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12 그 누가 10여명이라고 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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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수 있는 주식은 모조리 샀다. 값이 폭등했다. 그래도 계속 팔리자 임원진들 중 일부도 지분을 조금씩 팔았을 정도다. 그렇게 모인 것이, 전체지분의 약 12퍼센트. 주랑이 원래부터 17퍼센트를 가지고 있었단다. 게다가.
" 내가 21퍼센트 정도를 가지고 있지. "
" 예... 주랑이에게 들었습니다. "
" 그래. "
남자는 꽤나 익숙한 모양새로 스테이크를 썰었다. 룸 안은 조용했다. 한쪽 구석에는 척 보기에도 값이 비싸 보이는 자기가 하나 놓여있었다. 은은한 푸른색을 띄는 것이 백자에 색깔을 덧씌워놓은 것 같기도 했고, 아니면 고려청자를 조금 다른 형태로 꾸며놓은 것 같기도 했다. 또 한쪽 벽면에는 가로세로 3미터가 넘어보이는 커다란 수묵화가 그려져 있었는데, 일종의 신선화 같았다. 전체적으로 동양풍의 느낌이 물씬 풍겨져 나오는 룸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스테이크는 제법 맛있었다.
" 그나저나... "
헐리우드가 낳은 스타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66세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근육과 멋드러진 외모를 가진 미남배우로 손꼽힌다. 눈 앞의 남자. 그러니까 윤석이 미래의 장인어른으로 생각하고 있는 이 남자 역시 그런 부류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40대 중반이나 후반정도로 밖에는 안 보인다. 검은색 슈트가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탄탄한 몸과 건강해보이는 얼굴은 그가 얼마나 자기관리에 투자를 하는지 알 수 있을 듯 했다.
또한 경험과 연륜에서 자연스레 묻어나오는 포스가 말쑥하고 건강해보이는 외모와 어우러지면서, 마치 중세 유럽 어느 유명한 기사가문의 기사도 투철한 기사같은 느낌이었다. 그 남자가 입을 열었다.
" 그건 그렇고... 아가리 쳐맞을 준비는 됐나? "
" 예? "
남자의 옆에 앉아있던 주랑이 남자의 팔을 살살 잡아당겼다.
" 내 딸은 귀하네. "
" 예... 뭐... "
" 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 귀한 딸내미야. "
" 맞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값진 보석이죠 주랑이는. "
" 그리고 자넨 그 보석을 훔치려는 세상에서 제일 썩어빠진 도둑놈이고. "
윤석의 몸이 굳었다. 단순히 농담이라고 보기엔, 저쪽의 기세가 너무 살벌했다. 윤석은 허허, 허허하고 웃을 뿐 다른 어떤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
" 난 예전에 딸내미 집 앞에서 자네를 본 적이 있어. "
" 예. "
" 그 날 무슨 우리 주랑이와 무슨 얘기를 했던가? "
그 날은 분명 기억에 있다. 주랑이 신호등에서 멈칫해도 괜찮다고 말하던 그 때였다. 그리고.
' 설하를 만나보겠다고 말했었지. '
그 날 이후로 실제로 설하와 약속을 잡고 만난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그 당시에는 말을 그렇게 했었다. 한 번 만나볼까 해. 정도의 얘기를 했었다.
" 주랑이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는 말을 했던 것 같습니다. "
" 그래? "
남자는 스테이크를 썰었다. 잠시간 침묵이 이어졌다. 동양풍으로 인테리어된 룸 안은 어느 고승이 명상이라도 하는듯한 분위기로 변해버렸다.
시간이 흐르고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 "
" 아빠... 그만해요. "
주랑의 얼굴이 붉어졌다. 윤석은 자신보다 더 불편해하는 듯한 주랑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 그리고 난 그 세상에서 제일 예쁜 아이의 아버지되는 사람이고. "
" 예. 그리고 제 장인어른이 되실 분이죠. "
순간 시간이 정지했다. 다른곳들의 초침을 째깍째깍 잘도 움직이는데, 딱 이 곳만 멈췄다. 초침의 발에 무거운 납덩이를 달아놓았다. 정적이 흘렀다. 그 정적을 깨부순건 남자의 주먹이었다.
꽝! 테이블을 내리쳤다.
" 외모는 뭐... 나쁘지는 않아. 어차피 주랑이와 비교해서 꿀리지 않을 외모를 가진 남자는 정말로 흔치 않으니까 이건 그냥 넘어가도록 하지. 성격도 괜찮은 것 같아. 능력은 말할 것도 없지. 그런데 마음에 안드는게 하나 있어. 그게 뭔지 아나? "
" ....... "
오늘 처음 만났을 때부터 뭔가 기분이 묘하기는 했다.
" 좋아. 내가 다른 얘기를 하지. 겉으로는 한없이 여려도 속으로는 한없이 강한... 내가 아는 여자가 한명 있었어. 그 여자는 남자의 일에 간섭하지도 않았고 남자의 기분에 모든걸 맞춰 주었어. 그러면서도 현명했지. 정말로 꼭 필요한 순간에만 남자의 행동에 제약을 걸었고, 남자는 그걸 충분히 받아들였어. 그 여자는 남자에게 있어서 정말 최고였지. 착하고 인내심 많고 거기다가 예쁘고 현명하고 도대체 뭐가 부족한 사람인지 지금 생각해도 모를 정도야. "
윤석은 그 말을 들으면서 그 여자가 주랑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또 가만보면 그게 아닌 것 같다. 자기 칭찬을 하면 항상 얼굴이 붉어져서 어쩔줄 몰라하는 주랑인데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주랑이 얘기가... 아닌가? '
" 그런데 그렇게 완벽하고 모난데 없고, 언제나 사랑해주는 그런 흠 잡을 데 없는 사람 옆에 있으면 뭐가 문제인줄 아나? "
" 잘... 모르겠습니다. "
" 그 사랑이 당연하게 되어버리거든. 언제나 옆에 있으니까. 언제나 사랑 줄 걸 아니까. 언제나 나만 위해줄 걸 아니까. 더군다나 그 사람은 시기질투도 없어. 오로지 무조건 내 편에 서서 생각해주지. "
어느새 대화 속 '남자'가 '나'로 바뀌었다. 윤석의 남자의 말 속에 빨려들어갔다.
"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르면 그 사랑과 보살핌에 익숙해져버려. 그게 사람이야. 그렇게되면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게 돼. 너무 평온하거든 삶이. 내 옆에 있는 그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있어. 바로... "
윤석은 잠자코 남자의 말을 기다렸다. 어째선지 주랑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 맛있는 스테이크는 반 넘게 남아 있었고 포크와 나이프는 식탁위에 가지런히 앉아만 있었다.
" 그 사람이 없어져보면 알게 되는거야. 그 사람이 없어지면 항상 내 옆에 있던 것이 사라지는거지. 그럼 얼마나 허무하고 얼마나 힘든지 아나? 그런데 더더욱 힘들고 괴로운 게 뭔지 아나? "
남자는 다시 한 번 테이블을 꽝 내리쳤다. 단순히 화가 나서는 아닌 것 같았다. 팔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 내가 그 사랑에 익숙해져 있던 시간동안, 그래서 새로운 자극을 탐닉하고 있을 시간 동안... 여자는 그만큼 괴로워했다는 거지. 나는 몰랐어. 여자는 언제나 밝았고 언제나 행복했고, 언제나 사랑한다고 말해줬거든. 항상 괜찮다고 힘내라고만 말해줬거든. 그런 여자였어. 나는 그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어. 그제서야 알았어. 그 사람도 사람이구나. 내가 한심한가? "
윤석은 그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한심하다는 생각보다는 왜 자신에게 갑자기 이런말을 하는건지 이해가 잘 안 됐다.
" 그 날. 내 딸이 얼마나 울었는지 아나? 무슨 개소리를 지껄인건지는 모르겠지만... 내 딸은 자네가 가고나서 한참을 울었어. "
꽝! 이번엔 테이블에 울리지 않았다. 윤석이 잠깐 인상을 찡그렸다. 이야기속 주인공이 토르가 망치로 자신의 머리를 한대 꽝 내리친 듯한 기분이 들었다.
" 아빠... "
주랑이 남자의 팔을 다시 잡아당겼다.
" 자네는 나를 너무 닮았고, 내 딸은 엄마를 너무 닮았어. 보나마나 내 딸은 그 날 자네에게 괜찮다고 말했을 거고, 뭔지는 몰라도 무조건 괜찮다고 했겠지. 그리고 자네는 그걸 믿었고. 세상에서 제일가는 병신이 여기 한 명 더 있었군. "
남자는 신경질적으로 스테이크를 썰었다. 원래 성격이 괄괄한건지 아니면 지금 화가 나서 그런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중요한 건.
' 주랑이가... 울었다고? '
윤석에게는 충격이었다. 주랑은 애인임과 동시에 심적으로도 많이 의지가 되는 정신적 파트너이기도 했다. 오히려 자신보다 훨씬 성숙했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저도 모르게 의지도 많이 했었다. 그런데 자신때문에 많이 울었다는 말에 조금 충격 받았다. 그리고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자신의 무지함때문에 더욱 충격을 받았다.
" 나는 주랑이가 자기를 좀 더 주장할 수 있을 때까지. 자네에게 질투도 하고, 화도 내고. 그래서 서로에게 정말 솔직할 수 있을 때까지. 주랑이를 시집보내지 않을 생각이네. "
남자의 말은 더이상 들리지 않았다. 자꾸만 그 날의 일이 떠올랐다.
' 설하를... 만나러 간다고 했었던가 내가. '
그제서야 무슨 말을 했는지 제대로 직시가 됐다. 어느 애인이 첫사랑 만나러 가는데 괜찮다고 하겠는가. 그것도 하루종일 설레는 표정을 보여놓고선.
" 물론. 이번에 지분을 잔뜩 매입한 건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회사가 커지니 여기저기서 잡소리가 많이 들리는데... 든든한 지원군을 하나 얻게 되기는 했군. "
" 그건... "
" 아 들었네. 자네의 개인적인 복수도 포함되어 있다고? "
윤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주랑을 한 번 봤다. 주랑은 계속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 주랑이랑... 다시 얘기해봐야겠어. '
주랑이는 따로 만나서 좀 더 깊고 진솔한 대화가 필요하다고 봤다.
그리고 윤석은 마음을 굳게 먹었다. 사실 이 문제를 꼭 짚고 넘어가려고 했다. 개인적인 복수와도 관련된 일이지만, 이건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중요한 일이었다. 다시 한 번 주랑을 흘낏 살펴봤다.
"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
" 잠시 기다리게. "
남자는 주랑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 주랑인 나가 있어. "
============================ 작품 후기 ============================
흠...
주랑과 호구(?)는 피는 이어져있지 않습니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