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플레이어-194화 (194/244)

00194  도둑왕  =========================================================================

* * *

무팀은 그 나름대로 모두가 고수 소리를 듣는 유저들이다. 윤석과 같은 특이한 케이스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고수소리를 들으려면 셋 중에 하나다. 하나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케이스. 또 하나는 타고난 감각과 센스가 좋은 경우. 또 하나는 운이 굉장히 좋은 경우. 그 중에서 압도적으로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케이스인데, 사실상 이렇게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나면 그 나름대로 얻는 것들도 많다.

고수소리를 듣는 무팀의 유저들답게, 적어도 유토피아와 관련한 지식이라든가 노하우, 각종 퀘스트에 대한 접근 방식과 공략방식에 대해 다른 유저들보다 훨씬 뛰어난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황성주를 죽이는 것에 대한 뾰족한 방안은 좀처럼 떠오르질 않았다. 애초에 사황성주같은 npc는 천외천의 존재다. 윤석이 아니었더라면 절대로 건드릴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다.

윤석이 천마의 힘을 온전히 사용한다고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만큼의 강한 npc인데 -사실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천마와 사황성주를 거의 동급으로 쳤다. 천마의 실체를 모르니까.-윤석은 그 힘을 온전히 사용하지도 못한다. 그런데 무팀의 유저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천마심공으로 강화된 마교의 장로npc라면 사황성주를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꽤 괴롭힐 수는 있지 않습니까?"

"괴롭게 할 수는 있겠죠.그런데 왜요?"

"그... 사장님께서 예전에 타대륙인들을 위한 무기들은 따로이 제작되어 있다고 말씀하셨었는데..."

유저의 말은 이러했다. 먼저 마교의 상급 npc들로 사황성주의 발걸음을 묶고 신경을 교란시킨다. 그리고 얼스의 핵 중에서도 중원인에게 특히 효과를 발휘하는 핵을 폭파시켜서 윤석과 함께 동귀어진 하는 방법을 말해주었다.

윤석이야 한 번 죽었다가 3일이면 다시 살아난다. 그러나 사황성주는 아니다.

"게다가 그런식으로 일을 꾸미면 정의맹은 명분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그건 천마교의 단독소행이니까요."

사실상 서로간의 전쟁으로 인해 철천지 원수처럼 되어 버린 정파와 마교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랬다. 그렇다보니 마교 npc의 힘을 빌려 사황성주를 견제한다면 정의맹은 명분으로부터도 어느정도 자유로울 수 있게 된다. 물론, 경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은 물어야겠지만.

"천마교의 얼스의 공동 합작품이라..."

괜찮은 것 같다. 천마심공으로 단련된 마교 npc와 천마의 힘을 얻은 자신. 그리고 거기에 만약 얼스에 정말로 그런 무기가 있다면 가능성은 있을 것 같다. 윤석은 먼저 유토피아에 접속해서 알아봤다.

"글쎄... 그건 아무래도 기밀을 요하는 것들이라..."

슐터는 크흠... 헛기침을 했다. 이미 안졸리냐졸려와는 한 배를 탄 사이라고 생각은 한다. 천마와도 오래 전에 손을 잡았다. 그러나 얼스에는 기밀들이 있다. 모든 정부와 군부가 그렇다. 표면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것들은 드러내어 힘을 과시하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실질적인 힘들을 숨기는 경우도 있다.

"천마와 함께 사황성주를 없애려고 생각 중입니다."

"뭐?"

슐터는 눈을 크게 떴다. 사황성주를 없앤단다. 사황성주가 누구인가. 천마. 무림맹주 -지금은 없지만- 와 더불어 당대의 최강의 무인이 아니던가.

"아무래도 시간이 좀 필요하겠네."

슐터는 당장에 인가를 내주지는 않았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 아무리 전쟁영웅인 대장군이라고 해도 모든 일을 제 멋대로 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며칠이 지났다. 슐터가 윤석을 불렀다.

"대통령께서 특별히 명령하신 내용을 전달하겠네."

* * *

얼스에는 군인이 많다. 알려진 바로 군인만 60억에 이른다.

그렇게 사람이 많다는 건, 그 안에서 특출난 인재가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뜻이 된다. 확실히 군에는 인재가 많았고 단순히 인재 차원이 아닌 천재라 불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윤석의 입장에서야 어차피 npc지만 어쨌거나 한 npc의 제안 때문에 윤석은 원래 세웠던 계획을 완전히 뒤바꿔야하나, 하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원래는 얼스의 비밀무기쯤 되는 어떤 신형 무기의 사용을 인가 받아서 사황성주와 동귀어진 하려고 했다. 그 일은, 천마와 얼스인이 저지른 게 될 것이고 그 안에서 폭발에 휩쓸렸던 당나귀 성자가 사흘 후 다시 부활함으로써 영웅으로써의 입지를 확실하게 하는 한편, 수희에게 힘을 주어 사황성주의 자리를 지키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 작전에는 반드시 필요한 가정이 있었다.

바로 ‘사황성주를 죽일 수 있을 만한 무기’다. 그런 무기가 있는지는 중장인 윤석도 잘 모른다. 아마 있을 거라고 막연히 예상만 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만약 있다 하더라도 그 것이 과연 소형화가 이루어져있는지도 의문이다. 소형화가 이루어져있지 않으면 포탈게이트를 통과할 수 없다. 소형화 시키지 않는 방법이라면, 바로 유저에게 귀속시켜주는 것 뿐인데 사황성주를 죽일 수 있는 위력을 지닌 무기를 과연 귀속시켜 줄지는 의문이다.

천마의 말에서 깨달았듯, 윤석은 기존 세력에 반발할 수 없을 만큼의 적당한 힘만 귀속 받았다. 만약 상부에 불만을 품게 되더라도 어찌할 수 없는, 철저히 계산된 병력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사황성주를 죽일 수 있는 무기를 주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건의를 올려 보았다.

상부에서는 의견이 엇갈렸단다. 사황성주를 죽이는데 반대하는 것이 반이고, 찬성하는 것이 반이었다. 죽여야 한다와 죽이면 안된다가 팽팽히 맞섰단다. 사황성주를 죽임으로써 저쪽은 더욱 혼란에 빠져들 것이고 그 틈을 타 이쪽의 세력을 넓힐 수 있다는 것이 주된 주장이었다. 한편, 죽이면 안된다는 입장은 사황성주가 살아 있어야 저쪽이 안정된 상태가 유지될 수 있고 저쪽인 안정되어 있어야만 이 쪽에선 적이 생기게 되는 거라는 논리를 펼쳤다.

윤석도 이미 알아차렸듯, 얼스의 상층부는 평화를 바라지 않았다. 이쪽에 막대한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적당한 수준의 긴장상태는 그들이 원하는 바다.

그러던 차, npc 중 하나가 재미있는 의견을 표출했다. 그 색다른 의견은 굉장히 파격적인 것이어서 처음엔 모두가 비웃었다. 그랬다가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어쩌면 그 것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의견이 조금씩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윤석이 은미에게 물었다. 사실상 큰 기대를 하고 있지는 않았다.

“가능하겠어?”

“아마... 가능할 것 같아요.”

“그래?”

“잘 구슬린다면...”

은미가 머리를 쓰는가 싶더니 이내 손뼉을 한 번 쳤다.

“아! 오빠, 아, 아니. 사장님!”

“그냥 편한대로 불러.”

“어, 어쨌든요...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좋은 생각?”

“아마 먹힐 거 같아요.”

은미가 방금 떠올린 자신의 생각을 읊기 시작했다. 은미의 말 덕택에, 계획이 조금 구체성을 갖게 되었다.

“어차피 해서 손해볼 건 없잖아?”

“맞아요. 만약 실패한다면... 그 다음 사장님이 준비한 그 신형 무기...? 같이 죽는 그 방법을 실행해도 될 거에요.”

“그렇네. 그럼 당장 작업에 들어가자.”

“네!”

윤석은 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사실상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윙카가 개발되었고 플라즈마 기관포가 상용화된, 과학문명이 눈부시게 발달한 얼스다. 3D 홀로그램 영상 장치만으로도 즉석에서 현실감 넘치는 영화도 찍을 수 있다. 그런 곳이 바로 얼스다.

얼스의 과학 기술은 단순히 무기분야에만 치중된 것이 아니다. 사회가 발전하면 발전 할수록, 인간의 문명이 윤택해지면 윤택해질수록 인간은 ‘문화’와 ‘여흥’에 신경을 쓰게 된다. 여유가 없을 때엔 생존에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지만 여유가 생기게 되면 여가를 즐기게 된다. 얼스인들은 문화생활을 상당히 열심히 즐기는 편이었는데, 따라서 영화산업이 굉장히 발달했다.

CG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낼 수 있을 정도다. CG의 수준을 넘어섰다. 컴퓨터 그래픽이 아니라 크리에이트 그래픽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전문 영화제작자들과 컴퓨터 그래픽 엔지니어들을 초빙하여 만든 당나귀성자 홍보 영상은 그야말로 보는 이를 압도했다. 주된 내용은 바로 천마와 70일간에 걸친 화려한 결투와 그 이후 이어지는 기적같은 선행. 내용 자체는 별 거 없다. 다만 얼스의 엔지니어와 기술자, 전문가들이 합심하여 만든 것이니만큼 그 퀄리티는 상상을 초월했다. 사황성주가 자신의 모습을 보며 감탄했던 홀로그램 영상 재생장치의 영상따위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다.

그 영상이 사도들을 통하여 중원 곳곳에 뿌려졌다. 이미 당나귀성자를 거의 신 수준으로 모시는 NPC들도 많다. 그만큼 정의맹 맹주 당나귀 성자는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중이었다. 거기에 더해 이런 어마어마한 영상이 뿌려지자 모두들 입을 다물 줄 몰랐다.

그들로서는 완전히 처음 접하는 신문명인데, 하필이면 그 신문명이 얼스의 내노라하는 전문가들이 모여 만든 초특급 영상이다. 컬쳐쇼크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은미상단은 이미 마교와 정파, 사파를 가리지 않는 거대 네트워크망을 구축했다. 독자적인 정보세력은 물론이고 -SC컴퍼니를 포함해서- 각종 정보단체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거의 갑처럼 힘을 행사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이 영상을 뿌리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정파, 사파를 가리지 않고 곳곳에 영상이 흘러들어갔다. 처음에 NPC들은 영상을 보고서 집에 숨어 들어가거나 하늘이 진노했다면서 벌벌 떨었을 정도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히 만들어진 영상이며, 정의맹 맹주의 의협심에 감동한 얼스에서 특사를 보내 특별히 제작한 당나귀성자의 모습이라고 정의맹에서 공식발표를 하고나니 겁 먹었던 민중들은 당나귀 성자에게 더욱 열렬한 지지를 보내게 되었다.

한편, 사황성주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도 봤다. 당나귀 성자가 천마와 싸우는 그 영상을. 알 수 있었다. 천마는 저런 해괴한 무공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황성주의 눈으로 보기엔 정말 어처구니 없는 싸움 광경이었다. 실초와 허초를 쓰는 게 아니라, 전부다 허초 뿐이었다. 천마쯤 되면 당연히 효율적으로 싸울 것일진대 움직임 자체가 허황됐다. 저런 움직임들은 하수나 중수들이 자신의 실력을 뽐내고 싶어서 하는, 하등 쓸데없는 움직임들이었다.

그러나 단순히 모습만 놓고본다면 확실히 멋있긴 했다. 자신의 위대함을 증명해보였던 영상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였다. 거대한 해일을 홀로 막아내고 엄청나게 커다란 황룡을 구현해내어 천마를 무찔렀던 그 영상이 굉장히 초라하게 보였다.

“정의맹 맹주와의 만남은 언제로 잡혔지?”

“아직 잡히지 않았습니다. 정의맹에서 답변이 오는데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흠...”

사황성주는 다리를 꼬고 앉았다. 오른손으로 턱을 괴었다. 무언가 생각에 빠진 듯한 모습이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나서 그가 말했다.

“은미상단주.”

“네?”

“얼스와도 어느 정도 교류를 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그렇습니다. 상인은 이익을 좇는 집...”

“아. 그런 거야 아무래도 상관 없지요. 다만, 저런 움직이는 그림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좀 알고 싶은데...그런 기계가 있다면 구입할 의향도 있고.”

기계가 있다고 만들어지는 거 아니다. 전문 엔지니어들과 기술자들이 붙어서 최대한 화려하게 구현해내야 하는 거다.

은미가 속으로 만세를 외쳤다. 1단계 성공이다.

“당나귀 성자의 허황된 무용담을 만들어낸 그 것은, 얼스만이 가지고 있는 기술입니다. 그 것은 단순히 산다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얼스에서도 특별한 몇몇 전문가들이 합심하여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미는 살짝 뜸을 들였다.

“당나귀 성자도 출연하였는데 사황성주께서도 당연히 출연하실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출연?”

“그렇습니다. 저 것은 영화라고 하는 것입니다. 당나귀성자가 바로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이지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군.”

은미가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요지는 간단했다.

영화에는 주인공이 필요하다. 이번 영화의 주인공은 바로 당나귀성자였고 그것에 중원인들이 열광하고 있다. 사황성주도 그 영화에 출연할 자격이 충분히 있다. 의사만 있다면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얼스와 접촉해보겠다.

그 때, 긴급 보고가 올라왔다.

“성주님. 당나귀 성자가 300여명의 소수 병력만 데리고 포탈게이트로 이동하는 것이 발견 되었습니다. 목적지는 얼스라 짐작 됩니다. 첩자를 붙여 놓았습니다.”

사황성주가 씨익 웃었다.

“첩자를 붙였다라...”

당나귀 성자. 사황성주도 그 성자란 놈을 모른다. 그러나 그 놈이 정말로 천마를 무찔렀고 -천마가 그토록 모욕을 당했는데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것을 보면 어쩌면 사실일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 정의맹을 이끄는 맹주라면 첩자가 가까이 붙을 수 없다.

그런데 첩자가 가까이 붙었다는 건,

“내게 보여주겠다는 건가?”

일부러 살려두고 있다는 뜻이다.

사황성주의 어깨가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그 놈은 ‘영화 촬영’이라는 해괴한 짓을 한다고 했다. 그 것의 주인공이고, 그를 위해 얼스까지 넘어가기를 마다하지 않는단다. 그리고 여 보라는 듯 당당하게 포탈게이트를 탔다. 마치 얼스로 넘어가는 것 정도는 전혀 두렵지 않다는 듯 말이다.

사황성주가 말했다.

“은미상단주. 나를 위해 일을 좀 해줘야겠소.”

============================ 작품 후기 ============================

영화배우 시켜죠요 뿌잉뿌잉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