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플레이어-196화 (196/244)

00196  도둑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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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스에는 전 국민 대피령이 떨어졌다. 국지적인 대피령은 간간이 있어왔지만 이토록 대규모의 대피령은 처음이다. 전쟁과 같은 극한의 상황이 되면 결국 국민들이 의지할 수 있을 데라곤 정부밖에 없다.

이미 평상시에도 대피훈련이 되어 있고 대피시설이 워낙에 잘 갖추어져 있다보니, 큰 혼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피시설도 이미 과거와는 다르다. 자체 핵발전 시설은 물론이고지하수 펌핑 시설과 정수시설, 환기시설도 모두 갖추어져 있다. 쉐프의 만찬과 퀸사이즈의 침대는 없지만 생활하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을 정도다. 얼스의 과학문명은 단순히 군사기술에만 국한된 게 아니니까.

그리고 대피시설 내에는 실시간으로 바깥의 상황을 알 수 있는 영상장치 -현실로 치면 TV-도 마련되어 있었고 국민들은 방송에 눈과 귀를 기울였다.

- 중원의 최강자 중 한 명인 사황성주가 300여명의 병력을 이끌고 얼스로 향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습니다. 국민 여러분은 불편함을 조금만 감수해 주십시오.

중원의 최강자 사황성주. 그 이름이 주는 위압감은 어마어마했다. 사실상 얼스인들도 그에 대한 이야기만 전설처럼 많이 들어왔지 실제로 목격하거나 본 사람은 없었으니까. 네스호의 괴물처럼, 사황성주는 거의 전설에 가까운 존재였다.

방송에서는 계속해서 괜찮다며, 이미 이러한 상황을 가정한 시나리와 작전이 많이 준비되어 있다면서 국민들을 안심시켰다.

한편, 사황성주는 눈살을 찌푸렸다. 영화배우라는 것을 해보기 위하여 왔다. 이 것은 중원인들에게 정말로 잘 먹히는 도구다. 민중없는 무사는 존재할 수 없다. 아무리 사황성주가 경천동지할 무력을 가졌다고는 해도, 민중들이 만들어내는 쌀 없이는 살수가 없다. 무사들은 소모적인 일을 하는 존재들이다. 생산이 없으면 소모도 없다.

그런데 이 영화배우라는 것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놈은 이미 촬영을 마친 건가.'

이 영화를 찍는 행위를 촬영이라고 한다고 들었다. 사황성주는 은미와 함께 얼스에 도착했고 도착하자마자 당나귀 성자의 기척을 읽었다. 그러나 천마를 꺾을만큼의 기세를 가진 능력자는 없었다.

'내가 기세를 읽지 못할 리는 없을 거고.'

천마와 한바탕 드잡이질을 벌였다고 소문이 나긴 났는데 사황성주는 그 소문을 믿지 않았다. 그런 거대한 싸움이 일어난 것을 전혀 느끼지 못했었으니까. 만약, 정말로 그랬다면 천마가 당나귀성자라는 놈에게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패배했다는 것인데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천마나 자신 같은 초극고수들의 실력은 그야말로 종이한장 차이다. 정말로 미세한 실력차이가, 주위 환경의 아주 작은 영향을 받아서 아니면 신체 상태의 아주 미세한 영향을 받아서 승패가 갈리곤 한다.

'흠...'

사황성주는 당나귀성자가 소리소문도 없이 천마를 제압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사실상 윤석은 정말 소리소문도 없이 천마를 제압했지만. 사황성주가 그 것을 알 리는 만무하다.)

얼스에서 대표로 나온 것은 저번에 천마산을 공격했던 얼스의 중장이란 놈이었다. 중장은 약 1만에 달하는 병력과 함께 같이 나아와 가볍게 인사를 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중장이 데려온 병력들은 하나같이 오합지졸이었다. 사황성주를 견제하기 위하여 나온 세력이 겨우 1만여명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어이가 없을 지경인데 그 인원들은 훈련도 거의 안 되어 있는 애송이들이었다.

예전에 봤던 포나 스나, 소총 같은 경우는 그래도 '얼스인 치곤 제법 괜찮은'정도에 속했으나 지금은 완전히 '쓰레기 수준'이다. 그도 그럴것이 이 곳에 모인 군인들은 모두 유저들이다. 바로 슈퍼페리온 소속의 군인들이었다.

'저번에 왔을 때에 괜찮은 놈들로 골라왔던 건가...'

영화를 찍는다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당나귀 성자가 그랬던 것처럼 영웅적인 행위를 보여주면 된단다. 오늘의 내용은 얼스의 각종 무기들이 공격을 해올 것이고, 그 것을 막아내고 무찌르면 된단다.

당나귀 성자는 이미 끝내고 돌아갔다.

"약 20분 정도 촬영에 들어갈 겁니다."

"호오? 대화가 통하는군요?"

윤석은 내심 긴장을 많이 했다. 천마의 힘을 가지고 있는 윤석이다. 따라서 자신이 천마의 힘을 흡수했다는 것을 알아차리면, 아무래도 좀 복잡해질 것 같았다. 그러나 다행히 그 것을 눈치챈 것 같지는 않았다.

"대화가 통하는 것 뿐만 아니라... 천마심공의 힘까지 느껴지는데..."

사황성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번에 정보를 접했을 때, 천마가 마교인들에게 천마심공을 제한된 형태로 제공했다고 들은 적이 있다. 얼스의 중장이 천마의 힘을 일부나마 가지고 있다는 것이 놀랍기는 했으나, 당연히 천마의 수준은 아니었고 사황성주는 크게 문제삼지 않았다. 어차피 천마와 자신은 절대자의 위치에 있다는 것만 제외하면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어떻게 하다보니 얻게 됐습니다."

"천마가 워낙에 기행을 일삼는다 들었습니다. 이 정도는 놀랍지도 않죠."

당연히, 천마는 반발했다.

-네깟 놈에 비하겠냐!

사실상 알려지기로는 천마보다는 사황성주가 더 많은 기행을 일삼았다. 단순히 소문에 불과한 것들도 많았지만 어린아이 300여명을 잡아먹었다든가, 아침마다 5세 이하 여아의 소변을 받아마신다거나, 저녁마다 피로 목욕을 한다거나.

천마는, 천마산에 틀어박혀 있었기 때문에 보통 무시무시한, 실체를 알 수 없는 악마로 회자되곤 했지만 사황성주는 악마보다는 현실적인 폭군에 가깝게 묘사되곤 했었다.

어쨌거나 사황성주는 영화라는 것을 찍기 위해 얼스로 찾아왔다. 자존심 때문인지, 아니면 실제로 여유가 있기 때문인지 별로 위축된 모양새는 아니었다.

"한가지 팁...아. 그러니까 조언을 한 가지만 더 드리자면 최대한 화려하게 보여야 한다는 겁니다."

설명을 이었다.

"살초보다는 허초에 중점을 두시고 위력보다는 화려함에 집중하셔야 훨씬 멋진 영상이 만들어집니다. 민초들은 살초와 허초를 구분하지 못합니다. 정작 위력보다는 화려함에 눈이 멀곤 하죠. 사황성주님께서도 잘 아실거라 믿습니다. 그리고 적당히 시간을 끌어가면서 한 번 공격으로 끝낼 수 있는 거 두, 세번으로 나누어서 공격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조언은 실상 얼스의 전투기 조종사들을 위한 배려였다.(물론 윤석이 그들은 배려한 게 아니라, 상부에서 이렇게 말하라고 시킨 거다.)

"그럼, 시작합니다."

* * *

F-220K.

얼스가 자랑하는 전투기들 중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는 최신예 전투기다. 적어도 윤석은 그런 줄만 알았다. 그러나 F-220K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중원의 최강자인 사황성주를 상대하는 거다. 대외적으로 밝혀진 최고의 기종으로는 그 최강자를 상대하기 힘들거라고, 상부에서 판단을 내렸다. 얼스에서 비밀리에 육성되고 키워진 블랙호크 대대가 떴다.

블랙호크.

블랙호크는 구성이 약간 특이한 전투 대대였다. 8대로 이루어진 편대 두개가 합쳐져 대대 하나를 이룬다. 한 대대당 총 16대의 전투기가 포함된 전력이다. 보통 강한 무기라 하면 그 질량과 크기도 커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블랙호크에 포함된 전투기는 그렇지 않았다. 기체명 이순신. 가로 1.5미터, 세로 3미터. 높이 2미터의 초소형 기체였다. 대량학살이 목표가 아닌, 강한 소수의 개체를 상대하기 위해 개발된 기체들이었다.

작은 만큼 빠른 기체다. 이순신의 속도는 마하의 개념이 아니다. 거의 시속 30만KM에 근접하는 엄청난 속도를 자랑한다. 즉, 광속의 개념을 사용한다. 이 때 발생하는 엄청난 에너지 -공기와의 마찰만 생각하더라도-를 특별한 형태의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특수기술이 적용되어 있으며, 그 에너지는 이순신의 유일한 공격수단을 장전시키는 매개체가 된다.

즉, 기체의 속도 자체가 항공폭탄의 뇌관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되겠다. 항공폭탄이 투하되면 그 속도에 의해 터빈이 돌게 되고, 그 터빈이 일정 RPM에 이르면 뇌관을 작동시켜 폭탄을 터뜨린다.

이순신이 가진 공격수단은, 광속에 가까운 속도 에너지가 있어야만 장전이 되는 무기다. 그게 장점이자 단점이다. 광속을 낼 수 있는 기체는 제 아무리 얼스라고해도 몇 되지 않는다. 심지어 윤석은 오늘 이런 기체가 있는지 처음 알았다.

이순신이 가진 공격수단은 보통 주포라고 표현하는, 입자분쇄기다. 정식 명칭은 '쇠사슬'. 쇠사슬은 '파괴'에 중점을 둔 공격무기가 아니다. 파괴가 아닌 삭제에 중점을 둔 무기다.

선은 무수히 많은 점의 집합이다. 그 점 역시 또 무수히 많은 더 미세한 점들의 집합이다. 그 점들 역시 또 더욱 미세한 점들의 집합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물질은 -과학적 영역에서- 모두 질량을 가지고 있다. 질량이 있다는 소리는 그 질량을 이루는 어떤 미세한 입자가 있다는 거다. 그 입자를 쪼개고 또 쪼개고 또 쪼개고 계속해서 쪼개면, 결국 그 크기는 거의 0에 다다르게 된다.

크기(혹은 질량)를 x라고 한다면,

lim x = 0

x→0

이라는 뜻이다.

이 무수한 점들은 비록 무수히 많이 모여 하나의 물체를 형성하지만, 그 입자를 따로 떼어놓고 보면 '무'나 다름 없다.

여기서 기인한 것이 바로 입자분쇄포. 즉, 쇠사슬이다. 쇠사슬은 광속의 속도가 가지는 에너지로만 장전이 되어, 발사되는 특수한 에너지포로 그 물질이 닿는 모든 곳의 입자를 극도로 작게 분쇄시켜 버린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물체를 삭제하는 데 주위에는 큰 피해가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쇠사슬에 직접적으로 닿지만 않으면 된다.

이순신이 상공에서 대기했다. 평소라면 이렇듯 사황성주의 머리위에 떠올라 있을 수가 없다. 그러나 지금은 사황성주가 자신을 영화배우라고 생각하고 있고 현재의 상황을 영화촬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덕분에 작전의 위험도가 굉장히 낮아졌다.

가장 먼저 투입된 것은 무인 전투기였다. 윤석은 그 전투기들을 가장 화려한 방법으로 격추 시켜달라고 요청했다. 최신예 전투기인 -윤석이 그렇게 알고 있었던- F-220K조차도 격추시킬 능력이 있는 사황성주다. 무인전투기 정도는 쉽게 격추시킬 수 있다.

사황성주가 선 땅이 이글이글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발 밑으로 황금빛 거미줄이 생겨났다. 땅이 갈라졌다. 갈라진 땅 사이에서 황금빛 기류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흡사 지진이라도 난 듯, 세상 전체가 부들부들 떨었다.

사황성주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폭탄을 떨어뜨리는 무인전투기가 보였다.

"멸"

검지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땅이 황금빛으로 부글부글 끓고, 하늘에선 황금빛 폭죽이 터졌다. 매캐한 검은색 화염을 황금빛이 감싸안았다. 터졌던 전투기가 황금색 거대한 구체로 변했다가, 그 구체가 조금씩 작아지더니.

쿠과광!

굉음과 함께 터졌다. 순간적으로 세상이 번쩍했다. 여지껏 존재하지도 않았던 거대한 번개가 내리친 것 같았다.

하늘 위에 떠서 사황성주를 공격하던 18대의 무인전투기가 하나하나 차례로 터져버렸다. 마치 도미노처럼 말이다.

무인전투기가 물론 그냥 버려도 될만큼 싸구려는 아니지만 그래도 사황성주라는 거물을 낚으려면 어느정도 피해는 감수해야 한다. 상부에선 인명피해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인데, 인명 피해도 아니고 물적 피해라면 얼마든지 감수하려는 듯 했다.

무인전투기들이 터져나가고 그 자리엔 황룡이 포효하고선 하늘에 유유히 떠다녔다. 그 크기가 무려 12KM가 넘었다. 눈동자의 크기만 해도 어지간한 빌딩보다 컸다.

한편, 대피소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얼스 주민들은 공포에 사로잡혔다.

"저, 저게 사, 사황성주..."

사황성주. 사황성주. 말로만 들었지 이건 영화보다 더하지 않은가. 하늘을 가득 덮은 거대한 황룡과 무인 전투기 18대를 장난치듯 가볍게 폭파시켜버렸다. 손가락 하나로 하늘을 가리키며 '멸'이라고 한 마디를 했을 뿐이었다.

방송에서는 계속해서 자막으로 국민들을 안심시키려 했지만 동요는 조금씩 커져갔다. 주민들은 공포에 떨었고 유저들은 입을 쩍 벌렸다.

"완전히 괴물이잖아..."

"뭐냐 저게? 아무리 NPC여도 저건 사기아냐?"

게임방송을 통해 보는 것이든, 유토피아 내에 접속해 있든, 그도 아니면 슈퍼페리온 처럼 근접거리에서 직접 지켜보든. 사황성주의 무위는 가히 상상초월이었다.

"저런 걸 어떻게 이기지?"

"기다려봐. 얼스에도 비밀무기 같은 거 있겠지. 무인전투기야 그냥 현실에도 널리고 널렸는데 얼스에선 장난감 아니겠냐?"

"그런가..."

거짓말 조금 보태면 장난감 수준 맞다. 이제 진짜가 들어가야 한다. F-220K는 작전의 지나친 위험도 때문에 뺐다. 다만 대중에 단 한번도 공개된 적이 없는 기체. 이순신이 출격하게 됐다.

대피소의 화면에, 그동안 극비리에 감춰져 있던 얼스의 무기 하나가 대중에 공개됐다. 제원 중 일부를 발췌하면 다음과 같았다.

기체명: 이순신. 극비리 프로젝트의 산물로 태어난 대인전 최신예 전투기종.

크기: 1.5 X 3 X 2 (M)

장착무기: 쇠사슬

============================ 작품 후기 ============================

정답은 '먼치킨 진행도'였습니다.

알아맞추신 분께 소정의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조만간 공개됩니다.

영장 말씀하신 분들 있는데 저 당당한 예비역입니다 ㅡㅡ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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