힘은 마탑주들의 능력이다. 얼스에서의 최강은 -적어도 윤석이 아는 한도 내에선- 슈퍼컴퓨터 스파크다. 그 스파크가 있어야만 최적화가 진행되고 천마와 마탑주들의 능력을 제대로 이어받을 수 있다. 윤석이 만약 프로그램을 짠 엔지니어라면, 프로그램 소스와 원리에 대하여 잘 가르쳐줄 수 있겠다만 윤석은 프로그래머가 아니라 유저다. 그래도 못 가르쳐 준다고는 말 못했다.
“이쁜짓 좀 하면 가르쳐주지. 앞으로 이 오빠를 잘 모셔봐.”
발끈할 법도 하건만 수희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정도 생색은 신경도 안 썼다.
“넹 오라버니!”
수희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윤석이 슬쩍 일어섰다. 윤석의 마법을 통해 재생한 화면 속에는, 약 300여명의 병력들이 이 주점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 와중에서도 가장 흉흉한 기세를 내뿜고 있는 사람이 있었는데, 느껴지는 기감으로 보아 아마도 조천독이리라 싶었다.
그런데 이게 웬 걸.
“뭐야. 너 조천독이가 아니야?”
윤석은 조금 불쾌하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가 다시 콧구멍을 후볐다. 그에따라 300명의 병력들이 일순간 긴장하며 저마다의 무기를 고쳐잡고 내공을 끌어올렸다. 이미 들었다. 저 행위는 극독이 발려진 무시무시한, 심지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암기를 던지기 위한 일종의 속임수다.
“긴장해라! 암기가 날아온다!”
“극독이 포함된 암기다!”
암기는커녕 극독도 없다. 암기가 아니라 단순한 코딱지고, 극독은 극독인데 그건 코딱지란 매개체 없이도 얼마든지 피워낼 수 있다. 괜히 암탑주가 아니다. 그냥 공기중에서도 얼마든지 끌어낼 수 있다.
“대장이 와야지, 순 졸개들만 모이냐.”
윤석은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비겁하게 독이나 쓰는 네 놈 따위는 나로도 충분하다.”
“비겁하긴 개뿔.”
일만장창 박유현이 당했다. 그러나 그건 실력 때문이 아니라 급습때문이었다. 그것도 독이 포함된 급습. 비열해도 이렇게 비열할 수가 없다.
“독과 기습으로 형님을 죽인 죄.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사황께서도 네 놈의 목을 원하신다. 잠자코 죽어라!”
윤석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예전부터 소설이나 영화같은 데에서 보면, 악당들은 싸우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을 전부 한다. 자기가 누구인지, 또 자신의 상관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구태여 말할 필요가 없는 것들, 심지어는 상당히 유용한 정보까지도 술술 말한다. 또 어떤 경우엔 기술명을 일부러 외치기까지 한다. 어이가 없긴 없는데 또 익숙하기도 하다. 지금이 딱 그런 상황이다.
“내 이름은 박이현. 네 놈이 비겁한 수를 쓴다는 것은 들었다! 그러나 나. 소천검 박이현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네 놈의 사지를 찢어 개의 먹이로 던져주고 말리라! ”
자신의 이름을 술술 분다. 그리고 일만장창 박유현을 형님으로 부르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가까운 사이리라 짐작 됐다.
윤석은 이마를 탁 쳤다.
“그거 좋은 생각이네.”
윤석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디뎠다. 수희는 조금 불안한 듯 윤석의 뒤에 섰다. 그녀가 아무리 사황성주의 제자라고 해도, 박유현 급의 NPC(박이현)와 300명의 병력은 상대할 수가 없다.
“가라. 뜨거운 멍멍이!”
화탑주의 능력을 응용했다. 보통 ‘화 속성’의 마법사는 공격에 특화되었다고 말한다. 공격 마법의 최고봉은 ‘화’ 와 ‘뇌’다. ‘화’는 파괴력에, ‘뇌’는 특수효과(스턴)에 더 집중 되어 있는 형태고 순수한 공격력 자체는 ‘화’가 더 높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화탑주의 마법이다.
주위의 온도가 갑자기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땅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윤석의 뒤에 거대한 삽살개 한 마리가 나타났다. 그 삽살개는 온 몸이 불로 이루어져 있었다. 빨간색 불길이 피어올랐다.
“보호막.”
윤석은 수희에게 쉴드를 쳐주었다. 윤석의 경지에 이르면, 스킬명이나 마법명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 없다. 윤석이 생각한 그 모든 것이 바로 마법이 되고 무공이 된다.
땅을 녹일 듯 뜨겁게 불타오르는, 크기만 해도 10미터 쯤 되는 불타는 삽살개가 달리기 시작했다.
“저...저건!”
“사, 사술이다!”
“비, 비겁한 놈!”
그들의 눈엔 사술이었다. 윤석이 말했다.
"눈이 왔다!“
불타는 삽살개는 정말로 눈을 밟기라도 한 것처럼 깡충깡충 가볍게 이리뛰고 저리뛰었다가 바닥을 구르기도 했다. 수희의 눈이 휘둥그레 변했다.
‘저...저건...’
수희도 과거 마법사였다. 그것도 꽤나 이름있는 유저인 ‘오빠주거’였고 화속성의 마법사였다. 이 마법은 잘 안다. 겉모습은 완전히 달라 보이지만.
‘Dancing trap...?'
많이들 익히는 마법은 아니지만 댄싱트랩은 어려운 마법은 아니었다. 불로 만들어진 작은 함정을 설치하는 건데 데미지는 약한 편이었다. 그런데.
‘마...말도 안 돼...’
이 마법은 댄싱트랩의 변형판이었다. 댄싱트랩이 작은 함정 하나를 만드는 것이었다면, 이 마법은 거대한 형상을 띈 트랩이 이리뛰고 저리뛰며 날뛰는 거다. 그리고 그 파괴력은.
‘이게 도대체...’
수희는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질 뻔 했다. 이런 파괴력은 들어본 적도 없고 본 적도 없다.
‘땅이 녹았다고...?’
땅이 녹았다. 거대한 삽살개가 뛰논 그 곳은 늪처럼 되어버렸다. 당연히, 시체도 찾아볼 수 없었다.
“조천독이! 냉큼 뛰쳐나와!”
사자후가 터져 나왔다. 충격파 때문에 주위의 집들이 쓰러졌다.
이거, 힘 조절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사황성주를 죽이려 하는데, 애꿎은 사황성을 날려버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수희한테 줘야 하는 선물인데 -선물이라고 주장하지만, 윤석은 이 작전을 ‘동생 꼬봉 만들기’로 정했다- 아끼고 아껴서 줘야하지 않겠나.
조천독 정도 되면, 그래도 힘 조절을 익히는데 괜찮은 상대라고 생각한다마는 어쩐지 그것도 아닐 것 같다.
뒷통수를 긁적거렸다.
‘내가 너무 세진 거 같은데...좀 지나친데...’
* * *
조천독의 본거지에서, 정의맹 맹주가 활개를 치고 있다. 조천독의 병력들을 순식간에 쓸어버렸다. 이것은 선전포고였다. 광군에 전체 비상이 걸렸다. 민중들은 정의맹 맹주를, 하늘이 내린 사람이라며 마음속으로 떠받들었다.
조천독은 정의맹 맹주에게 대항하기 위하여 3만여명의 병력을 전부 집결시켰다. 제 아무리 뛰어난 무인이라도 3만명의 병력이라면 결코 어찌할 수 없으리라.
“괴상한 사술을 부린다고 합니다. 판타리아의 마법이 아닐까 사료됩니다만...”
“그러나 정의맹 맹주가 마법을 익혔을 리가 없습니다. 그건 눈속임일 겁니다.”
정의맹 맹주 쯤 되는 사람이 홀로 찾아왔다면 그만큼 자신감이 있어서일 거다. 왜, 굳이 이곳을 찾아왔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런 의중을 파악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자신의 병력들이 죽어나갔고 아끼는 무장들도 죽었다. 의중을 파악해서 협상을 하기에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남은 건 전쟁 뿐이다.
“눈속임?”
“그렇습니다. 정의맹 맹주 뒤에는 여자 하나가 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판타리아에서 지원 세력을 불러온 것 같습니다.”
“역시 그런 것인가.”
그게 가장 설득력 있는 말이다. 정의맹 맹주라는 거명 아래 아마, 그 여자는 눈에 띄지 않았을 거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 설명 되는군.”
그랬다. 정의맹 맹주가 시선을 끌면, 마법사인 여자가 몰래 마법을 구동하는 것.
“그런 치졸한 방법을 쓰다니.”
마법은 그 위력이 강하지만, 캐스팅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숙달된 무인이라면 마법사가 마법을 쓰기도 전에 죽여버릴 수 있다. 조천독이 비릿하게 웃었다.
“궁수를 많이 배치하도록.”
궁수로 직접적인 타격을 가하기는 어려울 것이나, 캐스팅을 막을 수는 있다. 마법사는 본디, 집중을 흐트러뜨리면 아무것도 못하는 족속이 아니던가.
“사황님. 그리고 진귀한 물건이 하나 있습니다.”
“진귀한 물건?”
“판타리아의 마법사들은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마나라는 것을 사용합니다. 이것은 그 마나의 흐름을 막아버리는 무구입니다.”
조천독의 웃음이 짙어졌다. 아무래도 하늘이 자신을 돕는 것 같다. 뛰어난 지략가들이 곁에 있어 정의맹 맹주의 속임수를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고, 심지어 마법사를 무력화시킬 방법까지 찾아냈다.
“당나귀성자라는 허명을 벗겨내면...”
“그렇게 되면 사황께서는 천하를 발 아래로 보실 것입니다!”
============================ 작품 후기 ============================
-택배왔습니다.
-주소 잘못 짚으셨는데요.
-헐?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엑스트라답게 그냥 죽으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