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46 Death No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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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컴퍼니'는 사실 그리 크지 않은 회사다.
그들은 중원내에서 일어나는 정보를 제공하거나 필요한 경우 해결사 노릇까지 해주는 유토피아 관련 회사라고 할 수 있겠다. 개개인의 레벨도 높고 정보력 역시 중원 최고라고 선전하지만,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그리 유명하지는 않은 회사였다. 그렇다보니 그들은 자신들의 몸값을 획기적으로 높여줄 무언가가 필요했고 그 무언가는 바로 유명세였다.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하며 일을 추진하다가, 결국 일을 냈다. 현재 유토피아에서 가장 유명한 유저인 '중장캐릭터'와 계약을 맺었다. 그 중장캐릭터는 심지어 유토매니아의 사장이다. 오월컴퍼니로서는 든든한 지원군을 하나 얻은 것과 마찬가지다.
"형님. 근데 어째 우리가 믿을만해서가 아니고 그냥 귀찮아서 대충대충 하는 것 같은 느낌이던데요."
"그럴리가. 그 사람 그렇게 보여도 유토매니아의 사장이야. 게다가 동시접속자가 5억이 넘는 유토피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유저라고."
"그래도 진짜 좀 귀찮아하는 것 같던데..."
"너 진짜 사람보는 눈이 그렇게 없냐? 그 사람이 해놓은 일들 안보여? 귀차니즘에 빠진 사람은 절대 이런 일들 다 못해."
아니다. 할 수 있다. 변호사랑 얘기하라고 한 건, 그가 이런 계약사항에 대해 잘 몰라서이기도 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진짜로 귀찮아서다.
"어쨌거나... 형님이 말씀하신 그 리스트는 완성이 됐고요. 무영문인가? 정확한 이름은 파일을 봐야 아는데... 걔네도 중장 잡으러 갈 겁니다."
"현대 적외선 탐지기나 그런건 중원캐한테는 안 먹힌대?"
"아참. 그걸 안 물어봤네요."
"띨빡아. 그걸 물어봤어야지."
"아마 먹히지 않겠습니까? 중원인도 설정상 인간인데."
"아냐. 그럼 중원캐가 현캐 암살하는 게 거의 불가능이나 다름 없잖아. 다가가기도 전에 발각 된다고. 아마 어떤 방법이 있을 거야. 우린 그걸 알아내야 해."
"그런가..."
오월 컴퍼니에 속한 유저들은 신이 났다. 다른 곳도 아니고 유토매니아와 계약했다. 아마 이번달은 보너스를 두둑히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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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신입사원 이수희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자신을 이수희라고 소개한 그녀는 주랑 옆에 서서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주랑은 마케팅과 인사관리를 한 번에 담당하고 있지만 사실 마케팅 업무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게임 내에서 사람을 고용하여 홍보하는 건 대단히 효과적인 전략인데 그게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니었다. 힘은 들지 않는데 마케팅효과는 무척 뛰어났다. 그러니까 그건 주랑에게 별로 큰 부담이 아니었다.
오히려 주랑은 상담팀장으로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다. 그리고 유토매니아의 상담팀은 그 어느곳보다 훌륭한 복지를 보장받으며 가족같은 분위기로, 한 잡지사에서 조사한 바에 의해 '20, 30대 여자들이 가장 입사하고 싶어하는 직장'으로 선정 되기도 했다.
그 곳에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꼭 모두 앞에서 이렇게 인사를 시켰다. 신입사원의 얼굴도 익히게 할겸, 이 분위기에도 익숙해지도록 할 겸. 상담텔러만 200명이 넘는다. 전세계를 상대로하여 장사를 하는 것이다보니 200명도 사실 엄청 적은 거다.
8시 45분. 일과 시작 15분 전이다. 상담팀은 이 시간에 항상 제자리에서 일어나 간단한 체조를 한다. 체조가 끝나고서 주랑은 이수희를 한 사원에게 데려갔다.
"승미씨. 승미씨가 교육시켜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주랑은 승미에게 수희를 부탁하고선 일이 있다며 자리를 떠났다. 이젠 주랑이 없어도 상담팀은 잘 돌아간다. 워낙에 좋은 직장이다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꾀 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한다. 적어도 주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그랬다.
"안녕하세요? 전 문승미라고해요. 수희씨 교육을 맡게 됐어요."
승미가 손을 내밀었다. 나이는 30대 초반 정도. 도수 높은 안경을 꼈는지 전체적 이목구비에 비해 눈이 조금 작아보였다. 안경을 벗으면 눈이 커져서 인물이 달라지는, 그런 부류였다. 전형적인 미인이라 보기는 힘들었다. 별로 윤기나지 않는 머리카락의 단발에 어제 술이라도 진탕 마셨는지 약간 초췌해 보였다. 첫인상이 아주 훌륭한 편은 못 되었다만 또 그렇다고 아주 나쁜 것도 아니었다. 얼굴색은 약간 초췌해도 옷매무새는 깔끔했다. 베이지색 면바지와 깨끗한 하얀색 티셔츠로 간편한 복장인데,
"수희씨도 내일부턴 눈치보지 말고 편한 복장으로 오셔도 돼요. 반바지도 상관 없지만 너무 짧은 바지나 치마, 끈나시, 시스루 등 너무 눈에 띈다거나 불편함만 유발시키지 않으면 돼요."
"네...?"
수희는 입사 첫날 답게 최대한 빼입었다. 단정한 검은색 정장을 차려입었다. 불편한 하이힐도 신었다. 그런데 내일부턴 편하게 입고 오란다.
"단정하게만 입으면 아무도 복장가지고 뭐라고 하지 않아요. 우리는 전화나 인터넷으로 고객을 응대하니까요. 직접 얼굴 보고 상담하는 것도 아닌데 불편한 옷 입을 필요 없잖아요?"
"네. 알겠습니다."
승미는 수희가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빙그레 웃으며 이것 저것 알려줬다. 기본 교육을 하는데에 3시간 정도 걸렸다. 말 그대로 기본적인 교육이다. 유토매니아의 거래 과정이라든가, 환불 절차라든가. 수희는 열심히 필기하면서 머릿속에 내용들을 차곡차곡 집어넣었다.
이 곳은 무척 좋았다. 선배들의 텃세도 없는 듯 보였고 급여도 셌다. 외국계 기업처럼 주급인데다가 휴가 쓰는 것도 자유로웠다. 흔히들 눈치 보여서 쓰지 못한다는 '생리 휴가'쓰는 것도 전혀 거리낌 없었다.
덧붙여 설명하자면 수희는 주랑에게 또 한번 반해버렸다. 주랑은 모든 컴플레인을 완벽하고 부드럽게 응수했으며 텔러팀 전체의 분위기를 따뜻하고 밝게 조성하면서 200명이 넘는 텔러들을 잘 이끌었다. 텔러들은 모두 주랑을 좋아하는 눈치였다. 오빠한테는 너무나 과분한 여자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렇게 3일이 지났다.
"야. 너 요즘 되게 바빠 보인다?"
"응. 나 바쁜 여자야. 오빠가 데이트 하자고 해도 시간 없으니까 데이트 신청 같은 건 안하는 게 좋을걸. 뻥! 차이고 싶지 않으면."
"내가 주랑이 놔두고 뭣하러 너랑 데이트하냐?"
수희는 발끈하려다가 이내 한숨을 폭 내쉬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주랑이면 인정할 만 했다.
"그래. 주랑언니랑 데이트나 실컷 하셔!"
"너 원래 아침에 일어나지도 못하는 주제에 어딜 그렇게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는데?"
"남이사. 나도 데이트하러 간다!"
"그 때 놀이공원에서 봤던 그 멸치?"
"멸치 아니거든?"
"야. 걘 냬 맘예 안들어. 다른 애 골라."
"오빠 맘에 안드는게 나랑 무슨 상관이람."
수희는 메에- 하고 혀를 낼름 내밀었다가 도망치듯 현관에서 나와버렸다. 더 있다가는 윤석에게 붙잡혀 이것 저것 추궁당할 것 같았다. 원래부터 거짓말에는 별로 소질이 없는지라 조금만 더 얘기하면 모두 이실직고할 것만 같은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그나저나 오빠주제에 회사운영을 잘하나봐."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이름 살짝 바꿔서 취업했는데 -주랑의 힘을 빌어- 이 회사는 직원들에게 거의 파라다이스였다. 흠흠- 기분이 좋아져서 콧노래가 나왔다. 그러다가 자신의 머리를 양 손으로 붙잡았다. 걸음을 멈췄다. 황당해져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가만! 내가 왜 좋아하고 있는 거지?"
난 절대 우리 오빠를 자랑스러워 한 적이 없어. 그녀는 마음을 부여잡고 버스에 올라탔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자꾸 싱글벙글 웃음이 나왔다. 버스에서도 무려 세 번이나, 약간 제정신이 아닌 것 처럼,
"나는 좋아하고 있지 않아! 진짜야!" 라고 약간 큰 목소리로 말하며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댔다. 당연히 주위 사람들이 좀 이상하게 봤다.
회사에 도착해서 마침내 본격적인 업무에 들어갔는데. 누군가 벌떡 일어섰다.
"씨발 진짜! 이 미친 새끼야!"
텔러들의 눈이 동시에 한 곳을 향했다. 텔러 중 한 명이 벌떡 일어서서 전화기에 대고 욕을 퍼부었다. 처음 씨발과 미친새끼는 애교였다. 찰지고 구수한 욕이 계속해서 뿜어져나왔다. 수희는 벙쪄서 그 여자를 쳐다봤다. 여자는 한참이나 욕을 쏟아낸 뒤 씩씩대며, 수화기를 던지듯 내려놓았다.
수희가 깜짝 놀라 맨 앞, 주랑의 자리를 쳐다봤다. 주랑이 자리에 없었다. 여자는 자리에 앉고나서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씩씩대며 욕을 내뱉었다.
수희는 순간 욱했다.
'너무한 거 아냐?'
텔러도 사람인 건 맞다. 당연히 화가 날 수도 있고 열 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걸 저런식으로 푸는 건 곤란하다. 상담원은 분명 서비스업종에 있는 사람이고 서비스업에 있는 사람은 고객을 친절히 대해야 한다는 것 정도는 겨우 대학생인 수희도 잘 안다. 그걸 다 감안하고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애초에 그걸 감당할 자신이 없으면 이 회사에 들어오면 안 됐다. 게다가 자기 회사였으면 저런 식으로 반응할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
또 시간이 지났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상했다. 주랑이 있는 동안 이 곳은 고객들의 천국이었다. 그러나 주랑이 자리를 비우면, 텔러들은 순한 양에서 늑대로 돌변하곤 했다.
물론 그 수가 아주 많은 건 아니지만 일주일 동안 8명이나 저런 모습을 보였다. 주랑은 바쁘다. 항상 자리에 있는 게 아니다. 주랑이 있을 때와 없을 때, 텔러들은 일하는 모습 자체가 바뀌었다. 고객에게 욕을하고 대드는 건 극단적인 예라고 쳐도 목소리와 말투 자체가 바뀐다.
텔러들의 복지와 권리가 워낙에 잘 되어있다보니, 오히려 부작용이 생겨버렸다. 고객의 권리보다 자신의 권리를 더 높게 생각해버리게 되는 거다. 수희도 처음엔 그것들이 잘 보이지 않다가 일에 익숙해지자 더 잘보였다. 원래 아는 만큼 보이는 거다.
"문대리님. 솔직히 너무 심한 거 아닌가요?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고객한테 그렇게 욕을..."
수희는 자신의 교육을 담당했던 승미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모른 체 하는게 나아요."
그 말에 수희는 좀 더 화가 났다. 알아보니 컴플레인이 들어와도 어차피 그걸 접수하는 것이 텔러이기 때문에 더 윗선. 그러니까 주랑이나 민혁과 같은 관리자 급에게는 들어가지 않는다는 거다.
관리자급들 모르게 아래에서 쉬쉬하며 저희들끼리 으쌰으쌰 모이는데, 그게 별로 좋지 못한 방향으로 단합한다는 게 문제였다. 사실 아래에서 이런식으로 은폐하면 관리자급들은 잘 모른다. 그리고 이건, 유토매니아가 구조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바이기도 했다.
"가족같은 분위기. 훌륭한 복지. 다 좋은데... 이건 아니라고 봐요. 기본적인 예의와 서비스 마인드라는 게 있는 건데..."
그런데 목소리가 조금 컸나보다. 조용히 말한다고 말했는데, 누군가 그걸 들었다.
"저기요. 그 잘난 신입사원씨. 어디 한번 계속 얘기해보세요. 아주 흥미로운 얘기를 하고 있네요?"
수희가 처음 봤던, 고객을 향해 쌍욕을 내뱉던 그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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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부르다 부르다 못해 터지기 일보직전.
어서와.낙하산은 처음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