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플레이어-80화 (80/244)

00080  윤석아. 나 좀 안아줄래?  =========================================================================

* * *

설아는 샤무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라 쓰고 '욕'이라고 읽어도 될 만한 그런 이야기였다. 조수석에 앉은 그녀는 미주알 고주알 샤무와 연관된 사연들을 털어놓는데,

" 하여튼 질이 안 좋은 애들이야. 걔네한테 죽은 마도사가 몇인데? 일대일로 안 되니까 다굴친다니까? "

사실 마법사들 PK야 대부분 컨트롤에 의해 그 결과가 좌우된다. 레벨 높낮이보다도 가장 우선시 되는 게 바로 컨트롤이다.

그 이유는 바로 법사들의 '극악한 몸빵'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쉽게 설명하자면 선빵을 누가 먼저 치느냐에 따라, PK의 결과가 달라진다. 좀 더 정확하게 설명하자면 서로 거리를 어떻게 재느냐. 어떤 마법을 어떤 각도에서 어떤 타이밍에 사용하느냐에 따라 PK의 결과가 갈린다.

기본적으로 법사들은 대부분 공격력이 강한 편이다. 화염계와 뇌전계가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데미지를 자랑하긴 하지만, 일단 법사들은 기본적으로 강한 '한방 데미지'를 추구하는 클래스다. (기본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다. 수계법사나 목계법사는 공격력보다도 그 외에 다른 것에 치중한 경우도 많았다.)

어쨌든 기본적으로 데미지가 평균 이상은 나온다는 뜻이고, 그 공격력으로 누가 더 빨리 누가 더 정확한 리치(사정거리)에서 컨트롤을 잘해 상대를 제압하느냐, 가 바로 마법사들간의 PK였다.

" 그니까 너넨 컨트롤 실력이 딸린다고? "

설아는 발끈했다.

" 누가 그래! 절대 그런 게 아니라고! "

" 어쨌든 법사 싸움은 컨트롤에서 갈리잖아. 누가 더 1cm라도 더 정확하게 리치를 계산하느냐, 어떤 타이밍에 어떤 마법갈기느냐. 쿨타임이 어떤 마법을 사용하느냐. 몇 수 앞 보고 싸우는 애들. 걔네들은 레벨차로도 어떻게 못이긴다던데. "

" 내가 그래서 법사 시작한거야. 난 컨트롤 잘할 자신 있었으니까. 하여튼 샤무한테 마도사들이 죽어나가는 건 절대로 컨트롤 때문이 아니란 말씀! "

아아. 그러냐. 그러시겠지. 넌 절대로 컨트롤에 밀리는게 아니겠지. 윤석은 전혀 동의하지 않는듯한 태도로 대충대충 동의했다. 설아도 말은 저렇게해도 인정은 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윤석은 피식 웃고서 핸들을 조작했다. 설아가 느끼기엔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그 모습에 설아는 결국 또다시 발끈해서 절대로 컨트롤 때문이 아냐. 샤무 걔네 진짜 웃긴 애들이란 말이야. PK전용 길드인데 걔네 와 진짜 대박인거 있지. 그니까 뭐가 대박이냐면 와 대박 진짜.

" 원래 고등학생쯤 되는 애들은 말 하다 말고 대박이란 말을 그렇게 많이 쓰냐? "

" 아니 오빠. 지금 내 말투가 중요한 게 아냐. 진짜 걔네 대박인게 대마법사 전용팀, 대전사 전용팀, 대무캐전용팀이 막 따로 나뉘어져 있다니까? 걔네 진짜 대박 웃긴애들이야. "

" PK 전용 길드라고? "

" 응. 걔네 죄다 카오야. PK 해서 애들 아이템 떨구는거 뺐는 놈들. 하여튼 진짜 저질이란 말이지. 근데 수희 언니가 샤무라고? 그 착했던 언니가? 그 언니가 어떻게 그런 악의 구렁텅이에 빠져든 거야? "

설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휙휙 저었다.

" 네가 아는 수희는 10년전의 수희고. "

" 그 말은 즉 10년전에는 착했으나 지금은 안 착하다는 거? "

" 좋을대로 생각해라. 다 왔으니까 내려. "

설아는 이 차가 좋다면서 뚜껑 한 번 열어달라고 졸라댔다.

" 소프트탑이라 불편해. 다음에 보여줄테니까 그냥 내려. "

그래도 내리려는 낌새가 보이지 않아 윤석은 차에서 내려 보조석의 도어를 열고 설아를 끌어내렸다.

" 간다. "

" 내 미인계가 별로 통하지 않다니. 강적이야 오빠 역시. "

퍽이나. 너한테 미인계같은 게 있겠다. 하고 피식 웃었다가 이내 게임 내에서 들었던 야릇한 신음소리가 떠올라 괜스레 얼굴을 붉히고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뒤도 안돌아보고 출발해버렸다.

멀어져가는 벤츠를 보면서 설아는,

" 뽕을 좀 집어넣어야 하나? 어떻게 반응이 없지? "

머리를 긁적거렸다. 가슴을 한 번 만져봤다. 몰캉거리는 느낌이 났다.

" 이 체구에 이 크기면 괜찮은 거 아냐? "

걸어가면서 돌맹이를 힘껏 찼다.

" 에이씨! 내가 아직도 9살 꼬맹이로 보이나 몰라. "

가슴을 만져봤다. 물컹거렸다.

" 이렇게 컸는데 에씨. "

* * *

<김윤석>

ㅇㄷ? 오후 8:21

<동생년>

나 학교 도서관이얌. 왱왱? ㅇ_ㅇ 오후 8:21

<김윤석>

공부 중? 오후 8:22

<동생년>

이제 거이 끝나써여. 왱왱? 나 데릴러 오꺼야? >_<♡ 오후 8:22

< 김윤석>

ㄴㄴ 오후 8:23

< 동생년>

ㅡㅡ 아놔. 그럼 왜! 오후 8:23

< 김윤석 >

걍 오후 8:23

< 동생년 >

그르지 말구 데리러와 ㅠ_ㅠ 요즘 세상이 얼마나 뒤숭숭한데! 아리따운 동생 잡혀가면 어뜩해 ㅠㅇㅠㅠㅠㅠ오후8:24

< 김윤석 >

아싸  오후 8:24

< 동생년 >

저리가 ㅡㅡㅗ 오후 8:25

< 김윤석 >

가는 중인데 걍 집 간다? 오후 8:25

< 동생년 >

아잉. 오빠 쵝오 ♡ 님 짱 언눙와!!! 오후 8:26

< 김윤석 >

이미 집 가는중 ㅂㅂ 오후 8:27

< 동생년 >

아 오빠! 내가 오빠 하늘만큼 땅만큼 우주무지개반사만큼 사랑하는 거 알지? 그니까 얼른 ㅠㅠ 나 구두신어서 다리 완전 아파. 허리 발목 어깨 무릎 다 쑤신단 말이양 ㅠ_ㅠ 오후 8:28

< 김윤석 >

ㅂㅂ 오후 8:27

원래부터 홍대로 가려던 윤석은, 그냥 그대로 홍대로 향했다.

* * *

윤석은 홍대 후문가에 차를 세워놓고 비상등을 켰다.

" 아오 이게 진짜 그러면 그렇지. "

미리 나오라고 전화를 했었는데 역시나가 역시나였다. 5분가량 기다렸을 때, 조수석의 문이 열렸고 수희가 낼름 탔다.

" 아. 오늘 구두 신었다가 죽을 뻔 했어. 다리 부러지는 줄 알았네. "

" 궁댕이도 무거운게 주제에 안맞는 거 신으니까 그렇지. 네 발목이 불쌍하지도 않냐? 발목 학대하지마. 박애주의도 몰라? "

" 아 오빠. 나 지금 완전 피곤해. 얼른 운전이나 하시게. "

유달리 특별한 대화 없이 10분 쯤 이동했을 때에, 윤석이 물었다.

" 야. 샤무는 어떤 길드냐? "

" 응? 샤무? 음... 글쎄... 뭐부터 설명해야 하지...? "

고개를 갸웃하던 수희는 음....하고 조금 뜸을 들이다가 이내 말을 시작했다.

샤무는 윈텔(설아)의 말대로 PK를 위주로하는 특이한 길드였다. 마법사가 주를 이루고 있고, 그 중에서도 특별히 컨트롤이 좋아 대인전에 능한 유저들이 그 곳에 속하게 된다. 예전 와이투리스의 계곡에서, 수희는 한 유저를 단 한방에 죽여버린 적이 있다. 그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대인전에 특화된 마법사 길드. 그게 바로 샤무였고.

" 아. 내가 말 안했나? 마탑애들을 죽여야 되거든. 그게 우리 길드 퀘스트야. "

" 마탑? "

" 응. 그래서 PK 잘하는... 그니까 컨트롤 좋은 사람만 뽑는거야. 마법사들 싸움은 컨트롤로 정해지니까. "

" 그거 클리어하면 뭐가 좋은데? "

" 확실한 건 아닌데, 그거 성공하면 13마탑이 될 수도 있다나봐. "

수희는 별로 숨기는 기색 없이 술술 말해줬다. 그리고선 말했다.

" 아 맞다. 오빠 내가 말해준거 어디가서 말하면 안 된다? 길장이 특급비밀이라고 그랬단 말이야. 알겠지? "

" 그럼 나한테도 말하지 말던가. "

수희는 오리처럼 입술을 쭉 내밀었다.

" 우씨. 오빠가 그럼 물어보질 말던가. "

" 말 안해주면 되잖아. "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던 수희가 한참이나 지나고나서야 퉁명스레 말했다.

" 하여튼 오빠가 나빠. "

그 푸념 비슷한 말에는 마치, 오빠가 물어보는데 어떻게 대답을 안하냐? 하고 반즘은 따지는 듯한 느낌이 서려 있었다.

* * *

윤석은 유토피아에 접속했다. 충. 성! 하는 그 소리와 자못 살벌한 기세에도 어느새 익숙해진 건지 이젠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아예 마음속으로 준비를 하고 들어온다.

박부장. 그러니까 '훌팬'에게 연락이 왔다.

- 사장님. 잠깐 뵈어어할 것 같습니다. 말씀하셨던 계약 전환문제와 더불어 직접 뵙고 말씀드릴 게 좀 있어서요.

윤석이 씨익 웃었다. 물론 코드의 현금화가 쉽지만은 않다. 안 그래도 한달에 1조 5천억이라는 어마어마한 코드가 쌓인다.

' 하지만... 단순히 현금화의 문제가 아냐. '

이 곳은 또다른 세계다. 현실과는 다르게. 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단순히 현금화의 문제를 떠나서 코드만으로도 할 수 있는 게 많다.

' 이제 그게 더 늘어나겠어. '

모르긴 몰라도 다수정예회에서 꽤 큰 출혈을 감수했을 거다. 무조건 그래야만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박부장에겐 조금 미안한 일이지만 그에겐 다수정예회보다 자신의 이득이 더 중요했다.

그런데.

윤석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으흐으- 하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서는 느낌인데, 오싹한 것과는 또 달랐다. 무언가 보드랍고 달콤하고 폭신한 무언가가 귓가를 문지르는 것 같았다. 무슨 냄새인지는 모르겠는데, 달콤한 향이 났다. 굳이 비유하자면 아카시아 꿀 향기 같았다.

척!

스나가 권총을 들어올렸다.

" 넌 누구냐? "

방금, 윤석의 귓가에 바람을 불어넣었던 여자가 말했다.

" 당신... 나랑 잘래요? "

새하얀 미니스커트에 옅은 푸른색 하이힐을 신었다. 거기에 언밸런스하게도 캐쥬얼 풍이 물씬 풍기는 남색 꽈배기 스웨터를 매치했는데 그녀가 입으니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조금 넉넉한 느낌의 스웨터는 넥(목)이 둥글고 넓게 패여 있어서 그녀의 가슴골이 아주 살짝 보일락 말락 아슬아슬한 느낌을 풍겼고 그 위에 누군가 조각한 듯한 쇄골이 보였다. 살결은 유명한 화가가 정성스레 채색한 듯 뽀얗고 잡티 하나 없이 깨끗했다.

윤석이 여자를 한 번 쳐다봤다.

' NP...C? '

침을 꿀꺽 삼켰다. 저절로 눈이 가고 심장이 두근거릴 만큼, 그녀는 매혹적이었다. 차라리 뇌쇄적이라고 해는 게 좋을 만큼 이상한 매력을 가진 여자였다. 단순히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치부하기엔 너무나 매혹적이어서 윤석은 순간 여자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말았다.

그녀는 스나의 총이 별로 무섭지 않은 듯 윤석에게 더 가까이 달라붙어, 끈적한 목소리로 말했다.

" 오늘 밤... 당신의 그거... 여기에 박아줘. "

윤석의 손을 슬그머니 잡아 미니스커트 한 가운데에댔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NPC를 쳐다보는데, 그 NPC가 다시 말했다. 뜨거운 숨이 포함된 듯한, 끈적거리는 목소리였다.

"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나 달아올라서 여기가 다 찐득하게 젖어버렸으니까... 책임져요. "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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