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78 그저 한숨 잤을 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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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성자’의 칭호를 얻을 수 있단다. 시간제한이 걸려있는 것도 아니다. 윤석은 시간을 두고 찬찬히 설명을 살펴봤다.
먼저 눈 여겨 봐야할 것은 바로 ‘칭호 시스템’이다. 사실 이미 칭호라는 것은 유토피아 내에서도 공공연한 것이다. 원래의 아이디보다 칭호로 유명한 유저들도 있을 정도다. 그러나 그 칭호는 엄밀한 의미에서 칭호가 아니다. 적어도 유토피아의 시스템이 인정하는 칭호는 아니었다. 칭호보다는 별칭에 가까운 것이리라.
먼저 이 시스템이 발동되기 위한 조건으로는 ‘20억 NPC’의 존경이란다. 이 존경의 대상이 누가 됐건 유토피아 시스템은 그 대상을 인지하는 기능이 있는 것 같았다. ‘당나귀 성자’라는 실체없는 영웅을, 중원 NPC들이 존경하게 됐고 유토피아는 그 당나귀 성자를 윤석으로 지목하여 이러한 결론에 도달한 것 같다. 일단 조건은 20억 NPC의 존경.
그리고 다른 칭호와 중복이 가능하며 클래스와도 다른 개념이었다. 지금의 모든 능력과 클래스는 그대로 둔 채, 거기에 ‘당나귀 성자’의 칭호를 더하는 거다. 적어도 손해볼 건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Identity'에 있다. 윤석은 얼스인이다. 그런데 중원에서 존경받고 있음을 드러내는 ’당나귀 성자‘를 받아들인다는 것이 과연 가당키나한 일인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봤다.
이 부분에 있어서 고심하고 있는데 상철SC에서 관련 정보를 조사하다가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상철SC는 유토매니아의 직속부서는 아니지만, 요즘은 그에 준하는 비슷한 개념으로 운영되고 있다. 사실상 상철SC는 다른 계약은 받아들이지 않고 유토매니아의 일만 처리해주고 있었으니까.
상철SC의 전 인원이 투입되고, 은미상단의 지원을 받아 정보와 관련된 NPC들을 포섭하여 알아낸 사실이다.
윤석 말고도 과거, 중원과 얼스 두 대륙에서 동시에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 있단다. 이 이야기는 지금은 거의 소실되어버렸고 신빙성도 별로 없는 전설이나 다름없는 얘기였지만 그래도 상철SC가 조사한 내용 중 현재 윤석의 상황과 겹치는 상황이다. 보고를 올렸다.
옛 이야기에 등장하는 남자는 얼스인은 아니었다. 본래는 중원인 이었단다. 중원인으로 태어나 무인의 삶을 살다가 우연한 기회에 얼스에 가게 됐는데 그 때부터 그의 인생이 바뀌었단다. 그 오랜 옛날에는 얼스도 지금처럼 과학이 발달한 상태가 아니었고 기마전 형태의 싸움을 벌이곤 했었단다. 그 때, 이 남자는 얼스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며 ‘귀머거리 영웅’으로 유명해졌고 혼란에 잠긴 얼스를 평정하는 쾌거를 이루어냈다고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상철SC가 사람을 풀어 알아본 결과 얼스에도 비슷한 전래동화가 전해지고 있다는 거다. 중원 출신의 영웅이란 이야기는 없었지만, ‘귀머거리 영웅’에 대한 이야기는 있었다. 그는 한 자루 칼을 사용했으며 귀신같은 칼솜씨로 얼스를 통일한 최초의 영웅이었고, 그 영웅은 죽을 때까지 단 한마디의 말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그런 얘기다.
전래동화의 이야기가 뭐 그리 흥미롭겠냐고 반문한다면,
“그런데 정말 재미있는 사실은 말입니다.”
상철SC에서 파견 나온 남자가 보다 쉬운 보고를 위한 PPT를 뒷 페이지로 넘겼다.
“그 남자의 이름입니다.”
화면에는 남자의 이름이 적혀져 있었다. 남자의 이름은 혁거세. 중원의 오랜 역사를 알 리 없는 윤석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혁거세란 이름이 뭐가 그리 흥미롭단 말인가.
남자가 보고를 이었다.
“혁거세. 초대 천마의 이름과 동일합니다.”
* * *
상철SC의 도움을 얻어 여러 가지로 알아본 결과 ‘당나귀성자’의 칭호를 받아들이는 건 전혀 손해가 되는 일이 아니었다. 결국 윤석은 ‘당나귀성자’의 칭호를 받아들였다.
딱히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명성이 엄청나게 높아지기는 했지만 이게 직접적인 전투력이나 지력 같은 것에 영향을 주는 건 아니다.
설명은 매우 거창했다.
<당나귀 성자>
현 중원에서 가장 명망 있는 인물이 가질 수 있는 칭호. 당나귀 성자는 당나귀를 타고 다니며 온갖 기적을 일으킨다고 전해진다. 그의 명성과 명예는 이미 하늘을 찌를 듯 높으며 민중들이 그를 위해 기도한다. 그 명성과 명예는 감히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당나귀 성자의 선행은 이미 하늘의 가장 높은 곳과 바다의 가장 깊은 곳까지 닿았으며 이 이름은 역사책에 기록되어 전설로 군림하게 될 것이다.
선행이 하늘의 가장 높은 곳에 닿든, 바다의 가장 깊은 곳까지 닿든,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당나귀 성자의 칭호를 받아들여서 나빠진 건 없지만 좋아진 것도 없었다.
다만, 좋은 거라곤 바로 난이도 s의 길드퀘스트를 성공시켰다는 거다.
“자네라면 해낼 줄 알았어.”
슐터는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병력을 많이 잃기는 했지만... 어쨌든 작전은 성공했군.”
보상을 많이 해주고 싶었지만 병력의 손실이 커서 그 규모가 작아졌단다. 항공모함이 포함된 전력인 제 18함대를 하사받았다. 그리고 제 8전투단에 없었던 전투기 기종이 하나 추가 됐다.
바로 F-350K.
이는 중원과 판타리아의 인간들과도 대적할 수 있는 신형 전투기종이다. 사실 이보다 아랫단계의 전투기들은 타 대륙의 고위 NPC들과 만나면 위험해진다. 파괴력과 살상력이 결코 약한 건 아니지만 고위 NPC들은 전투기들을 격추시킬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F-350K는 시각 스텔스 기능은 물론이고 기척과 소리까지 잠재운 신형 전투기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기척과 소리를 없앤 것은 아니다. 판타리아인들의 마법장을 방해하는 기술과, 중원인의 내력운용을 방해하는 기술을 접목시켰다.
나를 보지 못하게 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내가 숨는 것’이고 또 하나는 ‘상대가 못보게 만드는 것’이 있다. F-350K가 적용한 기술은 바로 ‘상대가 못 보게 만드는 것’이 되겠다.
얼스인들에게는 굉음이 들리지만 타대륙 인간들에게는 들리지 않는, 특별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다시 말해, 판타리아인들 특유의 MP. 중원인들만의 특징인 내공등에 반응하는 기술이라 할 수 있겠다.
대신 얼스의 레이더에는 잡힌다. 최근의 ‘최신 무기’라 함은 얼스보다는, 판타리아와 중원을 상대하기 위한 무기를 일컫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F-350K는 F-220K보다는 한참 뒤지지만 그래도 ‘최신 무기’ 축에 속하는 전투기였다.
F-350K가 재배치 됐고 공적치가 70퍼센트 이상 차올랐다. 공적치가 오를 때마다 계급이 올랐었고 계급이 오를 때마다 어마어마한 보상이 뒤따랐다. 과연 나머지 30퍼센트를 언제 어떻게 채울지는 미지수지만.
“죄송합니다. 예상외로 반격이 너무 거셌습니다.”
“아니야. 아니야. 자네를 질책하는 게 아니네. 그건 고귀한 희생이었어.”
이번 길드퀘스트를 통해 얻게된 것을 정리해 보자면,
하나는 항공모함이 포함된 귀속함대고, 또 하나는 근거리까지 다가가서 판캐와 무캐를 공격할 수 있는 최신 전투기 대대였다. 그리고 공적치 70퍼센트.
얼스에서 준 것은 아니지만 ‘당나귀 성자’의 칭호도 얻었다.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성과였다. 함대를 무려 3개나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받았으면 정말 잘 받은 거다.
“그나저나 여기저기서 국지전이 계속해서 발발하고 있어.”
“그렇...습니까?”
“그럴 수 밖에 없지. 미친 마교도들이 죽어도 좋다는 식으로 덤벼들고 있거든.”
마교도들의 본진. 그러니까 ‘천마인들의 성지’를 공격한 것은 아니다. 그게 공격받았으면 아마 마교도들 전부가 일어나 쳐들어왔을 거다. 다만, 자신들이 위협당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여기저기서 게릴라전을 펼치고 있는 모양이다.
“이 정도는 어차피 감수해야할 일이니까.”
슐터는 윤석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밖으로 내보냈다.
‘새로운 귀속함대, 최신 전투기, 공적치. 그리고 당나귀 성자인가...’
사실상 당나귀 성자는 그리 필요 없는 보상이었다. 적어도 그 날이 올 때까지 윤석은 그렇게 생각했다.
* * *
혁거세. 그 것이 그가 가졌던 첫 번째 이름이었다.
그는 얼스의 영웅이었다. 그와 동시에 천마이기도 했다. 천마는 중원에서 포탈게이트를 최초로 발견한 인간이기도 했다. 그동안 곳곳에 ‘포탈게이트’라는 기록이 남아있기는 했지만 아무도 그 위치를 찾을 수 없었다. 약 2만년 전에는 그랬다.
그 이후에 그는 이름을 여러 번 바꾸었다. 신선이 되기보다는, 인세에 남아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누리고 싶어했다. 얼스에서의 ‘영웅’칭호도 좋았다. 그러나 역천의 대법을 실행한 이후로 그는 천마산을 떠날 수 없었다.
천마산에만 존재하는 특수한 기운이 있다. 천마는 그 것을 ‘천마력’이라고 불렀다. 천마는 그 것이 없으면 단 일 초라도 살아갈 수가 없다.
역천의 대법은 인세에서의 삶을 연장해준다. 그러나 천마산을 벗어날 수 없는 끔찍한 굴레를 씌워놓았다. 그래도 그는 2만년간 살아왔다. 육체를 계속 바꾸면서 말이다.
2만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천마산을 벗어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그러다가 알아낸 사실이 있었다.
칭호를 가진 자의 몸을 가지게 되면 천마력이 없어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칭호...”
천마는 중얼거렸다. 칭호라는 개념은 ‘무명’과 일치하는 말이다. 본래의 이름대신 ‘천마’ 혹은 ‘사황성주’ 혹은 ‘검왕’등으로 불리는 것이 바로 칭호의 개념이다.
최근 들어 이방인이라는 약해빠진 것들이 서로를 불러 청룡이니 뭐니 기타 등등 되먹지도 못한 칭호를 붙여대고는 있으나 그건 진정한 의미에서의 칭호가 아니었다. 그런 건 말 그대로 소꿉놀이의 별명같은 것이었다. 엄밀한 의미에서 칭호란, ‘중원인들’이 인정하는 것이어야만 했다. (유저들이 인정하는 것이 아닌, 유토피아 시스템이 그렇게 인정하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하다.)
사실상 천마가 200~300년 꼴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새로운 육체를 얻기 위함이기도 했다. 소란통을 만들고 아무도 모르게 역천의 대법을 실행한다. 그 때마다 희생양이 되는 건 정파의 무림맹주, 혹은 사황성주였다.
한 번은 소림의 신승이었던 경우도 있었는데 이 때엔 아예 정신이 붕괴될 뻔 했었다.
천마의 정신이 붕괴된다 함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거다. 그 이후로 천마는 소림사의 중들은 어지간해서는 건들지 않고 있다. 무력으로만 따지면 한참 아래라 치더라도 상성이 안 맞았다.
높은 명성과 명예를 가지고 있을수록 훌륭한 칭호를 가지고 있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백두천은 생각보다 훌륭한 육체는 아닌 듯 했다. 그런데 시간이 없었다. 하루빨리 대법을 실행해야 다시 또 200년 정도의 삶을 살 수 있을 거다.
“이 놈 역시 실속이 없겠어.”
위대한 칭호를 가진 육체가 필요했다. 지금 대법을 실행하면 또 기다려야한다. 역천의 대법을 무턱대고 아무렇게나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새로이 얻게 된 육체의 생명력,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육체가 가지고 있었던 생명력 만큼의 시간이 지날 때까지는 기다려야 한다.
“어쩐다...”
천마는 천마 혼자만이 이용할 수 있는 밀실에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러던 와중에 ‘당나귀 성자’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여태까지 그 어떤 인간들보다도 민중들의 지지를 얻고 있었다. 귀를 기울여 보니, 세상 곳곳에 그의 이름을 찬양하는 노랫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천마가 씨익 웃었다.
“당나귀 성자...?”
‘성자’라는 칭호를 가진 놈도 취해본 적이 있다. 그 때, 천마는 알게 됐다. 훌륭한 칭호를 가진 인간을 취하면 몸이 자유로워진다. 그런데 지금 성자를 찬양하는 노랫소리는 당시와 비교도 안 될 정도다.
최소한으로 잡아도 20억 이상의 인구가 그를 추종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실체가 없는 영웅이어서 더 열광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예전 1000만명의 인구가 찬양하는 성자를 취했을 때 천마력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었으니, 그 200배에 달하는 위명을 가진자를 취하면 어떻게 될지 천마도 감이 전혀 오질 않았다.
천마의 밀실에서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당나귀 성자. 넌 내가 취해야겠다.”
============================ 작품 후기 ============================
음... 자랑은 아니지만...
제가 연세대학교에서 지구과학을 공부했던 적이 있는데요.(10년도 더 전에)
당시 교수님께서 메가쓰나미는 일반 쓰나미와 규모가 완전히 다르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전공이 아니었는지라 정확하게 기억은 못하고 미국 근처의 무슨 섬이 있는데 그게 폭발하여 붕괴될 경우 높이 750m(역시 확실치 않습니다;; 여튼 수백미터였습니다)의 쓰나미가 미국본토를 덮칠 거라고 하셨는데 그런 걸 '메가쓰나미'라고 했습니다.
그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1000미터의 메가쓰나미를 작중에 넣은 것입니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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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고... 천마야. 너 어떡하려고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