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65 마교와의 전쟁 ep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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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는 염치불구하고 신혼집에 놀러갔다. 신혼집에 놀러가서 잠을 자고 온다는 건 어쩌면 결례가 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괜찮았다. 집이 워낙에 커서 그런 것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식사시간.
우와. 언니는 도대체 할 수 없는 게 뭐야? 수희는 호들갑을 떨었다. 이건 도무지 인정할 수가 없었다. 주랑에게 부족한게 뭔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다.
"아! 있긴 있다! 언니가 부족한 거!"
"응?"
앞치마를 두르고서 신혼집에 찾아온 시누이에게 요리를 대접하던 주랑이 수희를 쳐다보며 빙그레 웃었다.
"알았다! 언니는 시기 질투가 부족해!"
그리고선, 아 이건 약점이 아닌가... 없어도 되는 건가...하고 팔짱을 끼고서 다시 진지하게 고민을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부족한 게 없었다.
외모. 재력. 몸매. 성격. 어디 하나 특출나지 않은 구석이 없지 않은가.
"근데 언니도 오빠랑 똑같이...아니 오빠보다 훨씬 더 일 많이 하면서 음식까지 직접해서줘?"
"매일은 아냐. 그래도 난 가능한한 내 손으로 해주고 싶어."
"언니도 진짜 별나다."
"음..."
주랑은 배시시 웃으면서 윤석의 눈치를 살짝 보더니,
"나는 이 사람이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있는 걸 보면 괜히 행복해지니까."
"어이쿠! 몰라봬서 죄송합니다."
수희는 맛은 있지만 별로 편하지는 않은 식사자리를 가졌다. 주랑을 보면 세상을 어떻게 저렇게 살아갈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애초에 사랑만 받고 큰 사람이라 저럴까 싶었다가도, 그녀의 가정환경을 떠올리고선 그것도 아닐거라고 생각했다.
어머니도 잃었고 새어머니와 새오빠와의 관계도 순탄치 않았었다. 정확하게는 몰라도 아마 용식이 바람을 폈을 거라고, 수희는 그렇게 짐작하고 있었다.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가 있지?'
정말 모르겠다. 수희는 생각을 접었다. 아무리 고민한다고 해도 그녀의 성격 DNA를 파악하는 건 불가능할 듯 했다. 윤석은 윤석 나름대로 흐음! 맛있어! 대단해! 등의 감탄사를 사용하고 있는 중이다.
20년 넘게 같이 살아온 수희는 안다. 저 감탄사가 얼마나 어색하기 짝이 없는지를. 오빠에겐 연기하는 재주가 전혀 없었다. 물론 맛있는 건 사실인데, 원체 저 놈의 오빠라는 작자는 감정표현에 서툴다. 적어도 수희가 아는 윤석은 그랬다. 따라서 수희가 보기에 지금 윤석의 작태는 말 그대로 '발연기'에 지나지 않았다.
그걸 또 좋다고 방실방실 웃는 주랑이나, 괜스레 멋쩍어져 얼굴이 조금 붉어지는 윤석이나. 수희가 보기엔 둘이 참 잘 만났다는 생각이 든다.
"오빠. 언제 접속할 거야?"
"곧."
"알았어. 나 씻고 먼저 접속해 있을게."
"응. 나도 금방 갈..."
윤석은 주랑의 눈치를 살폈다. 주랑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천사같은 미소를 띄우고 밥을 먹는 중이었다.
"먼저 들어가 있어. 그, 금방 갈테니까."
수희는 별다른 이상한점을 눈치채지 못했다. 식사가 끝나고 수희가 방으로 올라갔는데, 윤석이 말했다.
"여보...?"
"네?"
"화 났어?"
주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화 났어요."
"......."
윤석은 뒷통수를 긁적거렸다. 아무리 시누이와 친해도 그래도 '시'는 '시'인가 보다. 그런데 주랑이 배시시 웃으면서 말했다.
"땡!"
"응?"
"오빠가 생각하는 그런 거 때문에 화난 거 아니에요."
"그럼?"
"금방 간다면서요. 난 오빠가 조금 늦게 갔으면 좋겠어요."
주랑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침대 위의 주랑과 침대 밖의 주랑은 사뭇 다르다. 침대 밖의 주랑은 요조숙녀이고 부끄럼도 많이 탄다.
윤석도 그제서야 쿡쿡 웃었다.
"알았어. 지 혼자 좀 놀라 그러지 뭐."
하루가 지났다. 윤석은 상의는 탈의한 채 반바지 차림으로 집 안을 걸어다녔다. 수희는 언제 일어나서 씻었는지 하얀색 타올로 몸을 가리고 머리를 수건으로 감은 채 윤석에게 항의했다.
"오빠! 들어온다며! 오빠 온다그래서 판팀들 30분 넘게 대기했단 말이야!"
"몰라. 정신 차리고 보니까 아침이네. 나 데리러 오지 그랬어?"
데리러 갔어! 수희는 소리치고 싶었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어제 그녀는 들었다. 비음 섞인 신음소리를. 결혼한 사이고 그런 것 쯤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성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과 감성이 느끼는 것은 다른 모양이다.
무엇보다도 현숙하고 아름답기만한 주랑의 목소리가 그렇게 야릇하게 들릴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여자인 그녀가 듣기에도 괜히 야릇한 느낌이 들게 만드는 묘한 소리였다. 실제로 수희는 방문 앞에서 몇 초동안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그 소리를 들었다. 빨리 떠나야 하는데, 빨리 떠나고 싶은데 이상했다. 누군가 다리를 꽉 붙잡고 있는 것 같았었다. 더군다나 괜히 야시시한 기분이 들어 다리를 배배 꼬기까지 했다. 10초가 넘게 지나서야 수희는 정신을 번쩍 차리고서 도망치듯 자리를 옮겼었다.
수희의 얼굴이 붉어지자 윤석도 대충 상황을 깨달았다. 킥킥 웃었다.
"밤이 너무 짧더라."
"뭐라는 거야!"
"어느새 정신 차려보니까 아침이더라고."
"어우! 진짜!"
수희가 신경질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야, 어디가!"
윤석은 수희를 쫓아가려다가 이내 멈춰섰다. 다리에 힘이 풀려 중심을 잃었다. 윤석은 황급히 주위를 둘러봤다.
다행이다. 아무도 없었다.
* * *
현재 '중장'의 침입을 발단으로 하여 유저들끼리 뭉치고 있다. 이름하여 '무림맹'이 창설됐다. 내노라하는 네임드 유저들, 그 중에서도 정파 혹은 중도의 인물들은 대부분 모였다고 보면 된다.
거기에는 '불기둥승부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비무전적 328승 1패의 화려한 전적을 가진 네임드 유저다.
사실상 '중장'은 계기에 불과했고 이들은 판타리아의 '마연'과 마찬가지로 중원에 귀족계층을 만든 것과 다름 없었다. 실제로 중장은 살수단체를 박살내고 몇몇 유저들을 잡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 외에 다른 행동은 딱히 취하지 않았다.
불기둥승부사.
즉, 은현은 속으로 웃었다.
'정보력 장악이라는 게 무서운 거지.'
이 곳 무림맹은 무캐들 중에서도 이름 높은 유저들이지만 그래봤자 NPC들의 눈으로 보면 하수다. 조금 열심히 하는 하수. 그런데다가 정보까지 차단당했다.
상철SC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그 위세를 늘려 중원에 정보망을 구축했다. 무림맹근처의 정보를 통제했다. 물론 영원하진 않을 거다. 아무리 상철SC가 컸어도 해외 회사들의 모든 정보들까지 주무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당분간이기는 해도 어쨌든 유저들은 중장이 중원에서 완전히 떠난 줄 알고 있었다.
중장의 위협 때문에 무림맹이 창설 됐다.
그런데 중장이 없다. 그렇다면, 누군가 중장을 대신할 새로운 적이 필요했다.
"그거 모두 알고 계시죠? 전쟁을 선포하고, 사황성 영역에서 플레이하면 경험치가 1.5배 획득 된다는 것."
중원은 얼스나 판타리아보다 살인과 전쟁에 자유롭다. '길드장'은 전쟁을 선포할 수 있는데 전쟁 상태에선 상대를 죽여도 페널티가 없다. (특히나 정파와 사파간에는 전쟁이 잦았다. 경험치 이득때문이기도 했고 길드 퀘스트 때문이기도 했다.)
무림맹 맹주 '정천수'가 말했다.
"저는 무림맹 맹주의 권한으로 사황성과의 전쟁을 선포하겠습니다. 이의 있으신 분 있습니까?"
어차피 NPC들까지 껴서 싸우는 건 아니다. 이건 유저의 일이다. '무림맹' 크게 보면 길드의 한 종류다. 사황성 소속의 유저들을 죽이는 건 핑계다. 공공의 적이었던 중장은 사라진 상태고, 결국 사황성의 사냥터를 빼앗겠다는 소리다.
"없습니다."
"없어요."
"없습니다."
회의는 만장일치로 가결됐다. 이 곳의 유저들은 이제 렙업이 무척 힘들다. 따라서 경험치 1.5배는 매우 큰 유혹이다. 게다가 이번에 사황성 영역에서 새로이 발견된 사냥터가 있는데 상대적으로 약한 몬스터들이 출몰하는 데다가 아이템 드랍율도 좋았다. 특히 '500년 구렁이'의 경우는 일정확률로 내공증진 영단을 주기 때문에 고수들이 매우 눈독 들이는 것이기도 했다.
정은현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런데 중장유저는 어떻게 하죠?"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중장유저는 중원에서 빠져나간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세 명의 NPC만 조심하면 됩니다. 귀속함대는 사용의 위험도 때문에 사용하지 못할 겁니다. 배를 띄울 바다 근처에는 어김없이 '검문'이 있기 마련이죠. 그리고 각 검문에는 '검왕'이 있고요."
동해검왕. 남해검왕. 북해검왕이 있다. 그리고 서해검후가 있다. 모두 해안가에 위치한 문파로서 검왕, 검후의 능력은 천지를 가른다고 전해진다. 괜스레 귀속함대를 사용했다가는 그런 NPC들이 움직일 수도 있다.
"세 명의 NPC만 조심하면 됩니다."
무림맹의 유저들은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려고 하고는 있지만 많이들 흥분했다. 길드단위로 사냥하게 되면 보너스 경험치 포인트 30퍼센트를 받는다. 거기에 전쟁선포 후 사황성 영역에서 플레이하면 또다시 50퍼센트를 더 받는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사황성. 그러니까 사파유저들을 견제까지 할 수 있다. 일석삼조다. 나의 위상이 높아지는 방법에는 두가지가 있으니까. 내가 높아지거나, 상대를 낮추거나.
사파의 네임드 유저들을 견제하면서 이쪽은 빠르게 강해질 수 있는 거다.
"그러나 그 세 명의 NPC와 우리는 마주칠 확률이 거의 없죠. 그러니까 우리는 사파 조무래기들만 신경쓰면 되는 겁니다."
"그렇군요."
은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현재 사파에는 정파의 무림맹과 같은 구심점이 없었다. 애초에 사파를 플레이하는 유저들은 거의 자유분방한 편이다. 정파의 경우는 지켜야 할 것도 많고 제약도 많은데에 비해 사파는 그렇지 않았으니까.
사파의 경우는 캐릭터 육성도 더 쉽다. 다만 고수가 된 이후에는 정파에 비해 약해진다. 상대적으로 더 정순하고 강한 무공이 정파에 많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평균이상의 고수들은 사파가 더 많다는 뜻이다.
정천수가 말했다.
"이건 광렙의 기회입니다."
* * *
사황성 영역에도 소문이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정파놈들이 무림맹을 창설하고 근 시일내에 전쟁을 선포한 뒤 '춤추는 녹색 땅'을 점거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 퍼졌다. 그건 사파 유저들에게도 큰 일이었다.
'춤추는 녹색 땅'은 최근에 공개된 사냥터다. 렙업을 하는데에 상당히 유리했으면 영단까지 획득할 수 있는 굉장히 훌륭한 사냥터였다. 그런데 정파놈들이 그것을 알아차렸다. 거기까진 좋다. 어차피 정파, 사파의 사냥터는 관행상 나눈 것이지 판캐, 현캐처럼 완전히 대적관계는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전쟁을 선포한단다. 전쟁을 선포하면 일시적으로 적이 된다. 게다가 경험치까지 더 받아갈 수 있다. 발 빠른 유저 몇이 사황성 NPC들에게 직접 보고를 올렸으나 NPC들은 별로 신경도 쓰지 않았다.
설정이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NPC들 입장에서야 별로 신경쓸 가치도 없다는 거다. 평소 별로 뭉치기 싫어하는 사파유저들도 발빠르게 모이기 시작했다.
'패왕'이라는 이름 아래 모이기 시작했다. 누군가 의도해서 조직적으로 움직이는게 아니라면 설명하기 힘든 속도였다.
"사파에서도 패왕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이 길드가 창설됐습니다."
"힘이 더 커지기 전에 빨리 빨리 처리하죠."
"그러는 게 좋겠습니다."
한꺼번에 대병력을 상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중간중간 병력을 조금씩 끊어 먹으면 상대하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패왕의 움직임과 대처가 너무 빠르다는 것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않았다.
"그런데 패왕의 길드장이 누군지 아십니까?"
"글쎄요... 다각도로 알아보고는 있지만 꼬리가 잡히질 않네요."
판타리아에는 과거, 마도사연합이 있었다. 판타리아 최고 기득권세력이었으며 귀족유저들이었다.
이제 중원에도 비슷한 게 생겼다. 무림맹과 패왕. 내노라하는 네임드 유저들이 두 길드 안에 속속들이 모여들었다. 한동안 조용하던 유토피아 세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기자들도 덩달아 바빠졌다.
- 정파와 사파. 무림맹과 패왕. 새로운 사냥터를 두고 격돌!
- 500년 구렁이의 영단! 내공증진 효과 있어.
- 새로운 귀족집단. 무림맹과 패왕. 과연 새로운 사냥터는 누가!
- 무림맹주 정천수! 그런데 패왕의 주인은 누구인가!
- 비밀에 둘러싸인 패왕후. 과연 그녀의 정체는?
패왕은 사파가 조직적으로 모인 집단이다. 그런데 누가 패왕을 이끄는 것이 여자라는 사실을 빼고는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었다. 사실 여자인 것도 확실치 않았다.
다만 항간에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붉은색 머리카락을 가졌고 단도를 사용하며, 말수가 거의 없는 여성이라는 것만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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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왕후 등장. 그런데 뭔가 묘사가 익숙하다...? 기분 탓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