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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플레이어-141화 (141/244)

00141  중원도 슬슬 움직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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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두리는 눈을 부릅떴다.

'이건 말도 안돼!'

분명 기회를 제대로 잡았다. 현대의 캐릭터들은 암살에는 별로 비중을 두지 않고 있는 듯 했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저격등과 같은 위협에는 대비하고 있겠지만 말 그대로 칼 들고 접근해서 공격하는 것은 별로 생각하고 있지 않은 듯 했다.

'완벽했는데!'

그래서 억울했다. 살수는 분명 일격필살의 공격을 가진 특수한 클래스다. 물론 100퍼센트의 확률로 치명타가 터지지는 않는다지만 그래도 5명의 살수가 동시에 공격했으면 적어도 한명은 크리티컬샷이 터졌어야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퀘스트를 완료할 수 있었고 막대한 보상 역시 받을 수 있었을 거다.

"어휴. 깜짝이야."

솔직히 말하자면 윤석도 엄청 놀랐다. 비명을 지르지 않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 정도다. 깜짝 놀라서 욕도 튀어나왔다.

"이 아름다운 친구들 같으니라고."

물론 가두리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타대륙간의 의사소통은, 원친적으로는 금지되어 있으니까.

'도대체 어떻게 멀쩡한거야!'

이를 악물었다. 억울해도 이렇게 억울할 수가 없다. 어쩌면 아예 함정을 파고 기다렸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군인 NPC들이 삽시간에 달려들어 일월의 살수들을 제압했다.

"이건 말도 안된다고!"

가두리가 바락바락소리를 질렀다. 이건 아무리 봐도 시스템상 버그인 것이 분명했다. 윤석도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선 씨익 웃었다.

"너 그거 알아요?"

알기는 커녕 질문을 알아듣지도 못한다. 가두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말도 안 된다며 욕설을 퍼붓는 것 밖에는 없었다. 이 상황이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었다.

"버그를 쓴 것이 분명하잖아! 다들 캡쳐했어?"

"했습니다."

"했어요."

가두리는 억울했으나 그래도 아직까지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건 아무리 봐도 버그다. 그 것 외에는 설명이 안 된다. 다행히 이 상황을 캡쳐했으니 운영진에게 보고하면 그에 따른 적절한 보상이 내려질 거다.

이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윤석은. 상대가 보기에 상당히 기분 나쁠 법한 미소를 짓고서 말했다.

"억울하면 현질하시던가."

이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이들이 굉장히 억울해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분명 확실한 기회를 잡았을 거다. 퇴로를 확보하는 것은 아마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을 거다. 일단 자신을 죽이기만하면, 그 다음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을 거다. 어차피 죽어도 접속제한만 풀리면 다시 살아날 수 있을테니까.

"그런데 어쩌나..."

그런데 이들은 안타깝게도 윤석을 죽이지 못했다. 그건 바로 '아이템'때문이다. 괜히 유토매니아가 번성하고 있는 게 아니다. 유토매니아. 코드를 현금으로 바꿔서 파는 업체고, 그 업체가 성황을 누리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코드를 필요로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왜 코드가 필요할까? 당연히 코드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아이템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말은 즉,

"이게 바로 템빨이지."

템빨이 엄청나게 중요하다는 뜻이다. 특히나 기본적인 능력치가 뒤떨어지는 현대클래스의 경우는 아이템이 대단히 중요하다.

[수호자의 군복]

최고의 공적을 세운 이들에게 하사되는 디지털 군복. 겉으로 보기엔 일반 군복과 다를 것이 없지만 얼스의 최신 과학기술이 집약된 전혀 새로운 타입의 방어구이다. 어지간한 탄환은 착용자에게 전혀 피해를 주지 못하며 확산탄의 자탄 정도는 막아내는 뛰어난 방어력을 자랑한다.

방어력: Variable

내구성: 3000

그런데 윤석이 착용하고 있는 아이템은 단순히 '템빨'로 보기에도 무리가 있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아이템이다. 얼스의 최신 과학기술이 집약되어 있단다. 좀 더 자세한 설명으로 확산탄의 자탄을 막아낸다고 친절하게 명시되어 있다.

확산탄의 예를 한가지 들어보자면 CBU-58을 들 수 있겠다. 이는 대표적인 항공폭탄으로 모탄에서 수백개의 자탄이 투하되어 주변을 삽시간에 초토화하는 대량살상무기다. 그걸 막아낸다는 뜻이다.

그냥 허투루 받은 아이템도 아니고 무려 소장으로 진급했을 때 받은 아이템이다. 얼스에서 장성급 장교가 갖는 위상이 어느정도이던가. 소장으로 진급하면서 받은 아이템이 한낱 살수유저의 칼날에 뚫릴 리 없다. 얼스의 소장급에 맞는 중원의 NPC정도가 와야 공격이 먹힐 지경인데 아직 NPC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유저의 '일격필살'이 일격필살이 될 수 없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윤석은 공격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고 접속불가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빠지지는 않았다.

"오빠. 표정이 바보 같아요."

"너만 보면 표정이 헤벌쭉 헤벌쭉 변하는 걸 어쩌냐?"

윤석의 너스레에 주랑은 기분 좋은 듯, 애교를 가득 담아 피이- 하고 고개를 살짝 오른쪽으로 돌렸다.

"20대 중반 넘은 아줌마가 이렇게 귀여워도 돼, 안 돼?"

"저 아줌마 아니에요!"

"나랑 결혼하면 아줌마 되는거지 뭐."

윤석의 태평스런 말에 주랑은 발끈했다가도 이내 볼이 발그레해져서 "그, 그건 그래요."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나서 뭔가 억울한 듯,

"그래도 아직은 아줌마 아니에요."

"그 쪽에 포커스를 맞추지 말고 귀엽다는 것에 포커스를 두도록 해."

"그래도 아줌마는 좀..."

"내 말 안들으면."

윤석이 킥킥대고 웃었다. 장난스레 협박하듯 눈을 크게 뜨고 주먹을 말아올렸다. 전혀 무섭지 않은 그 태도에 주랑은 피식하고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윤석을 올려다보며 되물었다.

"안 들으면?"

"여기서 확 키스해버린다."

"으휴, 진짜!"

주랑은 윤석의 팔뚝을 찰싹 때리고서 옆으로 두 걸음 멀어졌다. 윤석은 일부러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글자 그대로 '흐흐흐'소리를 내며 능글맞게 웃었다. 손가락까지 꿈틀거렸다. 그 다분히 과장된 태도와 행동에 주랑은 창피할 법도 하건만 이내 윤석에게 다가가 다시 팔짱을 꼈다.

"이렇게 사람 많은데요?"

"뭐 어때? 내가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주랑은 주위를 한 번 살펴봤다. 손에 풍선을 든 아이들도 보이고 커플로 추정되는 많은 사람들이 하하호호 웃으며 걸어다녔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몇 몇 여자애들이 교복을 입고서 깔깔대며 뛰어가기도 했다. 또 어떤 커플은 미키마우스의 귀처럼 생긴 귀가 달린 머리띠를 하고 있었다. 저만치 먼 곳에는 인형탈을 뒤집어쓴 사람이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내가 우리 주랑이한테 키스하는 것도 눈치봐가면서 해야하면, 그냥 여기 아무도 못들어오게 전세내지 뭐. 아, 아니다. 그냥 여기 살까? 얼마면 되려나?"

"그렇게 되면 놀이공원 좋아하는 많은 아이들이 실망할 거에요."

주랑은 윤석의 헛된 돈지랄을 단 한번에 무마시키고선 주위 눈치를 또 한번 살폈다. 그리고 뒷꿈치를 들어 윤석의 입술에 살짝 키스했다.

"지금은 이 정도만 하기로 해요."

"그래."

짧은 키스였지만 윤석은 기분이 좋아져 주랑의 허리를 감싸안고 걸었다.

"지금은 이 정도면 나중엔 다른 것도 해도 되겠네?"

주랑의 얼굴이 붉어졌다. 싫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대답도 하지 않았다. 윤석은 이제 안다. 이건 완벽한 긍정의 뜻이다. 몇 초 지나서 주랑이 입을 열었다.

"요즘 오빠 바쁘다고 오래 못봤잖아요."

사실 따지자면 오래 못보지 않았다. 겨우 이틀 못봤을 뿐이다. 그러나 그게 주랑에게는 정말 긹게 느껴졌나보다.

"아...그게..."

그러나 그렇다고 '겨우 이틀밖에 안 됐잖아. 무슨 소리야?'라고 물을 정도의 담력이, 윤석에겐 없었다. 주랑이 오래 못봤다면 오래 못 본거다. 사실 어제그제는 바빴다. 중원 진출계획을 세우고 있어서 그렇다. 잠자코 당하기만 할 수 없다. 이번에 일월이 퀘스트를 받았다지만, 아마도 다른 살수단체들에도 퀘스트가 떨어질 거다. 상대가 얼스의 중장쯤 되면 그 보상이 엄청날 거고 그러면 아마 계속해서 살수들이 진입해 올거다.

그렇게 되느니 아예 이 쪽에서 쳐들어가는 것이 낫다. 단순히 살수단체를 찾아내 박살내는 것만으로 얼마나 효과가 있겠냐마는 안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다. 박살내는 것 이후에 어떤 조치가 필요하면 행할 생각이지만 아직 괜찮은 방도가 떠오르지는 않았다.

"미안. 중원일 때문에 조금 바빴어."

주랑은 입술을 조금 내밀었다. 약간 뾰루퉁한 표정이다.

"중원한테 오빠를 빼앗기기 싫어요."

말은 심하게 하지 않아도 사실 주랑은 섭섭했다. 적어도 윤석에게만큼은 언제나 일순위가 되고 싶은 마음이다. 게임에게 밀렸다는 사실이 분하기도하고 슬프기도한데, 또 그걸 이해해주고 싶기도한 괴상망측한 마음이 들어 더 뾰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윤석은 주랑을 달랬다.

"대신 오늘은 키스 많이 해줄게."

"얼만큼요?"

"백 번?"

주랑은 백 번이란 말에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애매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선 다시 까치발을 들어 윤석의 볼에 살짝 키스했다.

"이제 99번 남았네요."

스스로 말하고서도 부끄러운지 주랑은 윤석의 손을 꽉 붙잡고서 걸음을 옮겼다. 윤석은 못이긴 체 주랑에게 딸려 걸어갔다. 그러다가 무언가를 발견했다.

"어. 오빠! 저거 봐요."

"어라. 토너먼트 이벤트인가보네."

요즘들어 이런 토너먼트 이벤트가 많아졌다. 옛날이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놀이공원의 광장에 캡슐이 설치되고, 대형 스크린에서 PK이벤트가 벌어진다는 건.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한국과 같은 IT강국은 이미 거의 대부분의 국민들이 유토피아를 즐긴다고 볼 수 있다. 이 곳 놀이공원을 찾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보니 이런 PK이벤트가 자주 벌어졌고 인기도 많았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선 거의 무조건 생기는 이벤트라고 보면 됐다.

주랑이 윤석의 팔을 꼭 붙잡았다.

"우리도 한 번 해볼래요?"

주랑도 안다. 유토피아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다. 이 세계의 사람들은 유토피아를 단순히 게임 취급하지 않는다. 그 곳은 또 하나의 특별한 세상이다. 특히 윤석에겐 더 특별하다는 걸 안다. 그래서 윤석이 유토피아때문에 자신을 조금 소홀히 대해도 이해할 수 있었다. 화를 내고 질투해봐야 남는 게 없을 줄 안다. 대신 유토피아를 같이 즐기기로 했다. 사실 주랑은 유토피아보다 윤석이 훨씬 좋다.

"오빠랑 같이 하고 싶어요."

윤석 앞에 어떤 수식어가 붙어도 괜찮다. '뚱뜽해진' 윤석도 괜찮고 '못생겨진'윤석도 괜찮고 '가난해진'윤석도 좋다. 그러니까 유토피아를 즐기는 윤석도 좋다. 그런데 더더욱 좋은 건, 유토피아를 즐기는 윤석과 '함께 하는 것'이다. 뭐가 됐든 윤석과 같이 하는 게 제일 좋다.

주랑이 윤석을 잡아당겨 앞서 걸어갔다. 참가접수를 했다. 개인전 하나와 커플전 하나를 등록했다.

============================ 작품 후기 ============================

나들이도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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