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33 1억 vs 7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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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리아 유저들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었다. 그 때의 고통은 유토피아를 플레이하면서 받은 고통중 단연코 최고였다. 원래 유토피아는 유저들의 편의를 고려하여 일정 수준 이상의 고통은 느끼지 못하도록 되어있다. 아무리 리얼리티가 좋아도 고통을 수용해가면서까지 게임을 즐기고자 하는 유저는 거의 없었으니까.
그런 상태에서, 얼스에서 발사된 화학탄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현실세계와 비교한다면 엄청난 고통이라고 말할 수 없겠지만 모습들이 상당히 추했다. 고통은 크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구토를 하거나 침을 질질 흘리거나 눈물을 줄줄 흘리거나 하는 모습들이 포착됐다. 기침이 너무 심해 바닥에 주저앉아 캑캑대는 사람들도 있었다. 크게 아프지 않다고해서 아예 괴롭지 않은 건 아니었다. 숨이 막히고 눈이 따끔 거렸다. 특히 괴로운 건 호흡곤란과 눈의 따끔거림과 목의 매캐함이었는데 고통을 최소화 시켜주었다고는 해도 상당히 불편했다.
일상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수준의 고통은 느껴지기 때문이다. 눈에 무엇인가가 들어가는 수준의 고통은 느껴진다. 화학탄이 터졌을 때, 그 고통이 계속된다는 게 문제였지만.
" 으크허억! 우허억! 으억! 우엑! "
" 아름다운! 콜록! 이게 뭐...콜록! 콜록! 콜록! "
각종 비명소리가 난무했다. 팔다리가 찢겨져 나가는 고통이면 차라리 아예 느껴지지 않을테지만 눈이 따끔거리고 기침이 나고 숨 쉬기가 힘들었다. 몇몇 유성유저들은 바닥을 긁으며 오열하기도 했다. 사제계열의 유저들이 정화마법을 펼쳤지만 그 혜택을 보는 건 극히 일부였다.
- 핵폭탄보다 무서운 생화학무기.
- 유토피아 역사상 가장 커다란 고통!
- 수직 이착률 폭격기. 다연장 로켓포. 그에 이은 생화학탄!
전세계적으로, 현대의 군 클래스가 이번에 사용한 무기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이번에 사용된 화학탄의 종류는 두 가지였다. 사린(GB)와 포스겐(CG)였다. 사린은 눈과 피부에 치명적이며 구토와 경련을 일으키는 신경작용제이고 포스겐은 폐모세혈관을 파괴하는 질식작용제로써 세계 제 1차대전때 많이 사용되었던 화학무기였다.
그 괴로움은 현실의 고통과는 비교도 되지 않겠지만 그래도 다른 고통들에 비하면 특별한 고통이었다.
정말 재미있는 건, 이번 사건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화학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며 화학탄을 없애자는 운동이 벌어진다는 사실이었다. 괴로움은 둘째치고, 화학탄에 얻어맞은 유저들의 몰골이 너무 끔찍했다. 바닥에 드러누워 경련하고 침을 질질 흘리고 눈을 뜨지 못한 채 땅을 벅벅 긁는 모습들은, 정말로 저 유저들이 괴로운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 게임으로 인한 화학탄 반대 운동!
- 북한에 대한 세계인의 집중 포화.
- 중앙통신, 근거 없는 모략질을 계속할 시 전 세계는 호된 맛을 보게 될 것!
일이 재미있게 돌아갔다. 똑같은 일이라도 이슈화가 되느냐, 이슈화가 되지 못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법이다.
" 재미있게 됐어. "
윤석이 킥킥대고 웃자 민혁도 피식 웃었다.
" 북한에서 난리도 아니더라. "
" 그러길래 평소에 좀 잘하지. "
차라리 핵탄두를 사용했다면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 한 방에 쓸려나가니까. 그 무서움을 잘 모를 수도 있다. 그런데 화학무기는 달랐다. 이슈화 되기에 충분했다. 어쨌거나 괴로움은 느껴지지 않아서 수많은 기자들이 눈물 콧물을 질질 흘리고 기침을 해대며 방영한 덕분이다.
" 괜히 너 붙잡고 늘어지는 거 아니냐? 네가 계획적으로 이렇게 몰아갔다고. "
" 나를? "
" 걔네 말도 안 되는 꼬투리 잡기 전문이잖아. "
" 설마. "
윤석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다보니 화학탄을 사용했고 어떻게 하다보니 그게 이슈화가 되었고 또 어떻게 하다보니 북한이 화학탄을 대량 구비하고 있다는 것이 세계적으로 알려져서 세계적인 집중을 받고 있을 뿐이다.
" 하긴. 매일 핵전쟁이니 서울 불바다니, 솔직히 그게 할 소리냐? 우리나라가 그런 말 했다 쳐봐. 평양을 불바다로 만들어버리겠다. 그게 선전포고지 별 게 선전포고야? "
민혁은 평소부터 북한에 대한 불만이 많았는지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서 씨팔... 통일은 무슨. 더러워서 그딴 거 안하고 만다. 라고 중얼거렸다. 윤석은 어깨를 으쓱했다.
" 그보다... 마도사 놈들이 슬슬 움직일 때가 됐는데... "
" 네 위치 흘렸다며? "
" 응. 설아 말로는 암탑 소속 마법사들이 움직일 것 같대. "
암탑 마법사들도 물론 내켜하진 않았단다. 그러나 단체에 속해 있을 때, 사람은 하기 싫은 일도 해야할 때가 있는 법이다. 마연 내에서 이번 일은 암탑에서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었고 암탑 마법사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그 작전을 받아들였단다.
" 먼저 간을 보겠지? "
" 죄 없는 피라미들 죽어나가는 거지. "
" 꼭 목숨 걸고 뛰어드는 멍청이들이 있다니까. "
" 진짜 목숨도 아니니까. "
죽어도 괜찮다. 물론 3일의 접속제한이라는 페널티가 있기는 했지만 그것보다 '안졸리냐졸려'를 죽였을 때에 얻는 메리트가 훨씬 큰 사람들은 분명 존재했다. 죽어도 잃을 것이 별로 없는 사람들은 현상금과 '마도사가 되는 방법'을 노리고서 엄청나게 몰려들 것이 뻔했다.
" 현상금은 얼마나 걸었대? "
" 1억이라나. "
" 치사하고 더럽네. "
" 괜찮아. 나도 현상금 걸었거든. "
" 엥? "
" 길드 퀘스트 도중에 죽으면 도태되는 거 알지? "
" 알지. "
" 그래서 마연의 수장한테 현상금 걸었어. "
" 얼마? "
윤석이 씨익 웃었다. 손가락 한 개를 펼쳤다. 코드라면 어차피 넘치고 넘친다.
" 너도 1억 걸었냐? "
" 아니. 10억. "
같은 시각, 마연의 수장 벨리우스는 안전지대에 도착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어디선가 알 수 없는 습격이 자꾸만 이어졌다.
' 빌어먹을... '
'안졸리냐졸려'에게 현상금을 걸었는데, 저쪽에서도 역으로 현상금을 걸었다. 그것도 무려 10억이다. 10억이면 눈 까뒤집고 덤벼들 사람이 널리고 널렸다. 지금으로썬 안전지대에서 단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 제길... 암탑놈들을 조심해야 돼. '
다른 유저들은 그렇다 치고서, 암탑 마법사들은 조심해야만 했다. 정확한 건 아니지만 암탑법사들은 안전지대 내에서도 강제 PK를 걸어 유저를 죽일 수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래서 벨리우스는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이건 숫제 게임을 하는건지, 고문을 받는 건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저 쪽은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고 있었다. 마연의 수장 정보와 마연 소속의 마도사들의 신상은 까발려진지 오래 됐다. 돈 앞에 결속은 커녕 오히려 적이 되어 버렸다.
' 애초부터 이런 걸 노렸을지도 몰라. '
애초부터 그런 걸 노리지 않았다. 저쪽에서 현상금을 걸어대니, 이 쪽에서도 현상금을 걸었을 뿐이다. 윤석은 딱히 의도하지 않았는데 역 현상금 작전은 마연의 내부를 한바탕 뒤흔들어버렸다. 서로를 의심하고 믿지 못하는데 결속이 될 리가 없었다. 어쨌거나 회의는 해야만 했다.
" 암탑 분들은 언제쯤 출발하실 겁니까? "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판타리아 유저들이 얼스의 가공할만한 화력에 녹아나고 있다. 마도사들이 지체하면 지체할수록 마도사에 대한 비난여론이 거세게 일어날 것이 뻔했다. 다른 유저들만 앞세우고 정작 자신들은 뒤로 빠져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테니까.
" 굉장히 지능적인 놈입니다. 우리 내부를 진탕시켰습니다. 또 이 문제를 현실로까지 끌어와 북한을 전세계의 타겟이 되도록 만들었어요. 정부의 시주를 받은 놈일 수도 있습니다. 아...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머리를 잘 쓰는 놈이어서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무턱대고 들어갔다가 알라뷰하...아니 사살되면 저희 역시 도태되니까요. 저희가 물론 마연의 제안을 수락하기는 했지만 저희라고 도태되고 싶은 건 아닙니다. 어느 누구도 강요할 수는 없어요. "
벨리우스는 끄응... 하고 속으로나마 신음성을 냈다. 계속되는 습격 때문에 괜스레 암탑법사들이 미워보였다. 저들의 말에는 틀린 것이 없었다. 그래서 더 짜증이 났다.
" 그래서요? 언제쯤 출발하실 겁니까? "
" 정확한 위치가 파악되는대로 갈 겁니다. "
" 빨리 좀 움직여주셨으면 좋겠군요. "
" 지금 명령하시는 겁니까? "
벨리우스의 태도가 처음부터 고압적이다 보니, 암탑소속의 마법사인 '다크'역시 말투가 거칠어졌다. 좋게 좋게 넘어가려고 했더니 계속해서 신경을 긁었다. 아예 목을 따버리고 10억원을 챙길까하는 고민도 잠깐 했다.
" 에이! 분위기 엄청 험악하네! "
회의장에 누군가 들어왔다. 겉보기로는 초등학생처럼 보이는 어린 유저였지만 아무도 무시하지 못하는 유저. 날개 두장. 수탑 소속 마법사인 설아였다.
" 우리 오빠가 싸움은 멍충한 사람들만 하는 거라고 그랬는데. "
그 모습이 하도 천진난만하여 몇 몇 유저들은 피식 웃었고 벨리우스와 다크 역시 언성 높이기를 그만 두고 제자리에 앉았다.
" 헤헤. 늦어서 죄송해요. 엄청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오느라 조금 늦었어요. "
설아는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 사후디 사막 남쪽에 보면 작은 오아시스 비스끄리무리한 게 하나 있거든요. 예전에 제가 길드퀘스트를 하던 곳이라 잘 알아요. 그 쪽에 군 클래스의 비트가 있다나봐요. 그래서 사후디 사막에 화학무기를 비롯해서 뭐라더라.... 음... b-2? 전...전... 전... 애이 모르겠다. UFO같이 생긴 괴상한 비행기도 일부러 낮게 날게해서 과시하고 그런거래요. "
비트는 마도사들이 쓰는 용어다. 어떤 특별한 퀘스트의 경우, 마도사는 일정 지역을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데 그 지역을 일컬어 '비트'라고 불렀다. 설아의 말에 따르자면 여지껏 알려진대로 군 클래스에게도 비트가 있는 셈이 된다. 게다가 대중에게 알려진 것과는 약간 다르게 사후디 사막이 아니라 사후디 사막보다 더 남쪽에 위치하고 있단다. 벨리우스가 물었다.
" 스노잉님은 그 정보를 어디서 얻었죠? "
" 아는 오빠한테요. "
" 아는 오빠요? "
" 현친(* 현실친구)인데 군 클래스랑 아는 사람인가봐요. 그래서 얘기하던데... 뭐 실수로 얘기한 것 같기는 했지만... "
설아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아니면 말고...하고 헤헷- 웃었다. 그 때, 벨리우스의 얼굴이 밝아졌다.
" 얼스의 동태를 살피러 갔던 유저들 중 몇이 사후디사막 남쪽에서 특별한 곳을 발견했답니다. 군인들이 떼를 지어 이중 삼중으로 보호하고 있는... 아지트같은 곳이랍니다. "
설아의 말만 듣거나, 정보통의 제보만 들으면 쉽사리 믿기 힘든데 두 가지 정보가 취합되자 신빙성이 매우 높아진 것처럼 느껴졌다. 마도사들이 자신감에 차오르기 시작했다. 쪽수가 안 되면 모를까. 100만이 한꺼번에 쳐들어가서 99만이 죽어도 나머지 1만이 어떻게든 잠입해서 안졸리냐졸려의 목을 따면 된다. 쪽수가 많다는 건 이래서 좋은 거다. 비트가 알려지지 않았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했겠지만 이젠 아니었다.
" 스크롤부터 준비하도록 하죠! "
사람들이 들떠하는 걸 보면서 설아는 내심 죄책감이 생겼다.
' 그래도 난 거짓말은 한 적 없다 뭐! '
정말이다. 거짓을 말하지는 않았다. 현실의 친구가 얘기해준 것을 그대로 옮겨주었을 뿐이다. 애초에 이게 사실이다라고 주장하지도 않았다. 그걸 믿은 건 저 사람들이다. 그녀는 그렇게 자위했다. 그리고 정작 중요한 건.
' 나는 빠져야지! '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나는 그렇게 나쁜 아이가 아니라고 자위하던 그녀는 이번 원정에서 빠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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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역 현상금 맞불작전.
의도치 않은 내부분열로 졸지에 매우 지능적인 놈이 된 윤석.
의도치 않게 세계적 운동을 일궈낸 윤석.
오해는 이렇게 쌓여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