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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플레이어-197화 (197/244)

00197  도둑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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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사슬을 장착한 이순신 편대가 날아올랐다. 광속에 근접한, 인류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비행하는 전투기다.

유토피아 세계는 과학의 법칙으로부터 어느정도 자유롭다. 마법이나 내공은 과학의 영역으로는 절대로 설명이 불가능한 것이다. 중원인들이 맨 몸으로 바다를 달리거나 땅을 가르거나, 판타리아인들이 마나를 통해 불덩이나 뇌전을 만들어내는 건 말 그대로 불가사의한 영역이다.

타 대륙들에 비해서 그 정도는 덜하지만, 얼스 역시 과학의 법칙으로부터 조금 자유로운 편이다. 실상, 현실에서 광속으로 움직이는 물체는 마찰열 때문에 타들어가기 일쑤다. 현실에서는 불가능에 가깝지만 어쨌거나 광속의 속도를 내려면 당연히 그만큼의 에너지를 발생시켜야만 한다. 그러려면 필연적으로 기관의 크기가 커질 수 밖에 없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각종 기기들은 소형화되고 간편화 되어가고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발전소를 주먹만하게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얼스는 현실의 과학 상식을 이미 훨씬 벗어난,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애초에 물질을 삭제하는 입자분쇄기같은 혁신적인 무기는 현실에는 없다.

별도로 마련된 상황실에서는 이순신만큼이나 최첨단을 자랑하는 각종 탐지기들을 동원하여, 실시간으로 보고를 올려댔다.

이순신이 쇠사슬을 발사했다.

"쇠사슬 1. 발사완료."

"쇠사슬 2. 발사완료."

"쇠사슬 3. 발사완료."

3대의 이순신이 동시에 입자분쇄기를 쏘았다. 한 방향을 노리고 쏘는 것이 아니다. 얼스의 최첨단 기술이 녹아든 슈퍼컴퓨터를 통하여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상황들을 설정하고 가장 가능성 높은, 사황성주의 행동양식을 분석하여 사황성주의 움직임을 막는 형식이다.

"쇠사슬 4. 발사완료."

"쇠사슬 5. 발사완료."

"쇠사슬 6. 발사완료."

거의 시간 차 없이 또다시 쇠사슬 3문이 발포됐다. 현재 분석팀은 약 120여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중 보고권을 가지고 보고를 올리는 중간 관리자가 12명이다. 12명이 실시간으로 3명의 윗선에 보고를 올리면, 그 3명의 상급 관리자가 슐터에게 최종적으로 보고를 올린다.

"쇠사슬 7. 발사완료."

"쇠사슬 8. 발사완료."

"쇠사슬 1.2.3.4.5.6. 동시 발포합니다."

사황성주의 이동뱡향을 예측하여 10^-40sec 까지 계산하여 퇴로를 선점하여 공격하는 거다.

"모두 빗나갔습니다!"

그러나 10^-40sec. 인간의 단위로는 완전히 0이나 다름없는 그 찰나에 쏟아진 입자분쇄포를 최소의 움직임만으로 피해냈다.

수희가 알아냈듯 사황성주는 천안을 가지고 있다. 상대의 공격을 읽어내고, 그에 따라 가장 걸맞는 행동양식을 취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패시브 스킬이다. 수희수준에서 그정도면, 사황성주 수준이면 어떨지 감히 짐작도 하기 힘들 정도다.

광속에 가까운 이순신이, 또 광속에 이르는 입자분쇄포를 발사했는데, 그것도 8대가 슈퍼컴퓨터에 의해 계산된 각도와 시간으로 정확히 발사했는데 사황성주는 그 것을 가뿐히 피해버렸다.

덕분에 땅바닥에는 직경 2미터. 깊이 800미터에 이르는 위험한 우물이 수십개나 만들어졌다. 대지위의 크레바스 ( * 빙하가 갈라져서 생긴 좁고 깊은 틈. )가 생겨버렸다. 그러나 그런 것에 신경쓸 틈이 없다.

최대한 화려함을 강조하고, 쉽게 끝낼 수 있는 것도 어렵게 끝내라는 주문을 받은 상태다. 그래야만 영화가 멋지게 촬영되고 훌륭한 컷을 잡아 구현해낼 수 있단다. 사황성주는 얼스의 문명들에 대해 해박한 건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말 뜻은 대충 이해할 수 있었다.

'위험하군 저런 건.'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상당히 위험한 공격들이었다. 정확한 구동원리를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강력한 공격이라는 것 정도는 안다. 천안이 경고했다. 저 것은 위험하다. 막아내는 것보다는 피하는 게 나았다. 피하는 것조차 쉽지는 않았다. 천안의 능력을 최대한도로 발휘했고 사황성주가 가진 1400여가지의 보법들 중 고속회피에 가장 뛰어난 군림독보와 속도에 중점을 둔 것이 아닌, 공격을 흘리듯 피해내는 유령보법의 운용을 조합하여 저 괴상한 공격들을 피해냈다.

아니나다를까. 바닥에는 거대한 구덩이들이 생겼다. 구덩이란 단어가 지금 벌어진 상황과 잘 어울리는 것은 아니었다. 이런 구덩이는 사황성주도 처음 본다. 땅으로 꺼지는 절벽이 생겨난 거다. 저기에 빠졌다간 어지간한 고수가 아니면 -적어도 수직의 절벽을 자유자재로 오를 수 있는 수준의- 떨어지는 순간 즉사다. 아니면 그 전에 심장이 마비되어 죽던가.

"예측대로 입니다. 쇠사슬. 회피했습니다."

"시나리오 1. 완료 됐습니다."

사황성주의 솜털 하나하나 까지도 관찰 할 수 있는 최첨단 초정밀 인공위성 7대가 돌아가면서 사황성주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다.

시나리오 1이 완료 됐다. 시나리오 1은 가장 먼저, 쇠사슬을 탑재한 이순신이 사황성주를 공격하는 거다. 지금 이순신을 조종하는 파일럿들은 실제로 목숨 걸고 임무를 수행 중이다. 분석팀에서도, 사황성주의 재량(?)에 따라, 이순신의 격추 가능성을 70퍼센트 이상으로 잡았고 그 중에서도 인명피해가 발생할 확률을 약 10퍼센트 정도로 잡았다.

먼저 이 것은 영화촬영임을 미리 공지해 놓았고, 따라서 사람을 실제로 죽일 수 있는 공격을 지양하되 가장 화려한 공격을 사용하라고 언질을 주기는 했지만 그게 얼마나 통할지는 미지수였다. 사람이란 데이터만으로 분석되는 존재가 아니니까.

"곧 시나리오 2에 접어듭니다."

* * *

시나리오 1.

쇠사슬을 탑재한 이순신의 공격. 이 것은 영화로 치자면 예고편에 가까웠다. 얼스의 현직 중장조차도 모르는 무기인 쇠사슬이다. 당연히 대중들도 모르는 무기다. 호기심을 자극하고 관심을 끌어모으는데 적합하다고, 사황성주에게 설명했다.

시나리오 2.

영화로 치자면 도입부에 가깝다. 원래 영화에서, 예고편은 조금 강렬한 장면을 넣곤 한다. 궁금증을 자아내는 장면 혹은 하이라이트에 가까운 장면들을 포함시킨다. 그러나 도입부는 그렇지 않다. 상당히 많은 경우 -심지어 공포영화라 할지라도- 도입은 잔잔하고 평화롭게 시작하곤 한다. 사황성주의 입장에서 시나리오2는, 시나리오1에 비해선 어린아이 장난과도 같은 수준이었다.

"We'll destroy the devil!"

"The evil must be judged by the justice."

"Right now. Come on! Take weapons. Run!"

"Show our ability. You and We are glorious soldiers!

사황성주도 군인들의 말을 들었다. 윤석을 통해 내용은 이미 전달 받았다. 우리는 악마를 처단할 것이며 그 사악한 존재는 정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지금 당장 무기를 들고 돌격하라. 우리의 능력을 보여주자. 우리는 명예로운 군인들이다. 정확하게 기억은 못해도 대충 그런 느낌이라고 했다. 이 부분은 영화를 보여줄 때에 '자막 처리'라는 것을 통하여 내보낸다고 했다.

대중의 여론이란 이성보단 감성으로 움직일 때도 많은 법이다. 소위 말하는 '감성팔이'는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굉장히 유용한 수단이다. 지금 사황성주가 노리고 있는 것은 대중들의 지지이고, 민중들의 마음을 끌어내는데엔 감성을 자극하는 것만큼 훌륭한 것이 없다고 했다.

사황성주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 내용이었다. 분명 저 군인들은 약해 빠졌다. 삼류무사들이라고 해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대중들은 그걸 모른다. 그런 것 따윈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

"큭!"

다만 그 수가 1만에 달한다는 것이고, 얼스의 '과학기술'이라는 것으로 무장하고 있다. 그 무서운 호랑이 조차도 단 한방에 죽여버릴 수 있는 무기를 가진 얼스인들이 비장한 각오를 하고서 -여기엔 웅장한 배경음악이 깔린단다- 달려들고, 사황성주는 그들을 맞이하여 힘겹게 싸워 이긴다는 내용이다.

슈퍼페리온.

현실에선 대부분 엘리트 혹은 최상류층에 속한 사람들이자 유토피아 내의 군인들인 1만명의 유저들은 장렬하게 전사했다.

1만명의 유저가 몰살당했다. 그리고 그 1만명의 군인들을 지휘하던 중장인 '안졸리냐졸려'만이 사황성주 앞에 섰다.

그리고 대사를 읊었다.

"우리는 군인이다. 나는 군인이다. 내겐 주어진 임무가 있고, 나는 나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하여 마지막 피 한방울까지 흘릴 것이다. 대지를 물들인 1만명의 뜨거운 피를 나는 모른척 하지 않겠다!"

여기까지가 시나리오 2였다. 시나리오 2는 1만명의 슈퍼페리온 유저들과 중장인 윤석이 앞장서서 사황성주와 치열한 접근전을 펼치는 것이었다. 어차피 사황성주가 1만명의 유저들을 가볍게 몰살시킬 수 있다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시나리오 3으로 넘어가기 전에, 이 것이 영화촬영임을 강조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자-사황성주를 방심시키기 위한- 디딤돌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시나리오 2였다.

그런데 윤석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생각조차도 못했던 알림음이 들려왔다.

[띠링. 500억의 얼스인들이 중장 안졸리냐졸려를 위해 기원합니다.]

20억 중원인들의 지지를 받아 당나귀성자의 칭호를 받았다. 그리고 살아남은 천마교도들의 인정을 받아 천마 클래스를 얻었다.

그리고 지금, 얼스의 600억 가까운 npc들이 대피소에 숨어서 사황성주와의 세기의 결전을 숨 죽이고 보고 있는 이 순간에 500억 npc들이 감동했다.

[띠링. '전쟁영웅' 칭호가 생깁니다. 강제력을 동반한 칭호입니다. 거절할 수 없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칭호가 생김과 동시에, 한동안 신경쓰지 않고 있던 알림음들이 또다시 귓전을 강타했다.

[띠링. 충성심이 올랐습니다.]

[띠링. 충성심이 올랐습니다.]

[띠링. 충성심이 올랐습니다.]

충성심은 부하들 앞에서 무언가 멋져보이는 말을 하거나, 군인의 의무와 명예에 합당하다고 생각되는 말들을 할 때에 오르는 별로 효용성을 알 수 없는 괴상한 스탯이었다. 심지어 이 스탯은 스탯창에 나타나지도 않았다.(비슷한 내용으로 공적치가 있었는데, 공적치는 스탯창에 나타나기라도 한다.)

[띠링. '지휘관' 클래스가 생깁니다. 강제력을 동반한 클래스입니다. 거절할 수 없습니다.]

전쟁영웅의 칭호가 생겼고 지휘관 클래스가 생겼다. 거기에 강제력을 동반한 칭호와 클래스란다. 윤석이 여지껏 유토피아를 플레이해오면서 단 한번도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해괴한 경우였다.

사황성주가 중원의 민심을 끌어모으기 위해 영화를 촬영하고 있는데, 실시간으로 영화를 감상하는 건 얼스의 주민들이 되어버렸다. 물론 영화의 주인공은 사황성주가 아니라 얼스의 중장 안졸리냐졸려인 셈이었다.

'어...어라...?'

강제력을 동반한 칭호와 클래스가 난데없이 생겨났고.

그리고 세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적어도 안졸리냐졸려의 눈으로 본 세상은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 작품 후기 ============================

재주는 사황성주가 부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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