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92 도둑왕 =========================================================================
* * *
생각해보니 중원일통이란 단순히 무력으로만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주랑이 핵심을 정확하게 짚어줬다. 주랑은 혹시나 윤석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건 아닐까하고 정말 조심스레, 자기도 잘 모르는데 이렇지 않느냐는 식으로 윤석에게 질문을 던지는 형태로 힌트를 주었다. 주랑이 ‘이렇게 하세요.’라고 말을 해도 윤석은 주랑이 전혀 밉지가 않다. 겨우 그런 걸로 자존심 상하는 관계가 아니다. 그럴 리 없겠지만 막말로 주랑이 윤석더러 ‘나가 죽어’라고 말하면 적어도 죽는 시늉까지는 한다.
어쨌거나 현재까지의 상황을 종합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중원의 삼대세력>
1. 마교
2. 정파(무림맹)
3. 사파(사황성)
4. 그 외 세력
1번은 완전히 접수했다고 해도 된다. 아직 현대식으로 개발을 하지 못했을 뿐이다. 슐터의 재가도 떨어졌고 천마가 2만년 간 모아왔던 보물들을 얻었다. 이미 그 가치를 따지기를 포기했을 정도의 막대한 재화였다.
현실에서 세계 최고의 갑부 혹은 갑부 가문을 뽑는다면 중동의 어느 석유왕이나, 로스차일드가를 뽑을 지도 모르겠다. 혹자는 로스차일드가의 재산을 상상할 수도 없고 이미 세계 경제가 그들의 손에 있으므로 재산에 숫자를 부여하는 것 자체가 이미 의미없는 짓이라고 말을 하곤 한다.
서양역사를 말할 때에 어김없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그 이름도 찬란한 ‘로스차일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로스차일드가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전유럽을 돈으로 휘어 잡은 거부 유대인 가문이다. 이 가문을 크게 일으킨 사람은 마이어 암셸 로스차일드이다. 그는 프랑크푸르트 게토출신으로 고리대금업으로 출발하여 거금을 모아 로트실트, 즉 로스차일드 은행을 설립하고 빈, 런던, 파리, 나폴리 등지에 지점을 개설하고 아들들을 지점장으로 보내 전 유럽을 잇는 금융 네트워크를 구축 후 각국정부, 권력층과 밀착하여 정치에 커다란 영향을 행사했다.
그 후 영국의 네이선 로스차일드가 금융업에서 정보가 중요하다는 것을 가장 먼저 꿰뚫었고 워털루 워털루 전투가 벌어졌을때 그는 통신원을 매수하여. 영국군과 연합군은 승리했지만 런던에는 패전소석이 알렸다. 런던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돌변, 런던의 주식가격은 무려 90%나 폭락했다.
로스차일드는 이 주식들을 휴지가격으로 사들여 런던 증권시장에서 거래되던 모든 주식의 62%를 쥘 수 있었다. 그 후에도 로스차일드가는 1875년 수에즈운하 건설에도 융자해주고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영국정부에 돈으로 압력을 넣어 유대인국가 건설을 약속하는 벨푸어 선언을 유도하는 쾌거 ?그들의 입장에서-까지 이루어 냈다.
2차 세계대전 뒤 이스라엘 건국에도 로스차일드는 거액을 융자했을 뿐더러 동유럽과 남미에도 진출하여 세계 금융시장과 산업계를 지배하게 되었다. 어쨌든 대단한 가문이다.
그렇다면 비교해보자.
로스차일드가의 역사는 아무리 길게 쳐줘도 2천년이 채 될 수가 없다. AC로 따져서 최대한으로 쳐준 게 그 정도다. 여기서는 매우 후하게 계산하여 2천년이라 하겠다.(사실상 그들의 역사는 2세기가량 밖에 안 된다. 참고문헌: 로스차일드 1,2, 니얼 퍼거슨, 윤영애 옮김)
그러나 중원의 역사는 최저로 잡아도 2만 년이다. 적어도 천마가 2만년 동안 천마의 성지를 다스려왔기 때문이다.
로스차일드가는 ‘지구’의 자본을 독점했다. (2천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역시 인심을 써서 모든 자본을 독점했다고 표현하겠다.) 그런데 천마는 ‘중원’의 1/3을 독점했다. 거기에 더해 ‘얼스’로부터 숱한 뇌물까지 받아 챙겼다.
군인만 60억인 얼스. 무사만 60억에 이르는 중원. 지금 당장 전투에 참여할 수 있는 훈련된 요원들만 120억에 달하는 세상이다. 그에 반해 지구는 총 인구가 70억밖에 안 된다.
이쯤 되면 비교의 의미자체가 없다. 한 쪽은 정말 후하게 쳐줘서 ‘70억 인구 지구의, 2천 년 간 모든 자본 독점’ 이고 한 쪽은 정말 박하게 쳐줘서 ‘무사만 60억 얼스의, 2만년간 1/3자본 독점’이다.
로스차일드가의 재산과 천마의 재산을, 이토록 장황하게 비교 설명한 이유는 간단하다.
‘윤석은 땅 부자에 유동자산 부자가 되었다.’라는 한 문장을 보다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기술하기 위해서다.
윤석이 얻은 부는 단순한 돈의 개념이 아니다. 중원 전체를 쥐락펴락할 수 있는 힘이다. 어쩌면 이러한 자본력과 숨겨진 힘이 있기 때문에, 그토록 적은 숫자- 사파, 정파와 비교해서-로 2만년간 단일 세력 중 최강으로 군림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참고로 덧붙이자면사파와 정파는 수많은 문파, 가문, 무사들의 집합체고 마교는 단일 세력이다.)
윤석은 슐터와 상부의 지원을 받아 수 만명의 기술자들과 수 십만에 달하는 노동자들 NPC들을 대거 이주시켰다. 만약 천마의 성지가 아니라면 절대로 재가가 나지 않았을 일이다. 그러나 윤석이 얻은 땅은 천마의 성지이고, 이 곳은 다른 곳보다 훨씬 안전하다.
10억 인구가 살아가는 땅을 한꺼번에 개발하는 거다. 이 정도면 제국을 세운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그 말은 즉, 얼스의 경제에 새바람이 불었다는 뜻도 된다. 중원으로 향한다는 것이 물론 위험한 일일 수도 있으나 그 곳은 꿈의 땅이었다. 힘든 만큼 급여가 매우 좋다. 이름하여 ‘중원드림’을 위해 수많은 npc들이 몰렸다.
위에서 언급한 (1)번은 이렇게 진행되고 있다. 땅은 완전히 접수. 개발은 진행 중.
그렇다면 (2)번의 정파세력은 어떨까.
이미 윤석은 영웅이다. 실체가 드러나있지 않아서 그렇지 정파의 20억 NPC의 칭송을 받는 당나귀 성자다. 과거에 20억이었다는 소리다. 은미상단을 위시한 수많은 ‘사도’들 ? 대부분 무팀, 그리고 무팀이 고용한 유저와 NPC들 - 이 계속해서 선행을 쌓아가고 있는 중이고 그 명성은 사그라들 줄 몰랐다.
당나귀 성자야말로 정파를 구원할 유일한 영웅이라며 떠받들었고 어떤 마을에서는 윤석의 동상을 세우기까지 했다. 물론 마을마다 윤석의 얼굴이 각기 달랐지만 말이다.
게다가 1차 전쟁 당시, 표면적인 무림맹이 몰락하고 뒤에서 눈치를 살피던 수많은 정파세력들을 뒤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것이 바로 은미상단이다. 힘들 때에 손을 내밀면 더욱 고맙다고 했던가. 은미상단은 이제 사파를 넘어 정파까지 상단 네트워크를 구축했으며, 이미 중원에선 독보적인 1위 유니온이다.
현재로썬 윤석같이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고, 전투계열 상급 유저가 전투계열 상급 NPC를 이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상인 클래스는 달랐다. 그들은 기본적인 개념 자체가 전투계열과는 다르다. 그들의 능력은 곧 자본으로 대변되고, 그런 의미에서 은미상단은 이미 초 거대 유니온으로써 그 어떤 NPC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자리에 올라섰다.
마교, 사파, 정파를 제집처럼 드나들 수 있는 중원 유일의 상단이다. 그리고 그 상단은 은미의 것이 아니라, 윤석의 소유다.
민심을 얻었고 자본과 상권을 얻었다. 거기에 군웅들이 당나귀 성자를 원하고 있다.
‘이쯤 되면 정파를 접수하는 것도 그렇게 어렵지 않겠어.’
정파를 얻는 것도 시간 문제다. 그렇다면 남은 문제는 이제 사황성인데.
“수희야. 네가 사황성주가 될 수는 없는 거냐?”
“모르겠어.”
“제자가 얼마나 되는데?”
“나 혼잔데?”
“그래?”
“원래 제자 같은 거 안 받으려다가 받아줬다고 얼마나 생색내는지 몰라. 어차피 지는 가르쳐주는 것도 없으면서.”
사황성주가 직접 가르쳐주지 않아도 괜찮다. 윤석도 천마심공을 천마에게 배워서 쓰는 건 아니다. 스킬트리에 올라있고 쓸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되어서 사용할 뿐이다.
“사황성주가 죽으면 사황성은 네 거냐?”
“그럴걸?”
일단 형식상으로 사황성주의 자리를 이어받기는 할 거다. 그 후에,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느냐 없느냐는 차후 문제로 하고서 말이다.
‘그 능력은 어떻게든 만들어주면 돼.’
밑그림이 그려졌다. 마교는 접수했고 정파 접수는 이제 시간 문제다. 사실상 ‘천마심공’으로 무장한 마교병력과 천마의 성지에 세워진 최신식 전투기지라면-아직 완공되지 않았지만- 사황성과도 한 판 붙어볼 만하다 생각했다.
‘그런데 그 놈 진짜 괴물이잖아.’
붙어볼만 하다고 생각 하다가도 또 생각해보면, 그 놈은 진짜 괴물이다. 32km짜리 황룡을 만들어내던 막강한 NPC다.
“사황성주 죽이게?”
“글쎄... 방법을 생각해 봐야지.”
그런데 또 생각해보니, 천마심공을 얻었고 천마의 육체를 얻었다. 2만년 전 천하제일인이었던 천마였다. 사황성주가 직접 이렇게 말하기도 했었다. “엄청나게 강한 건 인정하지만 천마산에서 절대 기어나오지 못하겠지.” 그렇다면 천마의 힘을 온전히 가지게 되면 사황성주와도 한 판 붙어볼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래도 일단 안전한 게 좋은 거다. 사황성주를 없애는 건 일단 나중 일로 미뤄둬야겠다.
“만약 사황성주 죽이면 너한테 불이익 가겠냐?”
“몰라. 근데 이미 생긴 스킬들 없어지기야 하겠어?”
“얼스의 상부와 천마가 나름대로 내통하고 있었어. 따지고보면 얼스에서 계속 부탁을 해왔던 거고 천마는 보답을 받으면서 전쟁을 일으켜 왔던 거지. 무림맹이나 사파는 어떨지 모르겠어.”
“그러고 보니 그렇네. 어쩌면 마교만 그런게 아니라, 아 어쩌면 판타리아도 그럴 수 있지 않겠어?”
“설마. 마도사들은 마법연구에만 미쳐있잖아.”
“판타리아에 마도사만 있나 뭐. 거기도 어쨌든 왕이 있고 다스리는 NPC들이 있는데.”
스케일이 점점 커진다.
천마교와 얼스의 내통사실을 알아차린 건 말 그대로 ‘열쇠’였다. 열쇠를 가지고 일단 한 가지 실마리르 풀고 보니 계속해서 뭔가 몰랐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빠. 근데 나 중요한 할 말 있어.”
“뭔데?”
“화 내지마. 진짜 오빠가 화 내면 오빠랑 말도 안 할거야. 나 진짜 오빠니까 딱 믿고 완전 믿고... 오빠니까 말하는 거야.”
수희는 계속해서 강조했다.
“아. 그니까 뭐냐고?”
“화 안낸다고 약속하면 말해줄게.”
“그니까 뭔데?”
“약속 안 해주면 말 안할 거야.”
윤석은 조금 불길해졌다.
“아오...말 안할래?”
수희는 입술을 앙다물고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윤석은 어쩔 수 없이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화 안내기로 한거다?”
“알았어.”
수희가 무언가를 말했다. 윤석이 벌떡 일어섰다. 고등학교 이후로 수희에게 심한 욕을 해본 적 없던 윤석이 저도 모르게 욕을 뱉었다.
“야 이 년아!”
“화 안 낸다며!”
“정신머리가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아니, 아니지. 강민혁 이 개새끼를...”
윤석은 씩씩거렸다. 수희는 윤석을 뒤에서 꽉 껴안고서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나갈 것 같은 윤석을 만류해야만 했다. 윤석은 분을 삭히지 못한 듯 아주 작은 목소리로 온갖 욕을 쏟아냈다.
그러나 수희가 결정적인 한 마디를 했을 때 윤석은 더 이상 욕을 하지 못했다.
“태교에... 안 좋으면 어떡해?"
윤석은 입을 다물었다. 하늘이 노래지는 기분이 들었다.
============================ 작품 후기 ============================
빈곤한 로스차일드가니까 그냥 후하게 쳐줬습니다.
가난한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 * *
먼치킨 주인공도 어쩔 수 없는 생명의 신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