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7 수희가 입술을 살짝 깨물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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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수희가 주랑에게 전화를 한 날. 주랑은, 다른 건 둘째 치더라도 도저히 그 욕설만큼은 용납할 수 없었다. 바로 이 부분이다.
' 네 오빠랑 섹스나 존나하다 보지 헐어 뒤져버려 씨발년아. '
16살이라는, 그리고 숭신중학교 3학년 일짱이라는 그 소년의 욕은 도무지 용납할 수가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 언니. 이상한 남자가 오빠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서... "
그리고는 기억나는대로 말했다. 울먹거렸다. 수희가 많이 놀란듯 하여 주랑은 일단 만나서 얘기하자고 했다. 일단 만나서 주랑은 대략 30분 가량 수희를 다독거려주었다. 주랑 특유의 침착한 분위기와 따스한 목소리에 수희는 안정을 되찾았다.
' 정말 많이 놀랐나보다. '
주랑은 수희의 옆자리에 앉아 수희의 어깨를 다독여주면서 자초지종을, 조급해하지 않고 더 자세한 이야기를 찬찬히 캐물었다.
" 그 사람 정말 최악이네. 누군지는 모르지? "
" 네. 몰라요... "
" 통화 녹음은 했니? "
수희는 고개를 저었다.
" 너무 놀라서... "
" 응응. 괜찮아. 그런 기록 같은 건 있어봤자 무섭기만 하니까. "
" 목소리 자체는 조금... 앳된 거 같았어요. "
그리고 또 울먹거렸다. 오빠한테 무슨 큰 일 생긴 거 아니죠? 하고 잔뜩 붉어진 눈시울로 주랑을 쳐다봤다.
' 매일 티격태격해도 참... '
주랑은 수희의 어깨를 다독이며 달래주었다. 지금 당장 수희에게 필요한 건 위로였다. 마음의 준비도 제대로하지 못한 상태에서 쏟아진, 차마 입에 담기조차 힘든 욕설이 22살 수희의 마음에 생채기를 많이 낸 것 같았다.
' 도대체 누구야? '
수희 앞이라 내색은 안하고 있지만 사실 주랑도 화가 많이 났다. 특히 화가 났던 부분은, 오빠랑 섹스 어쩌고 저쩌고 했던 부분이다. 주랑 스스로도 안다. 화를 내야할 핀트가 묘하게 빗나가긴 했다.
' 어떻게 그렇게 심한 말을 해? 오빠랑 뭐가 어쩌고 저째?'
씨발이고 개새끼고 병신이고 좆 같은 새끼고. 그 것들 역시 험악하기 그지없는 말이지만 그래도 주랑은, 거기까진 용납해줄 수 있었다. 그냥 무시무시한 말이라고 생각하면 되니까. 그러나 '오빠와의 섹스'는 도무지 용납이 안 됐다. 그 부분에서 특히 화가 많이 났다.
' 누군지 꼭 잡아내고 말거야. '
겉으로는 최대한 차분하게 웃었다. 윤석의 표현을 빌리자면 보기만해도 마음이 안정되는 따뜻한 미소를 열심히 보여주었다. 가뜩이나 많이 놀란 수희 앞에서 동요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 절대 용서 못 해. '
빙그레 웃었다. 수희를 다독여주었다.
" 걱정하지마 수희야. 오빠를 믿자. 네 생각보다 우리 오빠 엄청 능력 있어. 그 사람은 꼭 잡아서 혼내줄게. "
* * *
정신과 전문의의자 심리상담가로 이름높은 공병찬은 새로운 환자를 하나 맡게 됐다.
그림 검사를 비롯해 몇가지 간단한 질의 응답을 해보면서 대화를 나누어봤다. 사실 이 '대화'라는 것이 심리상담의 가장 기초적이고도 기본적인 요소였다. 질의 응답의 형식을 빌어 이야기를 나누는건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질의응답을 하게 되면 당사자가 말하고 싶어하는 것만 얘기하게 되니까.
그러나 일상적인 대화는 다르다.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얻게 되는 소스(Source)가 이 사람의 심리상태를 파악하는 가장 큰 요소로 작용한다. 일상적인 대화에서 유독 많이 사용되는 어휘, 앞 내용과 뒷내용의 상관 관계를 계속해서 도출해내다 보면 심리가 읽힌다. 그건 공병찬의 재능이기도 했고 연습의 결과이기도 했다.
' 그냥... 전형적인 중학교 3학년. '
그리고선 고개를 갸웃했다. 전형적이라기보다는,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중2병'에 걸려있는, 과도기 단계를 거치고 있는 청소년이었다.
' 스스로는 어른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
스스로는 아마 알 거 다 알고 스스로의 힘으로도 모든 일을 해결해나갈 수 있는, 이미 다 컸다고 생각하고 있을 거다.
'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게 바로 어리다는 증거지. '
스스로 다 컸다고 생각하면 발전이 없다. 그래서 깨어있는 어른은, 언제나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소년은 달랐다. 이미 다 컸고.
' 어렵게 생각할 것도 없이 그냥 천상천하 유아독존...정도면 설명이 되려나. '
뭐 특별할 건 없다. 그나마 조금 특별한 점을 찾아보자면,
' 성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성에 막연한 동경을 품고 있어. '
그러나.
' 동경을 품고 있다는 것 자체가 바로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뜻이고.'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건.
' 그걸 인정한다는건 무의식적인 반응으로... 자신이 어른임을 부정하게 되는 거지. '
그러니까.
' 오히려 성에 대해 잘 아는 척을 하면서 우쭐대고 내세우는 것. 그래서 자신의 기본적인 대전제인 나는 어른이다, 라는 걸 내면세계를 밖으로 표현하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거야. '
그러나 사실 큰 문제는 아니다. 이 시기의 남자 청소년이라면 누구나가 겪을 수 있는 성장단계고, 학창생활 혹은 다른 경험들을 통해 앞으로 성장해나갈 것이 분명했다. 알아보니 학창생활에도 별 큰 문제는 없었다. 몇 마디 조언과 격려만 있으면 얼마든지 바르게 자라날 수 있었다.
" 그렇게 큰 문제는 없습니다만... "
공병찬은 힐끗 눈치를 살폈다. 눈 앞엔 세 명이 앉아 있었다. 한 명은, 미리 컨택했었던 김윤석 사장이고 또 다른 둘은 방금 상담했던 아이의 부모였다.
" 아무래도... 부모님께서는 성에대한 교육을 해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
마음속에 무의식적으로 생긴 대전제. 그 것을 옹호하기 위한 내면의 표출로써 '성에 대한 욕'이 나온다고 알기쉽게 설명해주었다.
그 학생의 아버지가 조급해하며 물었다.
" 그럼... 큰 문제는 없다는 겁니까? "
" 네. 몇 번 더 두고봐야 알겠지만 그리 걱정하시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 걱정하셨던 그런 부분은... 뭐... 일단은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 말에, 박찬영과 이선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선자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공병찬의 손을 맞잡았다.
" 감사합니다 박사님. "
" 아닙니다. 저야 뭐... 그냥 간단한 얘기만 해주었을 뿐이고... "
김윤석을 힐끗 쳐다봤다. 공병찬은 오히려 이 김윤석 사장이 의심스러웠다. 뭐랄까, 진짜 그 학생을 걱정한다기보다는.
' 뭐랄까 장난치는 기분이랄까. '
그래도 공병찬은 고개를 저었다. 상담비로 무려 300만원을 써가면서 -덕분에 공병찬은 일정을 뒤로 미루어야만 했다- 급하게 상담을 주선해줬다.
그런데다가 장애인들을 위한 100만 캡슐 기증, 거기에 그치지않고 사회적 일자리 창출을 해내어 최근 사회적 약자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이란 찬사를 받고 있는 사람이다.
뿐 이랴.
게임으로 번 돈을 사회에 환원하는 방법으로 장학금을 선택한 훌륭한 남자다. 그냥 장학금도 아니고 무려 100억. 평범한 사람이라면 감히 엄두조차낼 수 없는 배포였다. 그런 사람이 학생 하나를 데리고 장난질을 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 장난이라면... 300만원짜리 장난이 되는 건가. '
피식 웃었다. 아무리 유토매니아의 사장이라도 300만원은 결코 작은 돈이 아닐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틀렸다. 윤석에게 300만원은 그냥 냅다 길거리에 뿌릴 수 있는 수준의 돈이었다. 길 가다가 흘렸는데, 귀찮아서 줍기 귀찮은 정도. 딱 그정도다. 공병찬은 잘못 생각했다.
* * *
한힘은 고개를 푹 숙였다. 일단 어머니는 다행이라며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고 아버지는 묵묵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한힘은 이를 악물었다.
' 그 개새끼... '
미친놈도 그런 미친놈이 없다. 학교를 찾아와 대뜸 100억을 건네줬다. 거기까진 좋다. 덕분에 잔디구장도 생긴다고 하고 도서관도 새로 생긴단다. 그런데 그 놈이.
' 나를 정신병자 취급해? '
정말로 통화녹음을 해놨다. 그걸 경찰에 신고하지는 않았단다. 대신.
' 좆 까지말란 말이야! '
그는 열불이 터졌다. 그 놈은 신고를 하는 대신 교장앞에서 그 녹음내용을 틀어줬고, 절차는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부모님이 자신에게 말을 했고, 매우 유명한 정신과 의사랑 상담을 하게 됐다. 모르긴 몰라도 부모님이 '근친' 어쩌고 '섹스'어쩌고 저쩌고 얘기했던 걸 들은 것 같다. 상담을 해봤는데, 아무리 어려도 대충의 눈치는 챌 수 있었다. 그는 얼떨결에 가족들 사이에서 ' 근친상간의 욕구를 가진 되먹지 못한 놈' 정도가 되어버린 듯 했다. 한힘의 속도 모르고 어머니인 이선자가 감동한 듯 말했다.
" 그래도... 그런 훌륭한 사람이 신경을 써줘서 정말 다행이야... "
신경을 써줘? 그 새끼가? 나를? 열불이 터졌다. 학교에서도 '섹스에 미친 정신병자'로 소문이 터질게 분명했다. 그 것도 그냥 섹스도 아니고.
" 연수한테는... 비밀로 하자. "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제가 된 건, '섹스 어쩌고 저쩌고' 와 더불어 '네 동생년이랑 섹스', 그리고 '네 엄마 보지를 핥아' 였다. 윤석은 그 것과 관련하여 이 아이의 내면 속에 '근친상간에 대한 욕구'가 뿌리깊이 잠재되어 있는가 - 이를테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나 엘렉트라 콤플렉스와 같은 -에 대해,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걱정을 해주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훌륭하다는 김윤석 사장이 말을 해주고 걱정을 해줬다. 덕분에 유명한 심리상담가에게 상담도 받을 수 있었다. 박찬영과 이선자는 아들에 대해 신경을 써준 김윤석에게 무한한 감사를 느꼈지만 한힘의 입장에선 그렇지 않았다.
' 씨팔...진짜...'
그는 졸지에 근친상간의 욕구를 해소하지 못한, 불건전한 오빠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동생인 연수가 그 사실을 모른다고는 해도 스스로 창피하고 쪽팔린 건 어쩔 수 없었다. 볼이 화끈거리고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었다. 연수가 알든 모르든 도저히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가장 가까워야할 가족인데 멀어져버린 것 같은, 고독감이 밀려들었다.
학교에도 소문이 어떻게 날 지 몰랐다. 중학교 3학년. 그 시기에 가장 중요한 건 바로 '교우관계'다. 그 어떤 가치보다도 우정을 우선시하게 될 시기이고 그 것이 틀어진다는 건 곧, 어른들이 말하는 '사회적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거다. 그리고 그 '사회적 죽음'은 어린이든 청소년이든 성인이든 그 누구에게나 진짜 죽음에 버금가는 끔찍한 고통을 맛보게 한다.
참으려고 해도 자꾸만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그는 두려웠다. 친구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 지, 동생이 자신을 어떻게 볼 지, 부모님이 자신을 어떻게 볼 지. 물론 의사는 이상이 없다고 말했지만 그 스스로가 위축되고 창피한 건 어쩔 수 없었다.
' 씨발놈.... 씨발놈... 진짜 씨발놈이... 진짜 씨발놈이...'
그 것만이면 모를까.
" 어서 와라. "
좆 됐다. 교장실에까지 불려왔다. 교장의 얼굴이 보이고, '그 새끼'의 얼굴이 보였다. 교장에게는 보이지 않을테지만 '그 새끼'는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던졌다.
" 안녕? 처음 보는구나. "
그 말에 결국 한힘은 폭발했다. 그 것도 교장실 안에서.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한 모양새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목에 핏대가 섰다.
" 야!! "
교장보다 뒤에 서있는 윤석이 씨익 웃었다. 사회적 이미지도 세워 올릴 겸, 그걸 통해 신생기업이나 다름없는 유토매니아를 광고도 할 겸, 돈지랄도 좀 할 겸, 사과도 받아낼 겸, 그리고 조금 싹수가 노란 어린 놈. 그러니까 돌이켜보면 10년전의 자신의 모습과 꼭 닮은 싸가지 없는 놈 하나 바른길로 선도도 할겸.
이제 마지막 단계만 남았다.
============================ 작품 후기 ============================
Final step. 꾹. 꾹.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조금... 느린감이 없잖아 있습니다만 봐주세요. 그냥 잘근잘근 밟고 돈지랄로 끝낼거면 금방 끝나긴 하는데... 그래도 어린 새싹인데 그냥 밟기만 하는건 좀 그렇잖아요. 봐줘용 꺄~ 뿌잉뿌잉 >_<♡♡
" 아... 씨x놈이 진짜 제대로 빡치게 하네 "
" 이 글 보면서 이렇게 열받은 적 처음이다. 나 진지하다. "
" 죄송합니다. 당분간 하루 2연재 약속드릴테니 용서좀;; 예전에 말씀드린대로 (약 70편까지가 그때의 비축분) 이제 수위가 높아질 예정이므로 용서좀;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