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81 천마산으로 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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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좌절했다. 지옥이란 것이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아무것도 없다. 자신의 존재마저도 있는 것 같지가 않다. 아무것도 보이지도 않고 아무런 소리도 없고 그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는데 허무한 고독감이 느껴졌다. 절대자로 군림하면서 외로움과 고독함에는 완전히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그 정도를 훨씬 넘어섰다. 말을 해봐도 하는 것 같지가 않고 몸을 움직여봐도 움직여지는 느낌이 나지 않는다. 공간 자체가 완전히 ‘무’가 되어 버린 것 같았다.
‘끔찍하군 이런 기분.’
차라리 저승사자라는 놈들이 다가와서 지옥불에 던져놓았으면 마음이 편할 수도 있겠다. 적어도 ‘괴로움’이라는 감각을 통해 ‘나’를 느낄 수는 있을 테니까. 존재를 인식하고는 있으나 그 존재 자체가 지워져버린 것 같은 괴랄한 기분에 천마는 몸서리쳤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영겁의 시간이 지난 것만 같았다. 인세에서 살아온 그 모든 시간들보다도 훨씬 긴 시간이 지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차피 아무도 없다. 2만년간 절대자로 군림해왔던 천마는 엉엉 울기까지 했다. 절대자로 군림했던 2만년은 지금 갇힌 영겁의 세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득히 먼 옛날이었으면 엄청나게 짧은 시간이었다.
그런데 세상이 보였다. 저승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가 익히 알던 세상도 아니었다.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도대체 뭐지?”
천마는 주위를 한 번 둘러봤다. 누군가 매우 거대한 것의 손바닥 위에 올려져 있었다.
‘여긴... 얼스?’
그가 익히 알던 중원의 배경과는 확연히 달랐다.
“어라. 이거 말도 하네. 이봐. 내 목소리 들려?”
당연히 들린다. 몇 초 정도 지나자, 천마는 상황을 이해했다. 얼스인으로 보이는 저 남자의 몸에서 매우 익숙한 기운이 느껴진다. 천마심법으로 단련한 마기였다.
‘제기랄!’
그랬다. 저 놈은 당나귀성자였다. 어떤 방법을 썼는지 모르겠지만 자신은 작은 보석 같은 것에 갇혀 있는 신세가 되었고 저 놈은 천마의 능력을 강탈한 듯 했다. 엉엉 울기까지 했던 천마지만 이 곳에 당나귀성자를 보자 악에 받쳤다.
“너 이 새끼 가만 두지 않겠다!”
상황이 파악되자 천마는 흥분했다. 2만년의 시간을 송두리째 앗아가버린 거다. 2만년간 얼마나 인세에 남고 싶어했던가.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고자 했던가. 전쟁을 일으키고, 역천의 대법까지 실행해가면서 인세에 들러붙어 있었는데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날아가버렸다.
그런데 빨간 머리카락의 여자 하나가 단도를 꺼내들고 핥는 게 보였다.
“부숩니까?”
천마는, 이 천박한 계집이 어딜 감히! 라고 소리치고 마기를 끌어올리려 했으나 전혀 소용 없었다. 마기는커녕, 마기를 만들어내는 천마심법조차 사라져버렸다.
“발칙한 계집년! 네 년을 갈갈이 찢어 죽이겠다!”
윤석은 인상을 찡그렸다.
“자꾸 뭐라는 거야?”
보석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시끄럽네 이거.”
초대 천마였으며 지금은 전설에만 기록되어 있는 ‘귀머거리 영웅’ 혁거세는 인벤토리에 다시 쳐박혔다.
밖에서와 달리, 그 안에선 영겁의 세월이 흘렀다. 천마는 그 안에서 또다시 엉엉 울었다.
* * *
며칠이 지났다.
무한에 가까운, 인간으로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영겁의 시간동안 홀로 아무것도 못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인간에겐 지나친 형벌이었다. 2만년이란 세월을 살아온 천마에게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숫자라는 건 언제나 상대적이다. 평범한 인간들에게 2만년이란 대단히 큰 숫자지만, 영겁의 시간 앞에서 2만년이란 눈 깜짝할 새 지나가는 찰나의 시간이기도 했다. 보석 안에 갇혀 있는 시간이 바로 그랬다. 2만년이란 세월이 길게 느껴졌던 건 과거의 일이었다.
이 보석에 갇혀있는 시간은, 일상적인 세계와 시간의 흐름이 완전히 달랐다. 천마가 애걸복걸 했다.
“제발. 제발 나를 도로 집어넣지 말아줘.”
바깥에서는 겨우 며칠이지만 보석 안에서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천마는 인벤토리 안으로 들어가는 것에 극도의 공포를 느꼈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사람 변하는 것도 한 순간이다. 하물며 그 것이 이루 헤아릴 수 조차 없는 시간이라면 제 아무리 천마라도 변하는 건 당연했다.
윤석의 손에 들린 그 순간에는 영겁의 지옥- 천마가 그렇게 이름 붙였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처음 몇 번은 반항했다. 그러나 결국 백기를 들었다. 마기를 되찾겠다는 욕심도 부리지 않았다. 갇히는 것만 면하게 해달라고 빌고 빌었다.
“그렇다고 매일 손에 들고 다닐 수는 없잖아?”
“나를 무구로 사용하면 되는 문제잖아!”
덕분에 상철 SC가 바빠졌다. 보석을 무기에 세공하는 것. 그 것을 보통 ‘박는다’ 혹은 ‘지른다’라고 표현한다. 예전에 도입되었던 아이템 강화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보석이었다.
그런데 이 보석이 과연 그러한 강화석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천마석이라...'
상철SC가 정보력을 총동원하여 알아본 결과, 중원에는 그 강화를 실행할 수 있는 NPC가 없었다. 보석을 다루는 NPC는 많지만 그 것을 현대식 무기에 재현해낼 NPC가 없다고 보는 게 맞았다.
상철SC는 기본적으로 중원에 근간을 둔 정보단체다. 그래서 다른 대륙을 조사하는 것은 아무래도 중원을 조사하는 것에 비해 효율성이 뒤떨어진다. 그래서 상철SC는 다수정예회와 마찬가지로 '하청'의 형식으로 많은 정보단체를 부린다. 그러다가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얼스에도 이러한 가공을 할 수 있는 NPC는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영혼'이 봉인된 보석의 힘을 제대로 이끌어낼 수 있는 NPC는 거의 없다고 보는게 맞았다. NPC가 그런 상황이라면 유저는 전무하다고 보면 된다.
"천마석 같은 보석을 판타리아인들은 에고스톤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그 에고스톤을 제대로 다루는 것은 내공이나 과학의 영역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럼요?"
"그 것은 마법에 더 가깝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상철SC에서 준 정보는 다소 의외였다. 천마석은 에고스톤의 하나라고 보면 된단다.
에고스톤은 이미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희귀한데, 천마쯤 되는 최상급 NPC의 영혼이 봉인되어 있는 에고스톤은 엄청난 가치를 지닌 물건이란다. 이런 물건은 마도사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으며 연구만 시켜준다면 그 어떤 일이라도 마다할 마도사들이 널리고 널렸단다.
"만약 천마석을 제대로 세공하고 싶으시다면 암탑을 찾아가시는 게 현명하시리라 생각됩니다."
아이러니했다. '중원의 힘'을 제대로 이끌어 낸, '얼스의 무구'를 만들기 위해 '판타리아의 이능'을 빌어야 한단다.
윤석은 즉시 움직였다. 이제 다른 대륙 돌아다니는 것에는 도가 텄다. 판타리아로 향했다.
* * *
판팀의 팀장은 '노란머리' 이재운이고 부팀장은 설아다. 노란머리는 익히 알려진 샤무의 길드장 이었으며 최설아는 과거 투윙 마도사였다.
그 둘과 미팅을 가졌다. 미팅을 시작하려는데 설아가 자꾸 촐랑거리는 것 같아 “조용히 하고 있어. 지금은 일적인 얘기 하는 거니까.”라고 퉁명스레 말했고 설아는 불만인 듯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사장과 사원이라는 자각은 있는지 더 까불지는 못했다.
윤석이 물었다.
“팀장님. 암탑의 위치 알고 계세요?”
재운은 대답하기 조금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말했다.
“저희도 암탑의 위치는 모릅니다.”
“그럼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요?”
“암탑소속 마도사를 찾아야 합니다.”
“아는 사람 없어요?”
과거 윤석은 마도사들을 모조리 쓸어버렸다. 그냥 죽인 것이라면 상관 없는 일이지만 길드 퀘스트와 길드퀘스트의 충돌로 인해 학살했다. 그 말은 즉, 유저 마도사들이 모조리 도태되었다는 뜻이다.
“과거엔 있었지만 지금은 없습니다.”
“왜 없어요?”
“예전 유토매니아 금고 털이사건 당시 그들이 범인들로 지목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마도사들 사이에서 도외시되다시피 했습니다.”
윤석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있는 부분이었다. 아예 잊고 있었다. 그랬다. 그런 일이 있었다. 그 당시 경비NPC들을 따로이 고용하고, 피해를 입었던 구매자들에게 10퍼센트의 코드를 더 쳐줘서 거래했었다.
“그랬어요?”
“다들 대놓고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암탑 마도사들을 그 배후로 지목했습니다. 그것 까진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당시 마연의 운영자금이 부족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암탑 마도사들이 기부하는 것에 인색하자 다른 마탑의 마도사들이 그들을 경원시 했습니다. 암탑 마도사들은 다른 마도사들에 비해 돈이 많이 들어가는 클래스라고 알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암탑소속 마도사들은 유저 마도사들로부터 경원시 되었던 데다가 솔로플레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찾는 것 자체가 어렵단다.
암탑은 다른 탑들에 비해 비밀이 많은 곳이었다.
“암탑 소속 마도사들만 암탑의 위치를 알고 있다고 합니다.”
팀장과 사장이 사뭇 진지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설아가 크게 하품했다. 아까 윤석이 조용히 하라고 말했는데 그것 때문에 단단히 삐친 듯 했다.
“사장님오빠님. 언제까지 나 조용히 하고 있어야 해? 할 말 있는데. 나도 부팀장님인데!”
윤석은 도무지 미덥지 않은 듯한 눈초리로 설아를 쳐다봤다. 그러나 일단 그녀는 무팀의 부팀장이고, 고등학생임에도 불구하고 -플레이 시간이 적은- ‘투 윙’마도사에까지 올랐던 플레이어다.
그녀가 말했다.
"아이참. 내가 암탑위치 알려주면 되는 거 아니야? 사장님이 맨날 나보고 밥값 하라고 하면서 왜 정작 나한텐 밥값할 기회를 안 줘요?”
"네가 알아?”
"당연하지!”
"어떻게?”
"왜냐하면 내가 암탑 마도사니까.”
"거짓말!”
윤석은 똑똑히 봤었다. 예전 수탑소속 마도사들과 사막에서 마주쳤었다. 분명히 수계 마도사였다. 10미터짜리 물기둥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설아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나보고 계약서 안 읽는다고 혼내지 말구 오빠도 좀, 내 이력서 봐! 내가 분명히 거기에 ‘투 윙 마도사’라고 적었는데 왜 무시해요?"
"그건 네 과거 전적이잖아. 저번에 전쟁 퀘스트 실패하면서 전체 마도사 도태 되었을 텐데?”
“그거야! 그니까 난 도태 안 됐다구!”
설아는 목소리를 높였다가 이내,
“우씨... 이건 아무한테도 말 안한건데...”
윤석에게까지 말하지 않으려던 건 아니었다. 그녀가 괜히 ‘투 윙’마도사까지 오른 게 아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른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흔히 착각하는 거랑은 달리 마도사는 한 계파에 종속되거나 하지는 않아. 그니까 내가 원하면 수탑 화탑 목탑마법을 다 배울 수 있는 거야.”
“그런게 가능해?”
“대신 스킬포인트는 한정되어 있으니까 캐릭터가 좀 짬뽕될 수도 있다는 게 문제죠.”
설아는 놀라운 얘기를 꺼냈다.
사실 마도사들이 전부 도태된 건 아니란다. 설아의 경우는, 암탑과 수탑에 동시에 소속된 마도사였다. 다만 표면적으로 수탑소속의 마도사처럼 행동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길드퀘스트 때, 암탑소속 마도사는 참가여부를 선택할 수 있었어. 그 왜... 전쟁할 때 이상한 거 못 느꼈어?
윤석이 주의를 집중해서 들어주자 설아는 신이 났다. 조금 우쭐해졌다.
“만약 암탑소속 마도사들이 길드 퀘스트를 수락했다면 전쟁보다는 암살을 택했을 걸요? 암살 시도 한 번도 없었다는 게 이상하지 않아?”
이재운은 그 이야기를 듣고나서 나름대로 정리를 내렸다.
설아는 수탑과 암탑, 그 두가지 모두에 소속된 마도사이고 수탑의 마도사직위는 잃었으나 암탑 마도사 직위는 유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암탑 소속 마도사들만 그렇다는 건가... 아니면 복수로 소속된 마도사들에게 선택권이 주어진 건가...’
재운이 질문을 던졌다.
“설아야. 그러면 암탑소속 마도사들은 전부 그대로 있겠네?”
“제가 알기론 그래요. 근데 워낙에 솔플(* 솔로플레이)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암탑 마도사들끼리도 서로 잘 몰라요.”
“그럼 그게 암탑소속이라서 그런 선택이 가능했던 거야, 아니면 두 군데 이상에 소속되어 있어서 그런 혜택이 생긴거야?”
“그건 저도 모르죠.”
재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새로운 정보는 하나 파악했다. 완전히 몰랐던 사실이다.
윤석이 설아를 칭찬해줬다.
“좋은 정보네.”
그러자 설아는 신이난 듯 활짝 웃었다. 기가 살아났다.
“끄쵸? 끄쵸? (그렇죠? 그렇죠?)”
“그럼 암탑의 위치 알고 있겠네?”
윤석은 의외의 곳에서 일이 풀리는 듯하자 기분이 좋아졌다. 부팀장이 역시 괜히 부팀장이 아닌가보다. 칭찬 한 마디에 기분이 잔뜩 좋아져 실실 웃는 모습이 오늘따라 더 귀여워 보였다.
“잘했으니까 쓰담쓰담(*머리를 쓰다듬는 행위) 받고 싶다!”
설아가 머리를 들이밀었다. 이재운은 황당하다는 듯 설아를 쳐다봤다. 어떻게 사장을 저렇게 대할 수 있을까 싶다. 10대의 특권일까. 그도 아니면 설아라는 여자아이의 특권일까. 신기하게도 미워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매력이라면 매력이었지만 어쨌거나 그의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었다.
윤석은 피식 웃고서 설아의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어줬다. 설아는 애교를 가득 담아 헤헤- 웃으면서 말했다.
“나만 믿어. 자크리트가 좀 괴상한 NPC이긴 한데 그 쪽 분야엔 최고 마이스터야. 에고스톤이라면 환장할 거야.”
그러면서 중얼거렸다.
“진짜 완전 사기야. 그냥 에고스톤도 아니고 천마의 영혼이 담긴 거라니. 그런 걸 자크리트가 강화했다가는 돌멩이가 핵폭탄도 될 거 같은데....”
============================ 작품 후기 ============================
Q: 좋아요. 건오퍼에, 중장에, 거기에 천마의 힘까지 흡수한 건 알겠어요. 이 글은 먼치킨이니까요. 그런데 이제 심지어 부하가 암탑마도사네요? 그리고 뭐라구요? 돌멩이가 핵폭탄이라고요?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오네요. 이런 거 사기 아닌가요?
A: 이 글은 먼치킨입니다. 아직 먼치킨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신 듯 합니다.
Q: 그렇다면 밸런스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실 건가요?
A: 배..밸런스? 그게 모죠? 헤헤... 농담이구요. 완결까지 보세요.
이 글을 읽는 세 가지 방법을 알려드리죠.
상책: 완결까지 코멘트와 추천, 쿠폰등을 투하하면서 본다.
중책: 완결까지 추천을 누르면서 본다.
하책: 완결까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