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42 중원도 슬슬 움직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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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은 이제 PK에도 자신이 생겼다. 일명 '템빨'의 위력을 깨달았다. 중원 캐릭터들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살수들의 공격이 얼마나 위협적인지는 어느정도 알고 있었다. 정식싸움에는 약하지만 기습에는 특화된 클래스 아니던가. 몬스터 사냥에 있어서는 오히려 검사보다도 훨씬 효율적인 클래스이기도 할 정도다. 그 클래스의 공격을 무리없이 막아냈다. 게다가 믿는 구석들도 있다.
일단 아무리 쓰레기 현캐라도 레벨이 높다. 퀘스트를 수행할 때 억에 가까운 판타리아 유저들을 학살했다. 그 중에는 마도사라는 최상급 몬스터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정도 되는 퀘스트는 안 그래도 경험치를 많이 준다. 현재 윤석의 레벨은 128. 물론 랭킹을 공개해 놓지는 않았다. 현재 레벨 랭킹 1위는 한 판타리아의 유저로 120이다.
참가등록을 마친 윤석이 주랑에게 귓속말했다.
"아마도 내가 레벨로는 전체 랭킹 1위 일걸."
원래부터 레벨자체는 높았다. 그런데 이젠 심지어 전체랭킹 1위다. 사실 건오퍼에게 레벨자체는 중요한 것은 아니었으나 어쨌거나 랭킹 1위라는 건 결코 무시할 것은 아니었다.
- 오오-! 아! 안타깝습니다! 폭풍! 상당히 선전했습니다만 결국 유쾌남아에게 쓰러지고 마는 군요! 빠른 연사를 바탕으로한 제법 훌륭한 공격이었지만 그보다 검사의 움직임이 훨씬 빨랐습니다. 다음 라운드는...
사회자가 마이크에 침을 튀겨가며 열심히 설명했다.
- 다음 라운드는 전사계열의 졸지오웰! 주로 사용하는 아이템은 고르곤의 도끼로 힘 위주의 육탄공격을 펼칠 것 같습니다! 그에 대적하는 유쾌남아! 아까 보셨듯 민첩함을 주무기로 하여 빠른 공격의 검사! 과연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어차피 이벤트 PK는 죽어도 페널티가 없다. 만약 페널티가 있다면 누가 이런 이벤트에 굳이 참여하겠는가. 이런 이벤트들은 주최측에서 유토피아에 일정한 금액을 지불한 뒤, 이벤트서버에 채벌을 하나 따로 따서 이용한다. 이 채널에서는 죽어도 전혀 페널티가 없다. 말 그대로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오락성 채널인 셈이다.
윤석의 차례가 될 때가지 약 10분 정도 남았다. 이 이벤트는 가능한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게임당 2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진행된다.
"그나저나... 현대캐릭터들은 여전히 별로 없네."
"그러게요. 많이 늘었다고 하긴 했는데..."
많이 늘긴 했다. 군인클래스가 생겨나면서 입대하는 유저들이 많아졌으니까. 그러나 아직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상태다. 다른 대륙의 캐릭터들에 비해 레벨도 많이 낮은 상태다. 그렇다보니 이런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는 현대클래스는 많지 않았다.
그 때, 사람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 오오! 이럴수가! 강력한 우승후보가 나타났습니다!
누군가 대형 모니터속에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이 쑥덕거렸다. 모르는 사람들도 있는지 어떤 무리는 침을 튀겨가며 저 유저에 대해 설명했다.
- 빨간색 계통의 로브! 노란색 어깨! 그리고 갈색지팡이! 샤무입니다! 오! 대인전 최강의 마법사들이라 불리는 샤무가 나왔군요! 아이디는 오빠주거! 이럴수가! 샤무 내에서도 초창기 멤버! 유저들 사이에선 미소천사라 익히 알려진 오빠주거입니다! 아! 이거 너무 강력한데요!
사람들은 별명 붙이기를 참 좋아한다. 특히 유토피아 세계에는 별 이상한 별명들이 많았는데 '미소천사'역시 그 중 하나였다. 뛰어난 컨트롤과 간단한 마법의 조합으로 대인전에 있어서 최강의 마법사들로 불리는 샤무에 속한 여자 마법사로, 겉모습 만큼은 천사처럼 예쁘다고 사람들이 붙여준 별명이었다.
윤석은 피식 웃었다.
"아이디 참 웃기네."
여동생을 가진 오빠로서, '오빠주거'라는 닉네임이 조금 웃겼다. 주랑이 생긋 웃었다.
"정말요?"
"웃기잖아. 오빠죽어가 뭐냐?"
"아마 안 웃기실텐데..."
주랑은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배시시 웃었고 그 표정을 이해못한 윤석은 얼굴을 약간 찌푸리고서 화면을 봤다가.
"빌어먹을!"
욕설 아닌 욕설을 내뱉고 말았다. '오빠주거'는 이미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익숙해도 너무 익숙했다.
"김수희 이걸 그냥 콱!"
제 딴에는 엄청 잘해줬다고 생각했는데 배신의 해머로 뒷통수를 세차게 후려갈겼다.
"오빠 죽어? 어쩐지 지 아이디가 무슨 오빠사랑해, 훌륭해. 고딴식으로 말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예전에 분명히 들었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도 하여튼 매우 좋은 뜻의 닉네임이었다. 내심 기분 좋았었는데 배신 당했다.
윤석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구경꾼들은 흥미진진한 눈으로 경기를 지켜봤다.
"오! 대박이다! 어떻게 저런 게 가능해?"
"완전 1cm까지 리치 계산하고 1초까지 캐스팅시간 계산해서 블링크 펼친 다음 아슬아슬하게 한 방 먹인 거 같은데?"
"와... 괜히 샤무가 아니구나."
윤석은 이를 으득 갈았다. 샤무고 뭐고 이제 얄짤없다. 동생이고 뭐고 없다. 안봐주기로 했다.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어디 전화해요?"
"내 무서운 비서님."
윤석은 비서인 수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스케일을 넓히란다. 놀이공원 내의 중소규모 이벤트에, 김윤석이 개입했다. 아까 다른 사람들 눈치 보인다고해서 놀이공원 구입을 진지하게(?) 고려하던 윤석이다. 그런 윤석이니 이벤트 판 조금 더 크게 벌리는 건 일도 아니다.
* * *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우승상금이 무려 1억원. 서버의 규모 역시 커졌다. 사실 이 부분은 일반인들은 잘 알 수 없었다. 서버가 커졌든 말든 어차피 눈에 보이는 건 똑같았으니까. 갑자기 우승상금이 커졌다는 말을 들은 수희는 내심 기뻐하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화면에 낯익은 사람이 나타났다.
"오빠...?"
"응?"
"아니. 오빠 말고."
수희의 옆에 있던, 수희의 학과 선배 명훈은 여기 자신 말고 다른 오빠가 있는지 두리번 거렸지만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없는데?"
"아무래도... 들었겠지?"
"뭐가?"
"내 닉네임!"
"오빠주거? 유명한 닉네임이잖아."
"그게 나인줄은 몰랐을텐데...이씽. 도대체 여긴 왜 온거야?"
앞으로의 폭풍잔소리가 두렵다. 분명 오빠는 이걸 약점삼아 두고두고 괴롭힐 것이 뻔했다.
여긴 왜 온거야? 라며 따지는 듯한 수희의 말에 명훈은 괜히 찔렸다. 안 그래도 자유이용권 끊어준다고 거의 억지로 데려오다시피하지 않았던가.
"으,응? 그건..."
"아니. 오빠한테 하는 말 아니야. 저 오빠한테 하는 말이라고."
-이럴수가! 현대 클래스의 반란! 아마도 군인이라 추정됩니다! 공격력은 약했지만 결국 이겨냅니다! 방어에 특화된 특수한 클래스라 짐작됩니다! 동생두고봐! 대단합니다!
수희는 윤석의 닉네임을 안다. 윤석의 닉네임은 '동생두고봐'따위가 아니라 안졸리냐졸려다. 저 닉네임은 필시 자신에게 던지는 메시지일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수희는 윤석의 아이템에 대해서 이미 안다.
"헹. 그래도 안 봐줄거야!"
오빠한테 들킨 건 들킨 거고, PK는 PK다. 안 봐주기로 했다. 잔소리가 조금 두렵긴 했지만 그거야 애교로 어떻게든 녹이면 될 거다. 정 안되면.
"정 안되면 주랑언니 투입해서 달래줘야지."
정 안되면 주랑에게 부탁해 화를 풀어달라고 하면 직빵이다. 어쨌든 PK는 자신 있었다. 아무리 중장이어도 직접적인 전투력은 약하다는 걸 안다. 서버의 규모를 갑자기 늘린 것이 이상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괜히 샤무가 아니라고!"
"수희야. 너... 괜찮아?"
명훈의 눈으로 본 수희는 상당히 괴상했다.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주먹을 불끈 쥐질 않나, 갑자기 결의에 가득찬 눈으로 씩씩대질 않나, 무언가를 걱정하듯 울상을 짓질 않나. 하여튼 이상했다.
"괜찮고 말고! 나만 믿어 오빠!"
도대체 뭘 믿으라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명훈은 괜히 기분이 좋았다. 원래 콩깍지 씌인 상태에선 뭘 해도 좋은 법이다. 자기를 믿으라는 말이 괜스레 고백처럼 느껴졌다.
- 최후의 10인이 남았습니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현대의 군 클래스까지 포함된 최후의 10인! 거기엔 샤무의 네임드 유저 오빠주거가 포함되어 있고! 알려지지 않은 강자들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화려한 전투가 벌어질 지 모르겠군요! 최후의 10인은 서바이벌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대규모 전투가 예상되기에 서버 용량을 엄청나게 늘렸다고 하네요!
고작 10명이 싸우는데 대규모 전투라고 하기엔 조금 그렇긴 하다만 아무도 태클을 걸지 않았다.
"누가 이길까?"
"역시 대인전은 샤무 아니겠어?"
"아까 보니까 저 현좌라는 검사도 장난 아니던데?"
"서바이벌 형식이라 샤무는 어쩌면 쉽게 죽을 수도 있어."
"체력이 월등한 개땅쇠가 유리할 것 같은데..."
사람들은 저마다의 견해를 내놓았다. 현대클래스의 우승을 점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현대클래스는 물론 예상외로 선전하기는 했지만 유달리 특별한 것을 보여주지는 않았으니까. 방어력이 특출나다는 것을 빼면 다른 유저들에 비해 한참 딸리는 스펙이었다.
그러는 사이, 서바이벌이 시작되었다. 서바이벌은 말 그대로 서바이벌이다. 한 공간에 10명을 몰아넣고 PK를 시키는 거다. 아군도 없고 오로지 적군 뿐인데, 눈치싸움이 필수인 형식이기도 했다.
모두가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먼저 움직이는 순간 타겟이 될 수 있으므로 모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공격타이밍을 잡기로 했다. 단 한명을 제외하고 말이다. 한 명은, 매우 여유로운 표정으로 무전기를 들었다. 그리고 말했다.
[준비해!]
괜히 서버 용량을 늘린 게 아니다. 동생에 대한 사소한 복수도 할겸, 무시당하는 현대클래스의 위용도 높일 겸, 선전도 할 겸. 그리고 진짜 화려한 것도 한 번 보여줄 겸.
최후의 10인의, 화려한 피날레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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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납니다! 마치 불꽃놀이를 땅에 쏟아 붓는 것 같습니다! 이게 바로 그 유명한 대인전 최강의 마법사 길드! 샤무의 초창기 멤버의 힘 입니까!
-다음편에서 일부 발췌.
과연 화려한 피날레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