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플레이어-89화 (89/244)

00089  비장한 최후  =========================================================================

* * *

출처를 알 수 없는 게시글이 인터넷을 떠돌아다녔다. 작성자는 호크의 길드장 아무개. 내용은 이러했다.

- 현캐는 분명 최약체다. 모두 그걸 알고 있다. 하지만 호크의 활약으로인해, 그리고 배틀필드와 탄생성 스킬포토라는 것들이 게임 내에 풀리게 되면서 현캐의 수가 많이 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그것을 악용한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나는 그것을 묵인할 생각이 없으며 판타리아와 중원 모두에게 선전포고를 하는 바다. 이에는 이로 대답하겠다.

다들 장난으로 생각했다. 사실 알만한 사람은 다 알았다. 요즘들어 현캐의 플레이어가 많아졌고 그들을 노리는 사냥꾼 집단이 많아졌다는 것을. 넷상에 검색만해도 그와 관련된 까페가 수십개였다.

" 수희야. "

" 응? "

" 너 12마탑 애들 죽여야한다고 그랬지? "

" 응. "

" 내가 도와줄까? "

" 오빠가? "

수희가 전혀 미덥지 못하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그 모습은 마치 약해빠진 오빠주제에?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 오빠가 좀 세거든. "

" 나랑 일대일하면 녹잖아. "

" 불기둥승부사 녹는 거 못 봤어? "

" 봤지만... "

그건 확실히 이슈였다. 그게 이슈화되어 호크는 길드전 출전 자격을 박탈당했었다.

" 수희야. 내가 어떤 거 플레이하는지 아직도 말 안해줬지? "

" 맨날 물어봐도 안 가르쳐줬잖아. "

수희는 입술을 쭉 내밀었다. 인상도 잔뜩 찡그렸다. 분명히 뭔가 히든클래스라는 걸 알긴 안다. 또 무슨 엄청난 일을 꾸며서 유토매니아라는 거대사이트를 만들어서 돈을 왕창 벌어오고 또 돈을 왕창 쓰고, 하여튼 갑자기 대단해진 사람이라는 건 안다. 그런데 오빠가 뭘 하는지 어떻게하는지는 모른다.

" 가르쳐줄게. "

" 싫어! 또 뻥칠라고. 또 뻥치고 나 속일라그러지? "

" 아냐. 진짜 알려줄게. "

윤석의 말에 수희는 눈을 동그랗게떴다.

" 진짜? "

" 아니. "

" 이씨. "

수희는 윤석이 못마땅한 듯 윤석의 팔뚝을 꼬집었다. 한 번 아파보시지, 하고 세게 꼬집었다.

" 오빠는 군에 소속되어 있거든? 근데 아파서 말 못해주겠다. "

수희는 얼른 손을 떼고 헤헤- 웃었다.

" 내가 호~ 해줄까? "

" 그럼 팔 썩어서 안 돼. "

윤석은 손가락을 까딱까딱하면서 거절의 의사를 표시했다. 그리고 수희가 폭발하기 전에 바로 말을 이었다. 대화는 타이밍이다.

" 오빠가 이번에 NPC들 데리고 판캐랑 무캐 쓸러갈거야. "

" 엥? 갑자기 왜? "

"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글 못 봤어? "

" 봤어. 그게 오빠야? "

" 그게 나야. 근데 좀 문제가 있긴 있거든. "

윤석은 수희에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일단 판캐와 무캐를 족치긴 족쳐야겠는데 아무나 잡고 족치기엔 플레이어가 너무 많다. 1초에 1명씩 죽인다고 가정했을 때, 1시간 동안 내내 사냥만해도 3600명밖에 못 죽인다. 5시간 내내 죽이면 약 15000명이다. 동시접속자 5억. 1주일간 죽인다쳐도 겨우 10만명밖에 못 죽인다.

동시접속자 5억중 10만명이면 0.05프로다. 거의 죽이나마나다. 그럴바에야 타겟을 확실하게 정해서 본때를 보이는게 효율적으로 더 낫다.

윤석이 설명했다.

" 그니까 네가 이렇게 해. "

* * *

수희는 '샤무'에 속해 있으며 공격위주의 마법을 구사하는 화염계 마법사다. 샤무에 속해있다는 말은, 컨트롤에 일가견이 있다는 뜻도 된다. 샤무는 컨트롤 위주. 그러니까 PK에 능한, 그것도 법사 대 법사의 싸움에 강한 플레이어를 선별하여 받아들인다.

게다가 레벨도 레벨 역시 80대로 고수다. 결정적으로.

" 축하드립니다. 그나저나 엄청 미인이시네요. "

결정적으로 예쁘다. 사진인증을 하기만 하면 어느 까페를 가도 환영받았다. 관심폭발이다.

" 고맙습니다. "

수희. 게임 속 닉네임 '오빠세번주거'는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 아시다시피... 저희는 현캐 사냥꾼들 중에서도 꽤 유명하죠. 수입은 공평하게 나누고... 포탈비는 각자 부담입니다. 아. 저희가 말씀드렸죠? 화탑소속 비장한최후님도 포함된 정상급 파티입니다. "

" 네. 알고 있어요. 비장한최후님 소문듣고 여기 가입했어요. "

수희는 생긋 웃고는 조심스레 말했다.

" 요즘 인터넷에 이상한 글 나돌아다니던데... 현캐가 어쩌고..."

수희의 말을 들은 남자가 하하! 과장되게 웃었다. 마치 자신이 호탕하다고 주장하는 듯한 모양새에 수희는 속으로나마 비웃었다. 어째 처음보는 남자들은 대부분 강한척 하거나 젠틀한척 하거나 둘 중에 하나다. 하여튼 남자들의 반응에 익숙해진 수희는, 그 호탕한 웃음의 의미가 대단히 궁금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남자를 쳐다봤다. 어서 말해주세요. 라는 환청이 들린 것만 같은 남자는 자랑스레 말했다.

" 그래봤자 열폭이죠. 암만 현캐해봤자지... 그 때 호크에서 NPC데리고 나와서 욕도 엄청 먹었잖아요. 아마 NPC도 회수당하지 않았을까요? "

" 어머? 정말요? "

수희는 윤석의 동생이다. 그리고 윤석은 얼스의 준장이며 -비록 준장치고는 초라하지만- 특수부대 12명을 데리고 판캐와 무캐를 족치러 다닐거라는 걸 안다. 하지만 모르는 척 했다.

" 아마 회수당했을 겁니다. 욕도 엄청 먹었고 운영진한테 제재도 당했으니까요. "

" 흐음... 그렇군요. "

옆에서 말을 듣던 남자 하나도 맞장구쳤다.

" 맞아요. 회수됐대요 그거. 아무래도 사기라서... "

수희는 고개를 갸웃했다.

' 도대체 저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근거는 뭘까? '

오빠한테 바로 어제 이야기를 들었다. 예전엔 3명이었는데 지금은 12명이나 데리고 올 거라고 했다. 도대체 근거도 없는 말을 어떻게 저렇게 확실하게 하는건지 도통 이해는 안 됐지만 그래도 고개를 끄덕였다.

" 그렇군요. 하긴 그게 좀 사기이긴 했어요. 중원 네임드 유저를 한 방에 보내버렸으니까... "

" 그렇죠... 여튼. 곧 출발할 겁니다. 그 분만 오시면 되는... 아. 오셨네요. "

" 네? 누구요? "

" 사실 이 파티의 핵심이기도 하죠. "

수희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미리 조사해서 들어왔다. 로브를 뒤집어쓴 남자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 남자를 맞이한답시고 파티의 리더이기도 한 전사타입의 '살려죠'가 넉살좋게 웃으며 악수를 하고서 수희에게 소개를 시켜줬다.

" 화탑 소속의 '비장한최후'님이십니다. 인사하세요. "

수희는 놀라면 으레 그렇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로브를 입은 남자를 쳐다봤다가 이내 활짝 웃었다.

" 안녕하세요? 우와. 화탑소속이에요? 화탑 마도사 뎀지 쩐다던데. 만나서 반가워요! "

로브를 입은 남자는 꽤 준수한 편이었다. 사실 본판이 평균이상만 되면, 유토피아에선 꽤 미남으로 변할 수 있다.

" 아 예.. 안녕하세요. "

이러한 반응이 익숙한지 남자는 인사를 대충 받으며 건성으로 손을 내밀었다. 수희는 그 손을 맞잡고 헤헤- 웃었다. 속으로 말했다.

' 응 빠이빠이. 넌 내가 죽여줄게. '

윤석과 짠 작전을 머릿속으로 다시 한 번 떠올려봤다. 정말 이토록 좋은 방법이 있을 줄 몰랐다. 입맛을 쩝쩝 다셨다. 그러다 침 한방울이 새어나왔다. 그랬다가 수희는 흠칫 놀랐다.

'비장한 최후'가 수희의 입술에 손가락을 얹고서 쓱 훑었기 때문이다. 수희는 순간 목에 소름이 돋았다. 징그러운 느낌이었다.

" 아.. 제가 좀 닦아드리려고... 너무 주제넘는 참견이었나요? "

'비장한 최후'는 뒷통수를 긁적이며 어색하게나마 하하- 웃었다. 당연히 주제넘는 참견이지. 라고 수희는 말해주려다가 참았다. 헤헤- 웃었다. 눈웃음을 지었다.

' 죽여주겠어! '

그 모습을 보면서 '비장한최후'는 착각했다. 사실 유토피아는 그에게 꿈의 놀이터였다. 그는 화탑 소속의 마법사고 레벨도 높다. 게다가 마탑소속답게 강했다. 많은 여자 유저들, 그 중에서도 법사 계열은 그에게 무조건 호의를 보내왔다. 처음엔 어색했지만서도 지금은 오히려 그 호의를 즐기고 만끽하는 편이었다. 유토피아에서 여자도 많이 따먹었다. 남자는 능력이라는 말을, 이 곳 유토피아에서 실감하는 사람 중 한명이었다. 어쨌든 흠칫 놀라했으면서도 이내 눈웃음 짓는 수희를 보면서,

' 졸라 귀엽게 생겼네. '

귀엽다고 생각했다. 나이는 조금 어려보였지만 괜찮았다. 예쁘면 장땡이다. 그리고 그 예쁜 유저는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고 있는 중이었다.

' 언제 한 번 먹을려나... '

그렇다고 초면에 "나랑 잡시다."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기회를 보기로 했다. 일단은 리더쉽을 보이고 남자다움을 보여주기로 했다. 그는 파티장이 아니지만 파티를 통솔하는 모습을 보였다.

" 자. 그럼 다 모이신 것 같으니 출발해볼까요? "

수희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 네! 허접한 현캐들 싹쓸이해욧! 내가 다 무찔러야징. "

그 모습과 말투가 제법 귀여워 다른 파티원들이 피식거렸다. '비장한최후'가 남자다움을 강조하고싶어서 말했다.

" 혹시라도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위험하면 제 뒤로 피하세요. "

수희가 크게 대답했다.

" 네! 뒤에 숨을게요! 지켜주셔야 해요! "

수희는 배시시 웃었다. 남자다움을 어필했다 생각하여 기분이 좋아진 '비장한최후'는 하하 웃었다. 연약한 여자를 지켜주는 정의의 흑기사가 된 기분이다.

" 저만 믿으세요. 다른분은 몰라도...에...그러니까... "

" 꺼저. "

" 네? "

수희가 활짝 웃었다.

" 아니... 제 닉네임이 '꺼저'에요. 욕한 거 아니에요. "

아.. 그렇군요. 하하! 비장한최후는 또 크게 웃었다.

" 꺼저님만은 제가 지켜드리도록 하죠. 어차피 현캐들이라 뭐 위험할 일도 없겠지만요. "

수희는 또 헤헤 웃으면서 혀를 조금 내밀었다. 그리고 말했다.

" 그래도 무서우면 뒤에 숨어야지. "

비장한최후는 무척 기분이 좋아졌다. 여자가 의지해온다는 건 확실히 호감을 품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그의 눈이 수희의 얼굴과 몸을 한 번 빠르게 훑었다.

' 쉽겠어. '

쉽게 넘어올 것 같았다. 오늘 사냥이 끝나고 저녁 한 번 사준다고 말하고 데려와서 수작을 걸어보면 백이면 백 넘어온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 갑시다. "

비장한최후가 앞장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수희는 그의 뒷모습을 쳐다봤다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비장한 최후가 몸을 쓱 훑던 것이 느껴졌다. 오빠가 제안했던 작전을 반드시 성공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작품 후기 ============================

추천,코멘,평점, 쿠폰 주신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연재를 좀 쉬었던 미스터 퍼펙트도 연재를 시작하긴 하는데... 연재주기는 불투명. 당분간은 윤석이가 간다에 좀 더 집중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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