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93 도둑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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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은 이를 갈았다. 그래도 동생 앞에서 욕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뱃속에 새로운 생명이 잉태되어 자라고 있단다. 애초에 윤석이 열 받은 이유도 동생을 아끼고 사랑해서다. 아기가 자라고 있다는데 태교에 악영향을 줄 수는 없다. 윤석은 한참이나 쉼 호흡을 하고 나서야 겨우 마음이 진정 되었다.
윤석은 침대에 걸터 앉고서 손가락으로 자신의 옆자리를 쿡쿡 찔렀다. 수희는 윤석의 눈치를 살피면서 엉거주춤 걸어와 조심스레 옆에 앉았다. 오늘따라 굉장히 조신해졌다.
“아직 엄마 아빠 한테는 말 안했어.”
“아시면 까무러칠걸. 넌 도대체 생각이 있는... 아니, 아니지. 어쨌든 얼마나 됐어?”
“3주...”
연희동을 살기 좋은 동네로 탈바꿈 시키는 중인데, 그 혜택을 정작 자신이 아닌 동생이 먼저 보게 될 것 같다. 온갖 사회기반 시설들이 속속들이 들어서고 있고 산모들을 위한 시설도 들어섰다. 물론 다른 곳보다 월등한 시설임에도 불구하고 비용은 비싸지 않았다.
윤석이 비록 한국 전체를 먹여 살릴 수는 없지만 연희동 정도의 작은 규모의 마을(?)은 얼마든지 카타르화시킬 수 있다. 참고로 설명하면 카타르는 국민 전체가 세금을 내지 않으며, 세금을 내기는커녕 태어나면서부터 연봉 1억의 고소득자다. 따지고 보면 윤석은 석유왕 부럽지 않다. 왜 석유를 가진 나라가 부자가 되었느냐고 묻는다면 그만큼 이 세상에서 석유를 필요로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 코드의 수요 역시 그에 못지 않았고 전 세계인들을 상대로 장사를 벌이는 윤석이다. 한 학교에 한 달 1000억씩 때려부어도 전혀 문제 없을 정도다.
어쨌거나 연희동은 서울의 중심 메카로 떠오르고 있으며 가장 살기 좋은 동네로 변하고 있다. 수희가 자식을 낳고나서 2~3년 정도만 지나면 전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가 될 지도 모를 일이다.
“호,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나 안 지울거야!”
윤석이 인상을 찡그리고 수희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으려다가, 다시금 뱃속에 새로운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걸 자각하고는 손을 내렸다. 오빠의 꿀밤에 얻어맞을 것을 예상했던 수희는 어깨를 잔뜩 움츠렸다가 눈을 조심스레 떴다.
“안 때리네?”
“지우긴 뭘 지워.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결혼해야지 뭐.”
“지, 진짜?”
수희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이렇게 쉽게 허락이 떨어질지 몰랐다. 사실상 집안의 가장은 윤석이나 다름 없었고 오빠만 잘 구슬리면 ㅡ어차피 언젠가 설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간단하게 될지는 몰랐다.ㅡ 결혼까지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이씨... 너 졸업하면 주려고 했었는데.”
윤석은 그 자리에서 수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간단하게 이런 저런 내용을 지시했다.
“무슨 말이야? 떡볶이 회사라니?”
“너는 애만 떡하니 가지면 결혼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
윤석의 동생쯤 되면 그냥 결혼하면 된다. 혼수 걱정이나 결혼 비용 같은 것에 대한 고려는 할 가치조차 없는 거다. 수희는 그냥 동생도 아니고 윤석이 매우 아끼는 동생이다.
“그, 그건 아니지만...”
“민혁이 이 개...아니, 민혁이 이 아름다운 친구가 아무 계획도 없이 그랬을 거라고는 생각 안 하지만...”
그랬다가도 이내 다시 얼굴이 붉어져 씩씩댔다. 이제 갓 22살에 불과한 어린 동생을,
‘아오 이 개 씨팔 좆 같은 새끼!’
그 동생을 임신시켜버렸다. 이건 대놓고 결혼하겠다 시위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겠느냔 말이다.
“후...”
윤석은 조울증에 걸린 사람처럼 감정주체를 제대로 못하다가 말을 이었다.
“아무리 그 놈이 유토매니아 이사여도 네가 집에서 띵가띵가 놀아도 상관 없다고 해도 말야. 집안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려면 경제력이 있어야 한다는 거야. 원래 너 졸업선물로 주려고 한건데, 미리 줄게.”
떡볶이 기업을 하나 인수했다. 기존의 운영방식을 그대로 두고 경영자들도 그대로 둔 채 회사만 사온 거다. 졸업 선물로 주려고 했다가 그 계획을 조금 앞당기기로 했다.
“너 좋아하는 떡볶이 실컷 먹고, 그리고... 부모님한테는 내가 말씀드릴 테니까...”
수희의 얼굴이 밝아졌다. 드디어 원하고 원하던 말이 나온 셈이다. 간만에 오빠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윤석을 와락 부둥켜안았다.
“사랑해 오빠.”
“저리 비켜. 심란하니까.”
“사랑한다니까?”
“좀 떨어져.”
윤석이 주먹을 들어올리고 나서야 수희는 윤석에게서 떨어졌다. 약조 받아내는 걸 잊지 않았다.
“엄마 아빠한텐 꼭 말해줘야 해?”
* * *
현실과 게임은 다르다. 게임에선 건물 짓는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는다. 연희동을 살기 좋은 동네로 만드는 데엔 자본만 필요한 게 아니고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그러나 게임은 아니다. 금방금방 원하는 것을 만들 수 있다. 분명 그래야만 했다.
‘역시... 그런 건가?’
이 곳은 천마의 성지다. 얼스로부터 수십만의 인구가 이동해와서 최신식 건물을 올리고 있는 중이다. 건물만 있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상하수 시설은 물론이고 발전소도 건립해야만 한다. 사회기반시설을 하나부터 열까지 차근차근 계획을 세워야만 한다.
실상 계획만 세우면 금방금방 모든 것이 될 줄 알았는데 현실은 아니었다. 건물을 올리는 속도가 현실과 비교해서 그리 빠르지 않았다. 과학기술이 훨씬 발전했고, 그에 따른 속도증가는 있을지언정 ‘자유무역지대’나 ‘유저의 땅’만큼 뚝딱뚝딱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다.
은미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원래부터 npc들의 땅으로 지정되어 있는 곳에 건물을 올리려고 하면 그렇더라구요. 시스템상으로 npc구역하고 유저들 구역이 나누어져 있는 것 같아요.”
“그래?”
“빠르게 건물을 올리고 유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공간은 상당히 한정적 이더라구요. 뭐... 솔직히 한정적이라고는 해도 워낙에 규모가 큰 곳 이다보니 아무도 신경도 안 쓰지만요. 저희는 그냥 편의상 저희가 사용할 수 있는 땅을 랜드라고 부르고 있어요. 상인들은 랜드와 비랜드 지역 구분을 확실하게 하는 편이에요.”
“흠...”
유저들의 세계와 npc들의 세계는 같기는 같은데 약간 다른 느낌이다. npc가 인벤토리를 사용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 그 외에도 npc는 한 번 죽으면 끝이지만 유저들은 계속 살아난다. 그 것에 별로 위화감을 가져본 적이 없고, 아마 모든 사람들이 그럴 거다. 그거야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다만, 빨리빨리 근성을 가진 한국사람답게 윤석이 답답해하는 것. 그게 문제다.
“무림맹과 사황성측에서도 얼스인들이 많이 유입되었다는 걸 파악했어요. 심지어 사황성은 저번에 천마가 병력을 이끌고 ‘유저들의 무림맹’을 쓸어버렸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어요. 덕분에 지금 보이지 않는 비상체제에요.”
“비상체제라...”
역시 사황성주다. 증거를 남기지 않는다고 했는데 천마의 움직임을 자리에 앉아서 읽었나보다. 만약 정말로 천마라면 기세를 숨길 수도 있었겠지만 윤석은 천마가 아니다. 아직 그 힘을 온전히 얻지 못했다.
“덕분에 민심은 더욱 흉흉해졌어요. 저번에 며칠동안 폭탄세례를 쏟아부으셨잖아요? 하늘의 재앙이라든가... 뭐 그런식으로 소문이 와전되고 있더라구요.”
“그래?”
“그 덕분에 당나귀성자의 위명은 더욱 높아지고 있구요.”
윤석은 킥, 한 번 웃었다. 당나귀 성자. 말도 안 된다. 실체 없는 영웅에 왜 그렇게 열광하는 건지 모르겠다만, 어쨌든 좋은 게 좋은 거다.
“무림맹은 와해됐잖아?”
“그렇죠. 사실상 저희들 지원이 없으면 정파는 재건이 불가능할 정도에요. 민심이 이미 돌아섰거든요. 민심을 얻지 못한 무사세력은 사실상 죽었다고 봐도 무방해요.”
“그럼 무림맹을 대체할 뭔가를 만들면 되는 것 아니겠어?”
“대체할 뭔가요?”
“글세.... 이름은 네가 알아서 정하도록 하고, 무림맹에 준하는 조직을 만들면 되지.”
까짓 거 천마도 했는데 무림맹주라고 못할 쏘냐. 물론 무림맹주라는 이름이야 바뀌겠지만 실질적으로 정파를 다스리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알겠어요.”
수많은 군웅들이 영웅을 원한다. 마교와의 전쟁으로 삶이 피폐해졌고 민심은 흉흉했다. 그러한 가운데 지도자가 된다는 건 어쩌면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는 거다. 민중이 원하는 영웅이 되었을 때엔 칭송받지만 그렇지 못했을 때엔 나락으로 떨어지는 수가 있다.
정파의 세력이 이토록 약화 되었을 때에 그 수장을 자처한다면 마교 혹은 사황성의 누군가에게 쥐도 새도 모르게 암살당할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거다. 지금 당장은 그럴 여력이 있는 세력이 없었다.
“천마가 무림맹주 하지 말란 법 없잖아? 신분이야 뭐... 당나귀 성자면 되는 거고.”
당나귀 성자가 전면에 나서서 정파의 민심을 끌어 모으고 힘을 모은다. 자본력은 이미 차고 넘친다. 그리고 군사력 역시 양호한 수준이다.
예전과는 세력구도가 바뀌었다. 예전에는 3강 체제였다. 그러나 이 중 2강이 전쟁으로 인해 약해졌다. 1강만이 본래의 세력을 유지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 상황에서 약해진 2강을 다스리게 된다는 건, 본래 힘을 유지하고 있는 1강의 공세에도 버텨볼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냥 마교 npc도 아니고 천마심공으로 강화된 마교 npc들이 있고, 민심을 등에 업은 당나귀성자가 있고, 역시 천마심공으로 강화된 얼스의 군인과 제 8전투단, 18함대가 있다. 이 정도면 전면에 나서도 되지 않겠냐는 것이 윤석의 계산이었다.
이렇게 해서 무림에 정의맹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기존의 무림맹과 같은데 이름만 바뀌었다고 보면 된다. 은미상단의 지원을 받고 있는 수많은 정파세력들이 정의맹을 지지했고 마교와 사파의 기세에 눌려있던 무사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봐. 그거 들었어?”
“뭐?”
“이번에 정의맹이란 곳이 새로 생긴다더군.”
“그게 뭐? 툭하면 쌈박질이나 하는 놈들 아닌가?”
“그런데 정의맹주님이 당나귀성자님이라는 거야.”
“에이 이 친구! 농은 그만 하게. 당나귀 성자님은 여리여리한 중년인이라고 들었네!”
당나귀 성자의 모습은 지역마다 각양각색이다. 어차피 실체를 본 사람이 없다보니, 그에 대한 소문이 아무렇게나 퍼져나갔다.
“이 친구 소문에 완전히 어둡구만!”
저잣거리에서 소문을 들은 당칠은 신이 나서 이야기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당나귀성자님이 실은 천마를 무찔렀대.”
“이 친구 완전히 실성했구만?”
“아냐 정말이야. 그래서 무림맹에서 천마교에 쳐들어갔을 때 코빼기도 비추지 못했다는 거야. 천마가 워낙에 심하게 다쳐놔서 말야. 당나귀성자님이 없었으면 아마 무림맹 놈들은 뼈도 못 추렸을 걸?”
두 가지 소문이 퍼졌다. 하나는 정의맹 맹주가 바로 ‘당나귀성자’이고 그 당나귀성자가 천마를 꺾었다는 내용이다.
그 두 인물이 동일인물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당나귀성자이자 천마. 그리고 정의맹주인 안졸리냐졸려는 호화스러운 만찬을 준비했다. 거기에 이례적으로 ?기존의 무림맹은 유저들을 거의 신경 쓰지도 않았다- 유저들을 대상으로 한 비무대회까지 열었다. 1위에게는 벽력검법와 1억 코드가 주어지는, 총 상금 규모만 10억 코드가 넘는 큰 규모의 대회였다.
덕분에 정의맹은 유저들 사이에서도 큰 이슈가 되었다. 비무대회를 여는 이유는 간단했다. 진짜 쓸모있는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서다. 일반적으로 상급 유저는 상급 NPC를 이길 수 없으나, 윤석 같은 예외적인 케이스가 있다. 전체 이용자 20억이 넘는 이 거대한 세상에서 이러한 케이스가 없다고 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정의맹의 발호를 홍보도 할 겸, 쓸만한 인재도 끌어모을 겸 행사를 주최했다.
그러나 비무대회에서는 딱히 쓸만한 인재를 찾지 못했고, 천마의 신체를 얻은 윤석의 눈엔 별로 대단할 것 없는 유저들이 상을 타가게 됐다. 어쨌든 정의맹은 성공적으로 발호를 마쳤다.
한편, 사황성주는 고개를 갸웃했다.
“당나귀성자가 천마를 꺾었다고?”
“그렇다고 합니다.”
“그럴 리가. 근래에 천마는 그 힘을 사용한 적이 없는데.”
저번에 얼스의 중장이란 놈을 공격할 때 외엔 잠잠하다. 천마는 강력하다. 사황성주도 그건 인정한다. 만약 천마가 누군가와 싸워서 크게 다쳤다면, 최소한 거대한 싸움이 일어났을 거고 그렇다면 자신이 알아차릴 수 있어야만 했다.
“한 번 보고 싶은데. 당나귀 성자라는 놈.”
그 때, 사황성의 회의에도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 은미상단의 상단주 은미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만나게 해드릴 수 있습니다.”
“호오?”
“저희는 상단입니다. 사황성, 마교, 무림맹. 그 어디라도 이익이 있으면 움직이는 집단입니다.”
“그건 알지요. 알아. 무슨 얘기를 하려고 상단주가 그렇게 뜸을 들이는지 모르겠군.”
어차피 사황성주도 눈과 귀가 있다. 은미상단이 정파쪽에도 세력을 뻗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이미 파악하고 있다. 다만, 하청유니온의 형태로 ?현실에서의 계약이 주를 이루는- 사황성주의 예상보다도 훨씬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을 모를 뿐이다.
“정파에서의 활동으로 인하여 당나귀성자와도 접촉할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인 연락 역시 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사황성주는 피식 웃었다.
“은미상단주의 제안은 고맙지만, 굳이 돌아갈 필요는 없지. 비록 세력을 달리하고 있다지만 굳이 못 만날 이유도 없지 않은가?”
사황성주는 즉석에서 명령을 내렸다.
“정의맹 맹주에게 축하서신을 보내고 근 시일 내에 직접 찾아 가겠다 전해. 정확한 날짜는 알아서들 정하고.”
사황성주의 결정은 어찌보면 옳은 결정이다. 정파세력은 뒤에서 협잡질을 벌일지언정 앞에서는 체면을 차려야 한다. 약간은 적대에 가까운 세력이라지만 그렇다고 죽도록 적대시하는 사이도 아니다. 수장이 수장을 만나러 간다면, 아예 대놓고 가는 것이 낫다.
서신을 보내고 날짜를 잡아, 축하를 위해, 그것도 공식적으로 정의맹주를 만난다고 한다면 정파에서도 더러운 짓은 못할 거다. 그건 예상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어떤 놈일까...”
사황성주가 기분좋은 듯 웃었다.
한편, 윤석은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집행관리부의 부팀장급 이상의 인사는 물론이고 각 팀의 책사역할을 맡고 있는 유저들도 모였다.
사장인 윤석이 입을 열었다.
“사황성주가 찾아온다는데 어떻게 죽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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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그게 뭐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