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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플레이어-188화 (188/244)

00188  주인공이 짜증내게 되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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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왕의 백호단은 NPC를 하나 영입했다. 중원에서 활을 다루는 NPC는 그렇게 많지 않다. 대부분은 근접전 무기를 다룬다. 그러나 유저와 NPC를 막론하고 원거리 계열 클래스는 어딜가나 환영받기 마련이다.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유저(혹은 NPC)가 포함된 팀과 그렇지 않은 팀은 전력에서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백호단이 영입한 NPC는 현재 궁사 쿨래스를 키우고 있는 ‘리유비’라는 유저의 스승이었다. 모든 NPC가 유저보다 강한 것은 아니지만 전투계열의 경우, 보편적으로 NPC가 유저보다 훨씬 강하다. 그 중에서도 리유비의 스승 NPC는 꽤 상급의 NPC여서 백호단 전체 전력을 두 배 가까이 끌어올렸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이번에 부단장님 들어왔다면서요?”

“네! 그런데요!”

수희는 발음을 좀 강하게 했다. 리유비와 마주치면 꼭 이렇게 된다.

“엄청 고수시라던데.”

수희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엄청 고수긴 개뿔. 레벨이 100밖에 안 된다. 레벨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건 아니다. 그녀만 해도 현재 70이다. 그러나 그녀는 ‘사황성주의 제자’로서 사황성주의 스킬들을 꾸준히 섭렵해가는 중이다. 그녀 같은 특이 케이스는 레벨이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

“그냥 일반 유전데요.”

그러나 일반 유저들에게는 레벨이 꽤 중요하게 먹힌다. 사실 수희나 윤석 같은 경우가 굉장히 희귀한 경우고 보통의 경우는 레벨이 곧 강함의 척도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요? 레벨이 100정도라고 하셔서... 히든클래스 아니에요?”

수희는 리유비를 째려봤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마, 맞아요! 히든클래스!”

이번에 정파와 마교가 전쟁을 치르면서 전체적으로 중원유저들의 수준이 상향평준화 됐다. 뛰어난 NPC들에게 무공을 배우기도 했으며 ‘무림맹’ 혹은 ‘사황성’에서 나눠주는 무공들을 배웠다. 그건 여태까지 배워왔던 무공들보다 효용성이 훨씬 높았었다. 레벨업도 굉장히 빨랐다. 덕분에 최근 상위 랭킹은 중원인들이 모두 싹쓸이하고 있다고 보면 됐다.

공식적인 랭킹 1위가 220이 넘었고, 중원에서 고수소리 들으려면 최소 150은 넘어야 한다. 특히나 패왕같이 엘리트 유저들이 모인 길드라면 적어도 170은 넘어야 겨우 고수소리 들을까 말까다.

“그래봤자 저희를 이길 수는 없겠지만요.”

리유비는 호호호 웃었다. 수희는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리유비는 수희가 굉장히 싫어하는 타입이다. 얼굴은 이쁘장한데 남자 앞에서 끼를 엄청 부리는 타입. 여자들과 있을 때와 남자들과 있을 때 행동이 완전히 달라지는 타입이다. 굉장히 얄미운 여우인데, 더 억울한 건 남자들이 그 행동들에 놀아난다는 거다. 저건 다 가면이라고! 소리치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수희는 은미와 만났다. 동갑이 둘은 이제 종종 만나서 수다를 떨기도 하고 밥을 먹기도 한다. 오늘의 점심메뉴는 햄버거. 롯데리아다. 수희는 햄버거를 우물거리면서 불만에 가득찬 표정으로 말했다.

“우씨 진짜! 은미야. 너 너무 한 거 아냐?”

“뭐가?”

“어떻게 그런 초보를 부행동대장으로 넣어준 거야?”

“그게...”

리유비가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다. 수희는 패왕의 실질적인 길드장이나 다름없는 은미와 사적인 관계가 있으며 굳이 갑을을 따져보자면 을보다는 갑에 가깝다는 사실 말이다. 수희가 만약 자신의 지위 ?윤석의 친동생이라는-를 이용해먹으려고 했으면 벌써 했다. 만약 수희의 성격이 정말 괴팍해서 ‘이유 불문하고 리유비 빼버려!’라고 요구한다면 은미는 어쩌면 들어줘야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둘 관계는 그리 사무적이지 않았다. 지금은 그냥 친구다. 수희가 말했다.

“딱 말해. 완전 말해. 내가 납득할 수 있게.”

은미는 수희의 말투가 굉장히 신경 쓰였다. 어지간한 건 그냥 속으로만 생각하고 넘어가는데 오늘 건 조금 심했다.

“수희야. 완전이란 수식어는...”

“안물!(*안 물어봤어) 나 지금 완전 이해 안 돼. 리유비한테 완전 완전 지기 싫어하는 거 알면서 왜 그런 울 오빠같은 놈팽이를 넣어준 거야?”

오빠같은 놈팽이가 아니라 오빠 맞다. 은미는 얼버무렸다.

“그, 그게, 사, 사실 되게 고수야. 레벨만 믿으면 안 되는 거 알잖아? 그리고 수희 너만 해도 사기급이고...”

* * *

불기둥승부사 은현은 울며겨자먹기로 길드전에 참여했다.

‘까짓 거. 길드전 한 번 지면 어떠냐!’

속으로 그렇게 생각은 하면서도 막상 패배하기는 싫었다. 게이머라면 그건 당연한 마음가짐(?)이다. 더더군다나 거의 무패에 가까운 경이로운 비무전적을 가진 은현이라면 더욱 그렇다.

‘에이씨...’

무림맹은 지금 작전 회의 중이다. 그러나 작전 따위 별로 듣고 싶지 않았다. 이건 시간 낭비다.

“불기둥승부사님?”

회의를 진행하던 여성 유저가 은현을 불렀다. 여성 유저의 닉네임은 화영. 어느정도 이름있는 유저만 모여있는 무림맹 답게 그녀 역시 상당한 고수였으며 특이하게 쌍검을 쓰는 이도류 검호였다. 또한 무림맹 내에서 은현과 친분을 쌓게 되어, 사적으로는 말을 놓는 사이다.

“저... 불기둥승부사님?”

게다가 게임 상이지만 어쨌거나 외모 역시 상당히 뛰어난데다가 성격도 특별히 모난 데가 없어 은현은 화영에게 호감을 느끼던 중이었다.

“불기둥승부사님!”

“빌어먹을!”

화영은 순간 찔끔 놀랐다. 완전히 딴생각에 빠진 것 같아 이름을 몇 번 불렀더니 대뜸 욕이 튀어 나왔다.

“아...”

주위의 시선이 은현에게 쏠렸다. 은현은 자신의 실책을 깨닫고서 머리를 긁적이며 죄송하다 말한 뒤 앉았다. 눈치를 살펴보니 화영의 얼굴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

‘아... 망했다...’

연봉 2억이 넘는 회사에 입사한 것도 엄청난 행운이고, 하필이면 그 회사가 게임을 플레이하면 되는 회사인 것은 더더욱 행운인데, 오늘은 좀 불행했다. 작전이고 뭐고 패배는 어차피 확정된 거고, 오늘은 썸을 타던 (* something이 있던: 서로 호감이 있어 관계를 쌓던) 여자에게도 외면받게 생겼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차라리 죽지나 말자는 심정이다. 회의가 끝난 뒤, 은현은 화영을 따로 불렀다.

“화영아.”

“응.”

화영은 대충 대답한 뒤 걸음을 옮기려 했다. 사람들 많은 곳에서 자신에게 무안을 줬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은현이 서둘러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미안해. 아깐... 잠깐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아.”

“괜찮아.”

말은 괜찮다고 하는데, 표정은 전혀 괜찮지 않다. 은현은 이러한 상황을 이미 많이 겪어 봤다. 연애는 많이 못해봤어도 그는 여동생 있는 오빠다. 여자의 괜찮다는 전혀 괜찮지 않다다. 은현은 그녀를 어르고 달랬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화영은 표정을 풀었다.

은현이 말했다.

“그... 길드전 동안에 나랑 꼭 붙어있어.”

길드전 동안에 무조건 도망다니기로 했다. 위장스킬포토를 사용해서 얼굴은 알 수 없지만, 수희와 같은 부대에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수희에게 미리 말해놨다. 조금 사기를 치긴 했다. 수희와 싸우기 싫으니까 미리미리 위치를 말하라고 했고 수희는 별다른 의심없이 알겠노라 대답했다.

“오빠랑?”

화영의 표정이 조금 좋아졌다. 조금 좋아지는 정도가 아니라 활짝 웃었다. 은현은 뒷통수를 긁적거렸다.

‘어라...?’

* * *

백호단도, 제 1행동대도 길드전 채비에 들어섰다. 백호단과 제 1행동대는 현재 패왕의 중추나 다름 없었다. 상징물 ?깃발과 명패. 두 종류가 있는데 편의상 상징물이라 통칭하기로 한다-을 탈취하는데 필요한 건 ‘강한 공격’이다.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탈취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 역할을 백호단과 제 1행동대가 주축이 되어 맡았다.

그런데 공격을 하겠다고 마음만 먹는다고 바로 본진을 털 수 있는 게 아니다. 서로 눈치를 봐가면서 국지전 형태의 전투도 몇 번 벌이고 해서 상대의 병력을 줄여놔야 한다. 무턱대고 쳐들어갔다가는 개죽음 당하기 십상이다. 이쪽이 고수라면, 저쪽도 고수다.

먼저 공격을 취해온 것은 무림맹이었다. 어차피 선봉단의 개념이어서 큰 전투가 치러지지는 않았다. 서로 간만 보는 수준에 그쳤다. 그 후에 크고 작은 전투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서로간 전투력은 백중지세. 그런 와중에 윤석은 형편없는 게이밍센스를 보여주어 수희의 빈축을 샀다.

사실 윤석의 입장에서야 별 위험이 될 공격도 없고, 딱히 지금 당장 공격을 하고 싶지도 않아서 ?하려고 마음 먹었으면 벌써 쓸어버렸다.-, 유희상 그냥 대충 구경이나 하고 있던 참인데 수희의 눈엔 그렇게 안 보였나보다.

“부대장님! 좀 빠릿빠릿하게 움직여 봐욧!”

“예예.”

윤석은 평소 하던대로 대답했는데, 수희는 윤석을 한 번 노려봤다. 지금 그녀에게 윤석은 오빠가 아니라 한낱 부대장일 뿐이다. 빈정거리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좀 나빠졌다.

‘별꼴이야 진짜!’

직접적으로 욕은 못했지만 이건 정말 못참겠다. 은미한테 말해서 부대장이란 사람을 탈퇴시키든지 해야겠다.

‘내가 치사해서 안 그럴라고 그랬는데.’

수희는 윤석의 동생이다. 이젠 학교에서도 그녀가 윤석의 동생이란 걸 알고 동네 사람들도 안다. 친척들도 안다. 그 때부터 사람들이 자신을 대하는 게 달라졌다. 수희가 아니라 ‘유토매니아 사장의 친동생’으로 바라봤다. 그래서 수희는 행동을 조심하게 됐다. 자신의 행동 하나 때문에 오빠를 욕 먹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녀 딴에는 제법 노력하는 중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진짜로 못 참겠다. 은미한테 말해서 억지로라도 저 사람을 빼버려야겠다.

은현에게 귓말이 왔다.

-수희야 어디야?“

-여기 거북이 바위 있는 쪽으로 가고 있어.

-그래?

-응. 오빠는?

-거기랑 완전 반대.

-알았어용.

은현은 수희와의 귓말을 끝마치고 화영의 손목을 또다시 잡았다.

“화영아.”

“응?”

“저 쪽으로 가자.”

“오빠. 거긴 우리 구역 아닌데...? 작전 하나도 안 들었어?”

작전따윈 필요 없다. 도망치는 게 상책이다. 상책 외에 다른 방법은 죽음 뿐이다. 귓말을 보냈다.

-이 쪽엔 저 거지 할아범 있잖아. 나한테 더 좋은 생각이 있어.

-그래도...

거지 할아범. 무림맹에서 준비한 특급 인사다. 스스로도 자신을 그냥 ‘거지’라고 부르라고 했다.

마교와의 전쟁에서 9대문파와 5대세가는 거의 멸문에 이르렀지만 1방. 즉, 개방은 그에 비해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거지라는 특성도 있었고 수가 워낙에 많다보니 살아남은 숫자가 꽤 많았다. 그 중 한 명이며, 십년 치 먹을 술을 제공하겠다는 조건으로 데려왔다. 어차피 유저들과의 싸움이다. 거지의 눈으로 봤을 땐 소꿉놀이 하는 것과 비슷하다.

은현은 애가 탔다. 조금 있으면 거북이바위 도착이다. 도망쳐야 한다.

-작전은 때와 장소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거야. 저 거지 능력 봤잖아. 차라리 이 쪽은 거지한테 맡기고 우리는 반대로 돌아가서 허를 찌르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래도...

거북이 바위에 더욱 가까워졌다. 은현은 발을 동동 굴렀다.

-둘이 같이 있고 싶어서 그래.

-하지만 지금은...

여태까지 온갖 방법을 써먹었다. 급조한 거지만 그럴듯한 작전도 짜냈고 이성적으로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소용 없었다. 그런데 둘이 같이 있고 싶다는, 논리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도 없는 어처구니 없는 이유에 화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겠어.

화영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거북이 바위로 향하는 총 병력은 240여명. 한 두명 빠지더라도 별로 티도 안난다. 은현이 화영의 손을 붙잡고 은근슬쩍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거지 할아범

"클클클.... 편하게 한 번 놀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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