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3 10억이 갑자기 아까워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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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른. 그는 남들이 말하는 '대박 행운의 사나이'다. 일생을 통틀어 딱 한번만 그랬다. 그는 5년전 로또에 당첨됐다. 그래도 그는 나름대로는 절제력이 있고 의지력이 있는 남자였다. 그는 남들처럼 돈을 함부로 흥청망청 사용하지 않았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돈을 낭비하는 대신, 사업을 벌였다. 그런데 부른은 로또에 당첨된 것을 제외하면 꽤나 불운했다. 딱 한번. 로또에 당첨됐을 때를 제외하고는 인생자체가 불운했다고 봐도 괜찮을 정도였다.
처음 사업은 과자 제조 사업이었다.
매우 유명하고 유서깊은 과자를 만드는 공장 하나를 인수해서 공장주가 되었다.
그런데 이게 웬 걸. 번듯한 공장의 공장주가 되어 -여기에 10억이 들어갔다- 이제 인생 좀 피겠구나 싶었는데, 그 공장에서 생산하는 과자에서 '쥐 머리'가 발견됐다. 기계가 워낙에 크고 어느 과정에서 쥐가 들어갔는지 그건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쥐 머리가 발견 됐다는 거고, 덕분에 그는 쫄딱 망했다. 공장주로서 책임을 져야만 했다.
하지만 김부른은 의지의 사나이였다. 결국 재기했다. 그는 나머지 돈에 약간의 대출을 얹어 유명한 빵집 체인점을 인수하게 되었고 그 장사가 제법 잘 됐다. 빚은 다 갚았고 슬슬 순익이 나기 시작할 무렵, 아들놈이 커다란 사고를 치는 바람에 권리금만 조금 받고 급하게 가게를 팔아 합의금으로 물어줬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도 두 번의 경험이 있다보니 다음은 좀 더 쉬웠다. 아들의 문제도 그럭저럭 해결이 되고 또 남은 돈으로 작은 까페를 하나 시작했다. 다시 받은 대출빚도 이제 거의 갚아갔고 가게를 확정하려 했는데, 하필이면 그 양 옆에 그 유명한 스타벅스와 싼 값으로 대표되는 엔젤리너스가 생겼다. 20대 중반 이상의 여자들은 스타벅스가 채갔고 -덧붙여 여자들과 함께 온 남자들마저- 10대와 20대초반의 손님들은 엔젤리너스가 다 빼앗아갔다. 그는 불운했다. 손님을 다 빼앗기고 계속 파리만 날렸다. 결국 그는 커피숍 운영을 접기에 이르렀다.
이번이야말로 진짜 마지막이다. 라는 마음가짐으로 이번엔 Bar사업을 시작했다. 역시 경험이란게 있어서 조금씩 그 사업은 덩치를 불리기 시작했다. 하도 말아먹은 경험이 많아 부른은 이 일에 성심을 다했고 열심을 다했다. 하늘은 그의 노력을 외면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했고 요즘은 살림이 꽤 넉넉해진 상태다.
그의 나이 54세. 그러나 그는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이 때. 그러니까 잘 나가게 될 때야말로 그는 조심해야한다는 걸 알았다. 또 언제 불운이 찾아들지 모른다. 비단 사업 얘기 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항상 불운을 겪어왔다. 그래서인지 이상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는데, 그 때가 바로 요즘이었다.
비도 안 오는데 무릎이 쑤시고 허리가 결리고.
'불운이 닥치고 있는 증거'였다. 그래서 요즘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오늘은 바에 젊은 사람들이 놀러왔다. 그 수가 꽤 많았다. 대략 10명 쯤. 대략적으로 나이는 20대 초반쯤 되어보였다.
' 이거 느낌이 영 이상하다. '
느낌이 좀 별로이긴한데 그렇다고 쫓아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스스로는 '감'이라고 굳게 믿고 있지만 그를 아는 다른 사람들은 그걸 '지나친 걱정'이라고 말하곤 했었다. 그는 지나친 걱정을 매사에 계속 하는 편이었다.
좋은일이 있기 전에도, 나쁜일이 있기 전에도 항상 그런식이다보니 그는 어떠한 사건이 일어나기 전엔 항상 걱정을 하는 축이었다. 즉, 불행 적중률이 100퍼센트라는 뜻이다. 50여년을 살아오면서 그건 그의 삶의 공식처럼 되어버렸다. 적중률 100퍼센트의 '불운이 닥쳐오는 느낌'을 믿었다.
' 이번에도 망하면... 끝이야. 난 망할 수 없어. '
오늘 찾아온 그 10명의 손님을 계속 주시했다. 그러다가 그는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다. 얼마전 새로들어온 아르바이트생인 우현에게 말했다.
" 우현아. 저 손님들 잘 봐. 뭔가 감이 안 좋으니까. "
" 예. "
김우현은 아르바이트 경력이 풍부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근 1년 가까이 했다. 이번에 시구텐에서 아르바이트 자리를 옮겼다. 그가 주장하기로 '사랑의 열병' 때문이었다나뭐라나. 이따금씩 찾아오는 어떤 손님들 때문에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단다. 어쨌든 그는 시급이 700원이나 높아진 이 곳, Bulleon Bar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으며 매사에 걱정이 지나친 부른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이 쌓인 상태였다.
그냥 예, 예. 대충 대답했다. 하루이틀 일이 아니니까. 저 놈의 사장은 뭐가 그리 걱정이 많은지 하다못해 빗자루를 들려고 해도 " 그거 부러지지 않게 조심해라 " 라든가 화장실을 가려고 해도 " 동파사고 안 일어났는지 확인해봐 " 라든가하는, 우현의 입장에선 하등 쓸데없는 걱정을 하도 많이 해서 우현은 그냥 대충대충 흘려 들었다.
잔소리를 많이 해대는 사장이 화장실에 갔고, 우현은 조금 편하게 쉬기로 했다. 그리고 참사가 일어났다.
* * *
윤석은 수희로부터 급한 연락을 받았다. 큰일이 났단다. 오빠가 꼭 와줘야겠다고 극성을 부리는 바람에 집에서 입고 있던 츄리닝과 후줄근한 티셔츠차림으로 양말도 신지 않고 운동화를 아무렇게나 구겨 신고서 달려왔다.
윤석이 차를 타고 지나가는데, 한 건물 앞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검은색 연기가 나고 있는 것을 제외하면 유달리 특별한 구석이 없는 건물. 그리고 주위엔 소방차 3대가 자리잡고 있었고, 소방관들이 호스를 정리하고 있었다. 앰블런스도 보였다. 괜스레 께름칙한 기분이 들었다. 심리상태가 불안하다보니 별 잡생각이 다 들었다. 저 앰뷸런스에 수희가 있는건 아닐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까지 들어 황급히 수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수희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 아씨... 이게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
발을 동동 구를 때, 전화를 받았다. 윤석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 야! 너 전화를 왜 이렇게 늦게 받아! 어? "
- 오빠...
수희가 말을 시작했고 윤석이 또 버럭 소리를 질렀다.
" 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어디라고? 아오. 너 빨리빨리 대답 못해? 엉? 뭐라고? 어디? 알았어. 금방 갈테니까 기다려! 아씨! 알았다고! 알았으니까 아오. 알았다고 몇 번 말해. 기다리고 있어! 금방 가니까!
시가가 거의 1억에 달하는, 상아색 벤츠가 속도를 높이고 도심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근처의 경찰서에 도착한 건, 수희와의 전화통화가 끝나고나서 10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윤석은 다짜고짜 경찰서 -수희는 경찰서라고 표현했지만 사실은 지구대- 의자에 앉아 있다가 윤석을 발견하고 벌떡 일어섰다.
윤석이 황급히 말했다. 죄인마냥 주눅들어 있는 수희의 팔목을 잡고 일으켰다.
" 너 왜 여기 이러고 있어? "
" 그게... "
윤석은 인상을 찡그리고 주위를 한 번 둘러봤다. 수희의 친구라고 짐작되는 열댓명의 남녀가 보였다.
" 아씨. 너 안 다쳤어? "
보기엔 멀쩡해 보이는데 그래도 일단 물어봤다. 아까 앰뷸런스를 봤기 때문일런지도 모르겠다.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만약 심하게 다쳤다면 이 곳이 아니라 병원에 있을거란 게 당연했지만 윤석은 거기까지 생각하지는 못한 듯 했다. 그냥 마음이 급했다.
" 아니, 그게 난 괜찮은데... "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 그래서. 불을 냈다고? 마술 하다가? "
윤석은 어이가 없어 허- 웃고 말았다. 이야기를 요약해보자면 불장난을 하다가 바에 불을 냈다는 거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고등학교 동창인 남자애 하나가 수희에게 고백을 한답시고 몇가지 마술을 준비했는데 거기서 실수가 나 가게를 불태웠다나. 다행히 불이 크게 난 것도 아니고 금방 잡힌데다 인명피해도 없었고, 고의도 없었다. 그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 나참... 어린애들도 아니고. 불장난을 하다가 불을 내? '
수희에게 고백을 한답시고 마술을 준비했단다. 윤석은 화를 내야할 지 말아야할지 순간 고민했다. 심리적 효과가 많이 적용 됐다. 방금까지 수희가 어떻게 된 건 아닐까, 다친 건 아닐까하는 막연한 불안감을 가진 상태였다. 그것을 수치로 예를 들어 '-100'이라 했을 때, 수희에게 누군가 고백을 하다가 실수로 불을 낸 건 '-10'이다. '0'의 상황에서 '-10'을 맞닥뜨리면 충분히 절망적이지만, '-100'인 상태에서 '-10'을 맞닥뜨리면 별 거 아니다. 수희가 일부러 의도한 건 아니지만, 덕분에 윤석은 화를 별로 내지 않았다.
한쪽 구석엔 50대 쯤 되어보이는 남자가 의자에 앉아 머리를 감싸쥐고 앉아 있었다.
" 이젠... 모든 게 다 끝이야... 끝이야... "
잘은 들리지 않았지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윤석이 작게 물었다.
" 야. 저 아저씬 누구야? "
" ... 가게 사장님... 일걸? "
남자가 벌떡 일어섰다.
" 다 끝이라고!! "
충격을 많이 받은 듯, 그는 실성한 사람처럼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랬다가 다시 앉아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난 불운해... 이건 말도 안 돼...라면서 또다시 중얼대기 시작했다. 정신적 충격을 어지간히도 많이 받은 모양이었다.
남자의 모양새를 보니, 이 상황을 쉽사리 타개할 방법이 보였다. 그리고 하나 둘, 하나 둘, 부모님들이 오시기 시작했다. 수희의 나이 22살. 당연히 그 친구들의 나이도 22살. 22살은 비록 수치상으로는 성인이지만 엄밀한 의미의 성인은 아닌듯 했다. 스스로를 혼자 책임지지 못할 나이. 누군가를 책임져 주기보다는, '책임져줌'을 당할 나이. 그럴 수 밖에 없다. 일단은 경제력이 없으니까.
부모님들이 오시고, 갑론을박 싸움이 벌어졌다. 정작 피해자는 한쪽 구석에서 머리끄덩이를 부여잡고 불운해... 불운해...를 중얼거리고 있는데, 가해자들끼리 패가 나뉘었다.
" 그러니까. 저희 애는 잘못이 없죠. 옆에서 그냥 구경하고 있던 거니까요. "
" 그렇죠. 이건 당사자인 둘이서 해결해야 할 것 같은데요. "
" 맞습니다. 저희는 잘못이 없죠. 당사자끼리 해결을 봐야죠. "
대부분이 이런 의견이었다. 이들이 말하는 '당사자'란 바로 수희에게 고백을 하려던 신상운과 그 고백을 받아들이게 된 김수희로 좁혀졌다.
일단 우리는 잘못이 없다, 라는게 그들의 입장이었다. 윤석도 이해는 했다. 그들 자식에게 피해가 가는걸 원치 않을테니까. 의리고 뭐고, 일단 이런 일에선 발 빼고 보는게 나았다.
" 엄마! 그런 거 아니라고! "
학생들이 잠깐잠깐 반발하려고는 했으나, 그 반발은 이내 묻혀버렸다. 부모들끼리 갑론을박 싸움이 벌어졌고, 얼떨결에 그 싸움의 중심이 되어버린 수희와 상운은 얼굴이 새파래졌다.
지금은 합의라도 필요한 상황이란다. 방화는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피해를 냈다. 이 곳에 모인 사람들은 이런 큰 일은 별로 당해보지 않은, 그냥 그런 소시민들이다. 이들에게 악감정은 없었다. 자기에게, 그리고 자기 자식들에게 피해가 오는걸 두려워하는 지극히 평범한 부모들이었다.
추리닝차림의, 급하게 나오느라 양말조차 신지 않아 운동화 위로 발목이 보이고 머리조차 산발상태인 김윤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수희의 어깨를 몇 번 두드리고는 일어섰다.
머리로는 이들을 이해하지만.
" 아 듣자 듣자하니까. "
그렇다고 가슴속에서 꿈틀거리는 무언가까지 느껴지지 않는 건 아니었다. 심장근처에 가려움을 일으키는 조그만 벌레가 살아서 가슴팍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곳에 모인 보호자들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윤석에게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그가 시건방지게 말했다.
" 너무들 하시는 거 아닙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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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환 완료. 뿅.
아 이렇게 쉬워지면 곤란한데...
비축분을 아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