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플레이어-137화 (137/244)

00137  오빠의 위엄  =========================================================================

* * *

수희는 미대를 다닌다. 미대를 다니려면 돈이 많이 들어간다. 기본적인 등록금은 당연히 비싸고 -일반적인 대학생들은 한달 400만원에 가까운 그 돈을 감당할 수가 없다. 학자금대출이나 부모님이 내주시는 경우가 일상다반사다.- 그 외에도 디지털카메라, 일러스트에 필요한 각종 물감들, 수성색연필. 기타 등등. 게다가 입시학원을 다닐 때엔 돈을 얼마나 많이 까먹었는지 모른다. 덕분에 집에 빚도 많이 생겼지만 이제 그런 건 별로 문제가 안 된다. 집안에 빚 있는 꼴이 별로 좋지 않다며 윤석이 모조리 싹 갚아버렸다. 그러니까 빚 따윈 전혀 문제가 안 된다.

" 오빠. 어째서 여자는 명품백을 안들면 무시 받아야 하는 거야? "

" 음? "

수희는 분한 듯 빨대를 잘근잘근 씹었다.

" 무슨 말이야? "

" 애들이 나 무시해. 명품백 하나도 없다고. "

윤석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 학생이 무슨 명품백이냐? 돈이 어디있다고..."

" 그니까! 학생한테 돈이 어디있어! 다 지들 엄마아빠 돈으로 산거면서 유세는! "

수희는 매우 억울해보였다. 상황을 들어보니 별 거 아니었다. 소개팅을 받으려고 했는데,

" 내 앞에서는 나 이쁘다 부럽다 하던 앤데 뒤에선 완전 호박씨까잖아! "

주선자인 친구가 수희 앞에서는 수희보고 예쁘다고 칭찬만하다가도 수희 뒤에선 쟨 그 흔한 명품백 하나도 없는, 멋도 모르는 촌스런 애라고 호박씨를 깠다는 거다. 윤석은 남자인지라 여자들의 그 심리를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수희가 그것 때문에 화가 나서 울먹거리고 있는 모습이 별로 보기 좋은 건 아니었다.

" 글쎄... 그게 그렇게 부끄러운 일인가? 명품백이랑 촌스러운거랑은 별로 상관 없다고 보는데... "

윤석도 그렇게 생각했고 수희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억울했다.

" 그래서 가방 사달라고 나 부른거야? "

" 딱히 그런 게 아니라... "

얘기를 좀 더 들어보니 기가 막혔다. 수희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김윤석이 우리 오빠다, 우리집 재벌이다! 라고 '김수희 촌스러운 년 설'에 반박했으나 과의 아무도 믿지 않았단다. 평소 수희의 씀씀이가 별로 크지도 않을 뿐더러 그 흔한 명품백 하나도 없으니 그럴만도 했다. 그나마 수희의 단짝이나 다름없는 은서정도나 알까. 은서가 맞다고 증언해주었으나 둘 다 같이 바보취급 당했다.

" 우리 아빠가 국방부장관인데. "

" 비밀었는데 우리 엄마가 사실 스칼렛 요한슨이야."

특히 선배들이 킥킥대고 비웃었다. 물론 대놓고 경멸하는 게 아니라 농담식이었고 장난이었다. 수희는 남자선배들에게 인기가 무척 많았다. 그녀 정도 예쁘면 성격이 어떻게 됐든간에 인기는 많은 법이다. 그래서 남자선배들은 수희에게 농을 던지며 친한 척을 했는데 덕분에 수희는 기분이 더 나빠졌다.

" 진짜라니까요! 왜 못 믿어요? "

" 믿어, 믿는다고. 믿어. "

믿는다고 말하면서 계속 비웃자 수희는 오기가 생겨서 윤석을 부른 거다. 이미 명품백은 둘째문제였다. 윤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나 참. 애기냐? 이런 걸로 부르게? "

" 오, 오기 생기잖아."

마치 7살 때의 수희가 무슨 일이 있기만하면 오빠인 자신에게 쪼르르 달려가 일러바치던 그 시절로 되돌아가버린 것 같아 킥킥 웃음이 나왔다.

" 우씨. 비웃지 마. 나 완전 화났어! "

" 어이구. 완전 화나셨어요? "

윤석은 잔뜩 골을 내는 수희의 머리를 한 번 쥐어박듯 하다가 쓰다듬고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 내가 굳이 안 왔어도 되는 문제잖아? "

안 왔어도 된다. 윤석쯤 되면 그냥 전화 한 방으로 학교를 인수해도 된다. 이미 그 정도의 부는 쌓아놓았다. 그렇다고 해서 수희 연락 때문에 학교에 직접 왔다는 게 기분이 나쁜 건 아니다. 오히려 윤석은 수희가 자신에게 연락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나이차이가 6살이나 나다보니 거의 딸처럼 생각하고 있었고 실제로 민혁은 윤석더러 '시스콤'이라고 핀잔을 놓지 않았던가.

" 네가 마지막으로 땡깡을 부렸던 게 언제더라... "

윤석은 쿡쿡 웃으면서 학교 안을 거닐었다.

" 와. 대학교네. 애들이 풋풋하구만. "

그렇게 말하는 윤석도 겨우 28살이다. 하지만 대학생들을 보면 풋풋하게 느껴졌다. 확실히 사회인과는 다른 풋풋함과 생기발랄함이 느껴졌다. 상당히 앳되 보이기도 했고.

" 너네 과 애들이 한 100명 되지? "

" 응. "

" 한 30분만 기다려. "

" 뭐하게? "

" 데이트. "

" 주랑언니 만나? "

" 아니. 너랑 데이트하겠다고. "

수희가 한발자국 떨어졌다.

" 오빤 못생겨서 싫어. "

" 야. 나 어딜가도 빠지는 외모는 아냐. "

" 헐. 오빠 그거 진심? "

" 나 좀 훈남 아니냐? "

수희는 정말로 어이가 없다는 듯 입을 쩍 벌렸다.

" 오빠의 무시무시한 점은 정말로 오빠가 훈남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 같다는 거야. "

" 야. 저긴 어디냐? "

" 공과대 건물. "

" 어쩐지 칙칙해보이더라. "

" 저기 나도 한 번 들어가봤는데 분위기가 좀 이상해. 음침하고 칙칙하고 냄새도 나고. "

" 시커먼 남자애들만 몰려 있어서 그렇지 뭐. "

교정안을 얼마간 걷다보니 30분은 훌쩍 지나갔다. 시계를 한 번 살펴본 윤석이 말했다.

" 그럼 이제 가보실까? "

* * *

오늘은 수요일이다. 다른말로 하자면 MT를 갈 날이 아니다. 보통 MT는 금요일에 출발해서 토요일에 돌아온다. 그보다 길면 일요일에 돌아올 때도 있다마는 어쨌든 보통의 경우 수요일에 MT를 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 뭐예요? 어디 가요? "

학생회에 문의가 빗발쳤다. 난데없이 관광버스 3대가 단과대 건물 앞에 들이닥쳤기 때문이다. 학생회라고 알 턱이 없다. 학생회가 부른 게 아니니까. 학생회장 박재영이 왜 관광버스가 3대나, 입구를 떡하니 틀어막고 있는지 알아보려고 나가봤는데.

" 재영오빠! "

" 어. 수희야. 안녕? "

재영이 밝게 웃었다. 수희정도 되는 후배가 인사를 하면 자동스레 미소가 생긴다. 그건 비단 재영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었다.

" 인사해요. 울 오빠에요. "

" 뭐? "

재영은 배를 잡고 깔깔대고 웃었다. 그도 물론 안다. 수희가 불과 몇 시간 전, 우리 오빠가 김윤석이다! 라고 말했다가 모두에게 비웃음을 받은 것을 말이다. 재영은 딱히 그 놀림에 동참하지는 않았지만 수희의 말을 그냥 농담으로 흘려들은 건 매한가지였다.

" 안녕하세요, 김윤석이라고 합니다. "

윤석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나이가 많아서 그런건지, 다른 이유가 있는건지는 몰라도 재영은 순간 긴장했다. 이상했다. 키가 엄청나게 크다거나 덩치가 큰 것도 아니다. 그냥 길거리 지나치다보면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인데 무언가 말로 표현하기는 힘든 괴상한 기분이 느껴졌다. 뭐랄까. 굉장히 높은 위치에 올라간 사람만이 갖는 특유의 분위기나 여유가 느껴졌다고나 할까.

" 아. 예. 안녕하십니까. 수희 과 선배인 박재영입니다. "

간단하게 인사를 마치고 윤석은 이 곳을 찾아온 이유를 밝혔다. 관광버스 3대가 달려온 이유도 알게 됐다. 학생회의 사람들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보통 데자보를 만드는 건 1학년들의 몫이다. 2학년 쯤 되는 학생들이 이렇게 저렇게하라 간섭하고 실제로 만드는 건 1학년들이 만든다. 그런데 이번엔 1학년이고 2학년이고 3학년이고 없었다. 너무 급했다.

데자보는 물론이거니와, 과 사무실에도 연락해서 급히 문자를 돌렸다. 이미 학교 총장과도 애기가 된 사항이란다.

문자의 내용은 간단했다.

- 유토매니아 김윤석 사장님 방문. 수업이 모두 끝나는 17시에 버스 탑승. 목적지: 갤러리아 명품관. 행사내용: 무료 쇼핑 행사. (비용은 김윤석 사장님 대납). 참석 희망자는 과사로 연락바랍니다.

내용은 복잡하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수희와 같은 과 학생들을 모조리 태우고 갤러리아 명품관으로 데리고 가서 명품쇼핑을 자기가 원하는대로 시켜주겠다는 거다.

그러나 문자보다 입소문이 더 빨랐다.

" 야. 들었어? 수희 오빠가 진짜로 김윤석이래! "

" 그, 그 김윤석? 유토매니아? "

" 에이, 말도 안 돼. 김윤석이란 이름 흔하잖아. "

" 문자 못봤어? 지금 로즈관 앞에 버스 3대 와있잖아. 그거 우리 태우려고 대기하고 있는 거고 총장님이랑 다 얘기도 된거래. "

그리고 어떻게 알았는지 벌써부터 인터넷엔 '김윤석 사장. 압구정동 갤러리아 명품관 전세.' 라는 제목의 기사들이 줄줄이 올라오고 있었다. 명품관을 아예 통째로 빌려버렸단다. 그것도 미리 예약을 잡고 한 것도 아니다. 즉석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 미쳤어... 미쳤어... "

수희마저도 놀라서 눈을 꿈뻑거렸다. 윤석에게 들은 게 아니고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알게 됐다. 학생들 수업을 방해하기 싫어서 복도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모두의 마블'을 플레이하고 있던 윤석은 자신의 어깨를 찰싹 때리는 누군가에 의해 찔끔 놀랐다.

" 너 수업중 아냐? 왜 나왔어? "

" 오빠 미쳤어?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인 거야? "

수희가 기사를 보여줬다. 윤석은 뚱한 표정으로 물었다.

“ 너 수업시간에 핸드폰 만지냐? 압수 당할래? ”

“ 내가 무슨 애기냐! 압수를 당하게! 이거 어떻게 된 거야! ”

수희도 오빠가 부자인 건 안다. 그런데 명품관을 통째로 빌리고 같은 과 학생들이라는 이유만으로 공짜 쇼핑을 즐기게 해주는, '미친 생각'을 하게 할 줄은 몰랐다.

" 이왕에 네가 내 동생이란 거 확실히 알리고 싶으면 이런 이벤트가 최고지. 적어도 확실히 각인 시킬 수는 있잖아. "

" 아... 진짜 못말려... "

" 겨우 이런걸로 놀라면 곤란한데... "

" 겨우 이런거라니! "

수희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된다. 과 전체에 햄버거 하나씩만 돌리는 일만 해도 어지간한 사람은 꺼려지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명품관을 통째로 빌려 준다고? 이건 미친 짓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도 안 된다.

정신적 공황상태를 겪고 있는 수희에게, 윤석이 말했다.

" 이왕에 내 동생 다니는 학교면... 내가 좀 밀어줘도 되지 않겠냐? "

" 앵? "

홍대 미대하면 알아준다. 건축도 어느정도 알아주는 편이다. 그러나 다른 여타 명문대, 이를테면 스카이나 포항공대, 카이스트와 같은 곳에 비교하면 네임밸류가 떨어진다.( 과를 고려하지 않은, 학교의 네임밸류가 그렇다는 뜻이다.)

" 이왕에 다니는거면 최고의 학교, 최상의 시설에서 공부하는 게 좋지. 아 왜 진작에 이 생각을 못했지? 난 바본가? "

윤석은 시계를 살펴봤다. 아직 17시가 되려면 2시간이 넘게 남았다. 그 전까지 모두의 마블만 하고 있는 건 아니다. 윤석은 급하게 약속을 잡았고 그게 30분 뒤다. 윤석이 말했다.

" 너네 총장님하고도 만나기로 했거든. 30분 있다가. "

============================ 작품 후기 ============================

* * *

만약 다니는 학교가 명문대가 아니라면,

명문대로 만들면 그만 아닌가요?

* * *

오른손목 다쳤던 것이 (3달전) 사실은 골절이었답니다.

이게 엑스레이상으로 잘 안잡히는 뼈이고 동네병원서는 잘 캐치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하도 손목이 아파서 다른 병원으로 가보니 여기선 처리 안 된다고 대학병원으로 보냈고 -인하대병원- 내일 아마 수술날짜 확정지을 거 같습니다.

지금 한달 동안 깁스를 한 상태로 (개인사정으로 병원을 못가고 임시방편으로 깁스만 했어요)  한손으로 타자를 치는데 속도도 속도이거니와 너무 답답해서 글을 못쓰겠습니다. 자꾸만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그나마 출판글은 3권까진 어떻게든 해놨는데 그 이후가 문제네요.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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