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플레이어-140화 (140/244)

00140  중원도 슬슬 움직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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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모함을 제외한 모든 해상전력이 집결해 있는 바다위를 떠다니는 전투요새 '제 8함대'와 고구려를 비롯하여 대규모 화력을 퍼부을 수 있는 전력을 지닌 '제 8전투단'을 동시에 지휘하는 전무후무한 중장.

물론 현실은 아니다. 현실에서 해군력과 공군력을 동시에 가진 채 지휘하는 중장이 있을 리 없다. 그러나 유토피아는 이미 현실을 넘어섰다. 적어도 유토피아를 플레이하는 20억의 사람들에겐 그랬다. 유토피아는 현실 이상의 현실이었고 현실보다 훨씬 더 중요한 세상이 되었다.

사실 운이 좋았다. 판타리아와 얼스가 격돌하는 거대한 퀘스트가 벌어지지 않았다면 윤석에게 이런 기회는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퀘스트는 떨어졌고 승리자는 윤석이었다.

판타리아의 마도사 세력은 무너졌다. 길드퀘스트에서 패배한 덕분에 기존의 마도사들이 모두 마도사의 직위를 박탈당했다. 판타리아는 현재 여러갈래의 세력들이 일어나 기존의 마도사들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들을 꿰차며 세력을 잡아가는 중이었다. 그 중에서도 마도사 잡는 마법사인 샤무는 급속도로 그 세력을 넓혔다. 샤무의 경우 특별한 클래스를 가진 유저는 거의 없었다. 그들은 기본적인 '대인'마법과 컨트롤에 치중하여 마도사가 가지는 이점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는 유저들이고 따라서 특수한 직업이나 히든스킬에 목 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강한 전투력을 과시하며 판타리아 마법사들의 중추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어쨌거나 판타리아의 마도사들은 무너져내렸고, 그건 길드퀘스트 때문이었다. 윤석은 길드퀘스트로 막대한 덕을 보았지만 마도사들은 밑천을 뿌리 채 뽑힌 격이다. 그런데 짚고 넘어가야할 것이 있다. 윤석만 퀘스트를 받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쉿!]

'일월'에 속한 '가두리'가 주위를 살피며 전음을 보냈다.

판타리아엔 마도사가 있고 얼스엔 군인이 있다. 중원에는 강호들이 있다. 마도사와 군인에도 여러가지 분류가 있듯이 강호 역시 마찬가지다. 검을 다루는 검호, 창을 다루는 창수, 궁을 다루는 궁사 등. 강호도 여러종류의 클래스로 갈리게 된다.

가두리는 그 클래스들 중 '암살자'에 속하는 부류였다. 암살자 혹은 살수. 그들은 판타리아의 어쌔신과 비슷한 개념이다. 판타리아의 어쌔신은 보조마법을 사용하고 저주, 혹은 디버프를 걸어 공격하는데에 특화되었고 살수는 어쌔신보다 육체적 능력에 더 치중한 클래스라고 할 수 있겟다.

기본적인 움직임은 어쌔신보다 빠르고 은밀했다. 그들은 마치 하나의 그림자처럼 어둠에 동화되어 조용히 움직였다. 수는 정확히 7명. 사실 그들이 바로 '일월'의 전력-NPC를 제외하고-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사실 '일월'에 관해선 많은 소문이 있다. 수십명씩, 혹은 수백명씩 몰려다닌다는 설도 있고 아예 혼자서 모든 일을 도맡아 한다는 소문도 있고 사실 그들이 전부 여자로 이루어진 암살대라는 소문도 있었다. 어쨌거나 '일월'은 중원 내에서도 상당히 이름 있는 살수단체였고 가두리는 그 일월의 수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적어도 일월에 속한 유저들 중에선 그랬다.

가두리는 침을 꿀꺽 삼켰다. 등에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공포영화만 봐도 오싹해지는 게 사람이고, 침투영화의 한 장면만 봐도 긴장하며 심장이 쿵쾅대는 게 사람이다. 그런데 지금은 영화 따위가 아니다. 실제로 그들은 침투작전을 감행하고 있었으며 단언하건대 이 작전은 그가 여지껏 실행했던 모든 작전들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적어도 침투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근처엔 그림자가 없습니다. 침투하기 힘들어요.]

여기까진 정말로 쉽게 왔다. 의외로 경비가 그렇게 삼엄하지는 않았다. 중원인들은 언제나 암살을 목전에 두고 살아서인지 아니면 기감이 발달해서인지는 몰라도 침투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그런데 '현대'는 달랐다. 그들은 기감도 둔한데다가 이런식의 침투를 별로 경험하지 못한 듯, 대비 역시 보잘 것 없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살수들이라고해도 그림자가 아예 없는 이런 뙤양볕 아래에선 은신할 수가 없다.

[나도 알아. 조금만 기다려.]

가두리는 잠시 생각에 빠져들었다. 구름이라도 잠깐 해를 가려 약간의 그림자만 만들어주어도 좋으련만 지금 상황으로썬 그럴 것 같지도 않았다. 살수는 일격필살의 클래스다. 한 번 급소를 찾아 공격하게 되면 그보다 두어수 높은 고수라도 죽일 수 있지만 전면전에 있어선, 한 수 뒤지는 검호도 상대하기 힘든 클래스다. 그런데 상대는 한 수 뒤지는 검호 정도가 아니라, 얼스 내에서도 손 꼽히는 '중장'이 아닌가.

가두리는 갈등했다. 물론 상대가 중장이라는 건 안다. 그런데 너무나 허점이 많다. 일부러 허점을 취하고 있는건지, 아니면 정말로 허약한건지, 그도 아니면.

[현대 클래스가 쓰레기라고 하더니 그게 맞는가 봅니다.]

[그래도 중장이야. 방심해서 좋을 것 없어.]

[은신이고 뭐고 우리 몇 죽을 거 각오하고 그냥 달려들면 되겠는데요.]

현대의 전투클래스는 확실히 '쓰레기'인 것 같기는 했다. 느껴지는 기세도 그렇고 그냥 달려들어 심장에 단도를 꽂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가두리는 잠시 참기로 했다. 판타리아의 마도사들을 순식간에 몰살시켰던 거대전력을 가진 '중장'이다. 그래서 가두리는 방심하지 않기로 했다.

[잠시만 상황을 지켜보기로 한다.]

* * *

윤석은 예전에 건의했던대로 유저들을 입대시키는 방안을 추진했고 그것을 성공시켰다. 이제는 현대에도 당당한 '전투클래스'가 생긴 것과 다름 없었다. 물론 육체는 허약하다. 중원인들에 비해 워낙에 체력도 약하고 모든 것이 뒤떨어졌다. 판타리아인보다도 약했다. M/P가 늘어나는 속도도 형편없고 레벨이 높아져봐야 별로 좋을 것도 없었다. 그러나 현대인들에겐 '무기'가 있었다.

물론 예전에도, 총잡이에게 '총'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총잡이'와 '군인'은 태생부터가 다르다. 유저들이 선택할 수 있던 건 오로지 '총잡이'뿐이었다. 유토피아 시스템에서라면 몰라도, 적어도 군부에서는 인정하지 않는 클래스다. 그러나 군인은 다르다. NPC가 대거 포함되어 있고 체계적인 훈련을 받을 수 있으며 총알까지도 지급받는 게 군인 클래스다. '얼스' 내에서도 굉장히 존경받는 직업이고 따라서 그 능력치는 '총잡이'보다 월등했다.

문제가 있다면 다른 클래스들보다 직업의 자유도가 낮고, 재미없는 훈련이 상당히 많다는 것인데 그 모든 것들을 차치하고서라도 '군인'클래스는 최근 굉장히 각광받는 클래스이기도 했다. 육탄전에 능한 병사, 부사관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윤석처럼 전력을 지휘하고자 하는 장교 클래스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 여러분들도 충분히 잘 해낼 것이라는 것을 저는 믿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야말로 이 곳 얼스를 수호하는, 장엄한 사명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윤석은 주위를 둘러봤다. 오늘은 특별강연이 있는 날이다. 아무리 중장이여도 위에서 시키면 해야 한다. 위에서 윤석더러 특별강연을 지시했고 윤석은 그 것을 따랐다. 눈 앞에는 수 백명은 족히 넘어보이는 군인클래스 유저들이 똘망똘망한 눈으로 윤석을 쳐다보고 있었다.

"예 알겠습니다!"

새롭게 군인클래스를 선택한 유저들은 희망에 가득차서 윤석의 연설을 귀 기울여 들었다. 아마도, 튜토리얼식으로 진행되는 모양이었다.

'젠장. 한 달에 한 번씩 이 짓을 해야한다고?'

연설문을 읽기는 했으나 윤석은 귀찮기만 했다. 이제 한 달에 한 번씩 이 짓을 해야만 한단다. 이제 겨우 세 번째인데 귀찮아 죽을 것 같다.

"중장님."

연설이 끝나고 의자에 앉아 있는 윤석에게, '소총'이 다가왔다. 소총은 부사관이면서 윤석에게 속한 귀속 NPC이고 다른 NPC들에 비해 윤석을 조금은 더 편하게 상대할 수 있었다. 또한 윤석의 안전을 책임지는 경호역할도 충실히 해오고 있었다.

"저 쪽이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소총이 가리킨 곳은 한 그루의 나무 쪽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무 아래의 그늘이었다.

"뭐가?"

"다른 그림자들보다 더 짙습니다."

윤석은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그의 눈으론 어차피 봐도 거기서 거기다. 그림자가 있어도 아 그냥 그림자가 있는가보다, 하고 지나치는 게 보통 사람이다. 그 누가 그림자의 농도까지 따져가며 주위를 면밀히 관찰한단 말인가.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경호도 쉬엄쉬어하면서 하라고."

윤석은 소총의 어깨를 탁탁 두드려주었다. 윤석의 말에 소총은 알겠습니다, 짧게 대답하고 단상 아래로 내려갔다. 그래도 못내 찝찝한지 '스나'를 불러 아까의 나무 아래를 한 번 조사해보고 오라고 명령했다.

[대장. 이쪽으로 오는데요.]

[어차피 발견 못해.]

[가까이 다가오면 급습하고 아무도 눈치 못채게 녹여버리는 건 어떨까요?]

[만약에 발각되도 도망치면 그만 입니다. 어차피 이 곳에 오래 있을 것도 아니고 저 NPC가 무언가 알아차리기 전에 없애버리고 중장을 처리한 다음 튀죠.]

[흠...]

스나가 나무를 향해 조금씩 걸어갔다. 확실히 다른 곳보다 음영이 더 뚜렷한 것이 이상하기는 했다. 너무 지나치게 신경쓰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경호란 것이 원래 그렇다. 만에 하나라도 위험요소가 있으면 없애는 것이 낫다.

그 때,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일동 묵념!"

그리고 가두리는 드디어 기회를 포착했다. 모두가 고개를 숙이는 그 짧은 순간. 중장 역시 고개를 숙였다. 여자군인 하나가 이 쪽으로 가까이 다가오고는 있지만 무언가를 눈치챘다기보단 그냥 한 번 확인차 다가오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지금이 기회였다. 어차피 살수는 일격필살이다.

[병철이 네가 시선 끌고, 나머진 약속한 대로 꽂는다.]

그들에게 허락된 시간은 불과 5초 남짓하지만, 그 시간이면 충분했다. 중장이란 놈은 암살기도라는 것을 별로 생각하지 않는지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상태였다. 분명 저격수들이 노리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7명을 전부 데려왔다. 아무리 저격수들이 훌륭하다고해도 6방향에서 쏟아지는 살수의 공격을 전부 막아내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잡았다!'

가두리가 눈을 번쩍였다. 묵념의 시간이 거의 끝났을 무렵, 살수 특유의 은밀하고 빠른 움직임으로 윤석에게 다가간 가두리가 단검을 높이쳐올렸다. 말로는 길어도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윤석의 심장을 향해 단도를 내질렀다. 일격필살. 아무리 레벨차이가 있고 클래스 차이가 있어도 살수의 공격은 치명적이다. 다른 5명 역시 의외로 저격수의 방해를 받지 않고 접근하는 데에 성공했다. 5명의 살수가 동시에 공격한다면 거의 백퍼센트 확률에 가깝게 크리티컬샷이 터지게 된다. 크리티컬샷이 터지면 말 그대로 한 번의 공격에 죽게 된다. 즉사라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이 퀘스트는 성공하게 되는 셈이다.

'죽어라!'

가두리의 칼날이 떨어져내렸다.

============================ 작품 후기 ============================

주상골골절에 따른 수술(손목과 엄지손가락쪽)은 잘 끝났습니다.

전치 16주라고 했었는데 지금은 8주로 줄어든 상태구요. 다음주에 다시 검사를 받습니다. 손가락이 여전히 잘 움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최대한 빠르게 연재 시작하겠습니다.

오래 기다리게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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