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플레이어-200화 (200/244)

00200  도둑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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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탑주 자크리드는 단순한 개인이 아니다. 그는 암탑의 탑주이고, 그 것은 판타리아의 왕에 버금가는 엄청난 명성과 지위를 누리고 있다는 뜻이다. 만약 마탑주가 마법연구가 아니라, 속세의 부귀영화나 권력에 관심이 있었다면 아마 충분히 왕이 되고도 남았을 거다.(다만, 그랬다면 마탑주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겠지만. 천재들 중에서도 천재가 다른 것은 전혀 신경쓰지 않고 평생을 마법연구만 바쳐서 겨우 오를 수 있는 자리가 바로 마탑주다.)

어쨌든 자크리드는 판타리아에서 대단히 중요한 인물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본다. 일반인들이라면 감히 그를 감시할 수 없겠지만, 그와 거의 동일선상에 있는 인물들이라면 가능하다.

바로 마탑주들이다. 마탑주들은 저번에 자크리드가 천마의 영혼이 봉인된 에고스톤을 인간의 몸에 덧씌워 신체를 강화화는 희대의 마법을 성공리에 마친 적이 있다. 그 것은 마탑주들 사이에서도 엄청난 이슈였다. 모두가 부러워했고, 또 반쯤은 시샘했다. 그들은 다른 것에는 별로 질투하지 않고 관심도 없지만 위대한 마법연구 혹은 업적에 있어서만큼은 어린아이처럼 질투하고 시기하는 경향이 강했다.

마탑주들은 그 일이 있은 직후, 분명 자크리드가 또다시 행동을 취할 거라고 예상했고 그들의 예상은 들어맞았다.

특히나 자크리드의 행보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던 화탑주와 목탑주는 자크리드가 포탈을 향해 움직였다는 소식을 거의 실시간으로 접해들을 수 있었다.

"이 놈이 또 자기 혼자 맛있는 걸 낼름낼름 처먹으려고 작정을 했구만!"

"얼스는 아주 위험하고 위험한 곳이니 100년지기 친우로서 그냥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지 않은가?"

"맞아. 그렇지. 우리는 자크똥덩어리를 보호해야만 하는 의무가 있는 사람들이네."

화탑주와 목탑주도 얼스로 움직였다.

* * *

일반적으로, 숨을 쉬는 것은 인간에게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다. 지금의 이 상황도 윤석에겐 숨을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제기랄... 한판 떠보자 이거지."

사황성주는 황류갑을 몸에 두른 채 씩씩대며 윤석을 노려봤다. 사황성주는 수많은 무공들을 섭렵하고 있다. '최고'에 근접한 수만 혹은 수십만 가지의 무공을 몸에 지니고 있으며 상황에 맞추어 가장 적절한 무공을 펼쳐내어 자신에게 가장 효율적이고도 훌륭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그게 바로 사황성주가 전투를 치르는 스타일이다.

그에반해 천마는 완전히 반대다. 사황성주가 '최고에 근접한 온갖 잡기'에 능하다면 천마는 '최고의 무공'을 가진, 종류는 많지 않지만 무공의 질로만 따져보자면 사황성주보다 훨씬 더 뛰어나다.

상성을 따져보자면,

'도대체 얼스인이 어떻게 천마의 힘을...'

사황성주가 당연히 아래다.

사황성주는 수많은 상황에, 천마보다 더 유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그보다 약한 적을 상대할 때는 수가 얼마나 많든, 상황이 얼마나 불리하든 가장 최선의 방법을 찾아낸다. 그러나 상대가 단일개체일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평소라면 상관 없지만 천마같은 절대자와 일대일로 붙으면 불리해질 수 밖에 없다.

전투를 치를 때에 유리한 무공과 상황을 만들어내긴 내는데, 무공의 질이 저쪽이 높다면 힘들어질 수 밖에 없다.

사황성주가 일반인의 눈으로는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르게 움직였다. 인공위성의 영상으로, 3천배 느리게 재생해야 겨우 확인이 될 정도다.

그만큼, 윤석의 신형도 빠르게 움직였다.

"안중장과 사황성주 정면으로 부딪칩니다!"

"쉴드 차징 완료 됐습니다! 충격파에 대비합니다!"

두 사람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는다.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 조차 없는 속도다. 슐터는 하마터면 다리에서 힘이 풀릴 뻔 했다.

"사, 사황성주가 저런 능력을 가졌던가..."

데이터가 부족했다. 인간으로서 저런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건 경이 그 자체였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다만.

쾅! 쾅! 쾅!

마치 폭탄이 터지는 듯 거대한 소리와 함께, 전자기기로만 예측 가능한 충격파가 터져나오고 대지가 종잇장처럼 찢겨져 나가는 것만이 저들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을 뿐이었다.

"안중장의 개체수가 늘어납니다!"

"2, 4, 8, 16, 32, 64, 128! 128명의 안중장이 빠르게 움직입니다!"

참모진들은 엄청나게 바빠졌다. 사황성주의 실제 능력을 처음으로 접하게 된 거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육체능력을 가졌다. 저런 능력이라면, 이순신편대가 몰살당할 수도 있었다.

물론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검은색과 황금색의 빛줄기가 거미줄처럼 잔상을 남기며 부딪쳐가며 충격파를 일궈내는 것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3천배 느린 화면으로 재생을 해야만 싸우는 것이 겨우 보인다.

사황성주가 팔을 크게 휘둘렀다. 단순히 휘두르는 게 아니다. 그 휘두름 안에는 태산이라도 박살낼 수 있는 거력이 담겨 있다. 아무리 천마의 힘을 계승한 윤석이어도 그 것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는 건 득보다 실이 많다.

황급히 보법을 밟아 사황성주와 멀어졌다.

"안중장의 개체수가 32까지 줄어들었습니다!"

내공으로 만들어낸 허상이다. 워낙에 잡기에 능한 사황성주다. 그 사황성주를 생포하려고 애를 쓰다보니, 허상을 만들어냈다. 내공의 양만큼은 사황성주를 압도하는 윤석이다. 다른 건 몰라도 그건 그랬다. 2만년을 살아온 천마고 윤석은 그 천마가 가진 능력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황룡벽력장.

사황성주의 황류갑이 거세게 휘몰아치며 팔에 집중되는가 싶더니, 거대한 황룡의 형상을 한 장력이 손바닥에서 쏟아졌다. 32마리의 황룡은 허공을 세차게 헤엄치며 32개의 허상을 물어뜯고 윤석에게 쇄도했다.

말로 설명하자면 그렇지만, 막상 눈으로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황금색 빛줄기가 보일 뿐이다. 그러나 그 찰나의 순간이란건 결국 상대적인 거다. 윤석은 그 찰나를 더욱 더 미세한 값으로 잘라낼 수 있다. 평범한 사람에게 1초란 굉장히 짧은 시간이지만 윤석에게 1초는 매우 긴 시간이다.

몸에 익숙한 보법을 밟으며 손바닥과 주먹, 그리고 팔꿈치를 사용해 순식간에 18마리의 황룡을 부숴버린 뒤, 천마심공을 통해 천마기를 끌어올려 마치 사황성주의 황류갑처럼 마기를 몸에 둘렀다. 짙은 흑색의 기류가 윤석의 몸을 감싸 소용돌이쳤다. 천마기와 부딪친 황룡은 먼지처럼 산산이 분해됐다.

'쳇. 생포는 역시 힘들구만.'

사황성주의 저항이 만만치가 않다.

'그래도 내공소모가 굉장히 클텐데.'

예전 같았으면 모르겠지만 이제는 눈에 보인다. 천마는 확실히 사황성주보다 실력자이고, 사황성주의 상태가 눈에 보인다. 겉으로는 멀쩡한 척 하고 있지만 사황성주는 상당히 지쳤다.

절대자간의 싸움이다. 시간의 영역까지 조절해가며 싸워야만 한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싸움이 3차원적이라면 천마와 사황성주는 4차원을 다룬다. 그만큼 심력소모와 내공소모가 엄청나다.

'내가 두대 얻어맞았고 놈은 일곱대 얻어 맞았어.'

윤석은 씨익 웃었다. 생포라는 조건이 달려 있어서 그렇지 싸워서 질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 거대한 힘을 가진 세 개체가 접근합니다.

슈퍼컴퓨터 스파크가 알려왔다.

사황성주 역시 잠깐 움직임을 멈추었다. 이 싸움의 판도를 완전히 뒤바꿔버릴 수 있는 거대한 힘을 가진 존재들이 하나도 아니고 셋 씩이나 무리를 지어서 접근했다. 그들의 접근은 단순히 '걸어온다'의 개념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0.1초도 상당히 긴 시간이고, 따라서 텔레포트를 통해 가까이 접근하는 것 역시 느껴졌다. 일반인들에게는 찰나의 순간이지만 느껴졌다. 그리고 윤석은 다가온 존재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암탑주 자크리드...?'

자크리드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낄낄낄! 웃어댔다. 성공이야 성공! 정말로 위대한 업적을 내가 탄생시키고야 말았군!이라면서 배를 잡고 숨 넘어갈 듯 웃었다.

그리고,

- 초정밀 공격위성. 나로호. 공격을 준비합니다. 위험합니다. 입자포 도달까지 약 3초.

사황성주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세 명의 마탑주의 등장은 그에게 기회였다. 아주 약간의 시간만 벌어주면 됐다. 그리고 지금 틈이 생겼다. 사황성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줄행랑을 쳤다.

그는 조금 창피할 지라도 자존심 때문에 목숨을 거는 족속은 아니었다. 윤석 역시 쫓아가려고 했으나 늦었다. 그보다는,

- 초정밀 공격위성. 나로호. 공격합니다. 매우 위...

스파크의 목소리는 더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안 돼! 안 돼! 안 돼! 내가 지켜 줄..."

자크리드의 목소리가 무어라무어라 소리치는 것 같았는데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마지막에 기억나는 것이라곤, 세상이 지워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띠링. 버틸 수 없는 거대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망하지는 않았으나 강제 로그아웃 됩니다.]

슈퍼컴퓨터 스파크의 알림과는 또 다른, 시스템상 알림음이 들려왔다.

* * *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윤석은 캡슐을 열고 나왔다. 밖에선 주랑이 식어버린 녹차를 쟁반에 올려둔 채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주랑아?"

꾸벅꾸벅 졸던 주랑은 화들짝 놀라 일어섰다.

"오, 오빠?"

"여기서 뭐해?"

"죄송해요. 차 다 식어버렸네. 다시 따뜻한 걸로 가지고 올...읍!"

쟁반이 땅에 떨어져 내렸고 덕분에 녹차가 다 쏟아져버렸다. 다행히 깨지지는 않았다. 컵이 깨지지않은 건 다행인데,

"흐아... 주랑아. 숨 좀 쉬자."

숨을 못 쉬었다. 일반적으로 숨을 쉬는 건 굉장히 자연스러운 건데, 지금은 그렇지가 않았다. 주랑이 어찌나 격렬하게 키스하는지 숨도 쉬기 힘들었다.

주랑은 한껏 달아오른 얼굴로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해요."

"그나저나 왜 여기서 기다리고 있던 거야?"

"지금 난리도 아니에요. 여지껏 없었던 거대한 전쟁 터졌다면서..."

"아아... 그거?"

"마지막에 어떻게 된 거에요?"

"글쎄. 강제로그아웃 됐어. 죽지는 않은 것 같은데..."

의문점은 금방 해결됐다.

수많은 매체에서 방금 있었던 일을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 중장유저! 혼수상태에 빠져들다!

- 유저의 혼수상태! 과연 가능한 일인가?

일대 파란이 일었다. 유저의 혼수상태. 적어도 게임상, 안졸리냐졸려는 지금 혼수상태에 빠져들어 병원으로 옮겨졌다. 덕분에 현실에서 난리가 났다. 유저가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건 즉, 로그아웃을 하지 못했다는 뜻으로 해석되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유토피아에서 바로 연락이 왔다. 이미 중장유저가 윤석이라는 사실은, 어느정도 식견 있는(?) 사람들이면 암묵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이었고 유토피아는 그 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목소리에서 다급함이 묻어나왔다.

- 괘, 괜찮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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