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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플레이어-191화 (191/244)

00191  도둑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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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의 비밀 연무장은 단순한 연무장이 아니었다. 2만년간 살아온 천마다. 100년을 사는인간들도 이런 저런 잡다한 취미를 갖으며 10년 동안 어떠한 일에 정진하면 그 분야의 전문가, 혹은 대가라고 불리기도 한다. 10년만 해도 그런데 2만년을 살아온 천마는, 각 분야의 대가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능력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진다. 그런 의미에서 천마는 자신이 원했거나 관심이 있던 모든 분야의 대가라고 해도 거의 맞는 말이었다.

원형의 비밀 연무장은 그 가장자리에 총 32개의 각기 다른 방 ?출구가 없는 동굴 형태이고 동굴의 끝은 또다시 작은 원형 광장의 형태로 되어 있으므로 편의상 방이라 지칭하기로 한다-을 가진 형태였다. 그 중의 한 방이 바로 ‘슐터’와 관련된 방이었다.

천마가 말한 책상의 서랍 속에는 충격적인 편지들이 담겨 있었다.

‘이럴 수가...’

이제 일련의 사건들의 윤곽이 잡혀갔다.

“단순히 준비를 해왔기 때문이... 아니었군.”

-뭐가?

“너희가 내가 지나갈 곳을 미리 선점하고 공격해와서 두 함대를 날려버렸잖아. 단순히 200년 간 준비를 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보제공자가 여기에 있었어.”

-너희끼리 짜고 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천마는 재미있다는 듯 쿡쿡 웃었다.

-아니면 네가 죽길 바랐는지도 모르지.

“네가 200년 주기로 전쟁을 일으킨 것도 얼스와 관련이 있던 거냐?”

-단순히 그 이유만은 아니지만.

단순히 그 이유는 아니다. 천마는 약 200년 마다 새로운 육체가 필요했다. 그리고 훌륭한 육체를 얻기 위해,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일정 수준 이상의 명성과 호칭을 가진 육체가 필요하기에 전쟁을 일으켜왔다. 그러나 더 엄밀히 따져보자면 여기엔 얼스의 입김이 분명 작용했다.

“군부의 힘을 축소시키지 않기 위해?”

-너도 꽤 높은 놈일텐데 그 정도는 알고 있는 거 아니었나? 어차피 그들은 전쟁이 없어지길 바라지 않아. 정부도, 군부도. 일정 수준 이상의 긴장상태를 유지해야 통치가 편하다는 거. 정말 몰라서 묻는 거냐?

천마는 쯔쯧, 혀를 찼다.

-내게는 좋았지. 이 수많은 금덩어리들이 다 어디서 왔다고 생각하는 거냐? 생각해보니, 나를 숙청의 도구로써 사용한 것 같기도 하군. 아주 가끔이지만 제발 이 놈은 살려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었거든.

“금괴와 함께?”

-금괴 뿐만 아니라 내가 원하는 대부분의 것들을 충족시켜 줬지.

천마는 지나간 세월을 곱씹어 보듯, 내가 이런 대단한 사람이었다를 각인 시키듯 자랑스레 말했다.

-그러고 보니 네 놈을 살려달라는 언질은 오지 않았군. 운이 나쁘게 이 지경이 되었지만.

천마의 입장에선 운이 나빴고 윤석의 입장에선 운이 좋았다. 천마는 윤석을 죽일 요량으로 힘을 소진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정파의 백두천은 꼭두각시에 불과했고 그 육체를 탐하기엔 아무래도 조금 아까웠다. 거기에 딱 맞추어 당나귀 성자라는, 명망 높은 영웅이 등장했다.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져서 당나귀 성자를 취해놓고 보니 이게 웬 걸. 싸울 상대가 없었고 3일의 시간이 지나 결국 영혼이 봉인되고 말았다.

거기에 윤석은 판팀의 도움으로 암탑의 탑주와 만날 수 있었고, 자크리트는 천마의 에고스톤이란 말에 환장하며 ‘에고’라는 것이 ‘물질의 형태’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윤석의 신체가 강화됐다. 현존하는 ?미래에도 다시는 없을- 최상급의 강화석으로 말이다.

-생각해봐. 네 놈은 과연 얼스의 진짜 전력들을 가지고 있나?

“뭐라고?”

제 8전투단과 제 18함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겐... 전자전 스텔스 장비를 갖춘 무기가 전무하다.’

일단 F-220K 같은 최신 기종의 부재는 그렇다 치고, 윤석이 현재 가지고 있는 모든 전력은 철저히 ‘대 타대륙’에 맞춰진 무기들이었다. 그건 여태까지 게임을 플레이 해오면서 당연히 그럴거라고 생각했던 부분이고 이상하게 생각해본 적도 없다.

-재미있군, 정말로 재미있어.

천마는 쿡쿡대고 웃었다.

-네 놈이 정의롭다 치자. 상관의 부조리를 알아냈어. 그런데 이제 어떻게 할 거지? 네 전력으로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나?

천마는 연신 재미있어를 연발하며 킥킥대고 웃었다. 윤석은 인상을 찡그렸다.

‘얼스의 군부만 연관 된 것이 아냐. 상부의 모두가 한 통속인건가? 그리고 이곳을 개발하면서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는다는 건... 천마가 살아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가.’

천마가 읊어줬던 어구를 다시 한 번 떠올려 봤다.

만월을 찾아 호수 속을 바라본다.

달이 제법 붉다.

겨울이 곧 다가올지도.

“네가 슐터에게 전해준 말은 무슨 뜻이야?”

-별 뜻 없어. 다만 네가 나와 한통속이 되었다는 거지.

“진짜로 별 뜻 없냐? 너 또 나를 속였다간 정말로 지옥에 박아 버릴 거야.”

이미 한 번 속았다. 숨겨놓은 보물이 이렇게나 많은데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 천마는 2만년을 살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긴 무한에 가까운 시간을 지옥에 홀로 갇혀 있었다. 똑똑한 사람도 1년 동안 누구와도 대화하지 못한 채 아무도 없는 캄캄한 공간에서, 심지어 스스로의 존재조차도 느낄 수 없는 끔찍한 곳에서 홀로 단절되어 있으면 미쳐버리기 일쑤다. 그나마 천마쯤 되니까 정신이 붕괴되지 않고 이만큼 버틸 수 있던 거다. 다만, 판단력이 많이 흐려졌고 이성보다는 본성이 앞서게 됐다. 슐터의 영웅행세가 아니꼬왔던 천마는 거짓영웅이라며 혀를 쯔쯧, 차게 됐고 그의 지레짐작으로 윤석과 슐터가 이미 한 통속 ?얼스의 상부는 이미 모두 한 통속이라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이라 단정짓고는 이런 실수를 범해버렸다.

덕분에 2만년간 모아왔던 보물들을 전부 빼앗기게 생겼다.

“얼스는 네가 살아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당연히 나는 살아 있지. 다만 빌어먹을 육체가 없을 뿐.

유토피아의 사장이 찾아와서, 결례를 무릅쓰고 도청장치를 검색하면서까지 비밀을 요했던 이야기와 일련의 상황들이 겹치면서, 윤석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단순한 RPG는 아냐.’

종족이 나누어져있는 RPG는 어떻게 보면 아주 간단하다. 종족을 선택하여 육성하고 타종족과 적대시한다. 기본적으로 그런 개념이다. 그런데 정말 단순히 그 것 뿐이라면.

‘단순히 그 것 뿐이라면 내가 얼스인과 중원인 타이틀을 동시에 따낼 수는 없었겠지.’

다른 게임들처럼, 태생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태생이 아니라 이 곳 NPC들의 인정이 필요한 문제였다. 그게 무의식적인 인정이든, 의식적인 인정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네놈이 숨겨놓은 다른 보물들 생각한다. 왜?”

보물은 엄청났다. 2만년간 천하제일인이 모아온 보물이다. 보통 ‘끝판왕’ 혹은 ‘라스트 보스’라고 하면 게임 내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와 일맥상통한다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 판타리아의 끝판왕은 보통 드래곤 혹은 ‘현자급에 이른 마도사’라고 말한다. 중원의 끝판왕(혹은 끝판왕에 가까운)존재는 의심할 여지 없이 천마 혹은 무림맹주 혹은 사황성주 혹은 은거기인 쯤 될 것이다. 어쨌든 끝판왕이나 다름없는 천마가 2만년을 모아온 진귀한 보물들이니 그 가치는 이루 말할 수도 없다.

슐터 뿐만 아니라, 역대 전쟁영웅. 즉, 장관급 이상의 인사들과 관련된 방이 무려 10개가 넘었다. 윤석도 입이 쩍 벌어졌다. 온갖 진귀한 보물과 예술품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혼자서 이 땅을 개발하는 건 힘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힘들지 않다. 2만년간 모아온 보물이 있다. 그것도 최고의 가치를 지닌 보물들이다. 본격적인 개발을 시작하기로 했다.

* * *

주랑은 아주 간만에 조금 토라졌다. 기분 나쁘다고 해서 대놓고 인상을 찡그리거나 욕을 하지는 않는다. 다만 윤석의 품에 안겨서 조금 칭얼댈 뿐이다. 예전엔 그랬고 요즘엔 윤석과의 잠자리가 끝난 후에 칭얼대곤 했다.

알몸이 된 주랑은 윤석의 몸 위에 엎드려 누웠다. 방금 전에, 윤석으로부터 뜨거운 무언가가 배출되어 자신의 몸 속을 가득 채우는 것 같은 느낌을 만끽했다. 그 때만 되면 주랑은 행복해하곤 했다. 윤석과 정말로 하나가 되었다는 생각에 정말로 행복해했다. 그리고 지금은 윤석의 몸 위에 엎드려 누운 채,

“요즘 오빠 너무 바쁜 거 같아요.”

칭얼거렸다. 단 둘만 이렇게 있을 때엔 칭얼거리기도 할 줄 안다. 언제나 완벽하고 틈 없어 보이는 주랑도 윤석 앞에 있으면 한 명의 여자요, 한 명의 아내다. 윤석은 주랑의 엉덩이를 주무르면서,

“미안해. 요즘 좀 소홀했지?”

소홀했다는 건 별 거 아니다. 3일 동안 밤늦게까지 유토피아에 접속해 있었고 덕분에 주랑은 본의 아니게 3일 동안 독수공방을 해야만 했다는 거다.

“치.”

주랑은 불만을 표시해 보이고는 윤석의 젖꼭지를 살짝 물었다.

“아파.”

“더 아프게 할 거에요!”

유토피아 때문에 3일 동안 잠을 별로 자지 못했던 윤석은, 그 날 하루 아예 잠을 못 잤다. 단순히 섹스 때문만은 아니었다. 주랑은 물론이고 윤석도 뜨거운 정사를 마친 뒤의, 달콤하게 속삭이는 사랑의 언어들과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그 시간을 굉장히 좋아했다. 이따금씩 대화를 하면서 밤을 새는 경우가 있었다.

“우와... 정말 몰랐던 이야기네요.”

슐터와 관련한,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얼스와 관련한 천마의 이야기였는데 주랑도 흥미가 제법 생기는지 귀를 쫑긋 세우고 열심히 들었다.

“게임 세상도 역시 복잡한 건가봐요.”

“생각도 못했어.”

“그래서 어쩌시려구요?”

“모르겠어. 일단은 천마의 성지부터 개발하고... 천천히 생각해 보려고.”

“중원일통 하신다고 하셨잖아요?”

“응. 개발이 완료되면 신식 기지를 만들 수 있을 거고...”

주랑은 고개를 갸웃했다.

“저는 오빠가 다른 방식으로 통일할 줄 알았는데...”

주랑은 게임 접속시간이 길지 않다. 윤석만큼 게임을 즐기지는 않는다. 그녀도 물론 유토피아를 좋아하긴 하지만 일 끝내고 와서 윤석 먹일 식사 준비한답시고 시간을 많이 쓴다. 주랑은 그 시간이 즐겁단다.

그래서 한 발자국 떨어져서 상황을 바라볼 수 있었다.

“응?”

“당나귀 성자시잖아요. 전쟁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통일하실 줄 알았어요. 마교는 이미 접수하셨고... 정파세력은 지금 말이 아닌데 거기에 정파의 영웅인 당나귀 성자가 되셨고... 은미가 정파 쪽 상권도 잡았고... 사황성 상권은 아예 꽉 잡고 있고... 거기에 수희는 사황성주의 제자고...”

주랑은 자신의 생각을 말하다가 이내 흠칫 놀랐다.

“죄, 죄송해요 오빠. 너무 주제넘게 끼어들었죠? 전 잘 모르지만... 오빠가 해놓은 것들이 워낙에 대단하고 그래서 그... 뭐라더라... 평화통일을 이루려는 계획을 짜신 것 같아서...”

사실 죄송할 것도 없다. 다만 주랑은 윤석의 기를 죽이고 싶지 않았다. 자고로 똑똑한 여자가 아닌 겸손한 여자가 남자를 사로잡는 법이고 주랑은 그 것을 잘 알고 있는 여자였다.

주랑의 말을 들은 윤석은 주랑의 엉덩이를 꾹 쥐었다. 주랑이 깜짝 놀랐는지 꺅! 비명을 질렀다.

“요 이쁜 것!”

윤석이 손가락에 힘을 꾹꾹 주어 조금 딱딱한 스폰지같은 주랑의 엉덩이를 주물럭거렸다. 주랑이 당황해했다.

“어, 엉덩이요?”

“엉덩이 뿐이겠어?”

하지만 이내 윤석의 손길을 받아들이면서 그녀가 먼저 윤석의 입술에 입술을 겹쳤다. 서로의 혀가 서로를 탐닉하며 끝없이 뒤엉켰다.

============================ 작품 후기 ============================

중원일통.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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