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플레이어-101화 (101/244)

00101  그 누가 10여명이라고 했나.  =========================================================================

* * *

윤석은 콧방귀를 꼈다.

" 왜요? 여론이 그래서요? 역차별 장난 아니네요. "

유토피아의 마케팅부 하부장은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아냈다. 이마보다는 위고 정수리보다는 아래인 그 애매한 부분을 빤질빤질 닦는데 연신 땀이 송골송골 새어나왔다.

" 아 그것이 역차별이라기보다는... "

" 역차별이 맞죠. 판타리아엔 마탑이 있고 중원에는 거대문파랑 세가가 있죠. 그게 현대에는 군이잖아요. 군 클래스를 얻어서 귀속 NPC를 부리는게 뭐가 잘못 됐죠? "

" 그게 잘못 됐다는 건 아닙니다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저희는 부탁을 드리는 거라고. "

" 그니까 저는 그 부탁 듣기 싫다니까요. "

김윤석은 당당했다. 어떤 버그나 다른 부정한 방법을 써서 얻은 힘이 아니다. 정당한 힘이다. 문제는 그 군클래스가 유토피아 개발진보다 너무 빨리 등장했다는 거겠지만. 애초에 건오퍼라는 클래스의 등장확률을 거의 0이라고 봤고 그 0퍼센트의 건오퍼가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서 스킬포토를 통해 군클래스를 얻었다. 그것도 '준장'이다. 유토피아의 당초 계획보다 최소 1년은 빨랐다.

" 저번 길드전때 처럼 호락호락하게 넘어가드리지 않습니다. 애초에 이런게 문제가 됐다면 훨씬 더 먼저 제재를 가했어야죠. "

윤석은 대놓고 인상을 찡그렸다. 일부러 찡그린게 아니라 저절로 찡그려졌다. 처음 하부장을 만날 때엔 조금 긴장됐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하부장은 손수건으로 연신 이마와 정수리 사이를 벅벅 문질렀다.

" 그 부분은 유감을 표하는 바입니다. "

" 유감을 표하면 끝 인가요? 아임 쏘리. 한 번 말하면 그냥 끝나는 거에요? 전 그런 사고방식 이해할 수가 없네요. 이건 엄연히 판캐랑 무캐가 먼저 한 짓이라고요. 그것도 거의 한달간이나 강도짓하고 죽이고 그 짓할 때는 가만히 있다가 왜 제가 똑같이 되돌려주니까 제재를 하려고 들어요? 왜요? 사람들이 죄다 항의하니까 이제서야 아... 문제가 좀 있구나 싶으세요? "

윤석의 말이 조금 빨라졌다. 저도 모르게 흥분해버렸다. 예전 길드전 사태때도 그랬다. 만약 현캐의 비율이 판캐, 무캐와 비슷했다면 여론이 어떻게 반응했을지 모른다. 유토피아측에서도 문제점을 확실히 인식하고 있었고 그 덕택에 스킬효과를 중첩해주는 A급 악세서리를 비밀리에 보상해주었다.

유토피아 유저의 대부분이 무캐와 판캐라서, 여론은 언제나 현캐에게 불리할 수 밖에 없었고 유토피아는 그 여론을 상당히 많이 신경쓰는 편이었다.

" 정 그렇게 나오시면 패치를 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

윤석은 뜨끔했다. 사실 저쪽에서 패치를 하겠다고 나오면 방법 없다. 예를들어 NPC의 능력을 약화시킨다든가 군 클래스 자체를 없애버리든가. 뜨끔 하기는 했다만.

" 이게 어째서 패치의 대상이 되는지 저는 도저히 모르겠네요."

" 어쩔 수 없습니다. 현재 군 NPC는 유저들의 능력에 비해 너무 월등하게 강한데다가... 그 힘 때문에 판캐와 무캐들이 죽어나고 있으니까요. "

" 여태까지 현캐도 판캐랑 무캐한테 죽어났잖아요. 그 때는 가만히 있다가 이제와서 그러는 건가요? 그리고 저한테 분명 부탁이라고 하셨죠. 지금 이게 부탁하는 태도에요? 부탁하는데 패치를 들먹이나요? "

패치를 하겠다. 이건 부탁이 아니라 협박이다. 지금 이 짓을 그만두지 않으면 패치를 하겠다. 그니까 이제 그만둬라.

" 그니까 이건 협박이네요. 요즘 유토피아 건으로 인해서 고소사건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죠? "

" 김사장님... "

하부장은 연신 땀을 닦아냈다. 그냥 일반인이었다면 패치를 해버렸을지도 모른다. NPC를 약화시키거나하는 식으로. 그러나 상대는 유토매니아의 김윤석 사장이다. 사회에 명망이 자자하며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커다란 지지를 받고 있는 사람이다. 그렇다보니 아무래도 함부로 대하기가 힘들다. 불법 프로그램을 사용했다거나 다른 방법을 사용했다면 모를까 그것도 아니었다.

" 저번엔 A급 악세서리로 쉽게 넘어가 주셨는데 이번은 안될겁니다. 패치요? 패치 해보세요. "

패치하면 이 쪽도 곤란하긴하다. 그래도 강짜를 부렸다. 원래 협상은 기세가 반은 먹고 들어가는 법이다.

" 일개 개인에게 할당된 값 패치하려면 엄청 복잡하죠? 제 군 클래스도 손봐야하고 그에따라 NPC의 능력, 그 NPC의 능력에 따른 타개체들의 능력치, 현재 연계된 퀘스트,  기타 등등. 분명 며칠은 걸릴 겁니다. 그 동안 제가 어떻게 할지 지켜보실 생각이라면 한 번 보세요. "

* * *

유토피아는 패치를 하지 못했다. 윤석의 말이 맞았다. 단순히 몇 시간만에 뚝딱. 한다고해서 패치가 되는 게 아니다. 하물며 얼스의 중추시스템인 '군'을 건드려야하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스나. 포. 소총은 모두 하나의 계급을 가진 군인이고 그 계급에 따른 능력치가 설정되어 있다. 그 능력치에 따라 시스템 내에서 임무가 주어지게되고, 각종 상황이 펼쳐지게 된다. 자동적으로 이미 프로그램이 되어 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의 변수를 하나 바꾸자면 연쇄적인 충돌이 일어나게 된다. 결국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손보려면, 그 변수와 연관되는 모든 데이터를 수정해야하는데 그러자면 며칠 시간이 걸린다.

패치를 결정하는 것도 하부장 혼자서 하는게 아니다. 상부에 건의해서 승인을 받아야 한다. 기술부에도, 전산부에도 말을 해서 실제로 작업이 들어가려면 최소 3일은 걸린다. 그리고 또 바로 작업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이제 마지막 길드전. 7차전 때문에 안 그래도 바쁘게 돌아가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안졸리냐졸려'에 대한 패치를 진행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래저래 빨라도 일주일은 걸린다고 보는데.

" 그 동안 맘먹고 깽판치기로 하면 말이야... 난리가 난단 말이지. "

지금이야 그렇다치더라도 아예 퀘스트 판을 키워, NPC를 많이 통솔하게 되면 곤란해진다. 지금 김윤석을 보아하니 그럴 기세다. 그렇게해서 판타리아와 중원을 휩쓸다시피하면 현재로선 방법이 없다. 판타리아의 NPC들과 중원의 NPC들은 엉덩이가 무겁다. 게다가 유저의 일로는 어지간해서는 나서지 않는다.

" 그렇게되면 유저들의 반발이 엄청나게 심해지겠지? 언론이고 뭐고 완전히 난리가 날거야. "

유토피아 운영진들이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차라리 윤석이 뭔가 부정한 짓이라도 저질렀으면 하는 바람까지 있을 정도다.

" 하필이면 건오퍼에 군클래스에... 그것도 유토매니아의 김윤석에... 어우 도대체... 에잉! "

시간이 지났다. 퇴근시간이 훌쩍 넘었다. 사무실에는 아무도 안남았다. 머리를 감싸쥐던 하부장은 주위를 한 번 둘러봤다. 피식 웃었다.

" 이 정도면 우리도 할만큼 한거잖아? 패치협박도 해봤고 회유도 해봤고. 근데 안통한거잖아. 에이. 그럼 어쩔 수 없네. "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 그렇죠 뭐. 어쩔 수 없는 거니까요 뭐. "

사원들이 주위에 있을 때와는 사뭇 다른 태도로 킥킥 웃었다. 별로 머리가 아프지 않은 것 같은 모양새다. 계속해서 강조했다. 어쩔 수 없다. 우린 최선을 다했다. 정말 열심히 설득했다 등등. 사실 한 거 별로 없다. 윤석을 만나서 윤석의 '반 협박'을 듣고 왔을 뿐이다. 패치한다고 그냥 넌지시 말을 했을 뿐이다.

" 근데 아무리 그게... 있다고해도... 그렇다고는해도 사실 걱정은 됩니다. 처음부터 NPC 능력치를 너무 높게 잡은게 아닌가 해서요. 뭐 그거야 시간이 해결해주겠지만요...아 그렇다니까요? CCTV 있는 곳에서 얘기했어요. 분명 설득 열심히 하는 제스쳐도 취했고... 네네. 아 긍께 그렇대니께 시방, 몇 번을 말해야 하는겨! "

하부장은 결국 성질을 버럭 내고서 통화를 끊어버렸다.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다시 한 번 아무도 없는지 살펴보고 (심지어 얼굴을 빼꼼 내밀고 복도까지 살피는 과도한 세심함까지 보인 뒤에) 속사포처럼 욕설을 내뱉었다.

" 닝기미... 꼬우면 지들도 첨버텅 현캐하든가... 꼬졌을 땐 안해놓고선 나중에 좋으니께 지럴이여 지럴은. 어우 꼬시다. 김윤석 파이팅이다. 씨펄럼들. 다 조져버려. "

그랬다가 사무실에 누군가 들어온 것을 보고 흠칫 놀랐다. 방년 29세. 꽃다운 여사원 이정숙이다.

" 부장님... "

하부장은 침을 꿀꺽 삼켰다. 씨펄... 들은 거 아녀? 닝기미... 퇴근 시간인디 왜 여기서 이렇게 처박혀 있는겨! 속으로만 외쳐댔고 겉으로는 땀을 뻘뻘 흘렸다. 그녀는 매우 진중하고 조심스런 태도로 입을 열었다.

" 이 건물... 금연...인데요... "

* * *

12마탑의 수뇌부들. 사실 NPC들을 제외한, 유저들끼리의 수뇌부다. 12마탑끼리는 이미 하나의 커뮤니티를 만들어 수뇌부를 따로이 정해놓았고 그 안에서도 슬슬 힘을 키워가고 있는 중이었다.

화탑의 마도사인 그리시언은,

" 안타깝지만... 여기 계신 전 화탑 마도사 비장한최후님이 도태...되셨습니다. "

라는 중대발표를 끝마쳤다.

" 이번 역시, 샤무의 소행입니다. 샤무는 현재 카오를 감출 수 있는 특별한 아이템을... "

" 그거 압니다. 인비져블 크라임. 예전 경매에 올라온 거 한 번 봤습니다. "

" 아. 인비져블 크라임. 확실히 그런 아이템인 것 같습니다. 인비져블 크라임을 통해 정체를 감추고 접근했습니다. 이번에 비장한 최후를 죽인 건 '마녀'로 추정됩니다. "

마탑의 유저들이라고 해도, 샤무의 모든 정보를 속속들이 꿰뚫고 있는 건 아니다. 정확한 닉네임을 아는 건 아니고 편의상 수희를 '마녀'라고 불렀다. 예전 수희에 의해 시체가 되었던, 그래서 마도사의 직위가 박탈된 비장한 최후가 입을 열었다. 그는 도태되어 마도사의 직위는 박탈당했지만 유저들 사이에서의 영향력은 꽤 컸다.

" 그 마녀의 정체를 알고 있습니다. "

" 정체요? "

" 게임 내의 닉네임은 모르지만... 현실에서 알고 있습니다. "

모여있던 마도사들이 잠시 조용해졌다. 게임에서의 일은 게임에서 해결하는게 가장 좋다. 괜히 현실까지 끌고 갔다가 고소에 휘말리는 경우가 생긴다. 요즘 게임에서 일어난 일을 현실로 가지고 와서 어떻게 하려다가는 강도 높은 제재를 당한다. 법이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는 추세다.

그리시언이 못내 찝찝한듯 중얼거렸다.

" 현실... 말이군요. "

" 그렇습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을 알려드릴까요? "

" 말씀해 보시죠. "

" 유토매니아의 사장의 인척이라는 겁니다. 그것도 직계. 남매사이 입니다. "

도태된 마도사인 비장한최후는 좌중을 둘러보며 숨을 들이마셨다. 그는 사실 마도사들이 보기 싫었다. 괜히 자격지심이 생겼다. 다른 마도사들이 실제로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도태된 마도사들을 '불쌍한 놈들'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그렇다보니 스스로가 도태된 지금. 이 곳에 있는 것 자체가 싫었다.

' 하지만... 이들을 끌어들이면... '

12마탑. 그 중에서도 수뇌부들이 모인 이 커뮤니티는 분명 큰 힘이 될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 이번에 유토매니아의 악행... 제가 꾸며냈다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중요한건 그 악행으로 인해 유토매니아의 평판이 상당히 안좋아졌다는 건 확실히 인지하셔야 합니다. "

분명히 그건 그랬다. 유토매니아는 사람들에게 욕을 많이 먹었다.

" 여기 계신 여러분들이 힘을 보태주신다면... 유토매니아를 무너뜨릴 수 있을 겁니다. 누가 뭐라고해도 판타리아의 중추들이시니까요. "

" 유토매니아를 무너뜨리는 것과 샤무와는 별로 관계가 없지 않습니까? "

" 아뇨. 그렇게 생각하실 문제가 아닙니다. '마녀'는 이번에 현대 NPC들의 힘을 빌려 마도사를 유인했고, 비겁하게도 뒤에서 급습했습니다. 그 현대 NPC들을 이끌고 있는 것이 아마도 마녀의 오빠인... 유토매니아의 사장이라고 짐작됩니다. 유토매니아를 무너뜨리는 건 바로 사장을 무너뜨리는 거고, 그건 바로 마녀의 지지기반과 힘을 무너뜨리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녀를 통해 샤무의 정보를 캐내고 샤무의 뒷통수까지 칠 수 있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

마도사들이 흐음...하고 생각에 빠져들었다. 비장한최후는 열변을 토했다. 4억2천만원짜리 아이템. 그리고 그것보다 더 중요했던 마도사의 직위를 빼앗은 년이 바로 '마녀'다. 마녀도 그렇고 유토매니아의 사장도 그렇고 무조건 그의 적이었다.

" 본보기를 보여야합니다. 샤무의 이기적인 행동을 벌해야 합니다. 마탑의 마도사들이 결코 만만하지 않다는 걸!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격이라는 걸 확실히 알려줘야 합니다! "

본보기를 보이자는 말에 많은 마도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일리는 있다. 하지만 현실의 문제로 가져가 유토매니아를 공격하는 건 무리가 따른다. 게임은 게임이고 현실은 현실이어야만 한다. 게임의 문제를 현실로 가져갔다가는 정말로 피보는 수가 생긴다. 그래서 마도사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채 상황의 추이를 지켜봤다.

비장한 최후가 말했다.

" 지금 여기에 마도사분들이 모인 건... 샤무의 극악무도한 행동에 대하여 대책을 마련하고자 모인 것 아닙니까?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라면... 본보기를 보이는게 최고입니다. 본보기를 보이고 저희들끼리도 샤무를 처단하는 대항세력을 하나 만들어야겠지요. 여러분이 걱정하시는게 어떤건지는 알겠습니다. 제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

============================ 작품 후기 ============================

간만에 2연재.

무박2일 여행 다녀오갔습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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