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30 1억 vs 7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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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듯 설아는 아이스 카라멜 마끼야또를 홀짝거렸다. 아 이건 너무 비싸서 내 마음대로 사먹기가 좀 그래, 하고 투덜거렸다.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는 고등학생에게 7500원은 상당히 비싼 가격이었다. 그래서 카라멜 마끼야또는 그녀에게 있어서 무척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자주 먹지는 못하는 사치품이었다. 윤석을 만나면 꼭 카라멜 마끼야또를 시키는데 그 때마다 설아는 행복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카라멜 마끼야또에 지나치게 행복해하는 설아를 바라보며 윤석은 피식 웃었다.
" 언니가 용돈은 안 줘? "
" 줘. "
" 많이 줘? "
" 응. "
" 얼마 주는데? "
" 한달 3만원! "
그게 많은 건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했다. 윤석이 고등학교 생활을 할 때와는 10년의 차이가 있어서 잘 모르겠다만, 역시 큰 금액은 아닐 것이 분명했다.
' 그러고보니 나도 고등학교때 한달 용돈 만원인가 그랬었지. '
지금 생각해보면 그 돈으로 어떻게 살았나 싶다.
' 하기야 그땐 돈 쓸 곳이 노래방이나 피시방 같은 거 밖에 없기는 했지만... '
교통비와 교재값을 따로 지원해줬다. 그거 외에 따로 쓸 수 있는 돈이 만원이었는데 당시 친구들에 비해선 약간 적은 금액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윤석은 선택적 기억의 오류를 범하고는 있다만 -공식적으로 용돈은 2만원. 그러나 비공식적으로 이런 명목 저런 명목으로 받아낸 용돈이 좀 된다. 이를테면 사지도 않는 교재값 같은 걸로로 말이다. - 어쨌든 과거엔 그렇게 살았다.
" 역시 숨어있는다 이거지? "
" 응. 죽으면 끝이니까."
설아는 의자를 바싹 끌어당겨 앉고서 손으로 턱을 받쳤다. 그녀 스스로는 아마도 초롱초롱 빛나리라 짐작되는 눈으로 윤석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이내 볼을 빵빵하게 부풀렸다.
" 내 매혹의 눈빛이 통하질 않다니. "
윤석은 TV에 나오고 있는 치어리더의 모습을 보고 있다가 찔끔 놀라,
" 무슨 말 했냐? "
하고 천진난만한 얼굴로 되물어 설아를 화나게 만들었다. 설아는 볼을 빵빵하게 부풀렸다가도 이내 방긋 웃었다.
" 좋아. 오빠를 꼬시려면 이 정도 수모는 감수해야지. "
윤석은 코를 매만졌다. 설아가 이러는 것이 기분 나쁘진 않았다. 오히려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어린 친동생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다가 설아의 머리를 한대 쥐어박았다.
" 네 언니한테 복수하는 것에 나를 끌어들이지 말아줘. "
" 왜 때렷! "
" 예뻐서. "
설아가 방긋 웃었다.
" 그런 이유라면. "
그랬다가도 인상을 찡그렸다.
" 나 가지고 장난치는 거지? "
" 그걸 이제 알았냐? "
" 오빠 미워. 저주할거야. "
" 미워하든 저주하든 얘기는 다 하고 해. 몰래 침투한다거나 그런 얘기는 없어? "
설아는 주위를 한 번 둘러봤다.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윤석이 카페를 통째로 전세냈기 때문이다.
" 아 맞다! 그 얘기도 나오긴 나왔어! "
그제서야 생각난 듯 설아가 손가락을 튕겼다. 딱! 소리가 났다.
" 근데 지원자가 없어. 암탑소속의 마법사가 할 거 같다고 밀어주는 분위기이기는 한데...사실 직접 나서기는 다 싫은가봐. "
" 내가 숨어있는 위치를 흘리면 꽤 귀가 솔깃하지 않을까? "
" 오빠가 숨어있는 위치? 그럼 내가 가서 콱 죽여도 돼? "
그랬다가 설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지. 오빠의 밥줄을 끊어놓으면 내가 곤란해져. 오빤 내 노후설계란 말이야... 하고 설아는 짐짓 곤란한표정을 지었다.
" 아마 오빠의 위치를 확실하게 안다면 몇 쯤은 달려들지 않을까? 오빠한테 현상금도 엄청 걸렸어.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달려들 만큼. "
" 애초에 그렇게 돈 모았으면 기금따윈 전혀 부족하지 않았을텐데. "
예전 스크롤 대량낭비로 인해 기금부족사태에 휘말렸던 적이 있다. 그 때 이렇게 서로 자발적으로 나섰으면 기금마련에 어려움을 겪지 않았을런지도 모른다.
" 흠... 어떻게 정보를 흘려야 하려나... "
설아 한 명을 통해 흘려넣는 건 어렵다. 꽤 믿음직스런 정보가 될 수 있도록 진실 80에 허구 20을 섞으려고 하는데, 통로가 별로 없다.
" 오빠. 이렇게 하는 건 어때? "
" 어떻게? "
" 오빠는 퀘스트 기간 동안에 일정 비트를 벗어나지.. 아. 비트라는 건 마법사들이 쓰는 용어인데 하여튼 일정한 지역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거야. 그런 식으로 발이 묶여 있고 거기서 지휘한다고 하면 될 것 같은데... "
" 바보냐? 그럼 애초에 내 쪽으로 모든 유저가 쏠릴텐... "
윤석은 말을 끊었다. 생각에 빠져들었다. 쳇! 나는 획기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라는 설아의 중얼거림은 들리지 않았다.
' 일단 1차적으로 거짓정보를 흘려서 꾀어낸 다음... 비밀적인 경로로... 알기 힘든 루트로 다시 한 번 카드를 꺼내드는 거야. '
처음에 대놓고 정보를 흘리면, 사람들은 대부분 그 쪽으로 몰릴 것이 뻔했다. 잃을 것이 별로 없는 -얻게될 보상에 비해서는 훨씬 작은 페널티만 가진 - 사람들이 잔뜩 쏠리게 될 거다.
' 마도사들은 뒤에서 구경하겠지. '
그리고 의식하지는 않아도 일종의 우월감을 갖게 된다. 그 정보가 진짜인지 아닌지를 한 발자국 멀리서 떨어져서 관조할 수 있으며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유저들을 보며 저들과는 다른 클래스라고 스스로 생각하게 된다.
그들은 '잃을 것이 많아서' 함께하지 않는다는 이유가 가장 크게 작용하지만 그들은 '나는 속지 않으니까'라는 이유로 자기 스스로를 포장하게 된다. 특히나, 벌떼처럼 달려든 유저들이 순식간에 썰려나가면 그 마음이 더욱 크게 작용한다.
' 똑똑해서 거짓 정보에 속지 않은 상위 클래스의 유저. ' 정도로 스스로를 인식하게 된다. 그 때, 일반 사람들은 알기 어려운 음성적인 루트를 통해 '안졸리냐 졸려의 진짜 위치'를 흘려넣는다.
그러면 그 거짓정보를 '진실'로 받아들일 확률이 크다.
" 그래? 음... "
설아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비밀스럽고 음성적인 루트로 두번째 거짓정보를 흘린다는 건 이해했다. 그런데 심리적 작용에 대해서는 이해 못했다.
" 무슨 이론 같은 게 있는 거야? "
" 있지 당연히. "
" 정말? "
" 윤석님 이론. "
" 쳇. 그럴 줄 알았어. "
윤석의 설명이 그럴듯하다하여 들었던 설아는 혀를 낼름 내밀었다.
" 어쨌든 그 비밀적이고도 음성적인 방법을 찾는게 관건이라는거네? 대중적인거야 뭐... 쉽게 퍼뜨릴 수 있으니까. "
" 그렇지. 너 제법 똑똑한 멍청이구나? "
설아는 약속이라도 있는 듯 시계를 힐끔 살피고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며 가방을 둘러멨다. 그리고 이크! 시간 다 됐어 오빠. 나 학원갈게! 라면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한마디도 잊지 않았다.
" 나 똑똑한 거 이제 알았어? "
* * *
언론에 또 하나의 이슈가 터져나왔다. 현대의 군 7천명을 이끄는 군인 클래스가 '사후디 사막'에 비트를 가지고 있어서 그 곳 밖으로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정보였다.
물론 기사를들은 대부분 교묘하게 뜻이 위장되어 있었다. '확실히 그렇다!' 라는 것이 아니라 '그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혹은 '정황상 그렇다'라는 식이다. 그 말은 달리 해석하면 정보가 사실이든 거짓이든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가능성이 높다는 건 어디까지나 확률일 뿐이니까.
그러나 대부분의 대중들은 그 주장의 근거가 되는 '팩트'에 중시하기 보다는 그 '주장' 자체에 포커스를 두었다. 많은 사람들이 휩쓸렸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다보니 곧 '사후디 사막'은 순식간에 유명해졌다.
각종 매거진과 게임방송기자들이 '군 클래스'를 찾아 속는셈치고 사후디사막으로 향했다. 그 결과. 현대의 군 클래스의 유저를 사후디사막에서 만났다는 증언과 기사가 범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음급한, 공명심에 들뜬 판타리아 유저들이 하나둘씩 사후디 사막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혼자서는 무서워서 못가지만 그 수가 100명이 되고 천명이 되고 만명이 되니 별로 두렵지 않았다.
넷오프상 (현실세계)에서도 사람들은 커뮤니티를 만들어 뭉쳤다. 전세계적으로 셀 수도 없이 많은 -적어도 100만은 넘는- 사람들이 포탈게이트를 타기 시작했다.
그 것은 실시간으로, 거의 전세계의 모든 게임채널에서 방영되었다. 각 채널의 기자들과 온갖 매체의 정보제공자들이 실시간으로 동영상을 퍼뜨렸고 판타리아 유저들의 포탈게이트 이용과 집결은 유토피아 서비스 이래로 가장 큰 이슈가 되었다.
- 집결! 판타리아!
- 추정 규모 700만!
- 정규화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선발대가 700만!
-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중! 숫자 비교는 이제 의미가 없어.
- 얼스에게 닥친 것은 어쩔 수 없는 재앙인가?
난리가 났다. 여지껏 계속해서, 언론은 물론이고 모든 곳에서 화제였다. 그런데 이제 정말로 행동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직 마도사가 주축이 되어 움직이고 있느냐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정말 엄청난 규모였다. 처음에는 그저 심심풀이 삼아, 혹은 혹시라도 떨어질 지 모르는 콩고물을 위해 이 대규모 원정에 참여했던 유저들이었는데 이젠 자신감이 생겼다. 사람이 이렇게 많이 모였으니 자신감이 생기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 판타리아인이었다. 모두가 생각했다.
' 이정도 숫자면... 나는 안 죽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