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38 오빠의 위엄 =========================================================================
* * *
어떤 사람들은 '돈지랄'이라고 말했다. 욕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차라리 그 돈으로 불우한 이웃을 도우라는 말들도 간간히 들려왔다.
" 지들이 내가 내 돈 쓰겠다는데 무슨 상관이야? "
그러나 윤석은 콧방귀를 꼈다. 내 돈 내가 어떻게 쓰든 내 내 마음이다. 공인 -엄밀히 말하자면 공인은 아니지만 사회적으로 공인이나 다름없는- 아이스크림 하나 사먹는데 주변 사람들에게 허락받을 필요 있을까.
" 그러는 지들은 불우이웃 얼마나 돕는데? "
확실히 돈지랄일 수 있다. 굳이 명품관을 통째로 빌리는 사치를 부릴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돈지랄이다!'라고 말하는 사람까지는 그냥 그러려니 한다. 거기까진 그냥 개인의 감정이고 생각이니까. 그런데 '차라리 불우이웃을 도와!'라고 말하는 건 다른 문제다. 전자가 자신의 감정에서 그치는 문제라면, 후자는 그 감정과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꼴이 된다.
" 내 돈을 지들이 준 것도 아니고. "
물론 유토매니아를 이용한 고객들 중 하나가 그런 말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짚고 넘어가야할 것이 있다. 윤석이 돈을 버는데 일조했다치더라도 그건 윤석에게 공짜로 준 게 아니라는 거다.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위해 유토매니아에 대가를 주고 코드를 구입했을 뿐이다. 윤석이 사라고 강요한 것도 아니고 구매자들이 원해서 구입한 거다. 애당초 유토매니아보다 싸게 코드를 구입할 수 있는 곳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러니까 윤석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뜻이다. 자기가 자기돈 쓰고 싶은데 쓰겠다는데, 참견하면 그건 그냥 오지랖일 뿐이다.
윤석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거실로 나왔다가, 쇼파에 퍼질러 누워 TV를 보고 있는 수희를 발로 툭툭 건드렸다.
" 야. 수희야. "
" 바지 좀 입어. 안 민망해? "
" 귀찮아. 더워. 싫어. "
그럼 팬티라도 좀 멋있는 걸로 입든가. 그런 네모난 사각 아저씨 팬티 완전 구려! 수희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나 그녀는 안다. 자신이 아무리 인상을 찡그려도 윤석은 눈썹하나 까딱 안한다. 자신이 반바지를 챙겨서 갖다 바쳐야 입을까말까인데 그렇게까지 하기는 귀찮았다.
" 도대체 얼마 쓴거야? "
" 몰라. 한 8천만원 썼나? 애들이 통이 작더라. "
수희의 오빠가 명품관을 빌렸고 명품을 공짜로 사게 해주겠다고 했다. 거기에 수량 제한을 두지는 않았다. 실제로 윤석이 과 학생들이 명품관 내의 물건을 모조리 싹쓸이해도 별로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학생들은 한 사람당 하나만 구입하기로 입이라도 맞추었는지 한 사람당 하나씩만 집어들었다.
윤석의 입장에선 그냥 다 가져가도 상관없는데, 학생들의 입장에선 그게 아니었나보다. 확실히 받는 입장에선 눈치가 보이기 마련이다. 공짜로 준다고 와아- 좋구나 달려들어 이것저것 마구 다 쇼핑백에 넣을 만큼 간 큰 학생은 없었나보다.
" 오빠 통이 지나치게 크다고는 생각 안해? "
" 중학생 애들보다도 통이 작네. "
윤석은 가볍게 혀를 쯧, 찼다.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다. 한 남자가 아이들 몇 명을 데리고 와서 " 자. 오늘은 내가 쏜다. 마음껏 골라! " 라고 했는데 30만원 어치를 싹쓸이해서 나갔단다. 글을 작성한 사람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었는데 그 날, 품목 99개가 넘어가면 새로 정산해야한다는 걸 처음 알았단다. 그리고나서 남자가,
- 이제 우리 애 그만 괴롭히는 거다. 약속?
이라고 말했단다. 양 손 한가득, 편의점 물품을 든 중학생들은 알았다고 대답했단다. 중학생들이 나가고 나서 남자는 소주 병나발을 불며 울었는데 편의점 알바생은 그 남자에게 뭐라 하지도 못하고 속만 끓였다고 한다.
" 중학생 애들도 그렇게 팍팍 집는데 대학생들 배포가 참... "
" 걔넨 개념이 없는 거고! "
" 원래 형아가 맛있는 거 사준다고 하면 그냥 팍팍 시키는 게 남는거야. 사주는 사람도 기분 좋고. "
" 그거랑 그거랑 같아? "
" 다를 게 뭐 있냐? 액수가 조금 더 크다 뿐이지. "
사실 같이 밥 먹으러 가서 고기 좀 사주는 거 별로 어려운 일 아니다. 맛있게 먹어주면 사주는 사람도 기분 좋다. 1인분 2인분 쯤 더 시킨다고 문제되는 거 아니다. 윤석에겐 이번 명품관 헤프닝도 마찬가지다. 혹자는 졸부다, 돈에 대한 개념이 없다 말하지만 이건 윤석과 평범한 사람들의, 돈에대한 개념 자체가 달라서 그렇다.
물론 졸부라는 말도 틀린 건 아니다. 그러나 졸부가 반드시 나쁜 것도 아니다. 돈을 나쁜 일에 쓰는 게 아닌 바에야 돈 없는 거보단 돈 있는게 세상 사는데 더 편하다.
명품관 이벤트가 윤석의 이미지를 망친 것도 아니었다. 이미 유토매니아가 사회적 기업이라는 인식이 사람들의 뇌리에 박혀 있다. 실제로 유토매니아의 게시판에 올라오는 감사의 글이 하루에도 수백 수천건이다. 그렇다보니 기업 이미지도 무척 좋았고 이 정도 헤프닝으로는 윤석의 이미지가 나빠지지는 않았다.
" 그게 조금 큰 거면 많이 큰 거면 도대체 얼마나 큰 거람? "
수희는 불만인 듯 투덜댔지만 사실 그녀는 기분이 무척 좋았다. 여자는 허영심을 먹고 사는 생물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사실 상당수의 여자들이 음식을 앞에두고 먹기보다는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고 자랑하기에 바쁘다. 여행 가서는 여행지의 경치를 감상하기보다는 경치를 찍어서 자랑하기 바쁘다. 가방이란 건 물품을 넣고 편안하게 다닐 수 있도록 해주는 건데, 그 것보다도 명품이냐 아니냐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도 많다. 물론 그런 사람의 수는 남자보단 여자가 더 많다. (비율상 그렇다는 소리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이 헤프닝은 수희의 허영심을 만족 시키는 것을 뛰어넘어 질질 흘러넘치게 만들었다. 흘러 넘치는 것 정도가 아니라 아예 폭포수처럼 콸콸 쏟아졌다. ' 우리 오빠 김윤석 맞아! ' 라는 어린아이같은 오기에서 비롯된 작은 헤프닝이었는데, 그것 때문에 압구정의 명품관을 통째로 전세내고 100명에 달하는 과 학생들에게 명품을 그냥 무상으로 안겨주었다. 제 3자의 입장의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꿈도 못 꿀 말도 안되는 '헛짓거리'에 불과했지만 막상 선물을 받는 학생들에겐 그렇지 않았다.
헛짓거리가 아니라 감사하다고 절을 올려도 시원찮을 판이다. 남학생들은 보통 시계나 지갑을 하나씩 집어들었고 여학생들은 하이힐이나 가방을 집어들었다. 아르바이트해서 사려면 몇 달은 꼬박 허리띠 졸라매고 아껴 살아야 겨우 장만할 수 있는 걸 그저 얻을 수 있었던 거다. 그들의 입장에선 감사한 일이지 헛짓거리가 아니었고, 덕분에 수희는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쉽게 말하자면, 에헴 우리 오빠가 이 정도야. 라고 꼬맹이가 자랑스레 말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고 할까. 다만 '이 정도'의 스케일이 약 1억원에 가깝다는게 꼬맹이가 말하는 '이정도'와는 다른 거겠지만.
" 오빠가 이번에 돈 좀 썼다. "
" 그래. 오빠. 좀 많이 썼어. 물론 날 생각해서 이렇게 해준건 고맙긴 고마운데... 그래도 너무 지나쳤다고 생각해. "
" 음? 난 너한테 말한 적 없는데 벌써 네 귀에 들어갔어? "
" 뭘 들어가! 나도 같이 있었는데! "
같이 있었다. 아이들이 처음엔 쭈뼛거리다가 윤석이 그러지 말고 빨리 빨리 골라, 라고 말했을 때 한 명, 두 명 눈치를 살피며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집던 모습을 같이 봤었다. 이 놈의 오빠가 또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이해가 안 됐다.
" 아. 너 그 얘기냐? 그건 돈 별로 안 썼잖아. "
윤석이 피식 웃었다. 아무래도 다른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 별로 안 쓰다니! 거의 1억이라며! 이 오빠가 허세 부리네. "
허세 아니다.
" 아니. 난 그 얘기가 아니라... 너네 총장님이랑 한 얘기 말하는 건데..."
* * *
윤석은 총장과 담판을 지었다. 담판이랄 것도 없다.
" 100억이 좋아요 1000억이 좋아요? "
총장의 귀에는 이렇게 들렸다. 다른 말들은 들리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들렸다. 전세계를 시장으로하는 유토매니아다. 게임 내에서의 홍보전략은 확실하게 먹혀들어갔다. 코드의 가치는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수요는 아직도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는 중이고, 그 코드는 게임 내에서 다시 계속해서 소비되고 있다. 유저들이아무리 날고 기어봐야 게임 내 주민인 NPC들의 경제에는 크게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수준이고 -윤석 같은 경우는 제외한다- 따라서 유토피아가 서비스되는 한 유토매니아가 망할 일은 거의 없을 거라고 봐도 좋을 정도였다.
어쨌든 전세계인을 상대로 하고 있고, 홍보전략의 성공과 이번 전쟁퀘스트는 윤석에게 막대한 부를 쌓도록 해주었다.(참고로 마도사들, 판타리아인들이 전쟁 전에 아이템 혹은 스크롤을 구비하기 위하여 코드를 대량으로 구매했는데 그게 유토매니아에서 나온 거다.)
저번 달 거래량이 6조 코드를 넘어섰다. 어마어마한 규모다. 한 번에 몇 억씩 구입하는 부호들도 많이 생겨났다. 전세계 20억이 넘는 인구가 플레이하는 게임이고, 그들이 한달 만원씩만 현질을 해도 20조코드다. (물론 윤석의 코드 획득속도는 더 빠르다. 유토피아 세계는 지구와 비교할 수 없을만큼 거대하다.)
" 저희로서는 무한한 영광입니다. "
총장이고 뭐고 없었다. 그냥 부자면 모르겠는데 이건 상식을 뛰어넘은 부자다. 삼성의 이건희를 데려와도 이 정도는 안 될 거다. 아무리 삼성의 이건희라도 이렇듯 쉽사리 지원을 말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는 삼성의 기업이미지를 생각해야만하고 이 기부가 투자에 어느정도 도움이 되느냐에 따라 저울질을 많이 해야할 지도 모른다. 그는 대기업의 총수고 회장이니까.
윤석은 입장이 다르다. 서버 관리비와 인건비등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수익은 윤석 거다. 투자할 때 이것 저것,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별로 없다. 애초에 이 투자는 수희가 다니는 학교를 빵빵하게 밀어주기 위해서 즉흥적으로 생각해낸 거다.
" 1000억원이라니요... "
총장도 물론 부유층에 속한다. 그도 어지간한 곳에 가면 떵떵거릴 만큼의 재력과 사회적 신분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그라고 해도 즉석에서1000억 드릴게요. 받으세요. 편안하게 말하지는 못한다. 1000억은 그에게도 간떨리는 액수다.
" 뭔가 제 말을 오해하신 것 같은데... 제 말은 월 1000억인데요. "
총장은 기절할 뻔 했다. 월 1000억이면 연 1조다. 한국에 1조원을 기부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건 미친 거다. 저 젊은 사장은 필시 제정신이 아닐 거라 생각했다. 눈 앞이 핑글핑글 도는 기분인데 이걸 좋다고 해야할지 말아야할지 잘 모르겠다.
" 물론 공금 내역을 투명하게 볼 수 있도록 부서를 하나 만들어주셨으면 좋겠네요. "
유토매니아의 CEO 자리에 있다보니 이젠 보이지 않는 것들도 보인다.
단순히 월1000억을 기부하는게 아니다. 그 1000억을 투명하게 관리할 부서를 새로이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 모든 학생에게 100퍼센트 장학금을 지불해주시고요. 아. 대학원 포함이요. "
홍대 학생 수는 대학원을 포함하여 약 1,7000명. 한 사람당 1년 등록금을 천만원으로 생각하면 1700억밖에 안 된다. 그건 윤석이 지원하는 년간 금액에 비하면 얼마 안 되는 액수다.
남 좋으라고 그러는 거 아니다. 홍대를 '명문대화' 시키기 위한 하나의 노림수다. 등록금 전액 무료. 그 말은 즉, 경쟁률이 치열해진다는 소리다. 사립대보다 등록금이 절반 수준인 국립대는, 경쟁률이 훨씬 세다. 등록금이 한 두푼 하는 것이 아니다보니, 아무래도 이왕이면 싼 곳으로 가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전액 장학금제도는, 우수한 인적 자원을 받아들일 수 있는 발판이 된다.
" 그리고 따로이 기금 만들어서 홍대출신의 졸업자들 지원해주시고요. "
명문대가 괜히 명문대가 아니다. 사회 다방면에 걸쳐 여러 곳에 인재들이 포진해있고, 후배들을 이끌어 줄 수 있는 발판이마련된 곳이 명문대다. 회사 어딜가도 서울대 선배들은 있기마련이고 그들은 서울대 후배들을 이끌어 준다. 괜히 학연 학연 하는 게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윤석은 홍대 졸업자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하여 아예 사업을 일으키고 사회에 깊숙히 침투하는데 도움을 주려는 거다.
" 아. 모자라면 말씀만하세요. 얼마든지 도와드릴테니까. "
1000억이 물론 윤석에게도 작은 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또 엄청 큰 돈도 아니다. 주려면 얼마든지 더 줄 수 있다.
" 지금 교수진이 나쁘다는 건 아닌데... 우수한 교수님 끌어모으시는데 돈 아끼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특히 미대요. "
명문대엔 훌륭한 교수진이 포진해있다. 교수는 단순히 학생들을 가르치는 게 임무가 아니다. 오히려 그건 부업에 가깝다. 그들은 그들 각자의 영역에서 전문가의 자리를 꿰차고 있으며 그 분야의 발전을 위해 파고들고 연구하는 사람들이다.
" 교수님들한테 최고의 환경과 보수와 실험장비와 시설을 제공하세요. "
몇 가지 세부사항을 정해줬다. 총장은 입을 쩍 벌렸다. 위신도 자존심도 모두 잊어버렸다. 월 1000억이다. 거기에 모자라면 더 지원해준단다. 이런 파격적인 기부와 추진력은 처음 본다.
최고의 교수진을 섭외하고, 학생들에게 최고의 복지를 제공하며, 졸업자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하여 사회의 구성원이 되도록한다. 이게 윤석이 요구하는 것들의 기본 골자였다.
총장은 그저 예,예, 알겠습니다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싫고 자시고가 없다. 이건 기회였다. 홍대를 단숨에 명문대급으로 올릴 수 있는 기회.
단순히 돈만 많다고 명문대가 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명문대라고 불릴 수있도록 도와줄 수는 있다.
그 첫 단추를 윤석이 뀄다.
윤석의 파격적인 기부가 언론을 타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 * *
수요일에 손목 수술확정 됐습니다. 제 취미가 헬스인데 헬스하지 말라네요 쩝...
뼈 붙는데 16주 재활에 16주.
독자여러분들도 손목이 좀 아픈데 이상하게 오랫동안 낫지 않는다 싶으면 '주상골 골절'을 의심해보세요. 이게 동네에선 발견이 잘 안된답니다. 그렇다고 생활하는데 엄청나게 불편한 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방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인터넷에서 보니까 17년동안 모르고 살았던 사람도 있네요.
* * *
요즘같은 시대에 좋은 학교 되려면... 우선 취업률이 보장되어야하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