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79 윤석아. 나 좀 안아줄래? =========================================================================
* * *
집에 돌아온 윤석은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 어이. 아리땁다고 주장할 것이 틀림없는 여동생 김수희양. "
수희는 미동도하지 않았다. 이유는 별 거 없었다. 심장마비라거나 대단히 위험한 상태에 이르러서 그런건 결코 아니었다. 단순했다. 잠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베개의 적절한 사용용도따윈 무시하기로 작정했는데 두 가랑이 사이에 베개를 끼워놓고 옆으로 누워 잘도 자고 있었다.
수희가 베개의 사용용도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 처럼, 윤석도 수희의 숙면정도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귀를 잡아당겼다.
" 야. 일어나. "
낚시바늘이 입에 걸린 붕어마냥, 귀를 붙잡혀 딸려 올라온 김수희는 으악! 비명을 질렀다.
" 오빠! 잠자는 공주를 이렇게 막무가내로 다루는 몰상식한 인간이 어디있어? "
" 문제는 네가 공주가 아니라는 거지. "
" 쳇. 그렇게 정곡을 찌를 필요는 없잖아. "
그리고 정말 중요한 건 여기가 네 침대가 아니라는 거야. 윤석은 또다시 정곡을 찔렀다. 베개를 다리에 끼고자든 얼굴을 박고서 침을 질질 흘리든 알 바는 아닌데, 그게 자신의 침대라면 아무래도 문제가 좀 된다. 윤석이 인상을 찡그리고서 말했다.
" 그래서. 왜 남의 침대에서 자고 있었는지 이유를 좀 말해보시지. "
" 그야 오빠가 너무 늦게 왔으니까. 기다리다가 잠들어서... "
윤석은 인상을 한껏 찡그렸다. 수희가 입고있는, 낡다 못해 어깨부근이 축 늘어져버린 누런색 티셔츠를 붙잡고 정돈해줬다.
" 브레이지어 끈 다 보이잖아.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새는거. 너 아부지 없다고 요즘 막나간다? "
" 우리집은 여자한테만 너무 엄격해. 그러는 자기는 맨날 팬티바람으로 돌아다니면서. 몸도 안 좋은게. 가슴빵빵 식스팩이면 또 보는 맛이라도 있지. "
" 오빠한테 말버릇 봐라. "
윤석은 인상을 찡그리고서 넥타이를 풀어 침대에 아무렇게나 던져놨다. 양말도 대충 벗어 아무렇게나 두고 옷도 대충대충 벗었다.
" 아. 좀. 정리 좀 해! "
" 내 방이야. 신경 꺼. "
" 아씨. "
수희는 신경질적으로 침대에서 내려와 넥타이를 장농안에 걸어놓고 양말을 딱 두손가락만 사용해서 집고는 빨래통 안에 던져넣었다. 뭘 굳이 남의 방 청결에 그렇게 신경을쓰냐, 윤석은 타박을 놓긴 놓으면서도 수희의 행동을 말리지는 않았다. 대충 츄리닝으로 갈아입은 뒤 침대에 앉았다.
" 뭔 말 하려고 기다렸는데? "
" 나 그 언니 봤다? "
" 누구? "
" 그 왜. 오빠 첫사랑. "
" 어디서? "
" 우리 학교,. "
" 홍대? "
" 응. 내가 몰래 캐봤는데 몸이 아파서 몇 년 쉬었다나봐. "
" 그래서? 그거 말해줄라고 여태까지 기다린거냐? "
" 근데 좀 이상했어. 목발짚고 있더라. 다쳤나봐? "
" 그런가보지. "
수희는 눈을 가늘게 뜨고서 윤석을 쳐다봤다. 흐음... 하고 고양이가 자신의 턱을 긁듯 검지손가락으로 목덜미를 살살 긁으면서 의미심장한 눈초리로 윤석을 계속 쳐다봤다.
" 별로 아무렇지도 않아하네? "
" 그럼 내가 누구처럼 10년전 일로 아직도 막 설레고 그럴까봐? "
" 그 누구가 누구야? "
수희는 신경질적으로 걸어와 윤석의 옆에 앉았다. 마침 집에 아빠도 없겠다. 마음껏 대들었다. 윤석의 팔뚝을 잡고서 걸레쥐어짜듯 짰다. 그래봤자 힘이 센 편은 아니어서 하나도 아프진 않았다.
" 그 왜 땅꼬마 시절 10년전에 사귀었답시고 아직까지도 말도 제대로 못하는 바보들이 내 주변에 있거든. 하나는 나보다 6살 어리고 하나는 내 친구놈이고. 너도 알지? 민혁이라고. "
" 그.니.까. 그 6살 어린게 누구냐고! "
" 물론 너는 아니야. "
" 그렇지? 물론 나는 아닐거야. "
음.음. 그렇고 말고. 수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윤석이 피식 웃었다.
" 그게 끝이냐 너? 그런 시덥잖은 얘기하려고 기다렸어? "
" 주랑언니 때문에 그렇지! "
" 주랑이가 왜? "
" 내 오빤 너무 둔해서 울 착한 주랑언니 완전 가슴아프게 할 스타일이니까. "
" 나는 네 오빠고 주랑인 우리 언니냐? 뭐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아? "
"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냐 오빠. 하여튼 첫사랑인지 뭔지 오빤 별로 감흥 없는 거 같으니까 주랑언니한테는 말하지마. "
윤석이 벌러덩 드러누웠다. 하지말라고는 해도, 이미 해버렸다. 주랑은 주랑 나름대로 신경써줘서 한 번 만나보라고 했다.
" 이미 했는데? "
수희가 인상을 찡그렸다.
" 너란 오빤 진짜 어휴. 오빠의 한심은 하늘을 찌른다 찔러. 대박이야 진심. "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가 주랑이 언니 맛있는 거 사주면서 위로해줘야지. 하고 일어섰다. 아무래도 수희의 기분이 언짢은 듯 하여 윤석이 지나가는 듯한 말로 말했다.
" 야. 너 거품욕조에서 목욕하고 싶냐? "
신경질적으로 걸어가던 수희의 몸이 움찔했다.
" 누, 누가 그런거에 넘어갈 줄 알고? "
" 아니. 넘어가고 말고. 그런 문제가 아니라. 이건 별개 문제로 이사 가고 싶지 않냐고? 훨씬 넓고 좋은 집으로. "
수희는 흐, 흥! 코웃음 치고 걸어가버렸다. 문을 닫고 나갔다. 윤석이 피식 웃었다. 정확히 3초가 지난뒤 문이 살짝 열렸고 수희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 거, 거품 욕조는 찬성일세. "
그리고 다시 문을 닫았다. 반항하기 위함인지 문 닫는 소리가 조금 더 컸다. 윤석이 피식 웃었다.
" 넘어갔네. "
* * *
윈텔은 마도사의 자리를 박탈당하지는 않았다. 길드 퀘스트를 수행하다가 죽으면 마도사의 자격이 박탈되지만, 단순히 퀘스트를 실패한 것 만으로는 그렇지는 않은 듯 했다. 퀘스트 보상을 받지 못하고, 등급이 올라가지 못하는 불이익이 생기기는 하지만 그건 나중에 얼마든지 만회할 수 있단다.
윤석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 그래. 축하해. "
그 무성의한 태도에 설아는 조금 불만인듯 윤석을 흘겨보다가 이내 물었다.
" 울 언니 안 만나볼거야? 접때는 한 번 볼거라며. "
" 마음이 바뀌었어. "
" 변덕쟁이네. "
" 그냥. 뭐. 나중에 기회 되면 저절로 보게 되겠지. "
" 칫. 첫사랑이라는 강점을 발판삼아 꼬셔버리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
" 보통 그런 속셈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는다고? "
윤석이 쿡쿡대고 웃었다. 꼬맹이 때나 지금이나 솔직한건 변함이 없었다. 지나치게 솔직한 감이 없잖아 있기는 했으나 그래도 그 성격 덕에 싹싹 빌 수 있었고, 그 덕택에 마도사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저 성격은 꽤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었다. 그 성격 괜찮은 19세 소녀가 당차게 말했다.
" 아니면 나는 어리니까 그냥 내가 오빠 꼬시면 넘어올라나? 산삼보다 더 좋대. 고삼이. 나 아직 고삼이야. "
" 너 무슨 뜻인지는 알고 하는 말이냐? "
" 글쎄. 그냥 그러던데 다들. "
윤석은 하도 어이가 없어 뭐라고 반박할 말도 찾지 못했다.
" 오빠. 나 근데 야자 땡까고 나온거야. 다시 학교 데려다줘. "
" 되게 당연하게 말한다? "
" 나 그 뚜껑 열리는 차 처음 타봤어. 한번만 더 태워주라. 응? 응? "
그녀는 벌떡 일어나 윤석의 옆자리에 앉은 뒤 팔을 꽉 붙잡았다. 가슴으로 팔을 짓누르는 듯한 모양새에 윤석은,
" 너 뭐하냐? "
하고 별 감흥없이 말했고 그녀는 분해했다.
" 이상하네. 만화책 보면 이럴수가! 라면서 막 코피뿜고 푸아~ 나는 행복하다~ 이대로면 죽어도 좋아~ 이러면서 플래그를 딱! 딱! 그러던데. 어깨에 날개달고 펄~펄~ 날고 그러던데. 이상하네. "
" 그거야 만화니까 그런거고. "
" 그래? "
" 그리고 만화속 애들은 무진장 예쁘잖아. "
너는 안 예쁘고.라고 말하는 듯한 그의 태도에 설하는 발끈하려고 했다. 그러나 윤석이 먼저 말했다.
" 걸리적거리니까 비켜. 태워줄테니까. "
발끈하려던 의지는 뚜껑이 열리는 차 덕분에 금세 사그라들었다. 오예 아싸뵹. 뚜껑 열리는 차다! 그녀는 자신이 교복을 입은 매우 상큼한 소녀라고 주장이라고 하듯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이 커피숍에 펄쩍 뛰었다. 한 번도 아니고 무려 세 번이나 뛰었다.
" 오빠. 근데 오빠 도대체 무슨 클래스야? "
" 나? 현캐들한테 물어봐. 다 아니까. "
이젠 현캐들에게 '배틀필드 스킬포토'와 '탄생성 스킬포토'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현대 캐릭터들이 많아지게 하기 위해 노마진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해서 현캐들이 '건 오퍼'라는 히든클래스에대해서 아는 건 아니지만 윤석은 그냥 대충 대답해버린 셈이다.
" 울 언니도 현캐 키우는데. 울 언니한테 물어보면 알려나? "
" 설하가 현캐를 한다고? "
" 응. "
" 무슨 클래스 하는데? "
" 픽업아티스트. "
윤석은 쿨럭, 헛기침했다. 픽업아티스트. 얼스에서 플레이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상인 아니면 픽업아티스트다. 그건 물론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 설하 성격에 픽업아티스트를 한다고? "
설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 왜? 이상해? "
" 엄청 이상하지. 그 성격에 무슨... "
" 일반적인 픽업아티스트는 아닌가봐. 그니까 언니 성격에 계속 하고 있지. 그래도 유토피아 덕분에 우리 집 사정도 되게 좋아졌어. 나도 일단은 마도사고... 언니도 뭔가 특별하는걸 하는 덕택에 나름대로 수입이 좀 생겨서... "
설아는 주차장에 세워둔 상아색 차. 그녀의 말에 따르자면 번쩍번쩍하고 지금 당장이라도 짜잔 변신을 할 것 같으며 뚜껑도 열렸다 닫혔다하는 엄청나게 신기한 자동차. 앞에 섰다.
" 근데 도대체 오빠는 뭐 하는 사람이야? 10년전엔 그냥 그런 평범남이었는데. "
" 나? "
" 응. 당신. You. 이 차를 보는순간 오빠랑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들어버렸어. 나 고삼인데 이걸로 어떻게 안 될까? "
" 차가 먼저냐 내가 먼저냐? "
그 농담같지도 않은 말에 윤석은 피식 웃고는 도어를 열었다.
" 그냥 조그마한 사업 하나 하고 있어. 나중에 현캐하려면 말해. 내가 도와줄테니까. "
" 됐어. 난 마도사니까. 나중에 울언니 닉네임이나 알려줄게. 울 언니나 도와줘. "
그 말에 윤석은 화제를 돌렸다.
" 너 수희 알지? "
" 알지. 그리 친하진 않았지만. "
차를 출발시켰다.
" 걘 샤무 길드원이야. 판타리아에선 네임드라며? "
" 아아... 응. 엥? 샤무? 지금 오빠 샤무라고 그랬어? 지금 혼또 레알 트루 샤무라고 한거야? "
그리고선 입술을 깨물었다. 이건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고! 라면서 운전하는 윤석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윤석이 신경질을 냈다.
" 아! 운전중이잖아! 장난을 쳐도 때를 가려가면서 쳐! "
" 미, 미안... "
설아는 금세 풀이 죽어 사과했다. 그래도 할 말은 했다.
" 오빠 근데 샤무에 대해서... 몰라? "
" 뭐가? "
" 아 진짜 모르는 눈치네! "
그녀는 언제 풀이 죽었냐는 듯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 오빠 샤무는 있잖아... "
============================ 작품 후기 ============================
1일 1연재로 가려던 결심을 뒤흔든
Hae2 : 폭참을기대하며 쿠폰14장투척 [2013.02.04 16:17]
... 폭참은 그렇고... 아침쯤에 한편 더 올릴게요.
아... 나 쉬운 작가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