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7 비장한 최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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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들먹거리기로 유명한 NPC. 유저들 앞에서 한껏 거드름을 피우고, 유저들이 별로 마주치고 싶지 않아하는 소령. 한 번 말꼬리를 잡으면 계속 짜증나게 들볶는, 전형적인 '꼽창' NPC다. 얼스는 현재 전쟁중인 상황이고 그에따라 군인의 위상이 대단히 높다. 아무도 함부로하지 못한다. 한장환은 인상을 찡그린 채 매우 위협적이리라 짐작되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 아앙? 어떤 노무 새끼야? "
" 내 사랑... "
내 새끼다. 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실패다. 고개를 휙휙저었다. 가끔은 이 언어순화시스템때문에 답답했다. 말을 좀 할라치면 자꾸만 언어순화시스템에 걸려버리니까.
" 나다. 어쩔래? "
" 네가 누군데? "
한장환은 껄렁껄렁 걸어와 앞에 섰다.
" 네가 누구냐고? 앙? 뭐하는 새끼야? "
윤석 역시 군복을 입기는 했다. 그러나 계급장을 달고 있지는 않다. 스나, 포, 소총 같은 경우는 팔뚝 부근에 V 와 같은 계급장이 있지만 윤석은 그렇지 않았다. 계급을 나타낼 수 있는 거라곤 패스와 모자에 박힌 '별' 뿐인데 윤석은 그냥 유저들이 쓰는 자주색 베레모를 쓴 상태다.
한장환은 윤석 옆에 서있는 포, 스나, 소총을 보고 인상을 더더욱 찡그렸다. 스나 앞에 서서 얼굴을 스나 앞까지 들이댔다. 얼굴이 거의 맞닿기 직전. 장환이 다분히 위협적인 태도로.
" 이 것들 봐라. 고참이 왔는데 인사 안하냐? 경례 안 해? 개념을 어따 팔아먹었어? 앙? 이것들이 단체로 미쳤나! "
윤석이 스나의 허리를 톡 쳤다. 턱으로 장환을 가리켰다.
" 스나. 하고 싶은 말. 전부 다 해도 좋아. "
주랑이 윤석에게 달라붙는 것을 보고, 어쩐 이유에서인지 시체의 머리통에 계속해서 총질을 했던 스나는 장환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리고 윤석에게 물었다.
" 죽여도... 됩니까? "
다른 건 몰라도 스나의 현재 상태가 '매우 화가 나있음'이란 것 정도는 쉽사리 알아차렸다. 그게 한장환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 사살하지는 말고 적당히 네가 하고 싶은 말을 하도록 해. "
한장환의 코가 닿을락말락하는 그 거리에서- 한장환은 키가 스나와 비슷할만큼 작았다- 스나가 입을 열었다.
" 장군을 보고서도 무시하는 몰지각한 군인에게 제가 예를 취해야 합니까? "
" 뭐야? 너 이씨, 상사 주제에 어디서 말대꾸야? 어딜 기어오르는거야? 앙? "
한장환은 아래턱을 길게 빼고 얼굴을 좌우로 움직이며 스나의 얼굴에 거의 밀착한 상태로 깐죽거렸다.
" 준장님께 새끼라고 욕을 한 걸 들었습니다. 엄연한 하극상이고, 하극상은 즉결처분 대상입니다. "
스나는 품 안에서 권총을 꺼내 한장환의 배에 슬며시 가져다 대었다. 그와 동시에, 지프차에서 내렸던 군인들이 동시에 서서쏴 자세를 취하면서 소총을 견착했다.
그리고 소총이 말했다.
" 이 분은 현 얼스. 플라티곤소속. 제 8 전투단을 지휘하시는 안졸리냐졸려준장이십니다. "
숨을 한 번 들이키고 다시 말했다.
" 모두 총을 내리십시오. 전부 하극상을 부릴 참입니까? "
그 전에, 윤석은 인벤토리에서 모자를 하나 꺼내 썼다. 그닥 별로 좋지않은 그냥 그런 아이템이다.
[베레모]
별로 특별할 것 없는 베레모. 전투모에 비해 가시거리확보에 유리하며 통풍이 잘 되어 생각보다 시원한 게 특징. 그 외에 부가적으로 계급이 표시되는 효과가 있다.
방어력: 1
내구력: 20/20
계급: 준장
별로 특별할 것 없는 베레모인데, 사람들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 야... 진짜 군인클래스인가본데? "
" 그 왜, 호크 길드장 히든클래스설 돌았었잖아. 그게 저 사람 아냐? "
" 대박... 진짜 대박. 군인 클래스가 있었어. 실제로 존재했다고. "
" 군... 이라고? 마탑... 9대문파... 거의 이런 개념인 거 같은데. "
" 대박이다... 현대에도 저런게 있었어... 있었다고! "
그냥 베레모가 아니다.
" 진짜야. 진짜 군인 클래스라고. 저 계급장 위조 못하지 않아? "
위조는 할 수 있다. 군장점같은 곳 -게임에서 굳이 찾아가는 사람은 없지만- 에 가면 얼마든지 구입할 수 있다. 그러나 세 명의 NPC를 부리는 능력까지 갖출 수는 없다.
" 나다. 어쩔래? 이 개짬아. "
" 헤헤... "
웃기지 마라! 라고 외치려던 한장환은 윤석이 품 안에서 패스를 꺼내들자, 금세 비굴하게 웃었다. 윤석이 손가락을 까딱까딱 거렸다.
" 소령. 한.장.환! 저 부르셨습니까 준장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어떤 명령이든 달게 수행하겠습니다. 시켜만 주십쇼. 헤헤. "
" 어 그래 박아. "
" 예? "
" 박으라고. "
한장환은 도대체 저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했다가 손가락으로 스나를 가리켰다.
" 이 여자한테 말입니까? 아니면... "
주랑을 한 번 쳐다봤다. 무슨 상상을 하는건지 침을 꼴깍 삼켰다. 그러나 말을 하기도 전에 으악! 비명을 질렀다.
" 너 이 사랑. 머리 박아. 3. 2. 1. "
" 예! 예! "
한장환은 황급히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그와 동시에 윤석의 군화발이 한장환의 머리를 강타했다. 퍽! 소리가 났고 한장환은 쿠엑! 비명을 질렀다.
" 늬들은 뭐하냐? "
윤석이 뒷쪽의 군인들을 쳐다보자, 군인들은 움찔했다. 약 1초간 눈치를 살피다가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엎드렸다. 죄송합니다! 라는 목소리와 함께였다.
" 하나하면 나는. 하나. "
" 나는! "
" 목소리가 작잖아. 군대 똥으로 다니냐? 하나. "
" 나는!! "
목소리가 매우 커졌다. 초보자의 들판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였다.
" 대성박력말고 괴성박력. 하나. "
" 나는!!! "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군인들은 자신이 낼 수 있는한 최대한의 목소리를 냈다.
" 둘하면 깝치지 않는다. 둘. "
" 깝치지 않는다! "
" 하나. "
" 나는! "
" 둘. "
" 깝치지 않는다! "
한장환의 목에 핏대가 섰다. 미치고 환장할 것 같다. 소령이면 어딜가서 얼차려 받을 군번은 아니다. 최소한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는 고참들과 생활을 하지 않는, 비교적 한직인 필드 경계근무를 서고 있으니까. 이 곳에선 그가 왕고이고 그를 제재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얼스는 전시다. 구타 및 가혹행위가 만연했다.
" 그 상태로 앞으로 걸어. "
한장환이 일어나려하자 윤석은 쪼그려 앉아서 한장환의 뒷통수를 냅다 후려쳤다. 뒷통수를 강타당한 한장환은 이마와 대지의 친밀도를 더욱 높일 수 있었다. 그랬다가 널부러졌다.
" 너 인마. 개짬 소령. 이마 누가 떼래. 다시 땅에 안 박아? "
" 아, 아니... 이마를 땅에 박고 어떻게 걷습니까? "
" 못 해? "
한장환은 울상을 지었다.
" 못합니다. "
" 쟤넨 하는데 왜 넌 못해? 이 빌어먹을 짬찌가 해보지도 않고 못한다고 뻗대? 너 명령 불복종이냐? "
명령불복종을 아무데나 갖다 붙이는 윤석의 말에, 장환은 사색이 되어 뒤를 돌아봤다. 부사관들이 총을 뒤로메고서 이마를 땅에 붙인채 열심히 걷고 있었다. 땅이 밭고랑처럼 패이는 중이다.
" 쟤넨 되는데 왜 넌 못해? 앙? "
윤석은 모자를 벗어 모자로 한장환의 머리를 후려쳤다. 모자로 때리면 아프진 않지만 소리가 크게 난다.
" 으억! "
별로 아프지 않게 모자에 얻어맞은 한장환은 비명을 질렀다가 엎드렸다. 그리고 억울한 듯 말했다.
" 제, 제가 이럴 군번은 아닙니다... "
윤석이 씨익 웃었다. 아놔. 이 빌어먹을 사랑봐라. 군화로 한장환의 머리를 축구공 걷어차듯 후려찼다. 퍽! 소리가 들렸다.
" 너 인마. 이럴 군번이 아니야? 소령이면 준장한테 총 겨눠도 되냐? 앙? 사모님한테 뭐가 어쩌고 저째? "
한번 더 후려찼다. 으악! 소리와 함께 한장환은 바닥에 나뒹굴었다.
" 확 총살시켜버릴까 보다. 야 너네 다 일어나봐. 아니 넌 엎드리고 이 사랑아. "
슬슬 입이 간지러워지기 시작했다. 군대시절 이병땐, 나는 절대 저 고참들처럼 하지 말아야지, 나는 착하게 해줘야지, 해도 결국 똑같아진다. 군대라는 특성상 착하고 잘해준다고 다가 아니다. 갈굴 땐 확실히 갈궈야한다. 그래야 군기가 산다. 요즘은 인권보호다 자살방지다 뭐다해서 병사들간 잘 들 지내라고 하는 모양인데, 그래봤자 남는 게 없다. 강제력이 없으면 귀찮은 거 힘든 거 하기 싫어하는게 인간이다. 사회에서는 그 강제력이 바로 생활과 직결되는 '돈'이다.
돈을 벌려면 회사 상급자한테 잘 보여야하고, 손님에게 잘보여야 한다. 그러나 군대는 아니다. 돈이 없다. 눈에 보이는 보상은 없고 정신적인 가치. 그러니까 애국심등과 같은 것에 의지해야만 한다.
그런 상황에서 강제력 -구타 및 가혹행위를 통한 군기확립- 까지 없으면 근무태도가 제대로 설 리 없다. 좋은게 좋은거라고 너나 나나 친구 한다. 친구 사이에서 군기따위 있을 리가 없다. 예전엔 최전방에서 북한군이 병사들의 내무실(생활관) 방문을 두드려 스스로 귀화한 사건이 있었을 정도다. 그 사이 초소가 몇 개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요즘 병사들은 근무를 설 때 북쪽이 아니라 남쪽을 본단다. 간부가 오나 안오나 보려고.
어쨌든 윤석은 군기가 빡센 곳에서 제대를 했고 '짬찌'갈구는 것은 익숙했었다. 예전 버릇이 고개를 쳐들었다.
" 너네. 나한테 총 겨눴지? 하극상이냐 아니냐? "
준장이 묻는데, 대답하지 않을 수가 없다. 누구라도 일단 대답해야한다.
" 그럴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
" 아니. 너네 의무가 뭐야? 너네 하는 짓이 여기 애들 지키는 거 아냐? 앙? "
" 맞습니다! "
" 근데 여기까지 기어오는건 느려터졌고 덕분에 판타리아 무캐 쓰레기 잡종들이 판을 치고 있었잖아. 막상 너네가 지켜야할 놈들한텐 총구를 겨누질 않나. 너희 아무래도 안 되겠다. 근무태도 불량에 하극상에 도무지 용서가 안 돼. 야 인마. 너. 누가 멈추래? 계속 안 걸어? 이 사랑이 빠져가지고. "
윤석은 신경질적으로 걸어가 한장환의 머리통을 한번 더 후려찼다. 한장환은 흐어억! 비명을 지르며 널부러졌다가 얼른 이마를 땅에 박고 열심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군인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앞에선 고참이 이마를 땅에 박고 열심히 걷고 있다. 이 쪽은 열중쉬어 자세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어찌나 불편한지. 게다가 앞에는 이름모를 원스타 하나가 불같이 화를 내고 있다.
" 죄송합니다! "
모두 크게 외쳤다. 윤석이 그 중 하나를 지목했다.
" 야. 너 결혼 했냐 안했냐? "
그의 지목을 받았을거라 짐작한 군인 셋이 동시에 외쳤다.
" 했습니다! "
" 안 했습니다! "
" 못 했습니다! "
" 결혼한 놈 너 가까이 와봐. "
중사 하나가 황급히 뛰어왔다.
" 너. 누가 네 마누라 보면서 군침흘리고 박고 싶다고 그딴말 하면 기분이 좋겠냐 나쁘겠냐? "
중사는 한장환의 눈치를 살폈다. 이렇게 말할 수도 없고 저렇게 말할 수도 없고.
" 1초준다. 대답 안하면 앞으로 군 생활 꼬인다고 복명복창해라. "
" 엄청 나쁠 것 같습니다! "
사실 한장환은 군침흘린 적 없다. 박고 싶다고 말한적도 없다. 그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뿐이다. 하지만 상대가 나빴다.
" 그런 놈은 어떻게 해야겠냐? 대답 똑바로 해라. 군생활 종치기 싫으면. "
애꿎은 그는 한장환의 눈치와 윤석의 눈치를 번갈아보다가 이내 대답했다.
" 그런 상황에 맞닥뜨린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
" 몰라? 모르면 알게 해줘? 대답 똑바로하라고 했냐 안했냐? 마지막으로 묻는다. 어떻게 해야겠어? "
그는 침을 꿀꺽 삼키고 대답했다. 까마득한 고참이 묻는 거다. 어차피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 적절한 절차를 밟아야 할 것 같습니다! "
현장의 분위기와는 전혀 연관성이 없지만 주랑은 윤석의 옆에 서서 왼 손을 윤석의 허리 위에 얹었다. 그와 동시에 탕! 탕! 탕! 총성이 울렸다. 토끼 형상의 몬스터가 박살나버렸다. 포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 스나... 분노...한다. "
스나가 매우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
" 위험한 몬스터를 제거했을 뿐입니다. "
토끼는 전혀 위험한 몬스터가 아니고, 윤석과 거리도 멀었다.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주랑의 손이 윤석의 손을 잡았을 때. 들판엔 다시금 총성이 울려퍼졌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포를 보며 권총을 품에 갈무리한 스나가 밋밋하게 말했다.
" 화 안났습니다. "
그리고 평소 말이 없는 스나가 굳이 한마디를 또 덧붙였다.
" 진짜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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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최전방에서 북한군이 병사들의 내무실(생활관) 방문을 두드려 스스로 귀화한 사건이 있었을 정도다. 그 사이 초소가 몇 개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요즘 병사들은 근무를 설 때 북쪽이 아니라 남쪽을 본단다. 간부가 오나 안오나 보려고.
- 최근 일어난 일입니다.
p.s: 당분간 200 약속은 유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