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90 도둑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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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는 깜짝 놀랐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다.
“오빠. 엄청난 일이 벌어졌어.”
“뭔데?”
“우리 길드전 중인 건 알지?”
당연히 안다. 그걸 끝낸 것도 윤석이다. 하룻밤사이에 끝내 버렸다. 그리고 패왕에서 탈퇴했다. 윤석이 탈퇴한 덕분에 길드전 승리의 공적치는 ‘제 1 행동대’에 가장 많이 부여 됐다.
“알지.”
“우리 승리로 끝났어.”
“잘 됐네.”
“자고 일어났더니 이겨있지 뭐야? 근데 어이없는 건 우리 팀은 아무것도 안 했는데 1등이래.”
“그게 다 오빠의 힘이지.”
“퍽이나!”
수희는 코웃음을 쳤지만 기분은 좋아보였다.
“우리팀에 이상한 놈이 하나 들어왔는데 하필이면 어제 탈퇴해버렸지 뭐야? 덕분에 아까운 공적치가 안 갔어. 다행이야.”
그 이상한 놈팽이가 바로 눈 앞의 당사자이며 그가 바로 하룻밤사이에 길드전을 끝내버렸다는 걸, 수희는 알 수 없었다.
“다 오빠의 힘이라니까?”
“그러시겠지. 오빠는 언제나 위대할 테니까. 퍽도 그러실 테니까.”
수희는 또다시 코웃음쳤다. 그리고 신나했다.
“나 데이트 하러 간다!”
“아쭈? 아주 신났네. 신났어.”
“오빠만 맨날 깨 쏟아지란 법 있어? 어차피 들켰으니까 나도 당당히 연애를 즐겨야지.”
수희는 자신의 연애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아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어도 윤석이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 생각은 틀렸다. 나이차이가 조금 나기는 하지만 그래도 민혁이라면 믿을 수 있는 놈이다. 적어도 지금은 말이다.
9월 28일 현재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는 말이다.
‘민혁이라면 믿을 수 있지 그래도.’
사실상 정말로 믿을 수 있는 친구는 민혁 한 명 뿐인 것 같다. 평생을 살면서 정말 믿을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 하나를 만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그만큼 좋은 친구를 사귀기는 힘들다는 뜻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민혁은 윤석의 좋은 친구였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9월 28일 현재까지는 그렇다는 소리다.
윤석은 유토피아에 접속했다. 천마의 땅을 두루두루 살펴보고 있다. 이 드넓은 대지에 최신식 건물들을 올려 놓으면 꽤나 훌륭할 것 같다. 40km의 고산에 둘러싸인 분지 지형의 초거대도시. 그리고 윤석은 그 도시의 왕이 되는 거다.
‘개발을 해야겠어.’
그런데 문제는 이 땅을 접수했다는 걸 슐터에게 알려야 하나하는 것이다. 일단 지금 이 곳은 사유지다. 그러나 만약 보고를 올렸다가 이 땅을 내놓으란 명령이 떨어지면? 그게 퀘스트 형식으로 떨어진다면? 그랬다간 10억이 살아갈 수 있는 이 거대한 땅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곳을 개발하려면 기술자들이 필요하고, 그 넓은 땅을 개발하려면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간다. 윤석이 아무리 초특급 부자여도 혼자서는 힘들다. 사실상 시간을 두고 천천히 하면 된다손 치더라도, 기술자를 고용하여 중원으로 이동 시키는 데에 슐터에게 들키지 않을 방법은 사실상 없다고 보면 된다. 한 두명의 기술자도 아니고 최소한 수만. 수십만 이상 기술자와 그보다 훨씬 많은 용역자들이 필요한 거대사업이 될 테니까.
‘보고를 올려야 하나...?’
개발을 하지 않고 이대로 둔다면 보고하지 않아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어차피 병력들이야 귀속병력이고 얼스에 풀어놓지만 않으면 이 비밀이 새어나갈 리는 없다. 중원에서도 얼스의 중장이 천마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건 모르는 사실이다. 천마와 얼스인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을 거라고 짐작하고만 있을 뿐이다.
한 달에 한 번, 윤석은 유저들 앞에서 연설을 해야만 한다. 새로이 군 클래스를 시작하는 유저들을 위한 연설이고 윤석은 지겨워도 이 행사에 참여해야만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 오늘은 슐터가 그 연설을 한 번 보고자 자리에 참석했다.
- 쯔쯧, 영웅행세 하는 꼬라지 하고는.
이 천마놈이 감히 간이 배 밖으로 나온건지 갑자기 시비를 걸어왔다.
“뭐 잘못 먹었냐?”
- 아, 아니. 너 말고! 저 거짓 영웅 말이야.
“무슨 말이야?”
- 진짜 몰라서 묻는 거냐?
윤석은 인상을 찡그렸다. 천마가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거짓 영웅이란 말이 신경쓰여 물어보려고 했는데 연설을 시작할 시간이 됐다. 슐터까지 와있는 마당에 지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늘 그렇듯 연설을 시작했고, 이제 갓 군클래스로 발을 내민 새로운 유저들은 중장유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요즘 군클래스 유저들은, 넷상(유토피아 내) 뿐만 아니라 넷오프상(현실. 온라인상도 포함하는 개념)에서도 대규모로 친목을 도모하고 있다. 그 주체가 되는 사람들은 유럽인들이었다. 중원이나 판타리아는 각종 길드와 세력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군 클래스는 그렇지 않았다.
Super Perion
슈퍼 페리온. 사실상 얼스에서 ‘공격 능력을 가진 클래스’라면 군인이 거의 유일했다. 총잡이가 있기는 했으나 총잡이는 거의 사라진 클래스다. 모두 군인으로 전직하는 추세다. 그렇다보니 Super Perion은 군인 클래스가 모인 거대한 단일 길드로 성장해나갔고, 그 주체는 이탈리아인들이었다.
바이로쉐와 파스텔로를 비롯하여 수많은 재계 인사들이 모였다. 이름만 대면 아는 재벌가의 사람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군클래스에 모이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은 현실에서는 더 이상 가지고 싶은 것이 없다고 해도 좋을 사람들이 많았고, 전에도 언급했다시피 슈퍼페리온에는 소위 말하는 ‘엘리트 계층’이 두루 포진하고 있었다.
넷오프 상에서 정기총회도 계획하고 있다. 파리에서 파티를 계획 중이며 전 세계의 선택된 1천명을 초대하는 호화파티가 될 예정이다. 단, 파티를 위한 기부금을 내는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은 제비뽑기로 결정하기로 했으며 - 슈퍼페리온 임원진들은 기부금을 내는 사람만 해도 1천명이 넘을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 중장유저는 조건 없이 초대하는 것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어쨌거나 그거야 그들의 이야기고 윤석은 연설을 끝냈다. 슐터가 윤석을 불렀다.
“자네 요즘 중원에서 거의 살다시피 한다는 것 같던데...?”
윤석은 괜히 마음이 복잡해졌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속담이 있다.
‘뭐야. 알아낸 건가?’
그럴 가능성도 있다.
“예. 그렇습니다.”
“주로 어디를 다니지?”
윤석은 잠시 생각했다. 천마교의 성지를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천마가 언질을 줬다.
- 만월을 찾아 호수속을 바라보고 있다고 대답해.
“엥?”
만월을 찾는 건 또 뭐고 호수 속을 바라보는 건 또 뭔지. 천마가 뭔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슐터가 윤석을 이상하다는 듯 쳐다봤다.
“자네 어디 아픈가?”
“아, 아닙니다.”
- 만월을 찾아 호수 속을 바라보고 있다고 하라니까 멍청아! 하여튼 답답한 건 알아줘야지.
천마는 영겁의 지옥속에 갇히는 걸 극도로 끔찍해한다. 그래서 윤석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그나마 온순해진 게 이 정도다.
“그... 만월을 찾아... 호수...”
-호수 속을 바라보고 있다고! 뭔 놈의 대가리가 닭대가리만도 못하냐!
“만월을 찾아 호수 속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천마가 또다시 말했다.
-달이 제법 붉더라.
“달이 제법 붉더군요.”
-겨울이 곧 다가올지도.
윤석은 고개를 갸웃했다. 천마의 말을 따라하고 있으니, 슐터의 표정이 변화하는 게 눈에 보인다. 눈에 띄게 표정이 변했다. 슐터 쯤 되는 npc의 표정이 급속도로 변한다는 건 뭔가 있다는 거다.
“겨울이 곧 다가올지도 모르겠습니다.”
* * *
슐터는 윤석의 땅 소유권을 인정해줬다. 소유권은 인정하되 개발은 함께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어차피 혼자서 감당하기엔 너무 힘든 일이다. 슐터가 나서서 해준다면 오히려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슐터가 왜 코치코치 캐묻지 않은 거지?”
- 그거야 네가 천마의 말을 전해줬으니까 그렇지.
“그러니까 왜 그게 천마의 말이고, 슐터가 천마의 말을 들으면 다 이해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나한테 더 살갑게 구느냐 이 말이지.”
-그걸 내가 왜 말해줘야 하지?
“지옥에 또 처박힐래?”
천마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건 싫다. 미치도록 싫다.
-제기랄...
억울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여기서 빠져나가 제대로 된 육체를 찾기 전까지는 당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10초 준다. 10. 9. 8. 7.”
-아, 알았어! 말할게! 말한다고! 젠장...
천마는 결국 털어 놓기로 했다. 윤석은 천마의 안내를 받아 천마의 비밀 연공실로 향했다. 말이 비밀 연공실이지 이 곳은 거대한 지하광장이었다. 거대한 원형 형태의 광장이었는데 반지름이 무려 30km가 넘는 거대한 천연 광장이었다.
“이런 곳이 있었구나.”
벽에는 야명주가 가득히 박혀 있어 어둠을 몰아냈다. 거대한 원형의 광장 가장자리는 또다시 다른 동굴로 이어지는 통로들이 있었고, 그 중 하나를 따라가 보니.
“이게다... 금이야?”
수북히 쌓여있는 금괴가 보였다. 천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만약 실체가 있는 영혼이었다면 배를 붙잡고 뒹굴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윤석은 주위를 둘러봤다. 벽면에는 역시 야명주가 박혀있다. 듣자하니 이 야명주라는 것도 굉장히 비싸다는 것 같았다. 그 야명주의 불빛을 받아 한 쪽 벽면이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 그 반사과을 내는 것이 바로 금괴였다.
한 쪽 벽면이 금괴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일반적이 벽면을 생각하면 곤란하다. 높이 10미터다. 윤석의 뛰어난 동체시력은 간파했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이건 단순히 가장 앞에 보이는 금괴일 뿐이다. 더 깊이. 깊숙하게 금괴가 얼마나 자리잡고 있는지는 직접 파헤쳐 봐야 알 것 같다.
또 한쪽에는 돌을 깎아 만든 책상이 하나 놓여져 있었다. 그 것은 현대의 책상과 상당히 유사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굉장히 무겁다는 것만 제외하면 나무로 만든 책상과 똑같았다.
“금 없다며?”
원형 광장의 가장자리엔 이 곳 말고도 통로들이 꽤 많았다. 다 가봐야겠다.
“금 없다고 했냐, 안했냐? 너 나한테 거짓말했냐 지금?”
천마는 당황했다. 화제를 돌렸다.
- 이, 이 곳은 슐터와 관련된 곳이다. 저 서랍을 열어봐.
“너 딱 기다려. 내가 이거 열어보고 여기 동굴 다 돌아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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