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플레이어-68화 (68/244)

00068  수희가 입술을 살짝 깨물고 말했다.  =========================================================================

* * *

" 야!! "

한힘은 혈기를 누르지 못하고 결국 발작했다. 이 곳이 교장실이라는 것도 잊은 듯 했다.

" 진짜 왜 나한테 이딴식으로 나오는 건데! "

그나마 다행이라면 교장 앞에서 쌍욕을 하지 않았다는 것 정도. 한힘은 매우 억울한지 눈시울이 벌개져서 씩씩거렸다. 그는 분했다.

가족들이 쉬쉬하고는 있지만 대충 느껴진다. (사실 저 혼자 찔리는 거지만, 그는 그렇게 느꼈다. 자신의 생각이 무조건 맞다고 생각했으니까 적어도 그에겐 진리인 셈이다.) 부모님이 동생인 연수가 옷을 갈아 입을 때엔 은근슬쩍 가리고 심지어는 엄마도 문을 꼭꼭 닫고 옷을 갈아입었다. 가족들 사이에서도 변태로 낙인찍혀 버린 것 같았다. 그 수모감과 치욕감은 적어도 그에게 있어선 죽음보다도 더한 형벌인 셈이었다.

사실이야, 연수가 옷을 갈아입을 때 부모님은 우연히 연수를 가릴만한 위치에 있었던 것 뿐이고, 어머니는 원래 옷을 갈아입을 때 문을 닫고 갈아입었었다만 한힘은 그런 것 까지는 살필 여유가 없었다.

오로지 드는 생각이라곤, 내가 피해자이고 그 피해는 내가 감당하기 힘들만큼 너무나 크다는 것 뿐이었다.

교장의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 강한힘! "

교장은 교장 나름대로 다급했다. 학생들을 위해 써달라며 무려 100억을 쾌척한 남자다. 교장이 아니라 이사장이와도 굽신거릴 처지에 뭣도 모르는 꼬맹이 하나가 소리를 버럭 지르니 조급해질 수 밖에 없었다.

" 나를 그렇게 생매장한 것도 모자라서 뭐! 이젠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

김윤석이 가증스럽게도 고개를 갸웃했다.

" 교장선생님. 지금 이게 어찌 된 상황인지... "

교장은 연신 땀을 뻘뻘 흘렸다. 그도 어찌된 상황인지 모른다. 한힘이 또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가 화를 낼 수 있는 상대가 윤석밖에 없어서 그렇다. 모든 수치심과 창피함이 윤석에게 몰려서 분노라는 형태로 표출됐다.

" 뻔뻔하게 위선자인 척 하지마! 너 때문에 정신병원에도 가고 친구들한테도... "

윤석은 태평스레 고개를 갸우뚱하고서 물었다.

" 친구들 한테도? 뭐? "

씨발... 씨발...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욕을 하면서 한힘은 결국 팔뚝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그 모습이 참 서럽긴 서러워보였다. 윤석은 내심 혀를 차고 말았다.

' 원래 저렇게 눈물이 흔한가? 저 나이 때엔? '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랬었나 싶다. 감정이 워낙에 격하게 변하는 시기이고 그 감정을 제대로 다스릴 능력이 별로 없는 나이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한힘을 쳐다보는데, 교장이 말했다.

" 설마...그 통화녹음의 주인공이...? "

윤석이 일부러 티나게 당황했다.

" 아, 아닙니다. 그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

순간, 한힘은 멍해졌다.

김윤석이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을 까발리고 모두에게 공개를 한 채, 부모님을 모시고 정신병원에 데려가서 상담을 받게 한 줄 알았다. 그래서 전교에도 소문이 쫙 퍼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머릿속이 마구 뒤엉켜버렸다. 그러나 그것을 표현하고 싶지 않아했다. 그게 최후의 자존심인지 발악인지 더 씨근덕대며 눈물을 계속 닦아냈다.

사실 그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리고 한힘은 '학교'라는 사회, 그리고 '가정'이라는 사회를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적 동물은 관계성에 그 뿌리를 가지며 관계성이 틀어지면 그 뿌리가 말라죽는 것과 다름 없다. 적어도 그에게 있어서 어제 오늘의 상황은 거의 죽음에 준하는 끔찍하기 그지없는 경험이란 뜻이다.

" 교장선생님. 잠깐 이 학생과 얘기를 좀 나누고 싶은데요. "

그 말에, 중간에서 굉장히 당황해하던 교장은 내심 다행이라 생각하며 알겠습니다, 대답하고서 밖으로 나갔다. 윤석이 피식 웃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 참고로 여긴 교장실이야 꼬맹아. "

한힘은 이를 악물고 눈물을 훔쳐내고서 윤석을 노려봤다. 절대 지고싶지 않다는 오기가 가득 담긴 눈초리에 윤석은 피식 웃었다.

" 인마. 교장이 뭔지 아냐? "

물끄러미 한힘을 쳐다보는데, 한힘은 그에 지지 않겠다는 듯 윤석을 노려봤다. 그러나 마지막 자존심 때문인지 입을 열지는 않았다.

" 교. 장. 학교에서 짱이 바로 교장이라는거야. 근데 내가 교장님 나와바리인 교장실에서 교장을 쫓아냈어. 이게 무슨 뜻인지 아직도 이해가 안 돼? 너 그렇게 빠가냐?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려줘야 좀 이해가 되겠니? 대가리가 돌이 아닌 이상에야 무슨 뜻인지 알겠지? "

" 꺼져... 씨발... "

" 그렇게 그냥 입 싸놀리면서 씨발이니 좆같은 새끼니 뭐니 그러면 네가 뭐라도 된 거 같냐? 결국 할 줄 아는 거라곤 욕질 밖에 없으면서 뭐가 그렇게 잘났냐 너? "

그리고 또 피식 웃었다.

' 결국 다 비슷비슷한 성장단계를 거친다 이건가? '

생각해보면 윤석도 그랬다. 중학교 땐 세상에 무서울 게 없었다. 그냥 내 세상이었고 내가 중심이었다. 그리고 어른들 앞에서 큰 소리로 욕하고 강한척 하면 그게 정말 '센 것'인 줄 알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어처구니없고 어린 생각일 뿐이지만 그래도 그땐 그랬다. 그땐 그게 맞는 줄 알았다.

" 너 이 새꺄. 형이 해주는 말이니까 곱게 잘 들어. 이번 일 교훈삼아서 열심히 살어라. 지금 이 상황 좆 같지? 나도 알아 새꺄. 너 좆 같으라고 내가 피 같은 돈 쏟아부었어. 알아? "

사실 그 이유 뿐만은 아니었다. 유토매니아는 게임에서 벌어들이는 코드로 사업을 벌인다. 게임아이템을 파는 것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몹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어른 계층'이 그랬다. 그래서 유토매니아는 '그 어른들'의 시선을 신경쓸 수 밖에 없고 장기적 안목의 투자차원에서 기부와 사회적 봉사를 해나가고 있는 거다.

물론 그가 했던 기부와 사회적 봉사들이 단순히 그런 이유에서만은 아니었다. 여러가지 이유가 복합되어 있었다. 대중의 시선도 시선이거니와, 윤석도 그 나름대로는 뿌듯함을 느꼈다. 특히, 고맙다고 편지와 이메일을 보내오는 사람들의 진심어린 메세지를 읽을 때 그랬다.

" 그니까 나는 내 피 같은 돈 100억 값을 받아야겠다 이거야. "

한힘은 어깨를 바들바들 떨었다. 분노를 가까스로 참는 듯한 모양새였다.

' 나중에 힘 없고 빽 없고 돈 없으면, 이거보다 천만배는 더 좆같은 상황이 오니까, 지금 씨발 한 단어 말할 때 차라리 영어로 Sex를 말하라고. '

하도 하는 짓이 10년전쯤의 자신과 닮아서 한 마디 해주려다가 참았다. 그건 제가 알아서 가야할 길이다. 지금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 와서 내 동생한테 싹싹 빌어. 무릎 꿇고 싹싹빌면서 네 잘못 확실히 용서 받아라. 너 때문에 충격 많이 받았으니까. 씨발놈이. 할 말이 있고 못할 말이 있지. 이건 어려도 용서가 안 돼. 하루준다. 1일 내로 개처럼 바닥 기면서 싹싹 빌 마음이 들면, 그 때 나한테 전화 해. "

그리고 씨익 웃었다.

" 하루 내로 전화 안 하면 지금 네 상황은 우스울 만큼 좆같은 상황 만들어줄게. 못할 거 같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게 좋을거야. 지금은 진짜 아름다운 방법으로 돈지랄을 했는데, 네가 정신 제대로 못차리고 아직도 발정난 개새끼마냥 발발대면 그 땐 아름답지 못한 방법으로 돈지랄 해줄 수도 있어. 진심이야. 어려도 이 정도 말은 알아듣겠지? 정 모르겠으면 아버지께 여쭤보든가. "

윤석은 한힘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수희의 일이라서 조금 과하게 반응한 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손해는 아니다. 언론도 제대로 탔고, 덕분에 유토매니아의 이미지를 상당히 많이 개선시켰다. 게다가 뉴스까지 타면서 공짜로 광고까지 한 셈이 됐다.

그런데, 무슨 말을 들은 것 같다.

" 앙? 뭐라고? "

한힘이 입술을 깨물고서 말했다. 모든 말이 들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알아들을 수 있는 말도 있었다.

" 돈 이면 다냐고... "

" 응. 몰랐냐? "

윤석은 쿡쿡 웃었다. 그리고나서 걸음을 옮겼다. 교장실의 문을 열면서 고개를 뒤로 돌리고 말했다.

" 그게 좆 같으면 너도 부자 되던가. "

세상은 돈이 다가 아닌데, 돈이 있으면 훨씬 편하거든. 돈하고 권력하고 같이 있으면 더더욱 편하고, 거기에 명예까지 있으면 더더더욱 편해. 킥킥 웃고서 걸음을 옮겼다.

' 마케팅도 제대로 됐고...'

이번엔 뉴스도 제대로 탔다. 100억의 힘은 생각보다 큰 모양이다. 기업이미지를 위해 당분간은 10억이고 100억이고 일단 여유가 되는대로 사회적활동에 돈을 아끼지 말아야한다는 게 유토매니아의 현재 운영방침이었다. 사실은 언론조작을 위해 뒷돈도 많이 뿌리고 있는 실정이다.

' 협박도 해놨고... 다른 놈들한테 본보기도 보여야하고. 또 뭐...'

피식 웃었다. 한번 더 말했다.

" 진짜 개처럼 빌 자신 있으면 전화해. 전화 안하면 다음일은 나도 몰라. "

걸음을 옮겼다.

' 이쯤이면 대충 시간이 됐겠지. '

이젠 게임에 접속해도 될 것 같다.

' 국지 전쟁 지휘라. '

이 놈의 전쟁 준비는 뭐가 이리도 오래 걸리는지. 덕분에 현실에서의 시간이 많이 늘어나기는 했다만 게임에 제대로 접속을 못했다. 접속해봤자 진지 밖으로 일정수준 이상 벗어나질 못해서 딱히 할 것도 없었다. 군인클래스가 갖는 페널티였다.

집에 돌아왔다. 주위를 살펴봤다. 혹시나 김수희가 또 노크 없이 짜잔- 하고 들어닥칠까 걱정되어 조심스레 문에 붙어 문을 잠궜다.

' 젠장. 괜히 죄짓는 기분이네. '

화장실에서 몰래 훔쳐온 생리대를,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조심 뜯고 또 조심조심 찼다. 편의점이나 어딜 가서 막상 사려니 엄두가 안 나고, 만약 샀다하더라도 그 뭉치 -생리대를 낱개로 팔지는 않으니까- 를 딱히 숨길 곳도 없고 해서 그냥 집에 있는 걸 하나씩 몰래 빼다 썼다. 가장 편한 방법이었다. 돈도 안 들고.

그 상태로 유토피아에 접속 하려고 했는데 전화가 왔다.

강한힘이었다. 윤석이 씨익 웃었다.

============================ 작품 후기 ============================

제가 장염에 걸렸을 때... 설사를 계속해서 의사선생님의 권유로 생리대를 찼었습니다.

느낌이 참 별로입니다. 처음엔 차는 법도 헤맸더랬죠 ㅡㅡ; 그나저나 생리대 차는(차야만하는) 이유는 곧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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