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67 마교와의 전쟁 ep1 =========================================================================
* * *
마치 그 옛날 유행했던 스타크래프트를 하는 기분이다. 혹은 그에 준하는 어떤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이라던가. 일단 치트키는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치트키란, 어마어마한 포격을 가할 수 있는 함대라든가 그 강하다는 NPC들 중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사기급 NPC 소총, 포, 스나를 뜻하는 거다. (여기서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다분히 주관적인 관점에서다. 실제로 윤석은 스나를 활용하고 있다. 다만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을 뿐이다.)
윤석이 플레이하고 있는 건 당연히 '패왕'이다. 그리고 적은 '무림맹'이다. 무림맹에는 옵저버도 침투시켜 놓았다.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을 해본 사람이면 안다. 옵저버의 존재가 전쟁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말이다. 지금 윤석이 사용하는 옵저버는 월간 2.5억의 비용이 드는 초고가 옵저버다.
4시.
황금들판.
무림맹에 속한 유저들이 자리에 모였다. 수는 대략 1천여명. 패왕과 같이 든든한 자원줄이 있는 것도 아닌데 1천명이 이 정도 시간에 모여서 길드를 결성했다는 건 대단한 거다.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미리 준비했었어야 가능할 법한 일이다. 그냥 유저를 모은 것도 아니고 중원에서 모두 내노라하는 고수들을 모은 거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으악!"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사파에 속한 살수들이 은신하고 있다가 몰래 공격했다. 그게 신호였다.
황금들판 중에서도 갈대필드에 숨어있던 사파 유저들이 원거리 공격을 가했다. 주무기는 활이다. 무림맹의 유저들이 고수라면, 패왕의 유저들도 고수다. 데미지가 상당했다.
"기습이다!"
"모두 정신 똑바로 차려요!"
패왕은 미리부터 이 곳을 선점하고 있었다. 무림맹 유저들을 한 곳에 몰아넣고 포위했다.
싸움을 할 때엔 어느 위치를 먼저 선점하느냐도 매우 중요하다. 아주 사소한 문제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렇지 않다. 모든 일이 그렇다. 심장을 향한 총알이 1cm 옆으로 움직이느냐 아니느냐에 따라 사람의 목숨이 결정될 수도 있다. 겨우 1cm차이가 어마어마한 차이를 낳는다.
지금 패왕은 공격하기에 매우 유리한 진세를 펼치고 있다. 원거리 공격계열 유저들은 당연히 뒤로 빠져있고 근거리 공격계열 유저들이 앞에 섰다. 주술사나 힐러 역시 뒤로 빠져 있다. 그에 반해 무림맹 유저들은 아직 진을 갖추지 못했다.
피해가 속출했다.
"힐러부터 보호해!"
"님들! 이쪽에 버프 좀!"
우왕좌왕했다. 예상치 못한 기습이었다. 정천수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전멸당하게 생겼다.
마치, 시즈탱크(*1)가 뒤에서 든든히 받쳐주고 마린(*2)과 파이어뱃(*3), 그리고 메딕(*4) 조합이 몰려드는 형국이다. 패왕쪽은 사기가 잔뜩 올랐다.
무림맹쪽 시체 하나가 울부짖었다.
"아름다운! 단체로 스팀팩(*5)을 빨았나!"
이대로면 전멸이다. 물론 고수들답게 슬슬 정신을 차리고 반격을 가하고 있지만 진영이 안 좋다. 힐러와 원거리 딜러가 뒤에 빠져 있으면 굉장히 성가시다.
개개인의 실력은 이쪽이 조금 위. 그러나 숫자와 진세는 저쪽이 압도적 위.
'그렇다면...'
지금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하나 뿐이다.
숫자와 진세는 이미 어떻게 바꿀 수가 없다. 그렇다면 결국 남는 건 실력을 월등히 끌어올리는 거다.
'사용해야 하나...'
사용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됐다. 그는 사실 히든클래스다. 대부분의 히든클래스가 그러하듯 그는 자신이 히든클래스임을 밝히지 않았다. 사용할 여건도 충분치 않았고 딱히 사용할 일도 없었다. 본신의 성명절기를 사용할 기회도 딱히 없었다. 그저 여태까지 기회를 기다리면서 준비해왔을 뿐이다.
고민했다.
"으악! 이 빌어먹을 패왕친구들!"
"으아악!"
"된장!"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천명에 이르렀던 무림맹 유저들의 숫자가 어느새 700명 정도로 줄어들은 것 같다. 패왕 역시 2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기본적으로 패왕은 숫자가 더 많다.
'어쩔 수 없어.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신망을 잃으면 다시 회복하기 힘들다.'
정천수는 결국 사용하기로 했다. 히든클래스의 스킬을 숨겨서 얻는 이득과 밝혀서 얻는 이득을 비교해봤는데, 아무래도 후자가 더 큰 것 같다.
[고금제일 용병술]
스킬을 발동시켰다.
[띠링. 고금제일 용병술 발동. 모든 능력치가 60퍼센트 향상됩니다.]
[띠링. 고금제일 용병술 발동. 창왕의 분신을 소환합니다.]
[띠링. 고금제일 용병술 발동. 궁왕의 분신을 소환합니다.]
아직까지 단 한번도 보여준 적이 없다. 고금제일 용병술은, 자신이 거느리고 있는 병력 -게임 내에서는 파티원 혹은 길드원과 같은-의 숫자에 비례하여 그 능력이 달라지는 히든스킬이다.
현재 이 곳에 모인 무림맹유저들은 사망자를 제외하고 약 700명이다. 700명이 모여서 모든 능력치가 60퍼센트 향상 됐다. 만약 700명이 아니라 7000명이 모이면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일이다. 그 가치가 어마어마한 스킬이다.
'히든클래스로 중장만 있는 게 아냐.'
사실 최근 가장 유명한 히든클래스는 중장이다. 중장유저는 귀속함대를 거느리고 있으며 그 위력은 산 하나를 통째로 날려버리거나 지도에서 섬을 지워버릴 수도 있을 정도란다. 그러나 정천수는 자신의 힘 역시 그에 못지 않다고 생각했다.
고금제일 용병술이다. 게다가 아직 스킬레벨이 3밖에 안 된다. 스킬레벨을 더 높이고, 병력이 더 많아지면 얼마나 큰 효용성을 나타낼 지 모른다. 스킬레벨 2가 됐을 때 창왕의 분신 소환이 가능해졌고 스킬레벨 3일 됐을 때 궁왕의 분신을 소환했었다.
정천수의 예상대로라면, 나중이 되면 창왕의 분신이 아니라 실제 창왕에 버금가는 능력을 가진 어떠한 것을 소환할 수도 있을 거다.
'이번에 이겨야 해.'
어차피 스킬을 사용했다. 그렇다면 확실히 이겨서 신뢰를 얻는 게 좋을 거란 판단이 들었다.
사실 이 날을 위해 -조금 이른 감은 있지만 - 준비해왔다. 미리미리 준비해왔었고 때마침 중장이 나타났다. 중장을 빌미로 무림맹을 서둘러 창설했다. 공공의 적이 있을 때만큼 사람을 모으기 쉬울 때가 없으니까.
이 정도 되는 고수유저들을 짧은 시간에 이만큼이나 모은 거다. 중장이 없어졌을 때 그래서 일부러 또 공공의 적을 만들었다. 그 공공의 적(패왕)이 예상외로 너무 강했다는 게 문제였지만.
"뭐, 뭐지?"
사파의 유저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저쪽의 사기가 크게 오르는가 싶더니, 너무 강해졌다. 원래부터 개개인의 능력치는 무림맹쪽이 좀 더 높았는데 갑자기 상대가 안 될 수준이다.
"알라뷰다!"
"알라뷰해!"
무림맹 유저들이 반격에 나섰다. 모든 능력치 60퍼센트 향상. 가볍게 볼 게 아니다. 똑같은 키, 똑같은 무게, 똑같은 힘과 기술을 가진 두 사람이 대련을 펼친다고 했을 때, 힘만 60프로 강해져도 상대를 쉽게 제압할 수 있다.
그런데 힘만 강해지는 게 아니다. 힘 뿐만 아니라 지력, 민첩성등이 모두 높아지는 거다. 물론 그 안에는 순발력, 동체시력, 근력, 근지구력, 맷집 등. 승패를 결정짓는 모든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그 모든 능력치가 60퍼센트 강해진다는 것은 계산상 1.6배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엄청나게 강해진다는 소리다. 게다가 창왕과 궁왕의 분신 역시 상당히 강했다. 일반 유저들 수십 명 몫을 해내고 있었다.
구석에 숨어서 고스트 필드를 펼치고 상황을 지켜보던 윤석은 인상을 찡그렸다.
'갑자기 뭐 저렇게 세졌어? 저 허여멀건한 유령같은 놈들은 또 뭐야?'
아무래도 소환수 비슷한 것 같다. 자신이 가진 세 NPC에 비하면 약하겠지만 그래도 일반 유저들을 상대로 마음껏 학살을 자행하고 있었다.
'이대로면 지겠는데...'
오기가 생겼다. 윤석의 마음을 읽은 스나가 재빨리 나섰다.
"죽입니까?"
"아니. 기다려봐."
"예."
스나는 조금 시무룩해졌다. 윤석은 스나의 표정은 읽지 못한 채 흐음... 하고 턱을 매만졌다.
치트키를 쓸 생각이었으면 진작에 썼다. 소총의 서브머신건과 포의 바주카포의 도움이면 이 싸움 쉽게 끝난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야 재미가 없다. 이제야 막 새로운 클래스(?)의 재미를 깨달아가고 있는 상황 아니던가.
'히든 클래스가 있는 것 같은데...'
그것도 전세를 한 번에 뒤집을 수 있는 어마어마한 히든클래스가 숨어 있는 것 같다. 현캐 중에도 자신같은 사기 클래스가 있다. 중원이라고 없으리란 법 없다. 원래 유토피아 세계는 공평하다. 자세한 건 은현에게 들어봐야 알 것 같다.
"일단 저 허여멀건한 놈들만 사살해봐. 포가 옆에서 고스트필드 유지시키고."
스나는 그 자리에서 엎드렸다. 저격총을 꺼내들고 조준했다.
"스나. 있잖아... 하나... 둘... 셋...하면 쏘는...거다?"
고스트필드는 공격을 하게 되면 풀린다. 그래서 스나가 쏨과 동시에 고스트필드를 펼치려는 거다.
"내... 내 말... 듣고...있지? 귀여운...스나야."
"예."
포는 식음땀을 뻘뻘 흘렸다. 스나가 씨익 미소짓고 있는 걸 봤기 때문이다. 소름이 끼쳤다. 귀엽다고 말했지만 그건 거짓말이다. 스나를 진짜로 귀엽게 보는 사람은 중장님밖에 없다. 식겁하긴 했는데, 그래도 임무는 임무다. 포가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스나가 저격에 성공했다. 성가신 존재인 궁왕의 분신이 사라졌다.
"어떻게 해... 왜 셋에서... 안 쐈어..."
말은 느리지만 그래도 행동은 빨랐다. 스나가 발포함과 거의 동시에 포가 스킬포토를 찢었다. 그래도 깜짝 놀랐다.
"죄송합니다. 바람 때문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스나는 윤석을 한 번 쳐다봤다가 포를 보며 말했다. 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아니...잘못 했다는...건...아니고... 포가... 그냥... 조금 놀라서..."
"죄송합니다. 기회를 놓칠 수 없었습니다."
"그...그래... 저 놈들 빨라서... 맞추기 힘들거야. 자...잘했어."
스나가 포를 멀뚱멀뚱 쳐다봤다. 그리고 슬쩍 고개를 돌렸다. 윤석이 있는 방향이다. 윤석은 칭찬해주지 않았다. 스나가 다시 포에게 물었다.
"잘했습니까?"
"으, 응... 굉장히... 잘했어."
스나가 또 물었다.
"정말 잘했습니까?"
포는 긴장했다. 어우... 땀 난다. 내 정수리가 물을... 흘려... 왜 이러지... 하고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으면서 열심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윤석은 생각에 빠져있느라 딱히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포가 울상을 지었다.
"원사님... 쟤...또 왜...저럽니까?"
포가 부르자 소총이 찔끔 놀랐다.
"나도 몰라."
"원사님...설마... 쫄고...있었습니까?"
소총이 딱 잘라 말했다.
"그런 거 아니다."
"저번엔...숨으시더니... 이젠 쫄기까지 하시네..."
소총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 * *
아무래도 치트키를 써야할 것 같다. 궁왕의 분신을 없애버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열세다. 처음에는 쉽게 이길줄 알았더니 무림맹 유저들의 저력이 만만치가 않았다. 어느덧 저쪽도 자리를 잡았다.
포위망 중 약한 부분을 집요하게 깨부순 뒤 근거리 공격계열을 앞으로 빼고 원거리 공격계열과 힐러진을 뒤로 뺐다. 자리를 잡고나서 보니 어느덧 막상막하.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승세가 조금씩 무림맹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아무리 게임을 즐기고 싶어도 지는 건 싫다. 조금 재미없어도 결국 질 것 같으면 'power overwhleming(*7)'치고 이기는 게 낫다.
궁극의 세 NPC들을 투입시키려고 했다.
그런데.
무림맹 유저들이 급속도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분명 이기고 있는 상황인데 갑자기 도망을 쳤다.
"뭐야? 갑자기 왜 저래?"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이 전투에서는 이겼다. 이 전투에서 이긴다고 바로 길드전쟁의 승리자가 되는 건 아니다. 이번에 병력을 줄여놓았으니 3일동안 접속을 못할 거다. 그러면 저쪽 병력이 줄어든 거다. 이렇게 싸워서 병력을 줄이고 결국 본진(무림맹)을 털어 깃발을 탈취하는 쪽이 이긴다. (참고로 설명하자면 깃발에는 자체 H/P와 방어력이 있어서 유저들이 합심해서 공격을 퍼부어야 겨우 탈취할 수 있다.)
이유는 로그오프를 하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은현에게 연락이 왔다. 은현이라 쓰고 옵저버라 읽는다. 강조하지만 한달 사용할 옵저버 뽑는데 2.5억 들어간다.
"사장님. 마교가 정파를 쳤습니다."
"마교가? 무림맹을? 왜?"
"유저들의 무림맹이 아니고 NPC 대 NPC 싸움입니다. 중원 지금 전쟁났습니다."
"음? NPC들끼리 전쟁을 벌인다고?"
"예. 그래서 유저들 전부 소집당했어요."
"유저들은 별로 도움 안 될텐데?"
"일단 전체 소집이고, 아무래도 방패막이로 쓰이거나 말단 무사로 들어가거나... 각자 퀘스트를 할당받아서 해야한다고 하더라고요."
"공지 같은 거 있었어?"
"아뇨. 확인해봤는데 전혀 없었어요."
"그럴리가..."
NPC 대 NPC의 전쟁. 이건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유저들 몇 천명이 전투를 벌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현재 중원은 삼대세력이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한 가운데 마교가 먼저 정파를 쳤다는 건 정파와 사파 둘 모두를 동시에 상대할 힘을 가졌다고 확신하기 때문일 거다. 그도 아니면 사파와 손을 잡았든가. 그러나 은미에게서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이런 큰 일이 벌어지는데 공지조차도 없었다. 유저들 전체 집합이 걸리는 비상상황인데도 없었다는 건 아무래도 좀 이상하다. 이건 운영자들이 주관하는 이벤트가 아닌 듯 했다.
전화를 걸었다.
"수정씨. 유토피아 사장이랑 미팅 날짜가 언제였죠? 네네. 네. 조금 앞당길 수 있는지 여쭤봐주세요."
수정에게 연락은 금방왔다.
- 내일 당장이라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유토피아 사장이,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뵙고 싶었는데 이미 스케쥴이 정해져 있으실 것 같아서 사장님께 연락 못 드렸다고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사회성이 다분히 떨어지는 그녀는 곧이곧대로 사실만을 얘기했다.
-그래서 사장님은 굉장히 한가하다고 전해 드렸습니다.
* * *
스타용어 주석
(1)시즈탱크(*스타크래프트의 테란 종족 유닛. 사정거리가 매우 길며 스플래시 데미지효과를 가지고 있다.)
(2)마린(*스타크래프트의 테란 종족의 유닛. 해병대. 소총을 사용한다.)
(3)파이어뱃(* 스타크래프트의 테란 종족의 유닛. 화염방사기를 사용함. 스플래시 데미지 효과를 가짐)
(4) 메딕(*스타크래프트의 테란 종족의 유닛. 의무장교이며 힐러역할을 한다. 그 외에도 몇 가지 스킬이 있다.)
(5) 스팀팩: 체력10을 사용하여 공격속도가 이동속도를 빠르게 하는 스킬. 마린과 파이어뱃이 사용한다.(마약)
(6) power overwhelming : 무적 치트키. 아군의 병력과 건물이 불사신이 된다.
============================ 작품 후기 ============================
스나
"(단도를 핥으며)님들 왜 자꾸 절 피하죠? 전 귀여운 편인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