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플레이어-82화 (82/244)

00082  10억이 갑자기 아까워졌다.  =========================================================================

* * *

NPC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 놀랐어? "

팔을 들어올려 윤석의 목을 껴안고서 일어나 윤석의 볼에 입을 맞추고 말했다.

"누가 말해줬어. 오빠한테 윤석오빠라고 그러면 좋아할 거라고. 그런데 윤석은 무슨 뜻이야? 뭐 다른 이름이라던가 그런거야?"

뭐야... 놀랐잖아. 하고 윤석은 피식 웃었다. '윤석'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 어. 사장님. 전 아닌데요. "

일단 박부장은 부정했다. 딱히 고용한 적이 없단다. 그럼 민혁이 놈인가, 하고 봤더니 민혁도 아니었다. 애초에 그는 요즘 워낙 바빠서 게임 내에서 수작을 부릴 수 있는 여유도 없었다.

' 그럼 도대체 누구지? '

아무래도 접대형식의 무언가 같다는 느낌은 있다. 그런데 접대를 하는데 정체를 숨길 필요가 없다. 애초에 접대라는 것이 무언가 이유를 가지고서 접근해서 상대가 원하는 것을 대접해주는 게 아니었던가. 도대체 모르겠다.

' 그도 아니면 유토피아 측에서 준비한 꼼수인가? '

그런데 따지고보면 유토피아에서 딱히 꼼수를 부릴 필요도 없다.

' 아니... 뭐 나중에 나를 어래고 달래기에 좋은 경우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그런 건가? '

사실 요즘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 바로 유저와 NPC간의 '사랑'문제였다. 일단 육체적인 사랑. 그러니까 Sex의 경우부터 사람들의 의견이 갈렸다. 야동을 보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하는 사람, 진짜 사람이랑 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육체적인 사랑의 경우에는 그랬다. 그래도 이건 속 편했다. 그래도 간단하게 입장이 갈리니까. 그런데 이게 정신적인 사랑까지 파고들어가면 복잡해진다. NPC는 일단 프로그램이다. 그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과 사랑에 빠졌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나오기 시작했다. 게임 내에서도 얼마든지 결혼을 할 수 있다. 게임 내에서 결혼을 하고서, 그 곳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경우가 많아졌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어떤 사람들은 거기에 전혀 동조해주지 못했다.

- 어차피 프로그램은 프로그램일 뿐.

- 프로그램과 사랑에 빠진다는 건 어불성설.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필요가 있어.

- 그들은 단지 정신병자일 뿐.

그러나 또 어떤 사람들은 말했다.

- NPC 역시 하나의 인격을 가진 독립된 개체. 정신적 필요를 채워줄 수 있으면, 적어도 당사자가 행복해진다면 그걸로 된 것 아닐까.

- 애완동물과 사랑에 빠졌다는 사람도 있는 판국에, NPC와의 사랑이면 어때?

- 당사자가 행복하다면 제3자는 그것에 왈가왈부 할 필요가 없어.

전자의 경우. 그러니까 NPC와의 사랑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축이 70~80이라면 그 반대의견이 20~30쯤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NPC와 사랑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라고 보는 사람들이 조금씩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는 것.

분명 사람들은 NPC따위와 사랑에 빠질 수는 없다. 라는 기본 마음가짐으로 가볍게. 그냥 놀이하듯 NPC와 연애를 시작하다가 결국 거기에 빠져버리는 사람이 점점 많아졌다. 유토피아는 또 하나의 세계. 그러니까 또 하나의 현실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현실이 중요하냐, 유토피아가 중요하냐 물었을 때 쉽사리 대답하지 못할 만큼. 그만큼 유토피아는, 유저들에게 새로운 세상이었다.

' 그니까 유토피아에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서... 날 꼬시도록 프로그래밍한 NPC라면 뭐... '

일단은 이게 가장 타당한 듯 했다. 그나마 가장 타당하다는 소리다. 이것 역시 가능성이 희박하긴 했다.

' 뭐... 손해나는 것도 없고. '

어느덧 생리대를 정리하는 것에 익숙해진 윤석은 팬티를 벗어 생리대를 돌돌 말았다. 이미 수희에게 들키기는 했다만 그래도 그는 여전히 집에다가 버리는 건 좀 찝찝했다. 항상 공용화장실에 가져다가 버렸다.

문이 벌컥 열렸다. 깜짝 놀란 윤석은 손에 들고 있던, 돌돌 말린 생리대를 툭 떨어뜨렸다. 수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 나 급한데 없잖아! 어떡할거야! 빨리 나가서 사와! "

몸을 배배 꼬았다.

" 아 진짜! 내꺼 쓸라면 채워 넣든가! 그것도 아니면서 진짜! 빨랑 사와! 나 진짜 급해! "

그리고서 그녀는 화장실로 엉거주춤한 자세로 뛰어갔다. 화장실안에서, 웅웅 울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희의 그 목소리에 등 떠밀린 윤석은 츄리닝바람으로 머리를 벅벅 긁으며 밖으로 나왔다.

" 아씨.. 저게 뭐 그렇게 급한건가...? "

여자들의 그런 내용을 잘 모르는 윤석은, 아 그냥 급한 건가보다 하고 걸었다. 이왕에 사는 거 합법적으로.

' 수희 사준답시고 왕창 사다 놓으면 되겠네. '

합법적인 대량구매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한편, 수희는 화장실 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 내밀어 주위를 한 번 살펴봤다.

주먹을 불끈 쥐고 위에서 아래로 파이팅하듯 내렸다.

" 오예. 돈 굳었다. "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뭘 알기는 알아야 제대로 대처를 하시겠지. 하여튼 저토록 무신경해서야. "

그녀는 화장실에서 나왔다. 사실 여동생의 주기를 아는 오빠가 세상에 얼마나 있겠냐, 하는 생각이 들긴 들었는데 그건 지금의 행복감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몇 천원이 굳어서 행복해졌다. 그런데 몇 천원이 아니었다. 나중에 윤석이 들어오고나서 수희는 입을 쩍 벌렸다. 허탈한 웃음을 짓고서 넋 나간 듯 중얼거렸다.

" 그, 그래도 박스 통째로 주문할 필요는 없잖아... 세상에... 이게 몇 박스야... "

* * *

정수기 앞에서 컵을 들고 있는 수희에게,  윤석이 물었다.

" 야. 수희야. "

" 왜? "

" 너 야동 보냐? "

수희는 물을 벌컥벌컥 마시다가 푸악-! 뿜어버렸다. 나, 난 그딴 거 안 보거든! 하고 다시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 아 진짜 더럽게. 네가 다 닦아. "

" 닦을거야! 오빠가 갑자기 이상한 소리해서 그렇잖아. "

" 요즘 장난 아니잖아. 남자는 물론이고 여자애들도 유토피아에서 이런 저런 짓 다 한다고 신문에서도 문제라고 그러고. "

수희는 흥, 코웃음쳤다.

" 난 유토피아에선 그런 짓 절대 절대 안 해! "

윤석은 기분이 조금 나빠졌다.

" 유토피아에서 안하면 다른 데선? "

기분이 조금 안좋아졌고, 안색은 몹시 안 좋아졌다. 윤석의 목소리가 조금 굳었다.

" 너 왜 말 못하냐? "

" 누, 누가 말을 못했대? 오빠가 말을 워낙 빨리해서 그런거지. "

확실히 그건 그랬다. '유토피아에서 안하면 다른 데선? ' 하고 묻는 말과 ' 너 왜 말 못하냐? ' 라고 추궁하는 그 두 말 사이에는 텀이 없었다. 즉, 연속해서 말을 이었다는 뜻이다. 윤석은 그 짧은 순간조차도 기다려주지 않았다.

" 나, 난 결백해. 그런 이상한 눈으로 보지마. 어떻게 말을 하다보니 이상하게 된 거 뿐이야. "

" 너 허튼 생각하면 죽는다. "

" 이씨 허튼 생각이 도대체 뭔데? "

수희는 별로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서 방으로 돌아가버렸다.

" 너. 어디가! "

" 친구 만나러 가야 돼! "

얼마 후, 화장을 옅게 한 수희가 걸어나왔다가 이내 움찔 놀랐다.

" 왜 여기서 그러고 있어? "

윤석이 방문 앞에서 팔짱을 낀 채 서있었기 때문이다.

" 적당히 놀고 일찍일찍 들어와라. "

" 아씨. 아빠 없으니까 안그러던 오빠까지 그러기야? 나 22살 성인이라고. "

그 말에 윤석은 " 아, 맞다. 성인이지 " 하고 수희의 입장에선 다분히 어이없는 말을 해버렸고 수희는 또다시 억울해 했다. 이 놈의 집안은 여자한테만 너무 엄격한 기준을 적용시킨다 불만을 품었다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말했다.

" 나 갔다올게. 늦을거 같으면 연락할게. "

수희는 몇 개 없는 구두 중에서 하나를 골라 신었다. 갈색이고 샌들 형식의 통굽구두다. 문을 닫고 나와서 수희는 인상을 찡그렸다.

" 자기는 맨날 내 생리대 훔쳐쓰는 변태주제에, 꼭 나한테는 잔소리한단 말이야. "

그녀도 알 건 다 안다. 오빠가 왜 생리대를 훔쳐다 쓰는지도 안다. 알면서 그냥 그러려니 모른척해줄 뿐이다. 그런거 할라면 좀 티 안나게 하든가... 하여튼 진짜 센스 없기는. 오빠치고 완전 구려. 자상하고 친절하고 센스넘치는 오빠는 역시 영화속에만 있는 걸까. 그녀는 볼멘소리를 내고서 걸음을 옮겼다.

간만에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그 중, 최근까지도 수희와 연락을 하던 친구인 수정이 말했다.

" 얘들아. 이 기집애 오빠 자랑 못하게 해. 입만 열면 오빠자랑하니까 아예 입을 확 틀어막아버렷! 맨날 욕하는 척 하면서 자랑 엄청 한다고. "

* * *

밤 9시. 윤석은 캡슐에서 빠져나왔다. 합법적으로 대량구매한 그 물건을 돌돌 말았다. 어차피 들킨 거. 그냥 이제 화장실에 갖다 버리기로 했다.

" 아... 온 몸이 찌뿌둥...하네. "

몸이 뻐근했다. 윤석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 청소년기에 자위행위를 너무 많이하면 키가 안 큰다. 키가 크게 해줄 영양소가 다 빠져나가버리기 때문이다.' 그 말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충분하든 불충분하든, 어쨌거나 하루에 두번씩이나 자위행위를 하면 아무래도 피곤하기 마련이다.

크으- 기지개를 펴면서 하품을 하고,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꼬박꼬박 주랑과 전화통화를 하는 윤석이다. 주랑은 며칠간은 정말 바쁠 것 같으니 만나는 건 며칠만 참자고 말했었고 덕분에 지난 3일간 윤석은 주랑을 보지 못했다. 덕분에 시간이 날때마다 전화만 했다.

주랑의 달콤한 목소리가 듣고 싶어져 통화버튼을 누르려는데, 전화가 왔다. 아이씨 이게 꼭 전화를 해도 이런 타이밍에. 투덜대면서도 전화를 받았다. 수희였다.

- 오빠... 큰일 났어... 나 좀 도와주라. 응?

갑자기 무슨일인가 싶어 윤석이 물었다.

" 무슨 일인데? "

- 그게... 나... 경찰서...인데.

" 뭐? "

- 쉿! 쉿! 엄마한테 들키면 나 죽어! 제발 오빠. 그냥 나 한번 살려주는 셈 치고 한번만 도와줘. 보호자 오래. 빨리와줘. 오늘 와주면 나 진짜 오빠한테 엄청 잘할게. 딱 한번만 도와주세요. 응?

그 때, 이미 윤석은 현관문을 열고 나서는 중이었다. 윤석이 계단을 뛰어내려가면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 아이씨. 너 또 무슨 사고를 친 거야! "

============================ 작품 후기 ============================

미션

썩쎄스

아 윌비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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